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아흔 여섯 번째 과외.
“음?”
“아,아냐.. 얘들 기다리겠다. 들어가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발갛게 밝히는 보람누나의 뒤와 나의 사이로 하늘에선 붉은 천 조각이 검은 밤하늘을 수놓았다.
보람누나는 먼저 서둘러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어깨에 단풍잎이 떨어질 때가 되서야 슬슬 발을 앞으로 움직였다.
“잘못 들은 거 겠지?”
어디선가 귀뚜라미가 울적하게 우는 소리가 적막한 분위기를 뚫고 나의 어지러운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다녀왔습니ㄷ..”
‘사사삭-’
“왜 이렇게 늦게 와?!”
현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휴스턴에서 야무지게 휘몰아치며 우걱우걱 집 판대기를 지구 저 편으로 날려버리는 위엄을 가진 토네이도의 속도로 나를 갈구는 은정누나.
나를 반겨주리라는 나의 바램은 어느샌가 휴지통으로 쏘옥 들어가있었다. 그 대신 내 손에 쥐어져있던 까만 봉다리는 격렬하게 반기는 티아라 일곱 분. 네, 삐졌습니다.
이윽고 거실에는 중국집 배달을 방불케 하듯, 신문지 몇 장이 바닥에 깔려있는 건 훼이크고 맨 바닥에는 알록달록 초록색과 갈색의 병들이 혼잡스럽게 놓여져있었다.
“자. 먹고 취하자!”
“우!”
어느샌가 방에서 거실로 나온 소연누나의 샤우팅에 멤버 전원과 나는 일제히 동조하며 잔을 부딪혔다.
한 잔, 두 잔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갈 때, 괜시리 감정이 불구덩이에서 들어갔다 나온 듯이 뜨거워졌다.
술이 슬슬 올라옴을 알려주는 것 마냥,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누군가 발간 크레파스로 칠한 듯 했다.
*
두 시간 후.
“헤헤헤헤헤-”
“은정누나, 뭐가 그렇게 좋아..?”
“헤헤헤.”
소녀시대 애들도 주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건만, 이 그룹도 매한가지였다. 내가 술잔을 기울인 것도 초반에 세 잔을 연속으로 마신 게 전부다.
더 마시려고 해도, 이미 술을 흡입하듯이 먹는 프레데터의 모습에 근육이 약간 진 내 팔이 후들후들 떨려왔다.
은정누나도 이미 거하게 취한 듯, 웃음 소리가 정도를 넘어섰다.
이미 애교스러운 웃음으로 들리기는 커녕, 듣기 싫을 정도로 경박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내 말도 야무지게 씹어주시고, 술기운이 가득 들어있는 웃음소리만 내는 은정누나였다.
도저히 대화가 통해야 말하든 말든 하지. 우우우..
일단은 실성한 사람 마냥 웃기만 하는 은정누나를 뒤로 하고, 고개를 옆을 돌려 소연누나는 지금 상태가 어떠한 지 관찰했다.
“홀짝.”
전통 다도를 하는 것 마냥 술도 찔끔 마시고있는 소연누나.
그래도 등 뒤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왠지 모르게 차가운 푸른 빛을 띄었다.
“민시가.. 흠냐..”
천장 쪽에서도, 벽 쪽에서도 아닌 바닥 쪽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보니, 효민이가 내 무르맡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보아하니 꿈의 출연인물 중 나는 있나보구나.
어쨌든 많은 미녀를 보며 느끼는 건대, 잘 때가 제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 같았다.
“니 화장품 좀 빌려줘어-”
“으음.. 나중에-”
시끄러운 소리를 은정누나만 내는 게 아니였구나.
멀리 있어서 잘 몰랐는 데, 저 만치 떨어진 곳에서 오순도순 스물 다섯 살의 누님들이 취중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장면을 목격했다.
또 다른 소음을 확인함으로써, 더욱 더 다채롭고 아스트랄한 소리들이 내 귓가를 미어터지게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으으.. 써.. 흐잉..”
“히히, 화영이는 술 못마신대요―”
“너도 못 마시자나!!”
막내들도 아직 불타오르는 청춘이라서 그럴까.
뻗을 생각은 안 하고 수다 하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야 할 정도로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덕분에 귓 속의 청세포가 하나 둘 씩 명을 다하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쟤네들 미성년자인데 저렇게 마셔도 될까.
“야, 니네들 그렇게 마셔도 돼?”
“음, 오빠 우리도 인간이야!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다구! 우우우!!”
순간 안산에서 자주 볼 수 있을 듯한 막내들의 반란에 하마터면 땅바닥과 등을 접촉할 뻔했다.
나는 갑작스레 폭주한 두 막내들에게 일단은 예방책으로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안주거리를 집어 촉촉한 두 입술에 하나 씩 야무지게 집어넣었다.
그러자, 점점 잠잠해지며 자신의 입 안에 들어간 오징어포들을 헤벌레하며 오물오물 씹어대는 그녀들이였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우쭈쭈, 아가들. 밤도 깊었는 데 어서 가서 자야지?”
“히잉.. 자기 싫은데..”
“난 졸려어- 가서 잘래. 흐잉, 술 쓰기만 하네.”
은정 누나는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를 멈추고 귀여운 두 자이언트 막내를 달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참으로 엄마의 모습을 보이는 은정누나란 말이야. 나도 이런 모습의 은정 누나가 호감있고.
은정 누나와 두 막내가 방에 들어간 뒤 얼마가 지나지 않아서, 많이 피곤했는 지 진탕한 코골이가 내 귓가에 애처롭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막내들의 방에서 나와 다시 내 옆 자리에 착석하는 은정누나.
“히히히히히히히히.”
“은정누나 왜 이래..”
“히히ㅎ... 털썩.”
