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일흔 한 번째 과외.
“꺼지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민식아..”
“너네들이 이젠 지겨워졌어, 그러니까 그만 사라지라고.”
심지어 친해기지 전의 수연이보다도 더 말투가 차가워져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너만 생각하면서 3일은 기다렸는데, 어떻게 너는 그렇게 우리를 나몰라라 하는 거니.
일단은 네 말대로 잠시 꺼져줄게.
하지만, 우린 계속 너의 집의 문을 두드릴거야.
“얘들아, 일단 숙소에 가자. 그리고 내일 찾아오자.”
“응.”
“알았어..”
나는 당황한 기색으로 멍을 때리는 유리와 윤아를 현실 세계로 다시 인도한 다음,
잘 타일러서 같이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서, 갑자기 민식이가 왜 저런 태도를 보일까라고 잠시 고민해본다.
하아, 근데 도대체 저러는 이유가 무엇인 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
“태연언니, 민식이 오빠가 온 게 확실해..?”
“응. 근데 자꾸 차갑게 대꾸한다.”
“흠.. 일단 내가 가서 열어달라고 부탁을 해볼게..”
“그래.. 설리야, 너라면 열어줄 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설리가 우리 숙소로 찾아왔다.
유리의 문자를 받고 즉시 이 쪽으로 찾아왔다는 게 설리의 이유였다.
유리가 보낸 문자 내용이 뭐였는 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분명히 ‘민식이가 왔어.’라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젯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설리에게 들려주자, 설리는 약간 표정을 찡그리며 고민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를 하며 웃으며 민식이네 집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설리만을 믿고 숙소의 테이블 앞에 앉아 설리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렸다.
“언니, 갔다 왔어.”
“민식이가 어떻게 했어? 열어주디..?”
“히잉.. 아니, 열어주기는 커녕 차갑게 오지 말라고 계속 했어..”
역시나 설리가 와도 억양만 부드러워졌을 뿐, 문은 안 열어주고 우리를 냉대하게 대하는 것도 똑같았다.
설리 뿐만 아니라, 파니가 가도, 다른 멤버들이 모두 가서 노크해도 우리를 냉담하게 대하는 건 똑같았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의 마음에는 미미하게 핏빛이 어린 상처가 새겨져 점차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
‘♬- ♪-♩-’
“왠 전화지..”
멍하니 바보처럼 히키코모리 같이 생활한 지 어언 사흘 째, 또 다시 한 번 핸드폰이 울렸다.
입국을 하자마자 소녀들의 전화들이 내 핸드폰으로 불같이 쏟아졌다.
부재중 전화 125통 , 확인하지 않은 메세지 153통이 나의 핸드폰에 쌓여가고 있었다.
난 핸드폰이 다시 울리자, 부재중 전화가 126통이 되겠거니 하고 묵묵히 허공만 응시했을 때,
웬일인 지 내 손은 핸드폰으로 들어가서 내역을 확인했다.
‘SM’
“하아..”
핸드폰의 액정에서는 이 글자만이 여백 안에 전화번호화 함께 채워져있었다.
난 그 화면을 응시하고는 크게 한 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김민식군, 한국에 잘 들어왔나?”
“네. 별 사고 없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부탁한 대로 잘 하고 있고?”
“네.”
내 전화기에서는 SM 사장인 이수만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와 내 귀에 스며들어갔다.
일단은 한국에 잘 들어왔냐며 일반적인 인사를 건넨 뒤, 내게 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냐고 묻는 그 였다.
나는 미친듯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절제하며 짧은 대답을 했다.
“음, 다행이군. 내가 집은 구해서 업체에 부탁했으니 3일 뒤에 알아서 마무리하고 거기서 떠나게. 주소는 당일날 업체를 통해서
전달해주겠네.”
“네.. 알겠습니다..”
나의 마지막 대답이 끝나자 전화가 끊겼다.
감정을 억제해서 터트려지지 않은 눈물샘이 터지고야 말았다.
흐느꼈다, 쉴 새 없이 흐느꼈다.
나는 회색의 허공을 무의미하게 날고 있는 저 기러기만큼이나 무기력한 나의 모습에 흐느꼈다.
슬프다, 더럽게 슬프다.
원하지 않는 이별을 해야하는 나 자신이 더럽게 밉고 원망스럽고 슬프다.
“흐흑..미안해..”
**
“설리가 실패했어?”
“응, 설리도 못 열었어. 수정이 넌 열 수 있겠니?”
“당연하지!! 내 애교로 오빠를 녹인 뒤 열면 돼!!”
설리가 한 번 가봐서 열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실패했다고..?
민식이 오빠는 아직 설리를 그렇게 아끼지 않는건가..? 그럼 내게도 오빠를 휘어잡을 기회는 확실히 있는듯..?
그럼 어색하지만 사르르 녹는 나의 살인적인 애교로 오빠를 잡아야겠다.
태연 언니는 설마 하며 나를 쳐다보며 말했지만, 난 자신감을 가지고 오빠 집의 문을 두드릴 거라고!
뚜벅 뚜벅-
나의 발걸음에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한 뭉텅이 섞여있는 듯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똑똑똑 하고 노크 하는 나.
“오빠, 수정이 왔어- 나랑 놀장!!”
“수정아.. 미안하지만 가줘.”
“오빠아- 아아아아앙-!!”
