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아흔 네번째 과외.

*

“도착했습니다, 손님.”

요금은 기본 요금이 전부였다.

그럼 그만큼 거리가 가까웠다는 얘기인데, 뭐하러 택시타는거지?

그 대신 걸어가다가 들킬 염려는 없으니 다행이네.

앞의 택시를 뒤쫓던 택시가 멈춰선 곳은 여느 곳과 다를 바가 없어보이는 어느 평범한 아파트.

따가운 햇살이 그늘지지 않은 내 살을 맹렬히 찔러댔다.

다행히도 민식이는 아직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 지 묵묵히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파트의 모습을 쳐다보지만, 역시 아까처럼 너무나 평범했다.

다만,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모습이랄까.

그래도 저번에 살던 곳 보단 영 아닌 모습이다.

“훗..뭐야, 돈 떨어져서 여기로 이사한거야..?”

나는 괜시리 우리 숙소보다는 덜 세련되어보이는 아파트의 경관에 피식 썩소가 튀어나왔다.

어느새 내 팔은 팔짱을 끼고 있었고, 아마 나는 쓸데없는 우월감에 젖어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우월감에 빠져있다가 문뜩 정신을 차리니 이미 민식이는 또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히잉.. 또 어디 간거야?”

강의실 안에서 처럼, 구내식당 안에서 처럼 난 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시카’레이더망을 작동시켰다.

그래도 원하는 타겟의 행방은 찾지 못하고 헛고생만 했다.

둔팅이같이 내가 또 멍을 때리다니.

히잉, 이 바보 같은 정수연.

“어, 시카야?”

“응? 효민아,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그렇게 내 머리를 콩콩 때리며 자책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낯 익은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제 민식이를 시달리게 하던 효민이가 보였다.

쟤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너야말로 우리 숙소에 무슨 일이야?”

“잉?”

“여기 아파트 10층이 우리 숙소인데?”

무슨 소리야, 민식이가 갑자기 사라진 이 곳이 티아라 언니들이 사는 곳이라고?

설마 민식이도..?

“효민아, 저.. 혹시..”

“응?”

“아니야, 그냥 와 봤어. 숙소 잘 들어가. 나중에 보자-”

“어..응.. 그래..”

갑자기 물어보고 싶은 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거품 마냥 마구마구 솟아올랐지만,

일단은 참고 마음에 묵혀두었다.

그렇게 효민이에게 ‘안녕’의 손짓을 하고 아파트 밑으로 내려와 묵묵히 생각을 하면서 거리를 걸었다.

“이 씨. 이게 이제 아주 티아라 애들이랑 붙어서 우리들한테 한 것처럼 하겠다? 개같은 놈!”

딱히 효민이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민식이는 티아라의 이웃집에서 살고 있을 게 안 봐도 뻔했다.

갑자기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거의 다 꺼졌던 불씨가 다시 살아오르는 마냥 타올랐다.

얼굴에 쓰고 있던 패션 안경을 집어서 바닥으로 세차게 내리치고 발로 마구마구 짓밟았다.

씨이,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씨이.. 복수할꺼야, 가만 안 둬.. 씽..”

**

“시카가 왜 여기 온 거지?”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나선,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재빨리 사라지는 시카의 모습에 난 살짝 의아했다.

그리고 무언가 마음 속에서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그런 일도 있고하니, 혹시 시카가 민식이 때문에 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리고 민식이의 전 여친이 시카였던건가, 그래서 저번에 집에 놀러갔을 때도 소녀시대 사진이 있던 걸로 봐서는 그럴 것 같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다.

“은정 언니로도 벅찬데, 시카까지 둘 순 없어!”

안 그래도 은정 언니가 나랑 같이 쌍쌍으로 민식이에게 달라붙는 바람에, 안 그래도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 때문에 고생 중인데.

시카마저 이 사이에 끼어든다면 난 감당할 수 없을거야. 절대로 시카가 민식이에게 와선 안돼!

**

‘똑똑’

“누구세요?”

“나,나 효민이.”

“아, 들어와.”

들어온 지 얼마나 됬다고, 옷을 갈아입은 지 얼마나 됬다고.

소파에 앉아서 리모콘을 눌러 티비를 켠 지 얼마나 됬다고, 누가 나의 평화로운 안식을 방해하는 거야.

투덜거리며 맨발로 현관을 향해 움직이니, 밖에서 기다리는 아해는 효민이었다.

저번에 엘레베이터에서 있었던 그 일 이후로 참 우리 집에 많이 놀러오는 것 같아.

물론 은정 누나랑 거의 같이 와서 쌍으로 날 쉬지 못하게 하지만.

그래도 여자고, 내 사전에 아무리 별로인 여자라도 여자는 여자니까 문전박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가지고있고,

엄마,아빠 한테 하도 많이 들은 게 

‘돈 없어도, 성격이 개같아도, 특이해도, 너보다 능력이 낮아도 무시하지 말거라, 사람은 자고로 겸손해야 하는 법이야.’

라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어서 인지 웬만한 사람들은 우리 집 앞에서 노크를 하고 있으면 쿨하게 안으로 들여보내서 반긴다.

“민식아, 나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뭔데?”

이번에는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나 사실 내 안에 너와 나.. 그러니까, 우리의 생명이 자라고 있다?’ 같은 개드립을 친다면 난 아무 말도 못하고 털썩 주저 앉을지도?

“시ㅋ.. 아니다. 우리 숙소에 놀러 올래?”

“으음?”

분명히 시ㅋ..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효민이는 하려했던 말을 딱 끊고 무작정 자기네 숙소에 놀러오겠냐고 제안을 했다.

난 갑자기 효민이의 말에 못 들은 척을 해보려 했으나, 워낙 연기가 발연기인지라 당황한 척만 했다.

