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2/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일흔 일곱 번째 과외.

***

아르바이트 세 번째 날.

오늘은 공강일. 룰루랄라 늦잠 자도 학점 안 깎이는 신나는 공강일.

덕분에, 아스트랄하게 11시까지 늦잠을 자는 위엄을 펼쳐보였다.

꿈도 세 편이나 꾸었다. 꾼 꿈의 장르를 나열해보자면, 첫 번째 꿈은 소시에게 쫒기는 스릴러.

두 번째 꿈은 소시에게 시달리는 공포물, 세 번째 꿈은 소시에게 쳐맞는 액션물.

장르는 다르지만 등장인물의 소모성이 짙어서 스토리에 상관없이 지루했고,

정신을 차려서 각성상태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분명히 푹 잤는데 1톤짜리 쇠추가 내 어깨를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우, 레알 피곤해.

하지만 난 생활비를 벌어야되니까, 혼자 사니까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 된다.

돈 버는 기계와 동시에 돈 쓰는 기계인 나 김민식은 오늘은 예외적으로 크로스백을 집에 내비두고, 지갑과 열쇠만 챙긴 채

아르바이트를 뛰러 오늘도 터벅터벅 배춧잎 같은 발걸음으로 가게를 향해 걸어갑니다.

“민식군, 왔군.”

“안녕하세요, 사장님.”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간단한 라임을 만들어 내며 내게 인사를 해주시는 사장님이셨다. 

근데.. 아, 어제는 사장님이 안 계셔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동기가 생겼었는데, 오늘은 도저히 안 생기는구나.

사장님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옷을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오늘도 여전히 주문을 하겠다는 벨이 울리기 전에

카운터에 앉아 누나들이랑 에헤라디야 거리며 노가리를 까는 나였다.

근데, 이 누나들은 내가 개그 치기만 골라서 기다리나.. 왜 자기 이야기는 안하고 내 얘기만 크림빵에 크림 빼먹듯 얌체같이 구는거지..

우우.. 더 이상 내 레퍼토리만 토해낼 순 없다. 어서 자네들의 에피소드를 말해다오. 나도 나중에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 써먹게..

“근데, 민정누나. 누나는 겪은 에피소드 중 재밌었던 일 없어.”

“푸하하하하.. 응? 음.. 잠시만.. 음.. 없네..?”

나의 말에 배를 부여잡고 미친듯이 쪼개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며 곰곰히 생각해보는 누나.

자신의 관자놀이를 누르며 뇌에서 퍼니한 레퍼토리를 뽑아내려 애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 난 살짝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여는 민정누나는 재밌는 레퍼토리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대답해주었다.

순간 입 밖으로 생각해두었던 육두문자를 야무지게 꺼내놓으려고 했으나, 애써 튀어나오려는 그 단어들을 도로 집어넣으며

나중에 겨울이 되면 꺼낼 기세로 발효시키며 다시 묵혀뒀다.

그녀는 귀엽게 웃으며 상황을 모면하려했으나, 나의 분노는 살짝 달아올랐다.

하지만 타이밍이 기막히게 카운터에서 벨이 울렸고, 나는 달아오른 분노를 금방 식히며 가식의 웃음을 민정누나에게 지어보이곤

가서 주문을 받았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어요..?”

“너님요.”

“읭?”

나는 개드립을 치고 뭐가 그리 좋은 지 실실 쪼개는 딱 봐도 여대에 다니는 신입생의 풍모를 보이는 그녀를 잠시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냥 주문 안 받고 카운터로 다시 움직이려다가, 애써 감정을 컨트롤하며 주문을 다시 받았다.

“히히.. 농담이구요. 전 달달한 거 좋아하니까 카라멜 마끼야또 숏으로 머그컵에 담아주신 뒤, 샷 추가해주시구요. 그리고..(너무 길어서 생략)”

“하하하.. 다 주문 하셨나요..?”

“아, 또 도너츠는요...(길어서 생략)”

이 샤프가 닳고 이 종이가 오래되서 눅눅해져 찢어질 때까지, 그 여자 분은 주문을 계속하려는 듯 보였다.

분명히 이것은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 하려는 몇 가지의 시련 중 하나일꺼야.

아까 민정누나를 통해 첫 번째 시련을 참아냈으니까, 이번엔 두 번째 시련인건가.

이러다가 손가락이 짓눌려서 발갛게 달아오르겠네.

쉬지않고 주둥이를 나발리는 이 차가운 도시의 여자분께 따신 커피로 머리를 감게 하고 싶구려.

힛, 이건 너무 심했나?

여튼 십 분간의 장문의 주문을 머리와 종이에 가까스로 입력한 나는 뒤를 돌아 하품을 하며, 민정누나에게 주문서를 건네주었다.

민정누나는 다른 누나와 노가리를 까다가 내가 내민 주문서에 경악하며 입꼬리를 부르르 떨었으나, 이렇게 눌린 내 손가락 만 할까..

“음, 커피는 내가 맡은 일이니까 내가 제조하고.. 유진아, 넌 도넛 셔틀이니 도넛 만들어.”

“나..? 민식아, 니가 만들어.”

“네기리브.”

“칫.”

민정누나는 이내 주문리스트에 대해 쿨하게 넘어가고, 본격적으로 커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같이 노가리를 깐 유진누나를 툭툭 건드리며, 도넛을 만들으라고 재촉하는 그녀였다.

그러자 유진누나는 나를 쳐다보며 니가 만들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10분동안 그 사람의 말을 번역해내느라

식은 땀을 흘렸기 때문에, 쿨하게 거절했고 유진누나는 실망이라는 소리로 날 째려보더니 묵묵히 도넛을 만들러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두 누나는 각각 주문 받은 것을 다 제조하고 난 다시 그것을 서빙했다.

