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여든 한 번째 과외.
화려하지 않은 언변으로 나를 말 못하는 벙어리로 만들다니, 역시 은정누나는 보통내기가 아니였어.
훗, 나의 패배다.
패배를 인정한 나는 소파에 거지 마냥 내팽겨쳐진 옷가지를 다시 펴서 입고,
은정 누나 또한 내가 옷을 입기 시작하자,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나체의 모습으로 내게 러쉬를 시도하려 했으나
나는 간단히 회피하고, 바닥에 널부러진 연두색 가리개를 손에 걸다시피 한 채로 팔을 뻗어 은정누나에게 어서 입으라고 건내주자,
다행히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누나는 속옷을 입고, 내가 임시로 준 옷을 챙겨 입었다.
“근디..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사귀는 사이지.”
아. 우리 이제 사귀는 사이 되는 거 였음?
갑자기 쿵쾅쿵쾅 잘 뛰는 내 심장에 썰렁한 화살이 관통한 듯한 느낌이 나를 냉랭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손은 안에다가 진동모터라도 내장한 사람마냥 떨리는 손가락으로 식어버린 녹차를 벌컥벌컥 마셔대었다.
이제 나는 여섯 명의 여자 아해들에게서 시달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일곱 명이나 달고 살게 되는 처지가 되버리는구나.
아아, 최근 러쉬 빈도가 높아지는 설리를 빼먹었네. 고로 여덟 명에게 시달려야 한다는 나의 모습에 나는 테라스로 달려가
안전 장치도 없이 고공비행하는 자유인이 되고싶었으나, 자유인 되다가 이승을 떠도는 처지가 될 수 있으므로 그건 딜리트해두고,
여튼 떨리는 동공으로 누나를 쳐다보며 말을 아끼고 있었다.
“히히, 우리 멤버들에겐 비밀로 해야하나..?”
“음? 뭐라고..? 멤버? 멤버? 메에에에에엠버어어어?”
어쩐 지, 은정 누나가 급식 아줌마였을 확률은 개나 줘버릴 확률이었어.
그렇게 완전무장 한 행태가 좀 수상하더라니, 역시나 얼짱 일반인이 아닌 얼짱 연예인인 은정누나 였구나.
난 그 충격에 일시적으로 소파에서 동상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은정누나가 그 모습에 눈 웃음을 방긋 지어보이면서
내 볼따구에 두잇 츄를 시전하려 하기에 급히 퍼포먼스를 그만두고 애써 쿨한 척을 하며 녹차를 다시 리필하기 위해 주방으로 러쉬했다.
‘크으.. 역시 보성 녹차는 최고야..’
“민식아, 우리 걸그룹 인 거 알지?”
“푸휇!?”
솔로 가수인 줄 알았건만, 은정 누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매니저,코디 인 줄 알았건만.
누나의 외모로 봐선 아이돌일테고, 그럼 인기가 많은 그룹일테고, 만약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나님의 뼈는 더 이상 빻아지지가 않을 정도로
야무지게 으스러지겠지.
일단, 누나의 진실고백에 난 레알로 하다가 접었던 녹차분수쇼를 드디어 누나 앞에서 최초 공개를 해버렸다.
다행히 고객의 안전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확실히 젖어버린 건 그 쪽이 아니라 내 쪽이었지만 말이다.
“히이..!? 민식아, 괜찮아?”
“으응.. 난 괜찮아. 멤버들 걱정할텐데 이제 가봐야지.”
“음?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넹. 그럼 나중에 봐!!”
나는 점점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은정누나에게 멀리서 손을 흔들어 준 다음 누나가 나가자 젖은 옷을 갈아입으려고
상의를 탈의하는 그 순간, 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은정누나가 빠른 뜀박질로 내게 다가왔다.
“왜?”
“쪽♥”
‘응? 뭐지, 이 아스트랄한 전개는!?’
워낙 빨리 옷을 갈아입기로 이름이 나있는 나는 그 잠깐의 시간에도 젖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쯤,
분명히 자기 숙소로 간다고 하던 은정누나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물음에 답도 안하고 히죽거리며 쪼개더니,
자신의 촉촉한 입술을 내 볼따구에다가 갖다붙이는 파렴치한 짓을 해버렸다.
물론 반은 파렴치하지만, 반은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라도, 누나를 위해서라도 일단은 당황당황열매를 먹은 사람마냥 행동하는 나였다.
누나는 나의 반응에 꽤나 흡족했는 지, 씨익 귀엽게 웃어보이고는 다시 아무 말도 없이 한겨울에 부는 매서운 찬바람의 속도를 보듯
빠른 걸음으로 이번에는 진짜로 내 집에서 빠져나갔다.
**
“미모는 나의 무기~ 암 어 뷰뤼풀 걸~”
민식이랑 몸을 섞고난 뒤 친밀감이 매우 많이 상승한 것 같아서 입에서 노래가 술술 나왔다.
동네 사람들은 이게 무슨 한가로운 낮 중에 소음이냐며 각목을 들고 주범을 잡으려 리젠되실 것 같지만,
친절하고 따뜻한 이웃 여러분, 오늘만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애두라, 나 왔어!!”
“언니! 집 안 지키고 뭐하는 거예요!”
“히잉.. 숙소 열쇠, 소연 언냐가 챙기고 갔잖아.”
내가 오면 환대해줄줄 알고, 이번에도 과장하며 인사했는 데 돌아오는 건 지연이의 얄미운 타박뿐.
