소설리스트

105화 (10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한 번째 과외.

“누나 다른 데 앉으면 안될까.. 왜 멀쩡한 소파를 냅두고 무릎 위에..”

“넌 내 소파인 걸 잊었어?”

에이스보다 더 편한 침대 겸 소파.

그 브랜드 이름은 바로 김민식. 오늘도 효민님의 부름에 힘입어 티아라 누님들에게 열심히 봉사 중이다.

오자마자 소파가 아닌 카펫 위에 따뜻하게 엉덩이를 붙이는 데, 내 무릎 위에 누군가가 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가슴팍에 기댔다.  고개를 아래로 낮추니 떡하니 보람누나의 정수리가 보였고, 또한 은은한 샴푸향이 내 코를 찔렀다.

“람뽀! 일루 와, 원래 내가 소파였자나!!”

“얘가 더 편안하다.”

“히잉.. 그렇게 편안하면 나도 같이 앉을래!”

은정누나는 나를 질투가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아흑, 내가 왜 저런 눈빛을 받아야하는건데.

하지만 람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편하게 내 가슴팍에 등을 기댔다.

오늘은 청바지를 입고 와서 그나마 다행이네.

은정누나는 람뽀의 말에 서운함을 느낌과 동시에 아까와는 다른 해맑은 눈빛을 내게 보냈다.

뭔가 그 눈빛에 불안한 낌새를 채고, 보람누나가 내 무릎에 앉은 채 옆으로 뭉그적뭉그적 움직이는 데 내 허벅지에 손을 얹히고는 곧바로 누워선 허공에 다리를 휘젓는 은정누나였다.

아, 무거워졌어.

아, 무서워졌어.

“민식아, 여기 과일 먹어―”

“으..응..”

소연 누나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분명히 보람누나랑 뜨겁게 놀기 전 까지는 너무 시크해서 함부로 다가가기도 어려웠는데, 이건 뭐. ‘우리를 사랑을 모른다’에 나오는 정수연이란 캐릭터보다도 더 돋네요.

어쨌든, 소연누나가 깎아주는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덥썩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힛, 맛있어?”

“응...”

식탁에서 꽃받침을 하며 건너편에 앉아있는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소연누나의 모습.

귀여워서 좋긴 하지만, 어제와는 너무 다르잖아. 

사과는 달달했지만, 소연누나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다 먹었네? 착하다아―”

심지어는 내 머리까지 쓰다듬으며 해맑게 웃는 소연 누나.

해빙한 시카도 아니고 해빙 소연인것인가.

항상 시크했던 머리 스타일도, 오늘은 머리끈을 묶어 사과머리인 채로. 유난히 해바라기 장식이 달린 노란 머리끈이 돋보였다.

다시 시크한 소연누님으로 돌아와! 우우우.. 도저히 적응이 안 돼.

“야. 이씨 내 차례야!”

“나 아직 다 안했거등!?”

“너네들 그만 싸워!”

TV 앞에서는, 두 명의 막내들이 게임기를 키고 열심히 게임중이었다.

그러다가 또 치고박고 싸우고 앉아있다. 우우, 쟤네들은 진짜 싸우면서 크나. 키도 크고, 가ㅅ.. 아니다. 

어쨌든, 막내들의 귀여운 쌈박질에 풋 하고 활력소를 되찾고 있을 때 쯤, 큐리누나가 팩을 다 했는지 촉촉하게 보이는 얼굴로 막내들의 싸움을 말렸다.

은정 누나 다음으로 나한테 시달리는 효민이는 다행히도 연기 연습을 한 다고 스케쥴을 뛰러 간 상태.

이 카오스 같은 상황이 좀 덜해진게 다행이었다.

“민시가!”

“응?”

“다시 여기 와서 앉아!”

내가 무슨 장난감도 아니고.

투덜투덜대며 속으로 생각해보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릴 때 쯤이면 내 몸은 소파 아래에 앉아, 보람누나의 편안한 에이스 같은 존재의 소파가 되어있었다.

아까와 똑같이 은정누나는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선 해맑게 나를 쳐다보며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댔다.

“히히. 여기 민식이 사진! 잘 생겨따―”

핸드폰에 찍힌 내 사진을 보여주는 은정 누나.

보람누나가 내 무르맡에 앉는 바람에 다리가 저려서 약간 찡긋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 데, 왠지 좀 까리해 보이는데?

“음. 좀 잘 찍었네.”

“봐봐! 흑백으로 하면 더 머쪄!”

은정누나는 그 사진을 또 흑백모드로 변환시켜서 나에게 다시 보여주었다.

좀 더 느낌 있게 보이는 사진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저 사진을 저장하겠다는 건 아니고.

“히히, 메인배경으로 저장!”

“으응..?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남친이라고 하면 되지! 히히-”

은정누나가 방송 일을 하다가 만약 소녀시대 아해들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냥 아는 이웃도 아니고 남친이라니. 난 프랑스 때보다도 더 털리고 말거야.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왜 다들 여기 앉아있어?”

“히히, 민식이가 푹신푹신해서.”

“쏘, 너도 누워.”

“그럼 어디 누워 볼까아―”

어이, 난 허락하지 않았는 데.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내 말을 씹는 스킬이 수준급이다.

소연누나 마저도, 은정누나 옆에 나란히 누워서 내 오른쪽 허벅지를 무겁게 했다.

왼쪽 허벅지는 그나마 프리한데, 오른쪽 허벅지는 봉인당한 느낌이랄까.

고작 세 명에게 시달리는 것 뿐인데. 소녀시대 아홉 명이 단체로 달라 붙을 때 보다도 더 체력이 소진하는 정도가 심했다.

