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8/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여든 세 번째 과외.

**

은정 언니가 그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음, 강동원느님 처럼 그렇게 잘 생긴 건 아닌데 일반인 들 중에서는 특출난 외모가 장점이라면 장점이겠고.

은정 언니한테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착하고 배려심도 있는 것 같고.

“효민아, 너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으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한참 소파에 누워서 양 손으로 턱을 받치고 고민을 하고 있는 찰나에,

어디서 사왔는 지는 모르겠지만 은정언니가 녹차를 후루룩 마시면서 고찰을 하는 나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며 물었다.

난 진지해있다가도 그 틈에 들어오는 은정언니의 말에 현실 세계로 돌아오며,

심각한 생각은 안했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좌우로 저어보이며 자연스럽게 리모콘으로 티비를 켜서 티비를 시청했다.

은정 언니도 따뜻한 녹차를 든 채로 내 옆에 앉아 같이 예능을 보며 꺄르르 웃어댔다.

‘딩동.’

“응? 지금 시간에 왠 사람이지, 은정언니 여기 있어, 내가 갔다올게.”

“웅!”

다른 언니와 동생들은 다 돈을 벌기 위해 빡센 스케쥴을 뛰고 있고,

오늘은 스케쥴은 없고 내일은 여러모로 스케쥴이 빡빡한 은정언니와 나는 IPTV의 위엄에 탄복하며 vod 시청을 하고 있을 때 쯤,

시크한 초인종 소리가 공허한 거실을 채웠다.

은정 언니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일어나려고 하자, 그런 언니를 말리고 착한 내가 대신 집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어? 여기는 어쩐 일로.”

“전에 이사 왔을 때는 바빠서 떡을 못 돌려서요. 마지막 집으로 이 집 들리고 가요.”

“어? 민식아!!”

굳게 닫혀있던 문을 활짝 여니, 아까 나를 생각만으로 멍 때리게 한 그 남자가 떡을 들고 웃으며 서있었다.

은정 언니가 그 남자를 보고 민식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선, 이 남자의 이름이 민식이구나.

뭐, 이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히, 잘생기긴 잘생겼네.

“여기가 은정 누나네 집이었구나. 집은 우리 집 보다 좋네. 낄, 어쨌든 떡 맛있게 먹어. 그럼 나 갈게.”

“어딜 가!! 우리랑 놀아줭. 효민이도 나도 심심하단 말야.”

“아니야, 나 아르바이트 해야되서 못 놀아줘. 여튼 난 가볼게.”

“히잉 .. 오늘 밤에 놀러갈끄야!”

“밤에? 음, 맘대로 해.”

시크하지만 따뜻한 그의 말투에 그에게 애정이 있지도 않은 내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은정 언니랑 대화하는 건데, 왜 이렇게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거지.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라면 우리같은 미녀(?)들이 집에 있으면, 어버버 하며 말을 얼버무릴텐데.

딱 자기 할 일만 하고 저렇게 매정하게 돌아서다니, 왠지 모르게 시크하면서도 담백하면서도 멋지다..

잉? 박선영 너 뭐하는 거야. 왜, 니가 저 남자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데.

*

히잉.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민식이라는 남자애랑 친해지고 싶네.

은정 언니 말로는 나와 같은 나이라던데, 이 효민님의 폭풍친화력으로 쩌는 인맥에 나를 넣을 수 있을텐데.

근데 처음에는 말 걸 생각도 안하고, 갑자기 뜬금없이 친한 척 하면 좀 친해질려다가 오히려 한 발짝 더 멀어질텐데.

힝, 어쩌지? 어쩔까? 우쨀까? 

일단은 야무지게 꽉 채워진 오늘 스케쥴을 보고 한 숨을 푹 쉬고, 제일 늦게 일어나서 제일 게으르게 늦장 부리다가,

결국엔 혼자서 엘레베이터에 타는 위기에 처한 나였다.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줄기차게 내려오다가 우리 층에 멈춘 엘레베이터에 난 몸을 싣고 재빨리 지하 층을 누른 뒤,

연타하는 방식으로 닫기 버튼을 눌렀다.

