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일흔 여덟 번째 과외.

***

오늘 아르바이트는 딱히 특출나게 힘든 것도 없었고, 사장님이 또 안 나타나셨기에 별 문제 없이 일을 마치고

소파에 누워, 예능프로그램 중 거의 유일이다시피 보는 무한도전을 틀고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역시나 무한도전은 웃음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꼭 한 번씩은 터트린단말이야.

여태까지 가장 웃겼었던 건, 노홍철이 정준하 집 앞에다가 쓰레기 3개를 더 추가해서 몰아서 벌칙 시킨게 가장 웃겼는데,

요즈음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몇 번 중간 규모정도로 웃을 만한건 자주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소파에 누워서 주말의 낙을 혼자서 여유로이 즐기고 있을 때 쯤,

문 밖에서 뭉툭한 주먹이 우리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무한도전이 끝난 타이밍에 맞춰서 적절하게 울려퍼졌다.

무한도전이 끝나서 난 그냥 소파에 눈 붙이고 내일의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일어나볼까도 했지만 저 노크소리 때문에 

깨진 유리조각처럼 산산히 부셔졌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현관으로 걸어서 문을 열어주었고, 그 곳에는 전에 우리 집에서 커피를 마시겠다고 한

야무진 성격의 여자 분이 뭐가 그리 좋은 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계셨다.

“저 오늘 커피 먹으러 왔어요!”

“아하? 아, 맞다. 그랬었지.. 들어오세요.”

여전히 변함없이 귀여운 말투와 행동으로 그녀는 내가 안내해준 소파에 앉았다.

나는 커피와 디저트를 대접하기 위해, 카페에서 누나들에게 부탁해 스틸해온 카페에서 맛 볼 수 있는 커피와 쿠키를 

마치 방금 만들었다는 듯 장식을 완료했다.

“자, 드세요.”

“우왕, 맛있겠따! 잘 먹겠숩니... 아참! 내 정신 좀 봐! 우리 계속 그쪽 저쪽이라 부르는 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통성명해용!”

“아아..? 대충 이해했어요. 자기 소개같은 거 하라는 말이죠? 제 이름은 김민식이고 89년생 뱀띠에요. 뭐, 학교는 

  중앙대 영문학과 재학중이구요.. 대충 이 정도..”

“히히, 제가 1살 위 누나네요? 말 놔도 되죠? 아, 그리고 내 이름은 함은정이야.”

외모로 봐서는 나랑 동갑이거나 한 살 아래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누님일줄이야.

하지만 내가 아시는 누님들과는 달리 귀엽고 애교스러운 면이 오히려 에프엑스의 막내라인들보다 더 많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은정누나다.

분명히 외모와 몸매는 섹시한 기운이 흐르다 못해 넘치는 데, 하는 행동과 말투는 애교덩어리 그 자체라니 정말 의외였다.

“네, 그럼 드세요. 은정누나..”

은정누나는 후르릅 소리를 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는 지 멀뚱멀뚱 쳐다본다.

난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다시 커피잔을 손가락으로 툭 치면서 커피를 마시라고 권장했다.

은정누나는 대충 내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 지 눈치채고는 다시 깨작깨작 한 모금을 마시고 바삭한 쿠키를 한 움큼 베어물었다.

그리고는 살가운 눈웃음을 날리며 나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고는 말을 했다.

“히히, 너도 말 놔.”

“이미 말 놨어.”

“헤에.. 민식이가 말 놓으니깐 좋다...”

“좋다니, 사람 부담스럽게시리.”

은정누나는 부끄럽게시리 나를 넋 놓고 쳐다보았다.

그저 멍때리고 있는 줄 알았는 데, 눈동자가 요리조리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나의 얼굴이고 몸이고 샅샅이 훑는 듯 보였다.

살짝 그 시선이 껄끄러웠으나, 일단은 화장실을 갔다온다는 핑계로 시선을 피하고

다시 화장실에서 빠져나오니 은정누나의 시선은 나를 향해 거의 고정되다시피 꽂혀져있었다.

“근데 누나는 무슨 일 하길래, 아침저녁으로 무장하면서 다녀?”

“나..? 음.. 그렇게 무장하고 다녀야 되는 일이 있어.”

“뭐, NSS라도 되려나!?”

“히히.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갔잖아. 그 정도 까진 아니고 뭐 그런 일이 있어.”

나는 은정누나에게 왜 아침 저녁마다 학교에 급식이라도 만드러 가냐며, 모자와 마스크는 왜 끼냐고 묻자

그럴 일이 있다고 얼버무리며 말하는 은정누나였다.

난 그녀의 말을 대충 간파해, 어떤 중요한 일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고,

평범하게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 벌써 10시다. 애들 걱정하겠네, 나 가볼게! 나중에 또 이야기 하러 온닷!”

“오는 사람 들이고, 가는 사람 안 붙잡으니까 맘대로 해요..”

