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7/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예순 세 번째 과외.

“미용실 가서 메이크업 받아오나. 야들 왜 이리 안 와?”

“그러니까, 나 처럼 쌩얼로 다녀야지. 그치 오빠?”

“음, 그래.. 설리는 투명 메이크업이구나.”

살이 익을 햇빛을 직격으로 받으면서 망부석처럼 요지부동하며 소녀들을 기다리는 지도 어언 십 분.

햇빛이 나의 황옥같은 살결에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땀방울이라는 찝찝한 결실을 만들어낸다.

나는 기다림에 지쳐 불평 섞인 목소리로 볼멘소리를 하자, 설리는 자기처럼 쌩얼로 다녀야 한다며

눈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미모를 뽐냈다.

난 그 소리에 설리의 볼을 톡톡 건드리니 피부가 매끈한게 BB크림을 발랐다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미안! 우리가 좀 늦었지?”

“응.”

소녀들도 제 말하면 온다고, 내가 불만이 서린 볼멘소리를 내자 저 멀리서 제각기 선글라스를 뽐내며 걸어오는 그녀들이었다.

다들 경호원도 아니고 선글라스를 끼다니, ‘설마 설리도?’라는 생각에 설리를 쳐다보니 어느새 선글라스를 챙겼는 지

설리의 눈에도 까만 안경이 쓰여져있었다.

“자, 이제 너네들 어디갈래.”

“에펠탑 가자.”

“베르사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역시나 파리하면 떠오르는 장소들이 그녀들의 입에서 하나 씩 튀어나왔다.

그녀들이 말한 장소 모두 다 가야 제 맛이지만,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에펠탑,베르사유 궁전,루브르 박물관 세 장소 모두 다 관람하는 데 시간이 꽤나 소비되기로 유명한 곳이므로

장소는 딱 한 곳만 정해서 그 곳만 샅샅이 돌아야했다.

“한 곳으로 의견을 통일해.”

“음, 그럼 잠시만 기달려봐.”

나는 검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의견을 통일하라고 말했고, 소녀들은 나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의견이 쉽사리 통일이 안 되는지 나를 내비두고 한 곳에 뭉쳐서 자신들의 의견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기를 2,3분이 되서야 모여있던 소녀들은 흩어지며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 곳을 말했다.

“라 데팡스(La Defense) 가자!”

“으응?”

나는 아까 언급되었던 세 곳의 장소 중 하나를 택할 줄 알았는 데 제 4의 장소가 나와버리니,

갈 장소에 대한 정보를 준비했었던 나는 당황의 응답을 얼떨결에 해버렸다.

라 데팡스라면 프랑스의 파리 안에 만들어진 신도시를 말하는 건가.

원래의 개선문 말고, 2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신 개선문 ( 그랑드 아르슈 ) 을(를) 보고 싶은 건가!?

“걸어가기엔 벅찬 거리니까, 택시 타고 가자. 비싸도 어쩔 수 없어. 계산은 도착하고 내가 함.”

“오올- 민식아, 너 돈 좀 있나보다?”

“돈 있기는 무슨, 파리 경비 100만원 중 일부를 쓰는거야. 여기 물가 빡세서 나 구내 식당에서 파는 것만 먹어.”

“훗, 은근히 불쌍하네. 그럼 택시는 우리가 알아서 잡을게.”

“그래, 그럼 난 니네들이 잡은 택시를 타고갈게.”

택시비는 내가 내기로 하고 다들 모두 물가가 비싼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 주변으로 걸어가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택시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멈추지 않고 오로지 도로를 질주했다.

택시를 향한 나의 입모양은 ‘아오, 저 개ㅅ..’를 연호하며 분노를 내뿜고있었다.

“언니들, 뭐하러 택시 잡아요. 그냥 버스타서 가면 되는 걸.”

“아!?”

우리가 택시를 잡으려고 발악과 삽질을 동시에 펼쳐보이는 그 순간,

서현이가 그 모습이 답답했는 지 간단하게 해결책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버스라니,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였다.

거기다가 택시보다도 더 교통비가 싼 교통수단이 버스가 아니던가.

갑작스럽게 기발한 기지를 발휘한 서현이에게 격한 포옹을 해주고 싶었지만 내 주위의 데미지 딜러들의 반응을 생각해서

가까스로 이성을 억제했다.

우리는 서현이의 말대로 택시 대신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고, 거기서 라 데팡스에 관련된 장소의 정류장이 있는 

버스를 찾은 뒤 그 차에 올라탔다.

소녀들도 버스비 정도야 우리도 낼 경제력은 된다며 다행히 버스비는 각자 지불하기로 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천천히 바퀴를 굴려가며 몇 십분 후에야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와 소녀들은 신 개선문의 웅장하고도 거대한 모습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 주위에서 간단한 끼니를 때운 다음,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숙소로 향해 움직였다.

*

‘아흑.. 식재료는 있지만, 나의 머릿 속에 있는 레시피가 하도 거지같아서 요리를 못 만드네.. 아오!!’

소녀들과 함께 라 데팡스에 가서 개선문을 보고 온 지도 벌써 하루가 훌쩍 지났다.

묘사를 안해놓긴 했지만, 하도 많이 걸어다니느라 다리에는 힘이 빠지고, 하루가 지나니 피곤함은 배고픔으로 전환되어 찾아왔다.

식재료는 달걀,쌀,고깃덩어리,조미료가 있어서 요리하기엔 충분했지만, 저걸로 무엇을 만들어야할 지 심각히 고민을 했다.