쭈우우우욱 매끄럽게 아랫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참' 빠른 우리 엘레베이터.

근데, 고작 한 층을 내려간 뒤에 멈춰버리고 마는 엘레베이터.

설마, 내가 생각하는 민식이가 타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민식이가 타면 친해질 수 있으니까 상관없어. 민식아 나와라. 제발..

‘만세! 엘레베이터 만세! 민식이 만세!’

다행히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낯선 아저씨가 아니라 그래도 어느정도 면식이 있어서 익숙한 민식이가 내 앞에서 갈색의 크로스백을 메고 나타났다.

가을이라서 그런 지 야상자켓을 걸치고 말끔한 진청색 청바지로 멋을 낸 갈색머리의 그가 내 앞에 있었다.

민식이는 일단 침묵인 채로 엘레베이터에 탑승했다.

‘근데 시크하게 차도녀 이미지로 갈까, 은정언니처럼 귀여운 스타일로 갈까. 그래, 도도하게 굴자. 근데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하나, 아니면 인사를 받아야하나!?’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의 이미지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말이 좀 진지해서 그렇지, 티아라 사이에서 허당 기운이 조금 드러나는 나였다.

근데 이러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말도 못하고 일 층에 민식이가 내린다면, 나는 어떻게 하나!?

언제까지 어색하게 굴어야되는거지.. 이잉.. 나 어색한 건 질색인데.

“어, 은정 누나랑 같이 사시는 분 아니세요?”

“읭. 음.. 네, 맞아요. 어제 떡 돌리러 저희 집에도 오셨죠?”

나이스. 민식이가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날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민식이를 쳐다보니, 어이쿠 보기보다 키가 컸구나.

까치발을 들려고 하면 겨우겨우 눈이 날카로운 모양새의 콧잔등에서 멈추겠다.

“자주 뵌 것 같은데, 은정 누나 때문에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린 것 같네요.”

“...네”

하고 싶은 말은 방에 널부러진 속옷 더미마냥 한 가득 쌓여있는 데,

그 놈의 어색한 분위기가 뭔지. 하고 싶은 말은 다시 가슴 속으로 쏙 들어가고, 고작 ‘네. 네.’밖에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나 원래 이렇게 소극적인 여자가 아닌 것 같았는데.

점점 더 단조로운 나의 대답에 살짝 따뜻해지는 느낌의 분위기는 어색한 분위기 안으로 꼭꼭 숨어버렸다.

“어, 벌써 일 층이네. 그럼 나중에 뵈요. 아, 그리고.”

“네?”

“숙녀분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얼굴이 정말 이쁘시네요. 웃고 다녀요, 그럼 더 이쁠 것 같은데.”

“... 네! 

나에게 햇살보다도 더 화사한 미소를 흘리며 시계를 보고는 엘레베이터 밖으로 뛰어가며 사라지는 민식이.

여태까지 조금 씩 쿵쾅거리던 심장이 나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폭풍우의 파도 마냥 요동치고 있었다.

하, 이런 감정이 사랑인가..?

나는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고 난 뒤,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 얼굴은 복숭아색 물감으로 물들인 것 마냥 수줍게 연분홍 빛으로 달아올랐다.

‘지하 2층입니다.’

“히잇,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거야. 정신 차리자, 일단은 다른 멤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지하에 도착하고 난 뒤, 수줍은 여중생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색을 가라앉히고,

평상시의 나로 돌아오며 일단은 차 안에서 멤버들에게 몰매 맞을 각오를 하고 차로 뛰어갔다.

*

“어?! 정말?? 그럼 나 간다? 그러니까 기달려?”

침대에 누워,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청춘불패’말고 다른 버라이어티라서 계속해서 걸어 다니기만 했다.

