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아흔 아홉 번째 과외.

**

“아흑, 두야.. 또 같이 술 먹는게 아니였는데.”

누워서 좁은 창문을 통해 지켜본 아침의 하늘은 흐릿했다.

어제 또 술을 마셔서 그런 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때도 효민이의 강압에 못이겨 질질 끌려나가서 최종 우승자가 되었는 데, 이번에도 마지막으로 남아버려서 취한 채로 정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와 디비 자버렸는데,

으. 역시나 술은 많이 마시면 골로 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럴 땐 다시 자는 게 최고지.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으으, 잡히면 사지를 분리시켜놓을테다.”

두꺼운 이불을 다시 집고, 따뜻한 이불의 품 안에 들어가려던 그 순간.

사분의 사 박자에 맞춰서 딩동거리는 초인종 소리에 머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남자면 사지를 분리. 여자면 음, 일단 생각해보고.

어쨌든 움직이기 싫은 다리를 힘겹게 움직이며 현관 앞에 걸어가서 문을 살며시 열었다.

“아씨! 누ㄱ.. 어, 아,안녕하세요.”

“어, 그래.”

발 까지 입에 담으려고 했지만, 문을 빼꼼히 열어도 보이는 시크한 소연누님의 실루엣에 욕은 고이 마음 속에 묵혀두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꺾어 인사를 했다.

그러자, 역시나 시크하게 대답하는 소연누님.

“무슨 일로..?”

“너 오늘 일 없지?”

다른 일상적인 대화는 집어치우고, 우선 목적을 물어보는 나였다.

어차피 일상적인 대화는 어젯 밤과 오늘의 새벽 밤 사이에 장난 아니게 하지 않았던가.

“일 없어서 이러고 있잖아요.”

“음, 그럼 람뽀 좀 돌봐줘라.”

“읭?”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티아라 숙소로 올라가서 초딩같은 람뽀를 돌보라고?

난 못해. 죽어도 못해. 귀찮아서 못해. 

“람뽀가 오늘 스케쥴 없어서 심심할 것 같은데, 좀 놀아주라고.”

“...?”

“자꾸 생각하는 척 하지마. 난 네가 잉여란 걸 알고있으니까.”

하, 정곡을 찔렸다.

역시 비슷하게 시크해서 그런가. 음, 이건 헛소리고 어느샌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점차 움츠러들었다.

내가 속으로 ‘가기 싫다.’라고 아무리 주문을 걸어봐도 ‘몸’이란 녀석은 아무래도 혼자 있기는 심심해 하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랬어. !?

“잉여니까, 놀라는거고. 안 그래? 어쨌든, 난 스케쥴 해야되니까 이만 가볼게.”

“살펴가세요.”

점점 멀어져서 내 시야에서도 흐릿하게 보일려고 하는 소연누님을 향해 큰 절은 아니지만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이렇게 꺾기는, 군 입소 때와 신입생 OT 빼고는 처음인데. 둘 다 이렇게 편하게 꺾는 게 아니고 기합 받느라 꺾었다지 아마.

기억하기도 싫은 추억같지도 않은 추억이 떠오르자 괜시리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쨌든, 소연누님이 나에게 람뽀누님이랑 놀아주는 퀘스트를 부여하셨으니 난 그저 평범한 평민이니깐, 일단은 몸을 깨끗이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귀찮다지만, 같이 놀아주는 상대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이지 않은가. 뭐, 초딩같긴 하지만.

“참새애애애이. 짹짹. 병아리이이이이 삐야야야악삐야야아악.”

샤워기에서 몸을 타고 떨어지는 물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에 맞혀서, 정체불명의 노래를 부르는 나였다.

음, 뭐. 아무도 들을 사람 없으니깐 상관없어.

“아,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네. 춥다, 추워.”

다 씻고 몸을 마저 말리지 않은 채로 나오니, 아직 보일러를 틀지 않아 시린 방바닥의 느낌이 발에서 머리카락 끝까지 타고 올라왔다.

순간, 푸른 색의 전율에 몸이 찌릿하고 움찔거렸다.

전율을 느낀 뒤, 나는 바로 수건으로 몸에 남은 수분을 으악스럽게 닦아냈다.

그리고, 머리를 대충 대충 말려서 숱이 많아보이게 부풀린 다음. 대충 야구잠바를 면티 위에 걸치고, 츄리닝 바지를 입은 채로 윗 층으로 뚜벅뚜벅 올라갔다.

“어디보자. 숙소는 닫혀있고, 나는 비번도 모르고. 열쇠는 없고...”

모든 팬픽의 정석이자, 애니메이션의 정석이자, 드라마의 정석인 화붙 밑을 뒤져봐도 열쇠는 나타나지 않았다.

제길, 비밀번호도 안 알려줬으면서 어떻게 돌봐주라는거야.

‘똑똑똑.’

노크를 수십 번해도 묵묵부답. 아마도 잠들고 있으리라고 짐작되었다.

하,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문자를 보내면 바로 답장할 듯한 은정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띠링.’

역시나 칼답장 은정누나. 그 칭호가 아깝지가 않다. 흑, 감동 받았어.

〈오늘은 왠일이얌. 먼저 문자도 보내고, 0729니까 람뽀언니랑 잘 놀아주고 있어. 나랑도 놀아주공~〉

비번도 빼는 것도 없이 바로바로 알려주는 은정누나.

그리고 여태까지 티아라 멤버 중에선 가장 같이,많이 놀았던 멤버는 은정누나였던 것 같은데.

