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9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여든 아홉 번째 과외.

“뭐..뭐야..?”

효민이는 무서운 듯 낯빛이 시골의 어둑어둑한 새벽의 장막 마냥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차분히 엘레베이터 버튼이 있는 곳으로 움직여 비상호출 버튼을 누르고 말을 했다.

“아저씨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 학생. 지금 아파트에 제대로 벼락 맞아서 그 안에서 두 세시간은 있어야 될 것 같은디.”

이런 답답한 곳에서 세 시간은 썩어있어야 한다니, 술에 취해서 인지 왠지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는 점점 대담하게 변해가는 내 말투였다.

“아 씨. 빨리 고쳐줘요!!”

“ㄴ...네.. 아침까지만 기다리세요.. 새벽 여섯 시에 수리업체가 오니까요..”

“아, 제길!”

나는 손바닥으로 강하게 엘레베이터 벽을 쳤다. 아팠다.

하지만 옆에 효민이 있으니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는 경비 아저씨에게 화를 내고는 비상버튼을 누른 내 손가락을 뗐다.

“미,민식아 괜찮아..?”

“히히, 괜찮아~”

당연히, 전혀 손목이 괜찮지 않았다. 아파서 지금 이 가오도 다 깨부시고 칭얼거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남자니까 애써 참느낟.

여튼 내 웃음에 효민이가 안심했는 지, 얼굴에 씌여진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고는 나즈막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고, 효민이의 젖은 머리가 어느 정도 말랐지만 그래도 물을 뚝뚝 흘리고 있을 때 쯤,

서 있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들은 묵묵히 엘레베이터의 바닥에 앉았다.

그러면서 나는 깜짝상자 안에 숨겨진 인형 마냥 목을 앞 뒤로 까딱거렸다.

사실, 아까 그렇게 자고도 새벽이라는 시간 때문에 무지하게 졸렸다.

그렇게 쌍꺼풀까지 만들어내며 졸고 있을 때 였다.

‘쿵!’

“꺄악!”

“어?!”

갑자기 일 층에 있던 엘레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가려고 하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졸다가 잠에서 깼고

가만히 앉아있었던 효민이는 엘레베이터의 움직임에 놀라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효민아, 괜찮아?”

“...”

“에휴..”

나는 효민이가 깜짝 놀라하자, 그녀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물었다.

그래도 겨우 한 떨기 남은 잎사귀가 들판을 가로지르며 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마냥 계속해서 몸을 떠는 효민이였다.

외모와는 다르게 효민이가 은근히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느낀 나는 한 숨을 내쉬며

말없이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그녀를 내 품으로 인도해서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효민이는 나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편안해하며 내 품에서 포근함을 느끼는 효민이었다.

금새 다시 분위기는 조용해졌고, 내 손목시계에 달려있는 시침과 분침과 초침은 째깍째깍 거리며 움직였다.

“효민아, 너 아직도 떨어..?”

효민이가 진정되기는 커녕, 이러다가는 발작 걸릴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래도 효민이의 몸을 감싸안은 내 팔은 뗄 생각이 없었고, 할 수 없이 나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며 있었던 에피소드로 효민이를 재밌게 만드는 방법 밖에

딱히 방도가 없는 듯 보였다.

“심심하니까 내 얘기 좀 해줄까? 물론 진지한 거 말고 재밌는 걸로.”

“....응.”

효민이가 미미하게나마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러다가, 효민이의 부들거리는 몸이 덜 떨려왔다. 하지만 안고 있는 내 팔이 움직여질만큼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였다.

“불과 한 달 전에만 시작한 알바만으로도 이미 에피소드는 산처럼 쌓여있는데, 어디 슬슬 모터를 달고 시작해볼까..?”

“..푸훗.. 응.. 해줘..”

이미 나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웃음을 지으며 내 이야기를 듣고싶어하는 효민이였다.

이 때, 효민이에게서 떨려오는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효민이가 더 이상 불안감에 떨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내 입에 단내가 날 때까지 나불나불 거려야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끄집어낸 레퍼토리는 야무지고 아스트랄한 알바 이야기.

일단 첫 번째는 게이 사장이야기다.

“일단 우리 사장님이 특이해. 다른 카페의 사장님이라면 마냥 포근하고 인자하실 것 같지만, 난 알바 모집 종이에

  ‘남자 아르바이트생 환영’이라고 써져있을 때, 미리 알아챘어야 했어.”

“..왜?”

“사장님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 날 채용했을 때, 궁디팡팡을 하지 않나. 눈빛이 음흉하게 변하지 않나.

  최근에 또 마주쳐서 궁디팡팡ed를 당했지만, 그래도 알바비가 세서 그나마 버티고 있어.”

“얼마길래?”

“150만원.”

효민이가 나에게 안긴 상태로 깜짝 놀라워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정규직도 아니고 하루에 여섯 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 놈이 백 오십만원을 알바비로 벌어댕기면 놀라는 게 당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효민이었다.

아아, 간파해버렸다. 그녀의 눈에서 ‘곧 나님이 네 돈 뜯으러감.’이라는 뜻이 함축적으로 담긴 미소가 내 눈에는 선하게 보였다.

소녀시대 애들한테 시달린게 오 개월이고, 에프엑스 막내들한테 시달린 게 사 개월이야.

그 정도 미소는 한 번에 알아챌 레벨까지 올랐다고 효민아. 우우우..우우.. 난 절대로 돈을 뜯기지 않을거야.