여기서 효민이마저 붙는다면? 음, 차라리 소녀시대에게 시달리는게 낫다―

“하, 효민이가 없어서 그나마 덜 시ㄷ..”

“언니들 나왔어! 음? 민식이 베고 뭐해?”

“너도 여기 와서 누워. 푹신푹신해.”

“히힛, 그럼 어디!”

“엌.”

그 사람의 말 좀 하려고 하면, 딱 그 사람이 나타나네.

효민이의 뒷담 좀 옴팡지게 깔려고 하니까, 효민이가 대본 암기가 끝났는 지 현관 앞에서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나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세 명의 포지션을 보고는 질문을 건네는 효민이.

그 말에, 내 가슴팍에 등을 기대며 나를 소파 취급하는 보람누나는 내 왼쪽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여기에 누우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효민이는 가방을 내려놓은 채로, 내게 러쉬를 해왔다.

난 허벅지에 누울 줄 알고 왼쪽 허벅지에도 슬슬 힘을 주려고 했는데, 의외로 소파 위로 올라가선 얼굴을 내 어깨 옆으로 빼는 게 아닌가?

등에선 부드러운 순두부의 느낌이 나를 정신 못차리게 했지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닿을 것만 같은 효민이의 볼살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거 참. 고개 돌릴려면 오른 쪽으로 돌려야만 한다니 불편하구만.

“어, 학교 갈 시간이다!”

“지금? 점심인데?”

“오늘은 오전 공강이고, 오후에 강의 있어! 낄. 가볼게!”

“데려다줄게!”

“필요없어. 시간도 별로 안 걸리는데 무슨.”

나는 티아라 멤버 네 명에게 시달리면서 한 숨만 쉬고 있는 동안 문뜩 벽에 매달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두 시. 생각해보니 곧 오후 강의가 있는 시간! 은 개뿔. 사실 있지도 않았다.

대신 학교가 축제라던데. 어쨌든 나는 차라리 지금 티아라 여자 분들에게 시달리느니 학교를 가는 게 더 편하겠다 싶어 강의 핑계로 둘러대며 곧바로 학교로 걸어갔다.

‘와글와글.’

벌써부터 사람이 한 가득이다.

역시 대학교 축제는 엄청나다니깐, 근처에 고등학생들도 놀러왔는 지 음흉한 미소로 대문을 지나갔다.

저 녀석들이 이 학교에 온 이유는 여러가지다.

연예인 보러 왔거나, 술 마시러 왔거나, 여대생 꼬시러 왔거나.

하지만 축제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분명히 축제 공연 준비하느라 외부 무대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스탭들이 공부했던 미디어공연영상 대학관에 들어가 빈 강의실이 있나 찾아보았다.

역시나, 사람들은 없고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먼지가 좀 있긴 하지만, 우리 영문학과 강의실이 이 강의실보다 더 더러우니 넘어가고.

여기의 강의실의 책상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앉는 식이라, 좀 길었기에 강의실의 문을 잠구고 그 위로 올라가 잠시 편안하게 잠을 취했다.

따뜻하기도 하고, 잠도 잘 오겠구만.

*

여기는 꿈 속.

“민식아, 이것도 먹어~”

“으응..”

아아, 얼마나 소연누나의 변화가 돋았으면 꿈 속에서도 나올까.

꿈 속에서도 여전히 소연누나는 나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있었다.

일단은 꿈 속이니 주는 대로 먹어야지.

맨 처음엔 사과. 그 다음엔 배. 그 다음에는 수박. 그 다음에는 김밥. 그 다음에는 주먹밥.

꿈 속인데도 참 맛있다.

“맛있지―?”

“응. 맛있네, 더 없어?”

현실에서처럼 꿈속에서도 애교스럽게 맛있냐고 물어보는 소연누나.

나는 맛있으면 그 요리를 더 찾게 되는 경향이 있는 지라, 소연누나에게 남은 주먹밥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소연누나는 부끄러워하는 듯 얼굴을 붉히며 나를 경악하게 만드는 대사를 내뱉었다.

“주먹밥은 없고, 이거라도 먹을래?”

“아..아니!”

꿈 속에서의 소연누나는 부끄러운 채로 말을 하면서 손으로는 자신의 옷의 단추를 풀려고 했다.

나는 꿈 속에서의 소연누나가 저러는 모습을 보고 있자, 어서 이 꿈을 자각하고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잉, 그러지말고.”

“아아아 오지마요!!!”

*

“오..오지마..! 휴.. 꿈이었어..”

다행히 레알 꿈이었다.

식탁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옷을 벗으려고 하던 소연누나는 오로지 꿈에서만 있었다.

잠에서 깨니,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 지. 벌써 다섯시가 되었다.

꿈 속에서도 소연누나에게 시달린터라,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갔다.

“우우우우우우!!!!”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왜 이렇게 환호질임.”

분명히 창문이 닫혀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끄러운 함성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연예인이 오긴 왔나보다.

나는 창문을 열고 이 함성소리를 내게 하는 주인공이 누구일까 라고 생각하고, 창문을 번쩍 열었다. 

그리고 밖의 야외무대를 보니,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누에삐오.”

음, 저기 있는 애들은 네 명이고, 네 명 모두 어디서 본 듯한 면식이고, 쟤는 설리고, 쟤는 수정이고. 쟤는 루나고, 저 사람은 치엔누나네.

음, 어떻게 하지!? 쟤네들도 분명히 내가 이사가기 전에 우리집에 왔었고, 내가 ‘꺼져’라고 냉담하게 대했었으니. 만나면 존트망인데!?

순간 머릿 속이 매우 복잡해지는 지경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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