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예순 아홉 번째 과외.

“몰라, 봐서 생각해볼게.”

“치잇, 그러면서 다 해줬잖아.”

파니는 옷을 다 챙겨입고는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침에 보자는 말과 함께 널부러진 소녀들의 틈에 끼며 새근새근 잠들었다.

나는 다시 소파에 가서 잠을 취해보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저기에서 잤다간 온갖 피로와 고통을 짊어지며 깨어날 것 같아서 식탁 옆 

빈 바닥에 비루한 담요를 깔고 그 곳에서 새우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뭔가, 소녀들과 좌표상 위치가 떨어져 있어 안전할 것 같기에

나는 소파 대신 찬 바닥을 택하며 거기서 달콤한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

불변의 따스한 햇빛이 여름 해수욕장에서 자주 볼 수 있음직한 구조요원의 구릿빛 피부 같은 내 살결을 스며들었다.

난 피부에서 느껴지는 따사로운 느낌에 몇 시간 동안 무겁게 닫혀있었던 눈꺼풀을 힘겹게 열었다.

“아, 잘 잤다. 내 품안에 뭔가 죽부인 같은 게 있어서 덜 피곤하게 잠든 것 같아.. 잉? 죽부인..?!”

“오빠 안녕~ 내 품이 그렇게 따뜻했엉?”

“서..설리!? 아아악!!”

“으으.. 무슨 일이야.. 꺄악! 야 이씨, 김민식, 최진리 그만 껴안고 얼른 일어나!”

눈꺼풀을 힘겹게 열어서 피곤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단지 난 귀차니즘이라는 썩을 놈의 나의 특성 중 하나 때문에 힘겹게 연 것 뿐이였고,

또한 달콤한 잠에 빠져든 이유도 뭔가 아침엔 추운 프랑스의 볍씨같은 기후를 극복하게 해 줄 따뜻한 물체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확인해보니 물체는 물체가 아니었고, 사람은 사람인데. 음, 물론 성별을 막론하지 않고 두 성별 모두 다 문제였긴 하지만,

남자였다면 게..게이 취급을 받을 확률이 60% 증가였고, 여자였다면 사망 확률 99% 일텐데 확인해 보니, 어깨까지 기다랗고 윤기있는 머리카락이

늘어뜨려 놓아져 있고 사랑스러운 눈웃음 하며, 또 나를 오빠라고 부르기도 하며, 애교도 잘 부리고 가슴팍에서도 뭔가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고,

음, 종합적으로 내 품에 있는 아해의 정체를 진단해봤을 때 이 아해는 설리고, 설리는 여자고, 여자면 사망확률 99%고, 고로 나는 죽는다.

나는 사태가 한 번의 고뇌 끝에 바로 판단되어, 설리는 바로 내 품에서 뗄려고 했으나.. 이런 우라질레이션, 설리 이 냔은 내 품에서 카멜레온 처럼 

달라붙고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도 않고, 설리를 목격함과 동시에 놀란 바람에 텔레비전 음량 100을 넘가하는 비명을 토해내는 바람에 시체처럼 잘 자고

있었던 나머지 아해들은 다 깨어나 버렸다.

일단 일어나자마자 태연과 유리와 윤아는 나의 그 꼬라지를 보고는 헛웃음을 내뱉어대었고, 수정이와 파니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을 때린 표정을 지었고,

14명 중 최고의 데미지 딜러인 우리 순규느님 께서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는 엄청난 분노가 서린 표정을 지으시면서 나에게 화를 냈다.

물론 나에겐 아직 미성년자인 소녀를 품고 잔 죄가 있기는 합니다만, 제 의도는 무척 순수합니다. 계곡에 흐르는 시원한 개울물 만큼이나 순수하다구요.

하지만 저의 변명을 믿지 않는 소녀들은 잔인하게도 제 복부에 묵직한 훅을 꽂아버립니다.

“어억!!”

“짐승! 변태! 게이로 모잘라서, 이번엔 공개적으로 설리를 건드리냐!?”

“아악! 건드리긴 무슨..!! 일어나보니 설리가 내 옆에 누워있었다고!!”

“변명은 필요없다, 미성년자와 동침한 너님에겐 오직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뿐.”

나의 변명은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파이터가 된 그녀들에게 쉽사리 통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변명한 말의 음절수에 따라서 느껴지는 고통의 규모가 n²배가 되어지는 듯 했다.

그녀들의 세심하고 강력한 훅에 나의 복부에는 피멍이 생기고, 남자인데 눈가엔 찌질하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듯 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서서히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로 변했다.

**

“변태변태변태!!”

“건드릴 애가 없어서 설리를 건드려?!”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애들 중 특히 소시 애들은 신 들린 듯 방송생활 3년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민식을 빌미로 삼아 푸는 듯 보였다.

