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일흔 여섯 번째 과외.
***
아르바이트 이틀 째,
오늘은 사장님이 안 오시는 날이란다. 만세!
마음 한 구석에서 마치 삼각산이 용솟음 치며 춤을 덩실덩실 신나게 추는 듯한 느낌이 확 들었다.
과장해서 나 또한 황진이 춤을 춘다면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여대생 분들이 나를 남자 황진이라고 칭하고,
마이크를 건네주며 박상철의 황진이라도 부르라고 시킬까봐 두려워서 양 손가락만 살짝 흥에 겨운 듯 까딱거렸다.
어제와는 달리 몸이 하늘을 향해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낯 뜨거운 시선이 내 몸 이곳 저곳으로 꽂히지 않아서 ‘월보(月步)’를 시전해서 mp를 소모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문을 야무지게 받아주었다.
오늘은 사장님이 안 오셨으니까, 알바생이지만 못 알아먹는 빌어먹을 커피 주문이라도 괜찮아요.
오늘은 사장님이 안 오셨으니까, 단체손님도 오늘은 두 손 머리 위로 번쩍 들고 딸랑딸랑 손 흔들며 환영해요.
오늘은 사장님이 안 오셨으니까, 야외 테이블까지 주문한 음식을 옮기는 것도 안 귀찮아요.
그렇게 어제보다 더 성실한 마음으로 주문을 받고나니,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서쪽을 향해 주황빛 놀을 흘려대며 러쉬를 시전했다.
아, 참으로 아름다운 노을이로다. 저 노을이 내는 주황빛에 내 마음 속에 묵혀있던 걱정들이 깨끗이 씻겨나가는 느낌이구나.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네. 저 먼저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
“응, 그래. 내일도 개그 좀 쳐줘!!”
“누나들.. 개그는 제 마음대로 터지는 게 아니에요.. 여튼, 내일 뵈요.”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어느새 6시를 정확히 가르키고 있었다.
칼퇴근족의 표본인 나란 남자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자마자 곧바로 관계자실로 걸어가 입고 있었던 유니폼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내 어깨를 탈골시킬 기세는 아니지만, 곧 그 기세가 될 크로스백을 어깨에 메고 유유히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 아침에 러쉬 스킬좀 쓰느라,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를 사다가 나를 다시 재충전할 요량으로 구입한 박카ㅅ..를
남자답게 원샷으로 드링킹하며 남은 껍데기는 쓰레기통으로 던져 처리했다.
후후, 떨어졌던 MP와 HP가 천천히 차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오는군.
좋은 징조다, 오늘 로또 지르면 상금 5천원은 당첨될 기세다. 근데, 거기서도 세금을 떼먹으려나?
빨피인 체력을 채우다보니 어느새 노을이 졌던 하늘은 거묵거묵 새까만 물감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늘이 까매지다 보니, 불이 꺼져있던 가로등도 은은하게 노란 빛을 비추며 어둠을 밝혀갔다.
그 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나의 살짝 떡진 갈색 머릿결이 아침 이후로 내가 머리를 안 감았다는 것을 살짝쿵 인증해주었다.
이런 인증 할 필요도 없는데, 내가 왜 하는 거지?
그렇게 혼자서 10분동안 독백을 지껄이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고, 손가락은 버튼을 꾸욱 눌러대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엘레베이터의 문이었다.
와우, 아무도 없군. 시끄럽게 안 가고 참 좋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문을 닫으려는 그 순간,
“잠깐만요!!”
어제의 나의 모습과 싱크가 얼추 맞는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어제는 분명 내가 저 위치에서 잠깐만요! 라고 외치며 엘레베이터로 달려왔고, 그 여자 분은 광클을 했단 말이지.
그럼 나도 광클이다.
‘다다다다다다다’
조잡한 버튼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엘레베이터를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그 조잡한 소리를 내며 광클하는 덕분에, 3명의 여자 분이 엘레베이터 안에 안전하게 탑승하는 좋은 일이 생겼다.
그 대신, 내 검지손가락에 맺힌 이 찝찝한 땀방울은 어쩌란 말이냐..
“아! 감사합니다.”
“헐, 망했다!! 가려- 가려-”
“읭?”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온 세 명의 여성 분들 중 언밸런스하게 앞머리를 내린 여성 분은 외모와 달리 귀여운 말투로 말을 했고,
나머지 두 여자 분들은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데 급급하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그렇게 멍 때리고,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자 이제 슬슬 올라가나 싶었는데 버튼을 안 눌렀는 지
엘레베이터는 한 동안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버튼이 나열되어 펼쳐져 있는 곳으로 눈동자를 굴려 확인해보니, 역시나 나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
아아아아아무도 자신의 층 수가 새겨져있는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 지, 꺼진 채로 어두운 색깔만 뽐내는 엘레베이터의 버튼들이었다.
“내 정신 좀 봐. 층 버튼도 안 눌렀네.”
“히히.. 저희는 9층에 사니까 9층 버튼도 눌러주세여.”