초졸한 환영에 풀이 죽은 나는 지연이가 집 안 지키고 어디갔느냐고 묻자, 소연언니가 열쇠를 챙겨서 문을 못 열었다고 대충 변명했다.
그러자, 그 소리를 TV를 보면서 소파에서 들은 소연 언니는,
“으이구.. 이 둠팅아. 내가 화분 밑에다가 임시 열쇠로 하나 꼽았다고 예전에 말했어, 안 말했어?”
“아.. 그런기야!?”
라고 말했다.
아, 이제서야 생각났다.
언니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임시로 찍어낸 열쇠를 흔들어보이며, 현관 앞에 있는 화분 받침대에 놓고는 센스있게 화분으로 덮었던 장면이 이제서야 생각났다.
김으로 뿌얘진 화장실 거울에다가 손으로 문질러서 내 얼굴이 선명히 보이는 마냥, 그 기억도 흐릿했다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나 함은정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딱 치고 이제서야 이해했다는 식으로 말했고,
소연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곤, 다시 보던 예능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멤버들이 나랑 안 놀아주고, 지들끼리 오순도순 모이며 놀자판이길래,
난 민식이랑 한 부끄부끄한 행동도 있고, 뜬금없이 맞기 싫은 비를 맞은 경험도 있어서 급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편안한 나의 안식처에 몸을 뉘이며 닻보다도 더 무거운 눈꺼풀을 내릴려는 그 순간,
나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나를 깨우려는 용자가 있었다.
난 그 용자의 행동을 높게 생각하며 멱살을 잡으며 대응하니,
아니나 다를까. 요즘따라 드라마와 예능, 두 마리 토끼를 모조리 잡아버리겠다며 노래연습 따윈 집어치우고, 오로지 연기-개그 연습에 충실한
효민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툭툭 건드렸다.
“이씽.. 왜에?”
“언니, 우리 스케쥴 뛸 동안 어디서 쉬고 있었어..?”
“요 아랫집에.”
그래,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 까진 좋아.
하지만 우리 횸탱아, 이제 피곤해서 잠 좀 편하게 자려는 은정토끼의 소박한 희망을 추궁으로 붙잡지 말아줘.
나는 어서 빨리 자고싶기에, 요약적이면서도 임팩트가 조금이나마 0.000001% 들어있을 말을 내뱉고는 곧바로 걷잡을 수 없는 딥슬립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면서도 누군가 내 머리를 쿡쿡 찌르고 튀는 모양인 지, 자다 일어나면 머리가 슬슬 아파오는 나였다.
***
룰루랄라, 오늘은 신나는 월요일.
오전 강의 듣는 고된 일은 이미 야무지게 마친 지 오래고,
난 150만원을 위해서 야무지게 휴일은 사치라는 망할 놈의 노동 착취 현장인 이 직장을 오늘도 변함없이 카페에 출근하는 나였다.
아스트랄한 첫 아르바이트의 일주일이 지나가고,
햇살이 따갑게 내 머리카락으로 흩어진 월요일의 낮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불쾌해졌다.
“나 아메리카노 먹을꺼야, 너는?”
“나도 아메리카노!!!!!!!!!”
지금은 여름방학도, 겨울방학도 아닌, 학기 중인데, PC방도 아니고, 커피-도너츠 카페에 촏잉 출현이라니.
촏잉들은 친히 수다를 떠들어대시며 한 테이블에 앉아서 소음을 계속해서 발생시켜 나가셨고,
촏잉이지만 그래도 손님들이니까, 살짝 머리카락이 뻗치는 건 무시하고 '안' 귀여운 꼬꼬마의 시끄러운 주문을 받았다.
촏잉들은 적절하게 어디서 들어줏은 건 있었는 지, 내 면상 뒤에 있는 메뉴판과 가격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암훼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는 그들이였다.
“샷 추가해드려요?”
“네? 그게 뭐에요..?”
역시 촏잉들의 어휘력과 배경지식도 남들과는 다른 그런 모습이였다.
부가적인 질문에도 저렇게 당황해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그들을 보라.
결국엔 부가적인 행동은 그만두는 걸로 하고, 오 분만에 민정누나의 손길에서 만들어진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야무지게 촏잉들에게 토스해주었다.
그러자, 서로 내기라도 하듯 맹렬한 속도로 암훼리카노를 흡입하는 두 촏잉들.
아직 이 뜨거움의 고통. 촏잉들이 버틸려면 모기에게 조인트마다 물려서 모기팝핀을 출 줄 알아야,
그 때의 사람들의 시선이 쪽팔려서 시끄러운 소리를 더 이상 못하고, 찍소리도 내지 못할터인데.
참으로 아쉽구려.
다행히도 암훼리카노를 음미할 새도 없이, 그 뜨거움을 그대로 흡입한 촏잉들은
올 때의 시끄러운 모습과는 달리 과묵한 모습으로 카페 밖으로 빠져나갔다.
시작과 끝이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웨이터 짓을 하다가도, 시간이 나면
그 촏잉들의 모습을 생각해내며 웃음을 터트려댔다.
필시, 이것은 민정누나와 유진누나가 인터넷에 널려있는 개드립을 치는 것보단 더 재밌는 상황이라고 단정내리는 나였다.
다행이다. 오늘은 누나들과 심도가 얉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가 웃긴 레퍼토리가 생겨버려서.
당분간은 이걸로 혼자 싸이코패스 마냥 구석에 찌그러져서 미친듯이 웃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입꼬리를 씰룩씰룩하고 콧구멍이 벌렁벌렁 저절로 확장되는 나의 잉여스러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