특히 순규와 효연의 훅 이나 킥은 격투 전문가 못지 않았고, 그 공격들은 고스란히 민식이의 방어벽을 무너뜨렸다.

“잠,잠깐 얘들아 그만 때려봐.”

한 참동안 민식이를 죽도록 팼을 때 였을까, 태연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흥분된 소녀들을 점차 진정시켰다.

“히이.. 히이.. 왜?”

“민식이 이상하지 않아? 아프다고 비명 지르던 얘가 지금 비명도 안 지르고, 움직이지도 않잖아..”

태연의 말에 민식이의 심각한 행동을 눈치 챈 소녀들은 흥분된 마음을 추스리고, 민식의 몸을 한 번, 두 번, 여러 번 흔들어보았다.

하지만 민식이는 약간의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모습에 놀란 태연은 “헉!” 하며 격하게 민식의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민식은 태연의 격한 흔듬에도 불구하고, 뭔가 살아있는 듯한 미동을 보이지 않았다.

“헐..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나왔던 게 진짜였어..”

“왜..?”

“머리 잘못 치면 인생에서 퇴갤한다는 게 진짜였을줄 몰랐는데..”

“태연아..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호,혹시..!?”

“야! 김민식 일어나봐!!”

태연의 나즈막한 독백 덕분이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태연이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내용을 말해주자

그녀들은 이제서야 사태의 심각함을 알아챘는 지,  

유리는 태연이의 말에 당황을 하면서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고, 써니는 태연이 했던 것처럼 민식의 어깨를 격하게 흔들어대었다.

써니를 따라서 나머지 소녀들도 민식의 몸을 격하게 흔들어댔다.

14명의 소녀들의 흔듬에 다른 사람은 정신차리고 깨어날 법도 했지만 민식은 미세한 움직임도 없이 쓰러져있었다.

“얘 왜 안 일어나..”

“서..설마 민식이 오빠 우리가 때려서 이렇게 된거야..? 아..아닐꺼야..”

“흐흑.. 우리 어떡해요..?”

“흐윽.. 민식아 좀 일어나봐..”

다른 때와 달리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의 소녀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비슷했다.

써니는 민식이의 어깨를 흔들어도 끝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의 얼굴을 넋 놓고 쳐다보며 말을 했다.

윤아도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었고, 마음이 여린 서현이도 끝내 슬픈 기운이 깃들어진 물자욱을

얼굴가에 남기며 말을 했다. 태연은 아까와의 독백과 마찬가지로 나즈막히 말하면서 민식이의 이름을 불러대었다.

“흐아앙..!! 민식이 오빠가.. 오빠가.. 나.. 신고할래..”

“정수정. 일단 침착하게 행동해, 몇 분동안 경과를 지켜보고 신고할 지 말 지 결정하자.”

수정이는 아무 미동도 없는 민식의 모습을 보고 이미 울상인 모습으로 흐느끼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신고하려는 수정이의 모습을 본 제시카는 이를 제지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며 수정이의 신고를 막았다.

“흐윽.. 왜!! 지금 신고 안 하면, 오빠가.. 오빠가!!”

“하아.. 수정아, 진정하라니깐? 일단 상태를 지켜보자고.”

사실 제시카도 민식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데 한 주먹 거들었기때문에, 

부들부들 떨리는 심정으로 수정이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지금 이 사태.. 나 때문에 그런 거야.. 오빠가 나 때문에..”

설리는 자신이 민식이의 옆에서 장난스레 자는 척을 해서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는 죄책감에

거실의 구석에 앉아서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자책했다.

그야말로 맑고 청아한 하늘에 따사로운 햇빛이 비추는 이 곳과는 반대로 그의 방의 분위기는 완전히 초토화였다.

**

‘아, 젠장. 좀 텀을 줬다가 일어나려고 했더니 분위기 완전 초토화네..’

아직 나란 놈은 잠시 아파서 엎드려있었는 데, 뭘 그리 설레발을 치고 호들갑을 떠는 지.

근데 여기서 일어나버리면 소녀들이 자신들을 농간했다고 또 다시 매운 주먹을 가동시키겠지?

일단은 동태를 파악하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는게 우선일 것 같았다.

‘아휴, 설리는 저기 또 쭈그려 앉아서 자책하고 있나보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나 파토된 분위기에 어울리는 모습을 설리가 취하고 있었다.

나는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 있는 설리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흑흑.. 민식이 오빠가.. 흐ㄱ.. 어?”

이런 젠장, 동태를 살피려다가 그만 흐느끼고 있는 설리와 눈빛이 마주치고 말았다.

설리는 나의 미동을 목격하고는 곧바로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일단은 조용하고 있어줘’라는 뜻이 담긴 나의 눈빛을

얼핏 알아채버렸는 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거리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언니 봐봐! 아직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하잖아! 그러니까 신고를 해야돼.. 안 그러면 오빠 죽어!!”

