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7/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일흔 두 번째 과외.

“가라고 했잖아.”

“콜록.. 안 간다고 했잖아.”

“아, 몰라. 거기서 계속 버티고 있어봐라. 내가 열어주나..”

한 층 냉정함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는 인터폰을 통해 그녀에게 말을 했다.

태연이는 쭈그려 앉아서 추워하고, 기침을 콜록거리며 계속해서 내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아, 내일 스케쥴도 없나. 정말 인고를 견디며 나를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답답했다.

어차피 나는 죽어도 안 열어줄 생각이였으니, 다시 냉담한 말투로 돌아와 인터폰을 통해 말을 한 뒤 다시 소파로 가 앉았다.

*

다시 30분 후, 이젠 없겠지? 라는 심정으로 인터폰에 담겨진 화면을 확인해보았다.

옅은 파란 빛에 덮여진 화면에는 아직도 ‘태연’이 두 손을 고스란히 모은 채로 쌀쌀한 날씨를 버티며 거의 넋이 놓아질 듯 앉아있었다.

“하아.. 김태연. 너란 여자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아프게 하는구나.”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아 3일동안 닫혀있었던 문을 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절대로 소녀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지 말라는 그녀들의 윗대가리의 지시가 있었지만, 이러다간 그녀의 건강에 차질이 생길게 뻔했으니

아까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가녀린 태연이를 위해서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있었던 문을 열었다.

“들어와.”

“흐으으.. ㅇ..어?”

“빨리 들어와, 안 그러면 나 문 다시 잠군다.”

문이 열린 뒤 드러난 태연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고, 불쌍했다.

기껏 차려입고 우리 집 앞에서 저렇게 주저 앉아 날 기다렸다니, 또 다시 미안했다.

하지만 내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고 굳은 표정인 채로 그녀에게 말했다.

태연은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열리자, 꽤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그 큰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안 들어올 거면 닫는 다는 말에, 급하게 일어서곤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머뭇머뭇거리다가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 이게 뭐야?”

“이삿짐. 오늘 이사가.”

태연은 우리 집을 둘러보더니, 거실부터 보여지는 쌓여있는 이삿짐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 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해주며, 마지막 짐이 들어있는 상자를 들어 거실을 옮겼다.

“이사 어디로 ㄱ..아니, 너 여태까지 왜 그렇게 행동했어?”

“그냥.. 모든게 귀찮아지고, 옆집에 연예인 산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태연은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려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나는 갖 가지 핑계를 대며 둘러댔는 데, 하필이면 그 핑계가 다 오해받을 수도 있는 핑계들이었다.

하지만 태연이는 눈치를 어느정도 챘는 지, 쉽게 안 믿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도 굴하지 않고 같은 대답만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러자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결국엔 우리가 질린거구나..? 그런거야..? 흐아아앙...”

“아,아니야. 그냥 일이 있었어..”

태연이의 눈물은 멈추고 눈초리가 달라졌다.

아, 이 놈의 입방정. 원래 싸물어서 아무도 모르고 이수만과 나만 알아야 하는 거였는데.

“그게 무슨 일 인데!!”

역시나, 일부러 평소에 내지 않던 화 까지 내면서 바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짓을 말하려 생각했지만, 그래도 소녀들 중 한 명은 그 사실을 알아야 되지 않겠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입을 열어서 진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하아.. 너 아무한테도 말 안 할 수 있어?”

“응, 내 입은 무거우니까 걱정마.”

“그게 말이지..”

*

4일 전, 프랑스.

“여보세요?”

〔안녕하신가, 민식군. 난 SM 사장 이수만일세.〕

순간 전화기로 흘러들어오는 목소리에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소시와 에펙 애들이 아닌 이수만이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다니..

“ㄴ..네!?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껄껄, 그리 놀라지 말게나. 별 일 아닐세.〕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갔다.

그러자 이수만은 가볍게 웃으면서 별 일 아니라고 날 안심시키려 했다.

〔자네,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애들과 친하지?〕

“네.. 근데 왜..?”

이수만의 웃음 섞인 어투는 갑자기 정색을 했는 지, 딱딱한 어투로 바뀐 채로 말했다.

나는 침을 꿀꺽거리며 이수만이 그 다음 무슨 말을 할 지 기다렸다.

〔껄껄, 별건 아니고 부탁이 있네.〕

“무슨 부탁이시길래..?”

〔애들과 멀어지게나.〕

“ㄴ,네..?”

〔하아.. 얘들이 자네와 친하게 지내서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고, 심지어는 몇 몇 팬까지 눈치챘다고 하더군.〕

나는 수만의 말에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수만은 한 숨을 내쉬면서 진지한 말투로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팬들이 아..알아요?”