“앙탈도 소용없어. 그냥 가줘라.”
“히잉..”
나는 평소에 잘 내지 않는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오빠가 있는 듯한 그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약간은 매너있는 듯한 오빠의 말소리가 문 틈으로 흘러나와 내 귓가까지 다다랐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내 17년 인생 최초로 남자인 민식이 오빠에게 앙탈까지 부려봤지만,
역시나 무소용. 나를 계속하는 거부하는 오빠의 모습이 마치 프랑스 게이에게 빠졌을 때의 모습 같았다.
아, 아니.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냉정한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소득없이 운동화로 허공을 차면서 태연언니가 있는 소시의 숙소로 걸어갔다.
**
“수정아, 어때?”
“히잉.. 실패했엉..”
“내가 그랬잖아, 문 안 열어준다고, 가봤자 소용없다고..”
“히잉.. 언니, 나 가보께..”
“잘 가, 수정아. 언니가 어떻게든 해결 볼게.”
나는 숙소에서 수정이를 기다리며, 결과가 어떻게 됬을 지 궁금했다.
수정이는 몇 분뒤, 내가 있는 숙소로 칭얼거리며 들어왔고 안 물어봐도 결과는 실패인 듯 했다.
그래도 확실하게 확인을 하기 위해서 다시 물어보니, 역시나 실패.
도대체 민식이가 왜 저러는 지 모르겠다.
수정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숙소에 가보겠다고 인사를 했다.
난 그녀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며 굳게 다짐했다.
‘나와 다른 얘들을 위해서라도 민식이가 왜 저러는 지 알아내야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민식이와 대화하는 게 최선의 방책일거야.
오늘 밤에 찾아가서 단판을 지어야겠다.
***
“하아.. 오늘을 끝으로 5개월 간의 아옹다옹 했던 생활은 끝이구나. 이제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
이사가기 전 날의 야심한 밤.
오늘은 꽉 찬 보름달이 아닌, 뭔가 많이 노란 기운이 사라진 초승달의 빛이 어둑한 내 방을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나는 푹신푹신한 소파에 앉아, 지난 추억을 고스란히 떠올려 보았다.
윤아와 태연이와의 아스트랄했던 첫 만남, 그리고 뜬금없는 고기파티, 그리고 태연이의 고백과 관계. 갑작스런 기말 리포트 해결을 위해서
불시에 침입했던 그녀들의 숙소 그 다음 순규를 에스코트 하다가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 그리고 유리와 대학교에서의 만남, 그 다음엔
고마운 나의 생일 축하 파티. 내 집에서 에프엑스와 아이유를 처음 봤었지. 그리고 녹음실에서의 아이유와 부끄부끄한 관계, 그 다음은
유리가 내 아끼는 기타를 박살내고 난 뒤 몇 일동안 벌여졌던 유리와의 갈등, 하지만 화해하면서 더욱 더 친해졌었고 또 갑자기 뜬금없는
파니를 과외시키고 돈을 벌기 위해 소시 보조매니저 자리를 구해서 부산으로 내려가 윤아에게 낚시 당하고, 월드컵 때는 순규와 유리랑 야외에서
관계를 맺지 않나, 에프엑스 연습실에 놀러가다가 수정이랑 급속도로 친해지지 않나, 그러다가 프랑스에 가서 게이에게 낚이고 태연이에게 당하고
유리에게 당하고, 파니는 특별과외 시켜주고, 지금은 애들한테 상처를 주고 있다.
‘딩동-’
‘누구지..?’
추억을 고스란히 다 떠올리고, 소파에 앉아서 다시 멍을 때리며 내일의 이별을 체념하고 있는 와중이었을까.
야심한 시간에 누군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을 통해서 초인종을 누른 주인공을 확인해보니, 소녀시대 로고가 박혀있는 하얀 면티와 꽃무늬가 그려진 치마를 입은 태연이의 아담한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꽤나 청초하고 큐트한 모습이다. 허나, 난 그녀를 어쩔 수 없이 냉정하게 보내야 했다.
“왜 자꾸 와. 꺼지라고 몇 번 말해야 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
“너 자꾸 왜 이래? 진짜 이상해. 우리가 잘못했으면 말을 해줘..!!”
벌써 그녀들을 몇 번이나 차갑게 대했는 지, 도대체 이런 말투는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만약에 익숙해진다고 한들, 그 모습은 분명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있겠지.
어쨌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그녀들도 상처를 입고, 나의 짐도 점점 늘어날 것만 같다.
“너네들 잘못 없어. 내가 그냥 싫어진거야.”
“뭐? 너 진짜 그러기야..? 흐흑..”
태연은 나의 말에 어이가 없고 배신감이 느껴졌는 지,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훌쩍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인터폰을 통해 비치자, 내 마음도 안 쓰럽긴 마찬가지였다.
“흐앙.. 이제 우리가 질린거야..?”
“질린 건 아니야.. 그러니가 제발 가줘!!”
“나, 네가 그 이유 알려줄 때 까지 절대로 안가.”
“하아.. 그럼 그렇게 계속 있어. 나도 절대로 안 열어줄테니까.”
*
태연이 초인종을 누른 지 3시간이 지나갔을까, 나는 밤을 지새우며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문뜩 떠오르는 태연이, 혹시 기다리겠느냐는 마음에 인터폰을 켜보니 태연이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