거의 하루에 두 번 꼴로 우리 집에 찾아오잖아. 우우우..

요즘엔 효민이랑 같이 놀러와선, 쌍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해달라고 애교를 부리지 않나. 우우, 날 그만 좀 부려먹어줘.

‘띡.띡.띡.띡, 띠리링.’

번호 누르는 소리가 참으로 귀엽다. 

겨우 문을 여니, 저번에 놀러갔을 때와는 다르게 많이 조용했고, 썰렁했고, 어두웠다.

마찬가지로 람뽀누나는 거실에도 없고, 주방에도 없었다.

흠, 그럼 진짜로 자고 있나.

나는 발걸음을 큐리누나와 람뽀누나의 보금자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흐미..”

람뽀누나는 자신의 방의 침대에 누워 새곤새곤 자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랑 몸집이 비슷한 곰돌이를 와락 껴안으면서 말이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잠들어있는 보람누나의 부드러운 볼살을 향해 움직였다.

‘콕. 콕.’

꺄르르르르. 느낌이 좋다. 너무 부드러워. 애기 볼살 만지는 것 같아.

난 보람누나의 볼의 촉감에 대해 혼자서 여러 감상평을 쏟아내며 웃었다.

“변태냐.”

아니요. 변태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잠에서 방금 깬 보람누나의 부스스하지만 귀여운 모습은 날 변태로 만들 수 있을지도.

어쨌든 난 변태 아님.

“자고있는 데 왜 깨워.”

“아..아니, 볼에 뭐가 묻어서.”

애써 핑계를 대며 둘러대보지만, 보람누나는 나를 수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눈을 비비적거리며 내게 말했다.

“배고파..”

“배고파..? 뭐 해줄까. 밥 해줘?”

“웅.”

람뽀누나는 허리를 일으키며 침대에서 눈을 비비적 거린 채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아담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쓸면서 배고프다며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람뽀누나였다.

나는 슈렉의‘장화신은 고양이’를 보는 듯한 람뽀누나의 표정에 원래 내가 이렇게 따뜻한 얘가 아니었는데도. 자발적으로 밥을 해주려고 하는 지, 어느새 내 왼 발이 주방 쪽을 향해 움직여져있었다.

난 람뽀누나의 ‘웅.’이라는 말에 맞춰 주방으로 달려가서 요리를 해줄만한게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래뵈도, 벌써 자취생활 반 년이다. 자취생활 반 년이면 청소도 혼자서도 척척. 빨래도 혼자서도 척척 할 수 있다고!

또 그리고,

“음, 자취 생활 반 년이면 갈비찜도 만들 수 있다!”

빛나라 지식의 별! 하지만 그 전에, 갈비찜을 하려고 했더니만 냉장고, 주방 어디에도 갈비찜의 재료라고 칠 수 있는 건 오로지 간장 하나 뿐이였다.

제길, 할 수 없이 냉장고에 있는 이 비루한 반찬들을 가지고 진수성찬을 차려야 하는건가.

할 수 없이 계란 여러 개를 깨트려 각종 계란 요리를 만들었다.

스크램블 에그, 계란 프라이, 계란 찜, 계란 말이. 내가 보기에도 오늘 아침에 이것만 먹으면 당분간은 계란 먹기를 꺼려할 것 같은 메뉴랄까.

“우웅.. 와! 밥이다!!”

람뽀누나는 햄스터 잠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곰돌이를 팔에 끼고 식탁에 차려진 밥을 보곤 열렬하게 환영했다.

훗, 기뻐할 줄이야. 나 살짝 감동했어.

람뽀누나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고선 누가 뺏어먹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지, 우걱우걱 반찬들을 입 안에 넣기 바빴다.

뭐, 나는 요리하면서 꽤나 줏어 먹은터라 배고프지가 않았다.

“낄. 이게 정녕 스물 다섯 살의 여자란 말인가. 응? 밥풀 묻었네.”

나는 맛있게 밥을 먹는 람뽀누나의 모습을 보며 아빠의 미소를 띄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밥을 먹는 람뽀누나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람뽀누나가 너무 우걱우걱 먹었는 지 람뽀누나의 입가에 밥풀 몇 알이 묻어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발견하고 밥풀을 떼서 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다가 바로 삼켰다.

음, 근데 람뽀누나가 우걱우걱 먹지 않고, 깨작깨작 밥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얼굴이 붉어진 채로, 난 왜 저러는 지 도저히 영문을 알 길이 없었다.

“누나, 갑자기 왜 조금씩 먹어?”

“칫, 바보.”

누나는 내게 바보라고 말하고, 마저 깨작깨작 젓가락을 놀려대며 남은 밥을 싹 다 비워냈다.

밥그릇이 깨끗했다. 반찬 접시도 깨끗했다. 

난 깨끗이 잔반처리를 한 보람누나가 자랑스러워 보람누나의 머리를 손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자 다시 백설기같이 하얗던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진 보람누나의 얼굴이었다.

보람누나는 티비를 보러 소파로 걸어가기 전에 자신의 방을 들어가더니 문을 쾅하고 닫았다.

삐진 건 아닐테고, 잠옷을 입고 있으니까 옷을 갈아입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려고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려고 할 때 쯤, 보람누나의 방의 문이 열리더니 병아리 한 마리가 쫑쫑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있었다.

그리고는 내 무릎 위에 앉는 귀여운 노란 병아리 한 마리.

“람뽀, 지금 뭐하는 거임.”

“넌 내 쿠션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