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아흔 여덟 번째 과외.

“그리고 다른 애들이랑 놀려고? 너, 상습범이구나.”

“그런거 아니야.”

민식이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저 의미심장한 톤을 봐서는 확실히 뭔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있는게 분명했다.

나는 손을 패딩조끼 주머니에 푸욱 집어넣은 채, 잡히는 솜털을 콰악 쥐었다. 그리고 내 눈은 민식이를 주시했다.

“아니면, 왜 우리를 멀리하고 이사를 가버린건데?”

“하, 일단 여기서 얘기하면 주민들 피해가니까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내 맘은 이게 아닌데, 괜시리 언성을 높여서 민식이에게 말했다.

민식이는 내 목소리가 귀를 찌를 만큼 따가웠는 지, 얼굴을 찡긋거려 그 고통을 얼굴로 보여줬다.

그리곤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잠잠해지자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집으로 나를 인도했다.

민식이의 집은 전 집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전 집에 비해 숙소가 좁아졌다는 점일 뿐.

저 소파, 저 테이블, 저 식탁, 저 티비, 저 컴퓨터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았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

‘아무거나’라는 말에 민식이는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당연히 그럴만도 하지, 여자 같은 경우에는 ‘아무거나’라고 말해도 자신이 맘에 안드는 음식이 나오면 불평불만을 쏟아내니깐.

과연, 민식이는 어떤 센스를 보일지 궁금하네.

“자, 여기. 어제 사온 차가운 딸기맛 아이스크림이랑 따뜻한 커피야. 일단은 요기 좀 해둬.”

“음. 너, 아니다. 잘 먹을게.”

핫, 이 뇨석. 내가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네이버로 검색 좀 한 건가.

바삭바삭하기만한 쿠키가 등장할 줄 알고 콧방귀를 뀌려고 하다가, 의외의 아이스크림의 등장에 표정이 의도치않게 화사하게 변하는 나였다.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 떠서 입 안에 집어넣자, 달달한 맛이 입 안에서 가득 퍼졌다.

아잉, 달콤해♥

어? 핫! 내가 진지해져야되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핫!”

“풉.”

역시나.

나의 불규칙적인 감정 기복에 피식하고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미소를 지어버리는 민식이.

그런 민식이의 썩소에 표정 관리가 잘 안 되고, 일그러지지만 입 안에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의 맛 하나 만큼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

나는 달콤한 얼음덩어리를 오물오물 씹으며 몇 초 후에 식도 아래로 넘기고,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하지 못했던 말을 민식이에게 하나 둘 씩 하기 시작했다.

“흠, 너 왜 그렇게 갔어?”

“미안, 말해 줄 수 없어.”

이번에도 말해 줄 수 없다며 묵묵히 입술을 굳게 닫는 그의 모습에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진정되었던 마음이 다시 한 번 뜨겁게 달구어지려 했다.

점점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뭐?”

“사정이 있어서 그래..”

사정? 도대체 어떤 잘난 사정이길래, 우리를 버리고 티아라랑 놀아날 만큼 그렇게 여유로운 사정인가?

숨겨왔던 불씨가 어느새 턱 밑까지 올라왔다. 이젠 턱 위, 그러니까 수면 위로 올라오면 난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할 것만 같았다.

“뭐가 그리 대단한 사정이라고..?”

“...”

역시, 다시 침묵을 유지하는 걸로 봐서는 분명히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습이였다.

민식아. 니가 진실을 말해줘야 내가 화가 누그러지든 말든 할 꺼 아냐. 제발 사실 좀 말해봐, 너의 진솔한 얘기를 해보라고.

만약 그렇게 말 안하고 묵묵부답이라면 나,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낼 것 같으니까.

“응? 말해봐.”

“너네들을 위해서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콧방귀만 나왔다. 턱 밑까지 차올랐던 무언가가 이젠 턱 위로 올라갔다. 숨이 무언가로 인해 가빠졌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애써 태연하게 말하는 저 녀석의 모습에 하얗던 내 얼굴의 분을 뚫고 연한 분홍 빛의 볼에 띄어오를 것만 같았다.

“우리를 위해서라고?”

“...”

하, 더 이상 턱 위까지 올라오는 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 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속이 터지기만 했다. 그런 만큼 목소리의 언성도 높아졌다.

처음엔 좋게좋게 해결을 하려고 했더니, 더욱 더 안이하게 태연하기만 한 저 녀석의 모습에 완전 끝장을 내버려야겠다고도 생각하는 나였다.

난. 한 다면 할 사람일 거니깐.

“그럼, 우리를 위해서라면서 애들의 마음을 그렇게 찢어놓고 갔냐?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숨도 쉴 틈을 안 주고 맹렬히 민식이에게 말을 밀어붙였다.

지금 민식이는 딱히 건방지게 나의 눈을 노려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미안한 구석이 있는 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나의 화도 점점 절정을 찍어갔다. 그리고 이 화를 다 낸 후 민식이에게 일개의 복수심과 일개의 관심 조차도 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때 였다.

