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일흔 네 번째 과외.

*

“하음.. 잘 잤다..”

“일어났어?”

“음.. 잘 잤ㅈ.. 잉?”

내 얼굴을 두드리는 햇살의 두드림에 피로가 풀린 몸을 일으키며, 오늘도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했다.

근데 나의 독백을 받아쳐주는 이 여자목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마사카!? 역시나 고개를 돌려보니 태연이가 이불로 턱 밑까지 끌어올린 채로 동그랗게 눈을 뜨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불에서 빠져나오니 왠지 모르게 위 에나 아래에나 허전함과 썰렁함이 같이 느껴져, 거울을 한 번 노려보니

이럴수가, 내가 나체로 잠을 취했다니.. 그래서인지 일상과는 다르지 않게 분신은 하늘로 승천하려고 준비중이었나보다.

일단, 계속 알몸으로 있는 게 자랑은 아니니까 그리고 좀 있으면 업체에서 이사를 도와주러 오니까 나는 허벌나게 빨리

알몸에 옷을 하나 하나 입혔다.

근데 태연이도 나체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리가..

‘휘익-’

“뭐해?”

“휴우, 넌 입고 잤구나. 다행이다.. 그럼 넌 감기에 안 걸리겠구ㄴ.. 어? 와이셔츠만 입었어!?”

그래도 설마가 사람 잡는 다는 말에 의거하여 나는 태연이에게 다가가 덮여있는 이불을 들춰보았다.

휴, 다행히도 그녀는 와이셔츠만 입고 있어서 다행ㅇ... 응? 와이셔츠만!?

하얗고 타이트하기보단 사이즈가 좀 널널한 셔츠에 단추는 아래만 잠궜는 지, 위에 2개는 안 잠구고

매혹적인 가슴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녀였다. 거기다가 아래는 그저 매끈한 허벅지가 눈 앞에서 펼쳐져 있다니..

“유후. 나 어때, 좀 섹시하나?”

“풉, 꼬마가 섹시해봤자지.”

“치잇..”

태연이는 섹시화보에서 나올만한 표정을 지어내면서 느낌이 어떻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갑작스럽게 장난끼가 생겨서 농담 식으로 말해주자 태연이는 입을 삐죽 내밀다가, 내가 방문을 빠져나오니까 

와이셔츠만 입은 채로 쫄쫄쫄 따라나왔다.

“근데 너 스케쥴 안가?”

“스케쥴..? 가지.. 근데 오늘 가면 언제 볼 지 모르잖아.”

“걱정마, 곧 보게 될거야.”

그리고 가만히 거실에 서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그녀에게 스케쥴을 물었다.

그러자, 곧 간다며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그녀였다.

나는 태연이를 진정시켜주기 위해 그녀의 갈색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찐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얘들한테 사실은 말해주지말고, 그리고.. 그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지..?”

“당근! 난 네 마누라 김태연이니깐!”

그리고 감쌌던 팔을 떼며 나즈막히 그녀에게 말을 했다.

그러자, 태연이는 날 신용하라는 제스처로 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면서 그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믿음직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나온 싱그러운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추어 그 흐뭇한 미소를 더 부각시켜주었다.

그리고 잠시후 그녀는 원래 입고 있었던 옷을 갈아입으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집의 현관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런 그녀를 한 번 더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며 그녀의 얼굴에 덮여진 슬픈 회색 빛의 커튼을 걷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안타까운 마지막 배웅을 하고,

곧 이사전문업체에서 보내온 메세지를 보고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사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자.. 5개월동안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맙다.’

**

“윤아야, 오늘은 민식이가 문 열어줄까?”

“언니,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은 될꺼예요!”

숙소 앞 현관에서 열띈 토론을 나누고 있는 유리와 윤아.

필시 그녀들이 이렇게 토론을 나누는 이유는 오늘은 열어줄 꺼라는 그녀들의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유리는 오늘도 안 열어주는 거 아니냐며 살짝 의심을 하고있고, 

윤아는 오늘은 될 꺼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다.

“어!?”

“유리 언니, 왜 그래요?”

“이 집은 빈집입니다..!?”

“ㅁ..뭐라구요..?”

“무슨 말이야, 민식이네 집이 빈 집이라니, 그게 말이나 돼..? 헐. 말 되네..”

윤아는 먼저 현관문을 박차기 했지만, 곧바로 간이 확 줄어들어버려서 유리보다도 4km/s 낮은 속도로 걷기 시작했고,

유리는 윤아보다 4km/s 정도 더 빨리 걸어서인지, 걸어서 5걸음인 민식의 집에 먼저 도착하고는 문고리에 걸려있는 팻말에 바로

놀라는 유리의 모습이었다.

그런 유리의 괴성에 옆에 있던 윤아와 나오려고 했던 써니는 한 걸음에 달려나와 마찬가지로 팻말에 있는 글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로 진성이 섞인듯한 고음으로 경악을 해버리는 그녀들이였다.

‘이 집은 빈집입니다.’라는 문장에 패닉상태에 빠져버리는 그녀들과, 유유히 걸어나오면서 살짝 우울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소녀들보단 여유로운 태연이 미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

“에이씨, 집 구해다 줄거면 좋은 곳을 주지. 소시 옆집보다 더 작네.”