은정누나는 시계를 보더니, ‘나 홀로 집에’에서 나오는 꼬마 케빈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후다닥뛰며 현관을 향해 대쉬하곤 아웃사이더처럼 속사포로 말한 뒤 빠른 속도로 우리 집 앞 마당에서 사라졌다.

하아, 시끄럽고 아스트랄했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내가 개그치는 것보단 나았던 대화였어.

나는 노곤한 몸을 질질 끌고 욕실로 들어가 하루의 고됨을 풀풀 물과 함께 흘러보내며 하루를 마쳤다.

*

“막내들, 효민아, 언니들~ 나왔어!!”

“야, 함은정. 너 지금까지 말 없이 뭐하다 들어왔어!?”

오늘은 휴일이고, 저녁에 민식이네 집에 놀러 갔다 오니까 주말이 참으로 보람차고 상쾌하게 느껴진다.

신나고 줄기차게 민식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점점 친해지는 느낌이 들고 나보다 오빠인 줄 알거나 동갑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었다니, 나이를 알게되서 민식이가 연하인 것을 직시하니까, 민식이가 So cute 해 보이는 것 같아.

어쨌든 가벼운 걸음걸이로 계단을 오른 뒤 숙소에 도착해서, 멤버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큐리언니가 샤우팅을 시전하며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나..? 밑에 층에 있는 민식이랑 이야기 하다 왔는데?”

“그 남자 이름이 민식이디? 여튼, 너 미쳤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 혼자 그렇게 돌아다녀! 그리고 걔는 혼자 살디?”

나는 별 다른 생각없이 밑에 사는 민식이랑 놀다 왔다고 말했고, 큐리언니는 그 말을 듣고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니 혼자 돌아 다니냐고 나를 야단치고 혼을 내며 앞으로는 좀 조심하라고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히잉, 잔소리 듣기 싫어..

“응. 혼자 독립해서 산데.”

“남자 혼자 사는 집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섣불리 가선 안돼. 내 말 무슨 일인지 알지 은정아?”

그리고 민식이가 혼자 사냐고 묻는 큐리언니의 말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해주었다.

그러자 큐리언니는 약간 톤이 올라간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차근히 조곤조곤 내게 충고를 해주었다.

나는 큐리언니의 진심어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그저 귓등으로 들으며 바닥에 시선을 내리꽂곤

발을 부채꼴 모양으로 흔들며 입술을 무의식 적으로 쭉 내밀었다.

“히잉..그래도 가고 싶은데..”

“그러니까 걔가 네가 연예인인것을 모르는 건 괜찮은 것 같지만, 네가 보통 미모가 아니라서 걔가 어떤 맘을 가질 지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깐 거기에 되도록이면 놀러가지마.”

그리고 칭얼거림이 섞여있는 독백을 허공 속으로 내뱉었다.

그걸 들은 큐리언니는 잠시 몇 초간 고민을 하더니, 논리정연하게 오목조목 말해주었다.

‘나도 큐리언니의 마음은 아는데, 민식이는 진짜 마음씨가 금강산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처럼 순수하다고,

  다른 남자들 같으면 왠만해선 나를 어떻게 할까 노심초사하며 고민하겠지만, 민식이는 나를 친구로 인정하고

  누나로 인정한단 말이야. 그리고 심지어는 가족보다도 더 편하게 대해줘.

  언니도 민식이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그런 말 안 하게 될 거란 말이야. ’

라고 속으로 안타깝게 독백해보지만 어차피 말해봤자, 큐리언니는 자신의 입장을 밀며 어떻게 든 나를 설득시키려고 할 것이였기

때문에 말 해봤자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똑같이 군중심리에 의해 나도 예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른 점이 뭐가 있을까.

안타깝게 속으로 큐리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저 묵히기만 하는 나였다.

“아니야!! 민식이는 진짜 배려심 깊고 착한 애라고.. 효민이하고 막둥이하고 언니들도 친하게 지내봐. 진짜 착한 애란 말이야!”

“에휴.. 내가 그건 그냥 겉모습 뿐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모르겠다, 니 알아서 해.”

“히잉..진짜 착한 데..”

나는 그래도 민식이의 집에 못가는 것에 대해 포기하지 못해서일까.

내가 생각했던 것 까지는 아니라도 적절하게 요약되어있는 말을 언니에게 진심으로 말해보았다.

평소에 내지 않았던 소리까지 내면서 말이다.

그래도 큐리언니는 변함없이 지금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혀를 끌끌차고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리고는 ‘니 알아서 해.’라는 무관심의 말을 표출한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가는 큐리언니.

멤버들도 어느새 방에 들어갔는 지 거실에는 공허함과 한적하고 무거운 기색만 가득했다.

나는 배춧잎을 밟는 듯한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소파로 걸어가 앉고는 한 숨을 크게 내쉬며 탄식했다.

‘치이..’

아무도 들어주지도 않는 나의 불만섞인 혼잣말과 한숨만이 허전하고 조용한 거실을 귀찮은 모기의 움직임처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