그 여자는 내가 서빙한 것을 보고 피식 웃더니, 집에 가서 먹게 포장해달라고 말했다.

망할 냔. 그냥 여기서 먹으면 어디가 덧나냐.

하지만 나는 정규직도 아니고 아르바이트생이었기에, 속으로 툴툴거리며 머그컵에 담긴 그 커피는 플라스틱 컵에 다시 담은 뒤

따끈따끈한 봉투를 그 여자에게 건네주고 재빨리 배웅을 해주며 밖으로 보냈다.

그대여, 다시 이 가게에 오지말아요.

나는 그 여자를 끝으로 아르바이트 시간을 끝내고 오늘은 사장님이 피곤했는 지 업무 도중에 가셔서 별다른 문제 없이 유니폼을 갈아입고,

두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피곤한 발걸음이었지만 집에 후딱 가서 쉬기 위해, 경보하듯 빠른 걸음으로 집 입구까지 도착했다.

설마, 오늘도 있으리까 하면서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근데, 우연히 엘레베이터 층 수를 나타내는 창을 쳐다보니 B2에서 올라오고 있다!?

마,마사카..!?

“어, 정말 계속 보네요.. 하하.. 안녕하세요? 뒤에 분들도 안녕하세요?”

“나 미행해용?”

“네..네.. 아,안녕하세요..”

“미행이라니, 나님은 그냥 알바 끝내고 집에 오는건데.. 우우..”

역시나 언밸러스한 앞머리를 한 여자분과 항상 내 앞에서 얼굴을 가리고 무장중인 여섯 여자분들이 계셨다.

8명이 그 좁은 엘레베이터에 타니 살짝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안색이 안 좋으시네. 알바 힘들어요?”

“어제는 안 힘들었는 데, 오늘은 조금 힘드네요.”

“왜요?”

“강적인 손님을 만났거든요. 주문을 하는 데 무슨 옵션이 그리 많은 건지, 그냥 10분동안 기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푸훕- 힘드셨겠네요.”

나는 오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짧지만 세세히 엘레베이터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입에 아웃사이더가 빙의해서 랩 하듯 하소연 하는 바람에, 그녀가 내 말하는 방식이 꽤나 웃겼는 지 씰룩거리던 윗입술을 버티지 못하고

격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써 웃음을 참으며 ‘힘드셨겠네요.’라고 말하며 날 짤막하게나마 위로해주는 그녀였다.

“어어..? 하소연 하다보니 어느새 8층이네. 그럼 나중에 뵈요.”

“히히, 저기요!”

“네?”

“커피 마시러 놀러가도 되죠..?”

*

“네.. 저야말로 오시면 환영이죠.”

“그럼 내일 휴일이니 놀러 갈께요!!”

“네.. 근데 저녁에 와요. 낮은 토요일까지 아르바이트 뛰느라 바빠요..”

“넹!”

나는 그가 나의 부탁을 거절이라도 할까봐 불안해했지만, 흔쾌히 수락하는 그의 모습에 살짝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곧바로 내일 놀러간다고 하고, 그 또한 토요일 저녁이면 괜찮다고 하면서 수락했다.

그가 엘레베이터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지켜보고나서야 엘레베이터의 문은 닫혔고,

나의 말에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멤버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로 내게 물었다.

“너 진짜 커피 마시러 저기에 갈꺼야?”

“응, 꽤 괜찮은 남자인 것 같아서 나 예전엔 자랑은 아니지만 예쁜 얼굴 때문에 사람들이 잘 다가서지도 못했는데,

  저 남자는 외모에 상관 안하고, 서슴없이 편하게 대해주잖아. 어쨌든 난 내일 커피 마시러 갈꺼얌.”

나의 장문의 말에 멤버들은 모두 하나같이 곰곰히 고민해보더니, 나와 그 남자가 대화한 걸 떠올려보며 남자의 태도가 어떤 지 생각해보았다.

먼저 인사를 해주는 배려심 깊은 성격, 그리고 반반한 외모, 그리고 서슴없이 편하게 대해주는 것 까지.

듣고보니, 내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멤버들이였다.

“히히.. 그럼 나 내일 마시러간다..?”

“거기서 위험한 일 생기면 연락하고.”

“헤에? 절대로 그런 일 없을꺼야. 그럼 콜 한거로 안다? .. 히히히, 우리 찡녀랑 화영이 오랜만에 팔좀 걸치장!”

“뭔 소리야.. 아악! 힘들어 초딩언니!!”

나는 별다른 말 없이 수긍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귀여운 막내들의 어깨에 팔을 걸어 오랜만에 함초딩의 면모를 보여주며 아장아장 걸었다.

지연이와 화영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아프다고 했지만, 난 장난기가 좀 더 생겨버려서 더 힘들도록 누른뒤 더 느리게 아장아장 걸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람뽀언니, 소연언니, 큐리언니는 혀를 끌끌차며 나를 쳐다보다가 들어갔고, 효민이는 의심많은 눈초리로 날 쳐다보곤

언니들을 뒤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현관에 들어서서야 귀여운 두 막둥이들을 놓아주고 볼살을 잡아당겼고, 얘들이 마음씨가 좋아서

그런 지 별다른 저항없이 자신의 방으로 도망을 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방에 가기 전 멤버들 신발 정리를 하고 졸래졸래 내 방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히히, 내일이면 그 남자의 이름도 나이도.. 그리고 더 친해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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