“하아.. 진정 좀 하라니깐!?”

사태를 보아하니, 수정이와 시카는 아직도 나의 상태를 보고 신고를 할 지 말건 지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런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이미 나의 생존을 확인한 설리는 상황을 대충 아니까 피식피식하며 웃다가 결국엔 터져버렸는 지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몸을 들썩거리며 웃고 있었다.

“설리가 충격이 컸나보네..”

제시카는 수정이와 실랭이를 벌이고 있다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설리를 보고는 안타까운 듯 혀를 끌끌 차며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해주려고 걸어갔다.

수정이도 실랭이를 멈추고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시카와 수정이의 실랑이가 멈추자, 웅성웅성 거리던 소녀들은 갑자기 점차 조용해져갔다.

“아.. 몰라.. 쟤 죽었나봐, 그냥 냅두자.”

“정수연, 너 미쳤어!? 아무리 민식이랑 안 친하고 어색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조용해진 분위기에서 제시카가 내던진 말은 가히 잠자코 있던 소녀들을 폭발시키는 도화선 같은 발언이 되었다.

소녀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런 어이없는 발언을 내뱉은 제시카를 나무랐다.

나 또한 살아있는 사람을 저렇게 시체로 만들어버리는 제시카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피식거렸다.

“수연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 민식오빠 죽었으면 죽었겠지.”

“수정아, 너 까지 왜 이래!? 자매가 단체로 미쳤구나.”

한 1분 쯤 지났을까, 나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냈던 수정이도 다시 얼음시크로 돌아가기로 했는 지

냉담한 어조로 제시카를 따라 매정파에 들어섰다.

다른 멤버들은 수정이의 말에 어이없어하며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14명이 다 죽인 건 아니잖아?, 니네들 중에 머리 때린 사람 누구야? 난 안 때렸으니 여기서 빠질게.”

“태연아, 너 지금 무슨 말 하는거야!”

“태연이 말이 맞아, 나도 머리 안 떄렸으니 빠질래.”

“유리, 너 마저도!?”

날 끝까지 살릴려고 애쓸 줄 알았던 태연도, 좀 음탕하긴 하지만 그래도 날 아껴주는 유리도 모두 매정하게 제시카와 수정이를 따라

매정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벌써 4명 씩이나 나를 죽었다고 치부하자, 세 명이서 소리치면 호랑이도 만든다는 사자성어도 있듯이 소녀들도 슬슬 매정파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직 매정파에 들어가지 않은 소녀는 설리 밖에 없었다.

‘아, 니네들 정말 실망이다.’

나는 설리를 제외한 나머지 소녀들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야!!!! 너네들 사람이냐!”

“훗, 이제 일어났냐?”

“응?”

“사람 좀 울렸으니 좀 맞자.”

나는 끝내 배신감을 삭이지 못해 엎드려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속으로 쌓아두었던 말을 소녀들에게 내뱉었고,

의외로 소녀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썩소를 지으며 나의 샤우팅에 간단히 대꾸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면서 주먹으로 딱딱 소리를 내며 점차 나를 구석으로 몰기 시작했다.

“너..너네들 왜 이래?!”

“히힛, 오빠 미안.. 내가 알려줘써!”

나는 점차 구석에 몰리자 당황해하며 허공에 소리치듯 질문했고,

소녀들의 무리 사이에 섞여있던 설리는 고개를 쑥 내밀더니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자기가 알려줬다고 말을 했다.

아아, 제시카가 먼저 그렇게 행동한 것도 설리를 위로하다가 설리가 말해줘서 그런 거고, 제시카는 수정이에게

수정이는 태연에게 태연은 유리에게.. 그렇게 전파한거구나.

나는 잠시 상황을 정리할 새도 없이 다시 써니의 묵직한 펀치를 시작으로 샌드백이 되었다.

*

“헤헷, 오빠 미안.. 며칠 뒤 한국에서 봐!!”

“알았어- 그래 나중에 보자.”

나는 소녀들에 의해 피떡이 된 곳을 여러 도구를 이용해 적절하게 가리며 파리 공항에서 그녀들을 배웅해주었다.

설리는 미안하다며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내 팔에 착 붙고는 갖은 아양과 애교를 떨어주었다.

나는 시크하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아.. 이게 사는 맛이군..’이라고 느끼며 설리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얘들을 보내고, 나도 모레에 한국으로 가기에 짐 정리를 하기 위해 이틀을 쏟아부었다.

이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오기 10시간 전이 되었고, 밖이 어둑어둑한 밤에 내 바지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번호를 확인해보니, SM이라고 간략하게 표시되어있을 뿐이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혼자 긴장된 심정으로 나즈막히 진동하는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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