내 경험 상으로는, 소녀시대에게 제대로 시달리기 시작한 것도 숙소에 들어가버려서 그랬어.

그럼, 내가 효민이의 제안에 거절을 안하고 그대로 티아라 숙소 안에 입성해버린다면, 음. 내 미래는 깜깜하겠지.

그래! 안 가는 거야. 정중하게 거절하는 거야.

“우리 숙소에 여자들만 있어서 심심해.. 놀자, 응?”

당연히 여자 그룹이니까, 여자들만 있겠지.

그 안에 남자가 있다면 어떤 기사가 뜰 지도 모르는 데.

“음, 나는 안 갈건ㄷ..”

“그런 건 없어, 따라와-”

어이쿠, 생긴 건 소말리아에서 자주 볼 것 같은 애가 힘은 왜 이렇게 더럽게 센거야.

여태까지 운동해서 길러놓았던 힘도 다 부질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효민이의 악력이 내 팔목 힘보다 더 쎘거든.

나는 별 저항도 못 하고, 효민이의 손에 이끌려 엘레베이터에 올라탔고 멍을 때린 채로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티아라의 숙소였다.

“언니들, 막내들아. 내가 남자 데리고 왔어!”

내가 온 걸 그렇게 시끄럽게 알릴 필요가 있나.

어쨌든 효민이가 폭풍 성량을 자랑하면서 티아라 숙소에서 공지를 쌔리자, ‘나’라는 남자의 등장에 모든 시선이 나한테 꽂혔다.

“우왕, 민식이가 우리 숙소엔 왠일이야? 나랑 놀려고?”

효민이의 샤우팅에 제일 먼저 달려온 건 은정누나였다.

항상 변함없이 귀여운 매력이 넘치는 단발인 채로, 하얀 면티와 큐티한 파자마바지를 입고 맨발로 내게 다가와 안겼다.

내가 방심한 틈에 이렇게 나를 안아버리다니, 쿨럭. 뜬금없이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물컹함에 기분이 묘해지잖아.

“아, 여기 온 건 내 자유 의지가 아니야.”

“어, 왔냐.”

나는 일단 은정누나가 내게 안겨있는 채로 신발을 벗고, 현관에서 벗어나면서 은정누나를 가까스로 떼어냈다.

주위 시선이 몇 갠데 왜 그렇게 부끄럽게 달라붙는 지, 에휴..

그렇게 은정누나를 떼버리고 거실에 발을 들어서니 어느 방의 문이 살짝 열리면서 그 사이로 소연누나의 얼굴이 미미하게나마 보였다.

그리고는 시크하게 ‘왔냐’라고 말하고 다시 문을 닫아버리는 차도녀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피식 튀어나왔다.

“어, 민식이 오빠 안녕-”

“그래, 화영이도 안녕.”

효민이가 오기 전의 나 처럼 화영이는 티비를 열심히 시청하다가 나의 등장에 반갑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도 화영이의 미소에 미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화영이의 인사에 대꾸를 해주었다.

“엇, 안녕하세요!”

화영의 옆에 앉아있던 지연이는 화영이의 인사에 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손을 번쩍 들고 점점 톤을 높여가며 말을 했다.

풋, 지연이는 발랄해보여서 좋구나.

“에잇, 심심한데 돌격이닷!”

“징녀야 하지마- 으힛!”

지연이는 내게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지체없이 화영이에게 돌격을 감행했다.

지연이의 힘, 전에 봤던 것처럼 효민이보다 더 센 것 같은데. 여린 화영이는 지연이의 공격에 맥없이 당하고 있었다.

쯧쯧, 불쌍한 영생이여. 오빠도 차마 구원해줄 수 없겠구나. 건투를 빈다.

그렇게 속으로 화영이를 기리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큐리누나가 있었고, 큐리누나는 얼굴에 팩을 한 채로 ‘안냥-’을 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음, 근데 보람 누나는 어디갔지?

“응? 근데 람뽀 누나는 어디 갔어?”

“난 왜 찾아?”

다른 멤버들에게 보람 누나의 행방을 물어보자, 모두 다 똑같이 텔레파시라도 통한 마냥 손가락을 주방 쪽을 향해 가르켰다.

나는 손가락의 방향 대로 고개를 돌리니, 날 왜 찾냐는 보람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보람 누나는 냉장고를 문 닫고 나에게 말을 하는데, 쿨럭.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젖소 전신 잠옷을 입고, 입에는 방금 꺼낸 하드를 문 채로

총총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젠장, 치명적으로 귀엽잖아.

“귀엽네..”

“응? 뭐라고?”

“아, 아니.. 난 그냥 다른 누나들은 다 있는데 람뽀 누나만 안 보여서..”

“아, 그래..”

보람누나는 나의 말을 듣고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로 뒤뚱뒤뚱 걸어간 뒤, 큐리누나 옆에 앉아서는 하드를 오물오물 열심히 물고 있었다.

‘시발. 내가 로리콘인가, 순간 빛의 속도보다 빠른 신경전달 운동으로 보람누나의.. 아니야, 난 로리콘이 아닐거야. 그래.. 그런거야..’

나는 보람누나 쪽으로 서있지 않고, 주방 쪽을 향해 서 있으면서 나 자신이 ‘로리콘’이었던 것인가. 라고 잠시 생각해보았으나,

결론적으론 내가 로리콘이 아니라고 단정지어버렸다.

근데 생각과는 다르게, 월등하게 동안으로 보이는 저 외모에 나는 잠옷에 감춰진 보람누나의 속ㅅ.. 

아니야, 왜 자꾸 난 이런 거지같은 생각만 하는거야. 난 로리콘이 아니라고! 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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