‘털썩’

“진짜 미안해. 그런데 말해 줄 순 없어.. 정말 애들한테는.”

민식이가 내 앞에서 무릎을 제대로 꿇었다.

가지런히 모여진 민식이의 두 다리와 진심인 듯한 저 표정이 갑작스럽게 애처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동정심에 내가 말려들겠냐마는.

나도 정이 많이 있다면 잘 해주는 여자였으니까. 화르륵 걷잡을 수 없는 화마처럼 타올랐던 내 분노가 민식이의 저 행동에 불길이 사르르 사그러잡혀지기 시작했다.

“야.. 너.. 왜 그래..”

“얘들한테 말하지도 말고, 이사에 대해서 묻지도 말아줘. 부탁할게.”

“아,알았어..”

어쩔 수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민식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화를 낸 것 같은 미안함이 살며시 내 마음 한 구석에 들이차고 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먹다남은 아이스크림은 액체화 되어 아이스크림이 아닌 슬러쉬나 음료수가 되다시피 했고, 김이 모락모락 피오르는 모양새의 커피는 차게 식어버렸다.

그래도 이 뻘쭘한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미미하게나마 커피를 한 모금 햘짝거렸다.

*

“미,민식아.. 근데 너 티아라랑은 친하더라?”

“응? 아..응. 너네들이랑 마찬가지로 티아라도 이웃이니깐.”

적막한 분위기가 몇 분째 우리 둘 사이에 감돌고 있을 때, 난 이 분위기가 너무나도 답답해 화제 전환 겸 민식이이게 질문을 했다.

그러자, 아직 어색함이 풀리지 않았는 지 조심스럽게 말하는 듯한 어투의 그 였다.

“우리들보다도 좋아?”

“음, 아니. 아직까지는 니네들이 더 좋은데.”

칫, 잘도 능구렁이 같이 빠져나오네.

그래도 화해를 하고 난 이후 부터, 잠시 서먹서먹하게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려는 조짐이 보이자 난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녹아버려 거의 물이 되다시피했지만, 아직까진 달달한 아이스크림과 그래도 맛은 있는 커피를 후르릅 마시며 비우기 시작했다.

“하, 뭐 그러면 됬어. 준 것도 맛있게 먹었고 하니 나 가볼게.”

“응. 잘 가.”

나는 츄리닝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탈탈 털어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나간다는 말에 민식이가 배웅이라도 해주려는 듯, 마찬가지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까지는 나란히 걷는 우리 둘.

근데, 다시 화해하고 나니 지나치게 시크해진 민식이였다.

손 좀 흔들며 귀엽게 인사라도 하려고 했더니만, 그것도 잘 받아주지 않을 것 같네.

그렇게 등을 돌려 민식이가 내 시선에서 벗어날 때 쯤, 

문뜩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이 나에게 있었으니.

“아. 그,근데 있잖아.”

“응?”

괜시리 말하는 데 말을 더듬거렸다.

갑자기 내가 왜 이러지? 그냥 다른 멤버들 처럼 민식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방안을 하나 생각하는 것 뿐인데?

“나..나는 여기 가끔 와도 되지..?”

“어?”

일부러 그러는 건지, 민식이는 자꾸 나에게 의도를 유도해내려고 못 알아 듣는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는 데, 내 직감으로는 거의 구십 구점 구 퍼센트는 못 알아 듣는 척이다.

“아..아니 감시하러 가끔 와도 되냐고..!”

“응. 이미 들켰으니 뭐 어쩔 수 없지. 자주자주 놀러와, 맛있는 간식 줄게.”

“응! 그,그럼 잘 있어!”

민식이의 말에 괜시리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또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난 갑자기 급 발산되는 뭔지 모를 알싸하고도 묘한 느낌에 민식이에겐 대충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곤, 엘레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통해 멈추지 않고 뛰어내려갔다.

팔층, 칠층, 육층, 오층, 사층, 삼층, 이층, 그리고 일층.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심장 박동수는 해일이 일어나는 마냥 미친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하, 내가 왜 이러지..?”

요동치는 심장 박동과 함께 오버랩이 되어 스쳐지나가는 민식이의 두 가지 모습.

내가 넘어져서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뻔 했을 때의 날 구해준 햇빛이 비치던 민식이의 모습과 집 안에서 진실되게 사과를 하며 무릎을 꿇던 민식이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자,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쿵쾅쿵쾅 망치질을 한 듯 뛰었다. 도저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해서 진정될 때 까지 기다려보지만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엘레베이터를 안 타고, 계단을 통해서 힘껏 뛰어내려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민식이를 생각하면서 내 심장이 이러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헷갈린다.

나는 끊임없이 요동치는 가슴을 힘껏 짜내며 숙소를 향해 미약한 발걸음을 하나 씩 앞으로 옮겼다.

문뜩 하늘을 쳐다보는 데, 밝은 빛을 발산하는 해 대신 웃고 있는 민식이의 얼굴이 보인다.

아, 진짜. 도대체 나 왜 이러는 거지? 힝, 나 이 정도 까지 민식이에게 호감이 있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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