어느새 이수만 사장님 께서 직접 알선해주신 집으로 이삿짐정리까지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번 집 보다 조금 좁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살 만했고. 월세가 아닌 전세라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새 마음으로 새출발 하자고 머리도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서 깔끔하게 긴 더벅머리를 깎아버렸다.

헤어디자이너 분께서 너님은 강동원 머리하면 좀 어울릴 듯 하겠다 싶어서, 눈을 맹렬히 찌를 기세였던 앞머리는 말끔하게

눈썹 위까지 자른 다음 옆으로 넘기었고, 목의 끝부분까지 내려올 것 같던 뒷머리는 어느새 목 윗 부분까지 잘라내버렸다.

그리고는 시키지도 않았는 데, 무작정 염색약을 가져오더니 22년간 고수하던 나의 흑발을 순식간에 갈색머리로 만들어버리는

헤어디자이너의 모습에 부탁하지도 않았는 데, 왜 염색했냐며 따졌지만. 80% 할인해주겠다는 말에 솔깃해 커트+염색 까지

20000원에 해결을 보고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다보니 어느새 노을은 지고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었다.

“자, 이제 다시 나의 즐거운 집으로 행차해보실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스텝을 자유자재로 밟으며 깝기운을 부리다가, 엘레베이터 앞에 서자 문이 열리면 어떤 사람들이

나타날 지 모르기에 急진지한 자세로 기다림에 임하는 나였다.

몇 초를 기다리니, 엘레베이터가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오면서 ‘띵’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러자 사람이 있는 듯, 누군가의 실루엣이 스르륵 나타났다.

‘요새 극성이다던 강도단들인가..!?’

실루엣의 수는 세 명.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완벽하게 모자로 머리모양을 가리고, 선글라스로 자신의 눈들을 가렸으며 코와 입은 정체 모를

아스트랄한 무늬의 마스크로 가려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었다.

얼마 전 나의 사랑 스마트폰을 통해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도 서울 전역을 휩쓸고 다니는 2인조 강도단이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고 해서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데,

난 지금 이 모습들을 보고 순간 용감한 시민상을 받아 나의 자취에 우월한 흔적을 남겨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렇게 단정짓기에는 내 생각이 너무 무리수 인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나도 엘레베이터에 야무지게 몸을 실었다.

‘강도단은 무슨, 계모임 계원 분들이실거야.’

이제는 그들이 강도단이라는 생각은 집어던져버리고, 계모임이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리는 나였다.

하지만 계모임에 소속되어있는 아줌마들이라고 생각하기엔 선글라스와 마스크 사이에 보이는 저 피부가 약간 모순적으로 보였다.

뭐, 단체로 아파트 안에 있는 피부관리소에서 관리라도 받나보다. 하며 모순적인 상황을 간단하게 치부해버리는 나였다.

이것이 바로 중앙대학교 2학년 + 과 대표로 프랑스로 교환학생으로 간 자의 위엄이다. 

여튼, 난 마스크를 쓰신 아주머니들을 뒤로 하고 먼저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뒤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후로 학교가는 날 마다 마스크 쓰신 아주머니를 떼로 봤다는 나의 전설이 내 뇌에서만 전해지고 있었다.

*

“사장님, 레알입니까! 카페 알바 하는 데 월 보수 150이?”

“그래, 너 12시부터 6시까지만 한 달동안 일하면 150이 손에 쥐어지겠지. 여튼, 해볼꺼냐..?”

“당연하죠. 선택의 고민 따윈 없이, 바로 내일부터 일하러 나올게요.” 

“그래. 일 할땐 근무복 입는 거 잊지말고, 네가 할 일은 아마도 웨이터일꺼야. 외모도 반반하니 여학생들이 너한테 줄을 서겠구나..?

  후훗, 어쨌든 잘 해보자. 민식군..?”

등록금은 프랑스 갔다온 덕분에 학교에서 지원해주기로 했고, 그러나 생활비가 없는 탓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구해야하는 게 우선이었다.

때마침 어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았고, 짧은 근무시간에 보수가 돋는 바람에 나는 즉시 ‘이거다!’ 라고 생각하며

그 카페 안으로 달려가 사장님에게 말해 즉시 면접을 보았다.

결과는 외모도 반반하고, 서비스 정신도 충만하고, 말도 잘하는 것(?) 같으니 내일부터 일하자라는 말을 사장님이 하셨다.

나는 기뻐서 구름 위로 두둥실 떠오를 기세였지만, 사장님 앞이었으니 외모와 매치가 되지않게 촐싹거리는 모습은 고이 접어

폴더가 되도록 내비두고, 살짝 진지한 기운이 돋는 표정과 말투로 사장님을 대했다.

사장님은 나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난 거의 콜!콜!을 외쳤고, 사장님은 보기좋다며 나의 어깨를 두드리고 가시는 줄 알았으나,

엉덩이까지 툭 치며 가셨다. 그리고는 뭔가 이상한 웃음을 자아내는 사장님의 모습.

아뿔싸 난 그 모습에, 한 번에 알아채버렸다.

여기 종업원은 여자 뿐이고, 왠지 모르게 유독 남자 직원만 구했던 이유가 무엇인 지..

그렇다. 사장님은 분명 게이 삘이 조금 나셨다.

외모도 젊고 멋지고 유능하신 줄만 알았더니, 이런 반전의 모습이 숨겨져있다니.

난 뭔가 찝찝했지만, 그래도 보수가 괜찮았기에 그저 아르바이트가 좀 더 아스트랄해진 것 뿐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카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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