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100/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아흔 다섯 번째 과외.

그렇게, 난 로리콘이 아니라며 나 자신과 타협해보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로리콘에 관한 건은 간단히 손을 놔버리고, 이제는 여자들만 가득한 이 곳에서 뭘할까 진중하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두 처자께서 내 팔에 친히 붙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민식아, 우리 숙소에 왔는 데 맛있는 거 먹자.”

“그래, 술 먹자 술!”

효민이와 은정누나는 입이라도 맞췄는 지, 자연스럽게 먹을 거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술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티아라 사이에서는 ' 맛있는 것 = 술 ' 이었나보다.

이거 소녀시대 애들 보다 더욱 더 불건전한 그룹인데, 미성년자가 무려 두 명이나 있는 그룹인데 거리낌 없이 술을 먹자고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술? 아싸!”

가만히 남은 하드를 남김없이 쪽쪽 빨고 있던 보람 누나가 술 얘기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기뻐하는 보람누나의 모습에 숨겨왔던 나의 ‘로리콘’본능이 하마터면 이성 밖으로 뛰쳐나올 뻔했다.

“그럼 술 사오는 당번은 복불복으로 뽑기로 하자.”

“풉. 뭐 하러 복불복으로 뽑아, 여기 꼬맹이하고 저기 멀뚱히 앉아있는 남자보고 사오라고 하면 되는데. 안 그래? 람뽀는 마트 좋아하잖아.”

저기 혹시 멀뚱히 앉아있는 사람은 저를 지칭하신겁니까.

아, 남자라곤 나 밖에 없는 것 같으니, 나를 지칭한 건 확실한 것 같고. 

꼬맹이로 추정되는 사람은 무려 세 명(람뽀 누나, 지연이, 화영이)이나 있는데, 누굴까나 싶었지만 큐리누나가 옆에 있던 보람 누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바람에

꼬맹이로 추정되는 사람 역시 확실해졌다.

“아씨, 내가 가야 돼? 그럼 할 수 없지 뭐, 돈 줘 횸탱.”

“언니는 맏언니가 되서 술도 못사줘?”

마트 좋아한다는 사람치고는 꽤나 가기 싫은 보람누나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은근히 쿨한 구석이 있었는 지, 자기가 가는 대신 효민이에게 가서 돈을 뜯기를 시도하는 보람누나였다.

그러자 효민이는 ‘언니’다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효민아, 니가 그렇게 말할 처지가 되니? 나한테 받아먹은게 얼마야.”

보람 누나는 그냥 선 채로 멱살을 잡으면 제대로 안 잡히는 지, 까치발을 빼꼼히 들고는 힘껏 효민이의 면티를 쥐어올렸다.

“으응. 알았어 언니-”

“우씨, 누가 언니인거야.”

효민이는 자신보다 보람 누나가 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련을 하는 듯 누나의 머리를 쓰담거리며 쓸었다.

보람 누나는 ‘장유유서’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효민이의 행동에 느낌이 묘한 지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민식아, 가자.”

하지만 돈을 손에 쥐면 사람이 달라져보인다고, 효민이에게 결국엔 돈을 뜯어버린 보람 누나는 활기 찬 표정으로 세종대왕님을 감히 흔들어 보이면서 현관으로 내달렸다.

“누나, 그런 복장으로 가려고?”

“왜?”

“팬더.”

“아..”

나는 마트에 아무 대비 없이 그냥 가려고 하는 한 마리의 아기 팬더에게 말했다.

그 팬더는 자신의 모습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낯선 사람들이 본다면 흥미로워 할 패션임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훅’하고 잠옷을 벗는 람뽀 누나!?

“으악, 누나! 여기서 이러면 좋긴 하지만 안되.”

“뭔 소리래.”

내가 말하던 그 순간, 나에게 애정을 듬뿍 주던 은정누나도, 효민이도, 잠옷을 벗어서 날 이런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보람누나도, 팩하던 큐리누나도, 지들끼리 잘 놀던 화영이와 지연이도

순간 도끼눈을 지으며 날 노려보았다.

수 마리의 매의 눈빛에 난 하염없이 먹잇감이 된 짐승마냥 낑낑거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나의 불건전한 상상과는 달리 보람누나는 그나마 건전한 반팔티와 약간은 불건전한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 때, 소파에 앉아서 나를 매의 눈으로 노려보던 다섯 여인 중 한 명인 효민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무어라 속삭였다.

“너, 설마 람뽀 상대로 그러는 건 아니지?”

“서,설마 내가 로리콘이냐. 초딩같은 람뽀누나를 건드리게. 하하하.”

효민이의 의심스러운 말투에 영웅호걸 마냥 호탕하게 웃어보였으나, 여론의 분위기는 여전히 나를 ‘미친 놈’ 처럼 보고 있었다.

일단은 여기에서 사라지는 게 이 뻘쭘한 아우라에서 벗어나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보람누나를 끌고 마트로 움직였다.

“누나.”

“응?”

“누나는 술을 골라, 난 안주 고르고 올게.”

“응.“

아. 시크하다. 시크한 초딩인건가.

나도 시크라면 한 시크하는데, 나 만큼이나 시크한 람뽀누나의 모습이었다.

별 다른 대화 없이, 보람누나는 술을 고르러 술이 있는 진열장으로 카트를 끌고가고, 나는 과자가 진열되어있는 곳으로 다가가

뭔가, 해산물의 맛이 흠씬 나는 새우ㄲ 이라던가, 꽃게ㄹ 이라던가, 고래ㅂ 같은 맛있는 모양새의 과자를 한 아름 챙기고, 마른 건어물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신나는 기분에 휘파람을 불어대며 계산대로 걸어갔다.