계란 프라이? 프라이팬이 없으니 패스.

구운 고기? 프라이팬 없다니까..

결국에 내가 하려는 요리들은 프라이팬이라는 조리도구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굶어야 할 상황까지 찾아왔다.

아흑, 프라이팬의 공백이 이렇게도 클 줄이야. 오늘은 구내식당도 문 닫았는 데..

저녁을 굶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나는 머릿 속으로 SOS를 애절하게 외쳤다.

나의 요리기술에 한탄하며 구구절절 신세만 읊조리고 있을동안 구원군이라도 도착한 듯, 문에서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나, 네 아내 김태연이다. 문 열어.”

‘크흑, 신은 날 버리지 않았어.’

난 배고픔의 늪에서 빠져나오겔 해줄 구원자인 태연이가 찾아오자, 금방이라도 삼천배(삼천번 절하는것)를 시전하고,

그녀의 앞에서 그녀가 좋아할만할 춤은 다 출 수 있다는 심상으로 환호를 외치며 허기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굳게 닫혀있던 문을 활짝 열어댔다.

문을 열자, 문을 연 그 자리에는 웨이브가 있으면서도 어깨까지 닿는 머리와 흰 눈보다도 더 하얀 피부결을 가진

태연이 멀뚱히 서 있었다. 거기다가 그녀의 의상은 심플한 흰 티셔츠에 완전 하늘색 청치마, 거기다가 옅은 커피색 스타킹과 

낮은 붉은 색 단화까지 그녀의 코디는 꽤나 수수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태연아, 밥 해주러 온 거지?”

“아니, 심심해서 온건데.”

첫 번째 시련. 밥을 해주러 내 기숙사에 놀러오지 않은 태연이.

이 시련은 간결하게 그녀가 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녀를 살살 꼬심으로써, 등가죽과 뱃가죽이 달라붙을 것 같은 위기를 벗어나는거야.

“심심해서 도시락 싸갖고왔어.”

“헐! 태연아 사랑한다!!”

“꺄악- 왜 이래-”

내가 살살 꼬시기도 전에 가방에다가 숨겨두었던 도시락을 내 눈 앞에서 흔들어 보이는 그녀였다.

도시락이 흔들리면서 내 콧구멍으로 살랑살랑 들어오는 밥 냄새와 갖가지 반찬 냄새.

음, 냄새만 맡아도 입가에 아밀라아제가 폭포수 쏟아지듯이 생성되었다.

난 가까스로 음식 냄새로 정줄을 놓는 걸 참아내고, 

그 대신 도시락의 기쁨에 태연이를 격하게 끌어안아버렸다.

태연이는 갑자기 내가 끌어안자 당황했는 지 겨우겨우 도시락을 들고 버티면서 비명을 질렀다.

“태연느님, 도시락은 제게 주시고 어서 따뜻한 제 방으로 납시시지요.”

“흠, 좋아. 제일 따뜻한 곳으로 날 안내해주려무나.”

내 경험을 생각해보자면, 역시 서양이라서 침대가 더 따셔서 그녀를 침대로 안내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보고 ‘나를 여기로 안내한 너는 참 음탕하구나’라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녀의 눈빛보단 그녀가 만들어준 도시락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있었으므로,

바로 도시락의 뚜껑을 열어제겼다.

오, 갓 뎀.

이것은 마치 암브로시아와 맞먹는 그런 퀄리티의 음식이였다.

한 조각이라도 맛있게 먹으면 포만감이 1에서 100으로 채워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금방이라도 다 해치워 먹을 기세로 태연이 싸온 음식을 야무지게 먹어대었다.

“아, 배불러. 태연아 고마워.”

“고마워? 고마우면 보답해야지.”

음, 그 보답은 수위적이나 경제적인게 아니라면 해줄 수 있지만,

만약에 그런 내용이라면 몇 십년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 허기짐의 늪에서 탈출하니 몸이 피로해져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 지기 시작했다.

아, 고마워서라도 태연이랑 좀 더 놀아주고 자야되는데.

“아, 식곤증인가. 배부르니까 바로 잠 오네 어떡하지?”

“그럼 내 허벅지에 머리 베고 자.”

“음.. 그 정도라면 뭐, 잠깐 허벅지 좀 빌릴게.”

나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피곤함과 잠들고 싶은 욕구에 기지개를 펴며 침대로 걸어왔고,

태연이는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여기서 잠들라고 했다.

나는 별다른 의심없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태연이에게 말한 다음 나의 피곤한 머리를 태연이의 백설기같은 하얀 허벅지에 뉘였다.

은은한 그녀의 체취와 보드라운 허벅지의 살결을 얼굴로 느끼며 짧고도 달콤한 단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

“하..하음.. 잘 잤다. 그,근데 이게 뭐야!?”

나는 저녁 밥을 먹고 난 뒤, 달콤하지만 짧았던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서 슬슬 어슬렁거려볼겸, 몸을 움직이려 하니 멋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팔과 다리가 의자에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잠이 확 깬 나는 내 몸뚱아리를 둘러보니, 역시나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묶어놓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잠들고 있었던 사이에 나를 의자로 옮겨서 양 손과 양 발을 의자에다가 묶어놓은 것 같았다.

난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바로 그 때,

“후훗, 민식아 잘 잤어?”

내가 의자에 묶여있는 그 책상의 오른쪽에서 걸터앉아있었던 태연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