〔그렇네. 이제 사태가 심각한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하더군, 자네가 한국에 들어오면 온갖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말거야.〕

“그..그럼 어떻게 해야하나요..”

〔자네가 할 껀 아주 간단하다네. 단지 아이들과 정을 떼고 다른 집으로 이사가게나. 이사 가는 건 내가 도와주겠네.〕

“이..이사요? 그건 안되요..”

〔껄껄꺼ㄹ.. 그러면 자네가 열 네명의 미래를 막을 껀가?!! 대답해보게. 어쩔건가!〕

이수만은 끝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통화를 이어나갔다.

나 때문에 소녀들의 미래에 차질이 생긴다라. 그렇게 내가 14명의 미래를 막는 존재라면,

간단히 그 자리에서 몰래 사라지게 하는 게 답이겠지.

난 수 분간 이런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떨리는 입술을 떼며 말했다.

“아..알겠습니다. 부탁대로 하겠습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라 다행이구만. 껄껄, 집은 반드시 내 알아봐줌세. 그럼 한국에 오면 다시 전화하게나.〕

“네..”

나는 떨리는 입술로 이수만에게 내 생각을 말했고,

이수만은 그 대답이 맘에 든다는 듯 전화기를 통해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난 부들거리는 손으로 핸드폰의 종료버튼을 눌러 통화를 종료했다.

* (회상 끝)

   

“자, 이게 내가 너네들에게 못되게 구는 이유야. 진짜 미안해..”

“그,그럼 이젠 어떻게 해..”

난 다시 한 번 차오르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억제하고는 지난 번 있었던 통화내용에 대해서 빠짐없이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나의 말이 끝나자 그녀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나도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진심을 담아 태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이사 가는 수 밖에..”

나는 소파에 앉아 체념하는 듯한 말투로 지그시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했다.

“나, 너네들에게 막대한 거 정말 미안하게 느끼고 있어.. 진짜 미안해..”

“...”

“그리고 내가 말한 건 모두 비밀인 거 알지? 이사가는 것 까지..”

“으응..”

나는 태연이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하며 나즈막히 읊조리듯 말했다.

태연이는 나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상하로 끄덕거렸다.

난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히잉..하지마.. 머리 망가져..”

“풉. 알았어.. 근데 자꾸 그런 표정 지으면 나 닭살 돋을 것 같으니까 그만 지어.”

내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태연이는 아까의 슬픈 표정은 어디로 증발 되었는 지

꼬마 숙녀처럼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칭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주고는 닭살이 돋는 사람처럼 내 팔을 쓰다듬으며

익살스러운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태연이는 다시 쪼그라들었던 볼을 부풀렸다.

“어어..? 그만 하라니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농담을 던지니까 태연이는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척을 하면서 장난스레 볼을 부풀리고 귀엽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초등학생 1학년 정도가 하면 어울릴 것 같은 애교를 오글거리게 부려댔다. 

“에잇,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애교를 받아내는 데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에 눈을 질끈 감으며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아닌 진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진짜 가기 싫다.”

“그럼 가지마.”

“키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잖아. 어떡하지, 나. 너네들이 너무 좋아서 가기 싫은데..”

나는 바닥에 누워서 어두워진 방의 천장에 달린 백등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뭔가 마음이 편해지면서도 아쉬운 느낌이랄까.

나 혼자 마음앓이 하면서 차곡차곡 쌓았던 내 고민을 태연이에게 말함을 통해, 숨을 한 숨 돌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약간 편안해진 마음으로 진심이 섞인 말을 어둑어둑한 바깥으로 내뱉었다.

그러자, 태연이는 누워있는 내 모습을 따라 누워 그 아담하고 청초한 몸을 내 몸에 밀착해서 안겼다.

그리고 살랑살랑 달콤한 목소리로 내 귀쪽을 향해서 말을 했다.

오늘의 귀여운 태연이는 프랑스에서의 무서운 태연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나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태연이는 애교를 부리면서 내 몸에 점점 달라붙으며 나를 꽉 안았다.

그녀가 날 안을 때 살짝 답답한 감이 몇 초동안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답답함도 모조리 포근함과 따뜻함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얼굴이 발개진 채로 다른 말을 더 했다.

“민식아.”

“응?”

“나도 니가 좋아..아니, 사랑해.. 아니, 정말 사랑해..”

“나도..”

배려심이 깊고, 포용력이 크고, 아담하고, 귀엽고, 청순하고, 여러모로 뛰어난 팔방미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나의 사랑스러운 애인.

난 그녀의 고백에 지그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몸 뿐만 아니라 입술도 천천히 밀착시켰다.

태연이 특유의 달콤한 향기가 내 코를 향해 진득하게 풍겨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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