막상 계산대로 걸어가니 꽤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아니. 학생, 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이 술을 사겠다고?”

낄. 역시 그 놈의 동안스러운 외모가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줄이야.

새하얀 살결과 만두 마냥 부풀어오른 볼살, 그리고 여중생 보다도 더 풋풋한 그녀의 앙증맞은 외모가 계산원 한테는 영락없이 초딩으로 보일만큼 오인하기 쉬운 외모였나보다.

“저, 고딩도 아니고 초딩도 아닌데요.”

“뭐가 아니야, 딱 봐도 영락없는 열 세살 같구만.”

“아.닌.데.요.”

대꾸를 하지만, 여전히 시크하게 대꾸하는 보람누나.

그런 식으로 계산원의 말에 맞대응을 해서 그런 지, 부정하니까 오히려 더 초등학생스러운 모습이 부각되어 보이는 듯 했다.

낄. 람뽀 누나가 성인인 것이 판가름 나고, 그 뒤에 계산원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뭐, 그럼 몇 살인데?”

“스물 다섯인데요.”

“........죄송합니다. 누,누님.”

나이를 밝히니, 추수기가 다 된 황금빛 들판을 수놓은 황금색의 벼 마냥 계산원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더군다나, 계산원이 아르바이트생이였는 지 오히려 보람 누나보다 나이가 어린 것 같았다.

그래서 관전자 모드로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저 이 상황이 수 십번은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레퍼토리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할 만큼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보람누나의 지나친 동안외모로 인한 헤프닝이 끝나고, 어느새 우리는 까마득한 하늘에 은은한 달빛의 광편이 내 뺨을 스치고 가는 밤의 길게 뻗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푸하핫, 초딩이래, 초딩. 푸훕-”

“우씨.. 웃지마..”

아까 마트에서 벌어졌던 일의 웃음이 아직까지도 계속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인지, 한 번 제대로 터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자, 보람누나는 질긴 오징어포를 입으로 질겅질겅 씹으면서 내게 웃지말라고 말했다.

근데 너무 웃긴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웃음이 안 멈추는 데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미안, 람뽀. 너무 귀여워서. 푸훕-”

난 보람누나가 점점 툴툴대는 것 같자, 달래줄 겸 사과를 하면서 겸사겸사 수줍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장난끼가 또 다시 발동되어 귀엽게 부풀어오른 볼살을 손가락으로 잡아댕기었다.

“...하디마! 우우우...”

손가락으로 볼살을 잡아당기자, 보람누나는 내가 당긴 쪽으로 움직이며 질질 끌려다녔다.

비록 누나이긴 했지만, 이것은 너무 치명적인 귀여움이었다.

그리고 놀리는 중독성도 약간 있고.

보람누나를 놀려가며,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쯤. 보람누나가 똑바로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민식아.”

“왜, 람뽀?”

“저기 그네 좀 타다 가자.”

보람누나는 집 앞 놀이터에 있는 그네를 아담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처음엔 ‘뭐지.’라는 반응을 대충 보였지만, 뭐. 그네를 타고 있는 보람 누나의 모습도 꽤나 귀여울 것 같아서 발을 놀이터로 향해 움직였다.

얼마 전 비가 와서 인 지, 아쉽게도 모래의 질감은 약간 푸석푸석했다.

보람 누나는 아까 오징어포를 한 입 야무지게 베어물었는데도 불구하고, 입이 심심한 지 간식으로 사두었던 콘 아이스크림을 뜯어 입가에 조금씩 묻히며 말했다.

“재밌어?”

“으응? 뭐가?”

“효민이랑 은정이.”

“...네?”

순간 매섭도록 시린 얼음물을 머리에 쏟아 부은 마냥 멍한 느낌이 들었다.

보람누나를 보면서 그저 ‘귀엽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였는 데, 갑작스럽게 그렇게 질문을 던지다니.

당황한 나에 비해서 보람누나는 대비되게 너무나 태연한 채로 콘을 입에다가 물고 나를 지켜보았다.

“둘 사이에서 저울질 하는 거 재밌냐고.”

좀 더 자세하고도, 직접적으로 말하는 보람 누나의 모습에 나는 두 손이 왠지 모르게 후들후들 떨리고, 오금이 저리기 시작하며, 요도에서 무언가 누런 물같은 게 나올 것 같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그네를 타고 있는 보람누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근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애들 행동이 너랑 하는 게 딱 봐도 보여서.. 그래서 누구로 할꺼야? 은정이..? 효민이..?”

보람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꽤나 궁금하다는 눈치를 내게 주었다.

나는 잠시 말을 아끼고 침묵한 채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난 은정 누나와 효민이. 나같은 애가 누가 봐도 월등한 여자 두 명을 저울질 하고 있었다니.

보람 누나의 말에 은근히 충격을 입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누구 쪽으로 기운 것도 아니고, 둘 다 내게 소중한 존재라서 효민이와 은정 누나가 올려진 수평저울은 아직도 그대로 평행을 유지한 듯 보였다.

“아직은 모르겠어.. 누구로 해야할 지, 결정을 못 내릴 수도 있어.”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해주기라도 하는 마냥 가을의 중턱에 걸려있던 갈빛의 잎사귀가 갑작스런 미풍에 흔들리며 푸석푸석한 모래 위로 차분히 내려앉았다.

“그래..? 그럼.. 나도 기회가 있겠네..?”

그네를 타고 있던 보람 누나의 얼굴에서 희망의 분홍 빛이 게슴츠레 묻어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