“네, 네. 누릅니다. 자 눌렀어요, 됐죠..?”
나는 손가락으로 8과 9를 꾸욱 누르고, 고개를 여자분들이 있는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돌렸다.
그러자, 언밸런스하게 앞머리를 내린 여자 분이 나를 멀뚱멀뚱 뚫어지게 쳐다보며 앞으로 다가왔다.
“왜 이러세요..?”
“헤헤.. 잘 생기셔서 한 번 멍 때리고 쳐다봤어요. 히히.. 잘 생기셨네.”
“하하.. 외모에 관한 그 칭찬... 감사해요.”
나는 순간 당황해서 분명히 완전히 넘겨버린 박카ㅅ.. 액기스를 다시 입 안에서 재회할 뻔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추스리며, 나를 면전에 두고 부끄럽게시리 쳐다보는 그녀에게 왜 이러시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순박한 웃음소리를 내며 나의 당황한 질문을 자연스레 받아쳐주는 단발의 그녀였다.
하하, 그녀의 순수한 눈웃음에 순간 바짝 세웠던 경계심이 완전히 누그러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갑작스레 그녀가 편해졌는 지, 평소에 소시 아해들에게도 잘 안치는 애드립을 살짝쿵 흘려주는 나였다.
나의 거지같은 애드리브에 그녀는 이런 애드립류가 자신의 개그코드에 싱크가 어느정도 일치하는 지, 깔깔거리며 해말게 웃었다.
“푸풉.. 외모만 출중한 게 아니시고, 예능감도 출중하시네.”
“훗, 과찬의 말씀을.”
“피힛..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요즘따라 아주 자주 마주치는 것 같아서.. 새로 오셨어요?”
“아, 한 일주일 전에 이사왔어요. 그리고 대학생이라서 아침에는 출석 때문에 학점 깎이는 거 막아야 되서 바쁘고,
점심에는 알바 뛰느라 바쁘고, 저녁에는 고된 일이 다 쫑나서 살짝 여유롭네요.”
계속해서 진행되는 그녀의 고마운 칭찬에 나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칭찬 좀 그만 하라 하지만,
이 놈의 입이 칭찬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피식 입꼬리를 저절로 움직였다.
또, 그런 나의 모습에 피식하며 수줍게 웃은 그녀는 근래에 들어 자주 마주치는 상황 때문인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간단명료하게 그녀의 말에 차근히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 그렇구나.’라며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거리며 이해했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잠깐동안 나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을 하고 나는 대답해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엘레베이터는 내가 내릴 층수에 다다랐다.
“어? 8층이네. 그럼 내일 또 뵈요- 뒤에 있는 두 분도 나중에 뵈요-”
“히히- 잘 가세요!”
“휴우..아..? 네..”
나는 발걸음을 엘레베이터 밖으로 옮기며, 나와 잠깐동안 이야기를 나눴던 그녀와 뒤에 있는 두 분께 인사를 건네고 난 뒤,
집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여성분은 해맑게 웃으며 배웅해줬던 것에 비해, 뒤에 계셨던 두 분은 줄이라도 놓고 있었는 지,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겨우겨우 대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엘레베이터 타는 게 지루했었는데, 오늘부터는 조금씩 덜 지루해지겠구나.
히힛, 몸이 피곤하니까 얼른 씻고 자야겠다.
**
“에이.. 뭐야.. 은정언니, 진짜로 우리 못 알아보는데..?”
“맞아..맞아.. 나 좀 실망했음.”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우리는 한 층 더 올라가고 나서 숙소에 도착했고 현관에다 신발을 벗자마자,
효민이가 실망 섞인 어조로 우리를 못 알아보는 그의 모습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옆에 있던 람뽀언니 마저도, 괜히 얼굴 가려서 뻘쭘했다라는 식으로 얼굴을 부끄럽게 붉히며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런 둘의 찌푸린 모습에 피식하고 살짝 웃으며 말 대신 웃음으로 대꾸해주었다.
“근데 나는 대화 나눠보니까 착하시고 재밌으신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인가..?”
“그냥 우연이겠지..”
“맞아맞아, 우연일꺼야.”
하지만 나는 효민이와 람뽀언니의 생각과는 다르게 느낀터라, 의문을 느끼며 그 남자에 대한 느낌을 말해주며
살짝 내 생각이 착각인걸까 라고 생각하니까, 효민이와 람뽀언니는 착각은 아니고 그저 우연일 뿐이라며,
내일도 스케쥴 있으니 어서 잠이나 퍼뜩 자자 라는 말과 함께 둘이서 내 등을 밀며 방 안으로 옮겼다.
나는 알았다며 웃어주고, 세 명중에는 가장 먼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가장 먼저 누워
두꺼운 하트무늬 이불을 내 턱 밑까지 덮고는 눈을 초롱초롱 뜨며, 불이 꺼져 깜깜해진 방에서 깜깜한 등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내일은 더 친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