웃음으로 정점을 찍고, 은정누나는 장렬하게 땅바닥과 찰지게 달라붙었다.
이번엔 내 몸에 붙어서 잠든 게 아니라 다행이다.
다시 문득 건너편 상황을 대충 보니, 신명나게 떠드시던 누님들 중 큐리 누님이 나와 효민이랑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큐리누나가 보람누나의 무르맡에서 세상 모르고 깊이 잠들어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내비두는 나와 달리, 등을 토닥거리며 더 편안하게 잠을 재워주는 보람누나의 모습을 보아하니 역시 연장자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낄. 역시 연장자는 다르긴 다르네.”
“뭐, 불만있어?”
보람 누나는 나의 말에 살짝이나마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대꾸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어디에서 또 홀짝대며 술을 마시고 있을 소연누나를 거실에서 찾았지만 어느샌가 보이지 않자, 보람누나에게 물어보았다.
“소연 누나는 어디갔어?”
“마시다가 졸렸는 지 자기 방에 들어갔어.”
소연누나도 홀짝대면서 은근히 많이 마셨나 보구나.
나는 취기를 띈 채로 지금의 상황을 살짝 정리해보기로 했다.
은정누나는 내 옆에서 소음공해 일으키다가 픽 쓰러졌고, 두 막내는 칭얼거리다가 코 고는 소리를 아스트랄하게 내며 지 침대에서 잠들었고, 큐리누나는 보람누나의 무르맡에서 새곤히 자고있고,
효민이는 제멋대로 내 무르맡에서 이렇게 잠들어서 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결론은 다 뻗고, 보람누나와 나만 살아남았다.
내 몸이 은근히 여자들과 술을 마실 때는 주량이 세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 오랫동안 버틴다.
남정네들이랑 술을 마셨을 때는 한 병만 마셔도 그냥 뻗어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이성의 힘인 것일까나.
“람뽀.”
“응?”
“많이 마시기 배틀하자.”
“콜!”
남정네랑 술 마셨을 때는 꼭 두 명이 남았을 때 하는 짓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필름 끊겨질 때 까지 입에다가 술잔을 수시로 기울이는 것이었다.
뭐,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뒷처리를 해야한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그래도 최후의 일 인이 되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여튼 은근히 잘 마시는 것 같았던 보람누나와 나는 온갖 잔병을 담보로 한 최후의 배틀을 벌였다.
한 잔, 두 잔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 병, 두 병을 입에다가 부어대다시피 들이켰다.
한 번에 그렇게 과도하게 마시니, 갑작스레 머리가 아득했다.
하지만 잠시 아득한 머리를 흔들며 제 정신으로 돌아오니, 보람누나가 배틀의 패배를 인정하는 지 어느새 나란히 큐리누나를 베고 자고있었다.
“히히, 내가 이겨따. 으윽!?”
한 번도 이긴 적 없었던 배틀에서 최초로 최후의 일 인이 되어보니, 그 기분은 번개를 맞은 마냥 짜릿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아랫 쪽에서도 짜릿한 느낌이!?
재빨리 아래로 고개를 숙이니, 효민이가 잠꼬대를 하면서 내 바지를 벗기고 아직은 부풀어오르지 않은 그 곳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말도 제대로 안나올 것 같은 그런 충격적인 장면에 한가득 취했던 술기운이 확 달아나버렸다.
나는 해장약, 숙취제도 딱히 필요없는 듯 보였다.
이렇게 나의 술기운을 두 번 씩이나 안드로메다로 관광시켰던 효민이가 있으니까.
엘레베이터에서 한 번. 여기서 한 번.
“아아.. 이 시체들을 하나 둘 씩 치워야되나.”
술이 확 깬뒤, 나는 거실에 널부러져있는 술병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이렇게 널부러져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미어졌다.
침대로 안 옮기면, 일어날 때 입 돌아간 채로 있을 것 같은 애처로운 모습에 나는 가기 전에 이 시체들을 치우기로 했다.
아, 누가 나에게 자원봉사자 상좀 줘요.
“잇챠, 다행히 대부분 가벼워.”
일단은 나와 스킨십의 대부분이 착 달라붙는 것인 은정누나를 번쩍 들어서 방 안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자마자 잠든 채로 내 허리를 감싸안는 은정누나였다.
들고 옮길 때는 이런 행동이 편했지만, 막상 몸뚱아리를 내려놓으려니 참으로 이 팔을 떼는 일이 힘들고 귀찮았다.
나는 강력본드를 내 허리춤에 붙인 듯한 은정누나의 손을 확 떼곤, 다음 시체를 처리하러 다시 거실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아까 나의 분신을 탐냈던 음탕한 효민이를 번쩍 들어 가볍게 은정누나의 건너편 침대에 내려 눕히고, 큐리 누나도 마찬가지로 들어서 큐티프리티한 색채의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이제 남은 누님은 보람 누님, 다행히도 보람 누나의 키와 몸무게는 비례해서 그런 지 무척이나 아담하고 가벼웠다.
그리고 보람누나도 마찬가지로 큐리누나의 건너편 침대에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줬다.
그런데 어두운 방 안의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보람누나의 모습이 유난히 귀여워 보였다.
‘쪽’
“아, 이럼 안되는데 난 로리콘이 아닌데! 우우우..”
그 귀여운 보람 누나의 모습에 충동적으로,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보람누나의 볼살에 내 입술을 감히 맞대고는 곧바로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런 짓을 한건지 당황하다가, 일단은 보람누나가 깨기 전에 집으로 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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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럼 안되는데. 난 로리콘이 아닌데! 우우우..”
민식이 보람의 뺨에 가볍게 입술을 파묻고 그대로 도망간 이 방에서는 어느 수줍은 소녀의 답답해 하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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