뜯기면 내 손에 장을 지지.

“그리고 같이 알바하는 두 명의 누나가 있어.”

“누..누나? 여자?”

“걱정하지마. 난 그 누나들 여자로 안 봄.”

“...응”

사장님에 대한 허심탄회한 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고, 이야기는 어느덧 두 누나의 뒷담으로 이어갔다.

효민이는 잘 듣다가도 ‘누나’라는 말에 즉시 반응하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내게 흘려보냈지만,

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난 그 누나들을 여자가 아닌 도둑냔으로 보거든.

내 레퍼토리를 뺏어가고, 내 시간도 뺏어가고, 내 돈도 뺏어가고. 이러다간 노예가 되버릴 기세라서,

그 누나들의 아귀에 벗어나려면 직장은 그만두는 게 우선인데, 지금 이 알바만큼의 돈을 주는 곳이 딱히 보이지 않아서,

나로서는 존니스트 아쉬운 상황이였다.

그렇게 누나들을 신명나게 까다가, 이번엔 특이한 손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뭐,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차도남 최대민씨와 국사 좋아하는 그 아저씨가 참 내 뇌리에 제대로 박혔었지.

특히 국사 아저씨는 날 매국노로 만들어버리는 몹쓸 재치도 갖고 있었기에, 아직도 성을 갈고 있는 나였다.

“음.. 그러면 민식아..”

“응?”

“넌 음식 뭐 좋아해?”

이야기가 아르바이트 경험에서 좋아하는 00 같은 통상적인 주제로 넘어가버렸다.

그래도 효민이가 넘겨버린 주제인 만큼, 아직 뒷담을 까야할 게 더 많아서 아쉽지만 효민이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로 하는 나였다.

“하, 요즘은 제육덮밥이 자꾸만 끌려. 그 매콤하면서도 번들거리고 붉은 빛이 감도는 그 음식만 보면 나도 모르게 침이 고여.

  고로, 효민아 여기서 나가면 제육덮밥 사줄래?”

“응? 나.. 지금 돈 없는데..”

“히힛. 장난이야, 장난. 사주면 내가 사주지. 왜 너한테 사달라고 하겠어.”

나의 애드리브를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치려하는 효민이의 예능감에 살짝 당황해한 나는 쿨럭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나중에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말해버린 나였다.

얼떨결에 나온 저 말, 효민이가 알아챘는 지는 모르겠다.

저렇게 웃는 것을 보니, 눈치를 못 채긴 개뿔 제대로 챈 것 같다. 오늘 내일로 세종대왕 형님 또 보내겠네.

효민이는 점점 웃음이 가득해지지만, 난 살짝 우울해져가고 있었다.

“그럼 넌 어떤 스타일이 이상형이야.”

“내 이상형? 뭐 내가 끌리면 그게 이상형이야.”

“음.. 그럼 저기..”

“응?”

“아,아냐..”

이번에 물어보는 건 이상형이었다.

어째, 이야기가 은정 누나 때처럼 흘러간다는 게 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은정 누나 때 처럼 나는 비슷비슷 하게 내 이상형을 말했고, 그 소리에 효민이는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했지만 각설하고 그만 두는 듯 보였다.

“뭐야~”

“...”

“그럼 내가 질문한ㄷ...”

“나는 어때?”

말을 결국엔 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이며 혼자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에 난 살짝 실망했지만, 

이윽고 시간을 끌기 위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 하는 데, 갑자기 날 당황하게 하는 효민이였다.

처음엔 효민이의 말에 내가 술에 취해서 이상한 소리를 듣나 생각했지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봐서는 그녀는 진심이었다.

“어..? 어.. 그냥.. 이쁘고.. 청순하고..”

“민식아, 나 너 좋아해.”

“...”

말문이 그대로 막혀버렸다.

그리고 은정 누나와 하기 전의 상황이 데자뷰처럼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

망치로 머리를 제대로 맞은 듯 하다. 그저 바보 마냥 순식간에 멍을 때려버린 나다.

“아.. 그래..? 하하하.. 그렇구나... 웁?!”

대충 얼버무리며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고 있다가, 두서없이 그녀의 입술이 강하게 내 입술을 덮쳐왔다.

이른바, 기습키스.

갑작스러운 입술의 부딪힘에 입술보다는 잇몸 같은 부드럽지 않은 느낌이 먼저 느꼈지만, 이윽고 입술의 말랑거리는 그 촉감이 느껴지자, 내 기분은 짜릿해졌다.

짜릿한 시간이 몇 십초가 지났을까, 그녀는 숨을 들이쉬면서 흥분된 채로 말했다.

“너라면 내 모든 걸 다 줄 수 있어!”

“응? 효,효민아.. 잠시만.. 우리.. 이러는 거 아니야..”

“뭐가 아니야..? 내 모든 걸 받아줘! 나, 예전부터 널 좋아했단 말이야!”

내 얼굴과 몸에 맴돌았던 술기운이 효민의 당돌함에 확 달아나버렸다.

이제는 술기운이 아닌 정신차린 나의 이성이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뿐.

지금 효민의 갑작스러운 적극적인 행동에 나는 쩔쩔 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 감싸 안은 이 팔을 떼고 일단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다..다가오지마! 저..저리가!!”

그리고 오지 말라고 손짓을 하며 다가오는 효민이를 뿌리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있는 벽 쪽으로 요염하게 기어오는 효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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