거기다가 게임에서도 져서, 차 타고 댕긴 것도 아니고 이 여린 두 다리로 몇 리를 구두 신고 걸었는 지.

그렇게 투덜거리다가, 룸메이트인 은정 누나가 아까부터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하더니,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뭐, 난 별 관심 없으니깐.

“너 어디가?”

“요 밑에 민식이네 집 갈건데..?”

역시나, 우리 멤버들 중에서 연장자인 큐리언니가 야밤에 외출 좀 하려는 은정 언니를 막아세우며 제지했다.

나는 한 동안 멍을 떄리고 있다가 ‘민식’이라는 소리에 즉각 귀를 쫑긋 세웠다.

큐리 언니는 이 늦은 밤에 어디가냐고 걱정하는 어투로 말하다가도, 금방 은정언니를 혼내는 어투로 말하기도 했다.

간다고 칭얼거리며 떼를 쓰는 은정 언니.

절대로 혼자로는 못 보낸 다는 큐리 언니.

민식이에게 밥을 지어주어줘야 된다고, 거의 울상인 표정으로 따지는 은정 언니.

하지만 아랑 곳 하지 않고 그러니까 너 혼자는 못 보내고 한 명 더 데리고 가라는 큐리 언니.

“히잉.. 근데 같이 가줄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걔한테 오늘 못 간다고 말하고. 그냥 집에서 푹 쉬어.”

“그, 그럼 내가 같이 갈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금방은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하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손을 들며 은정 언니를 따라 밑으로 가겠다고 했다.

큐리 언니는 은정 언니와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누다가, 갑툭튀한 나의 등장에 읭? 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은정 언니는 싱긋 해맑게 웃으면서 민식이네 집에 내려갈 수 있는 확률이 급증했다는 생각에 나를 보며 입 모양으로 ‘따랑해, 횸’이라고 뻥긋거렸다.

다른 멤버들도 갑작스런 나의 말에 ‘갑자기 왜 저래.’라는 시선을 내 몸에 꽂은 채 지켜보았다.

“다..다들 왜 그렇게 쳐다봐..? 난 그,그냥 언니가 위험할 것 같고, 심심해서 가는 거야.”

그런 나의 말에 ‘누가 뭐래?’라며 다시 나를 쳐다보는 멤버들.

어쨌든 큐리 언니도 더 이상 은정 언니에게 말을 안 하는 것 같으니까, 은정 언니는 나의 손을 잡으면서 방방 뛰었다.

나도 얼떨결에 은정 언니를 따라 방방 뛰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은 이미 준비 완료라면서, 얼른 후딱 나오라며 방에서 기다렸다.

은정 언니의 차림새는 마치 가족 만나러 가는 것 마냥 핑크색 후드티로 자신의 귀여움을 한껏 뽐낸 뒤,

어디서 사온 건지, 머리끈으로 짧은 머리를 묶더니 옆 머리에다간 노란색 리본 머리핀을 꼽고는 아주 귀여움의 절정을 찍어버리는 언니였다.

‘읭, 언니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질 수 없츰.’

나도 얼마 전 동대문에서 아는 언니가 사준 예쁜 옷들이 옷장에 숨겨져있다고,

노란 빛깔 블라우스도, 화사한 몸빼바지도, 왜냐면 난 스타일리쉬 하니깐. 한 가득 꽃단장 하고 현관으로 가는 데, 

은정 언니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랫층에 내려 갈건데, 뭘 그렇게 차려입어. 너도 그냥 나처럼 수수한 아름다움을 뽐내.”

치잇, 그게 수수한 아름다움이야? 귀여움의 절정이지.

여튼 다시 거울을 보니, 행사 가는 것도 아닌 데 차려입었긴 좀 입은 나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언니랑 같이 맞춘

후드티를 입고, 언니를 따라 분홍색 머리핀을 꼽고 현관 밖으로 언니를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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