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쉰 아홉 번째 과외.

“어? 민식이다!”

“저 놈 잡아!”

서현이의 말에 파니와 써니가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황해서 몸이 굳은 나의 모습을 발견했는 지 곧바로 손가락을 치켜들며 나를 가리키는 그녀였다.

그녀의 발소리들이 들려오는 게 가까워 질 때마다, 나의 긴장감은 점점 올라가는 듯 했다.

‘아, 맞다. 지금 잡히면 난 죽음을 면치 못할거야. 도망치는 게 방책이다.’

근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지는 지, 참 인파 사이를 헤집고 달아나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4명의 소녀들이 본격적으로 날 잡기 위해 팔과 다리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잡았다!”

이것은 필시 유리의 목소리.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무언가의 옷깃을 잡는 듯한 필(Feel).

나는 이제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곧바로 지금 나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이제 살 길은 삼십육계 줄행랑 밖에 없다.

나는 내 옷깃을 미여잡은 유리의 손길을 겨우 뿌리치고, 

과장된 말이지만은 빛의 속도로 인파를 헤집고 그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김민식! 너 잡히면 가만 안 둬!”

내가 인파로 둘러싸인 그 곳을 벗어나오니 저 가까이서 들려오는 유리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에선 나를 놓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와 있었다.

미안, 유리야. 잠시 동안만 적이 되자. 한국 가면 잘해줄게.

‘히히히히. 애들이 아직 날 쫒아 오려면 저 인파를 뚫고 와야되니깐 일단 숨좀 돌리고 슬슬 걷ㅈ.. 응?’

“민식오빠아, 히히. 안녕?”

잠시 텀을 주고 도망치려고 유유히 계획을 짜고 있던 나의 앞에 수정이가 나타났다.

분명히, 아까 저 안에 있었던 것 같은데 !?

“수..수정이!? 너 분명히 저기에 있었잖아.”

“헤헷, 오빠가 이렇게 도망칠 줄 알고 대충 눈치 채서 오빠보다도 먼저 빠져나왔다..? 잘했지?”

평범하게 열 일곱살 다운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서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유난히 평범하게 보이는 저 미소가 지금은 매우 무서웠다.

그리고 지금은 도망자 신세인 나에게 나보다도 더 깨알같이 머리 굴리는 건 잘한 행동은 아니야.

아직은 너희들의 섬세한 터치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수정아, 미안! 오빤 지금 도망갈거야!”

“도망간다고? 내가 오빠 잡아줄게.”

방긋 눈웃음을 날리는 그녀를 보며 잠시 당황스러움에 몸이 굳어 있던 나를 더 위기로 몰아가는 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도망을 방해하던 저 인파가 모세의 기적처럼 양방향으로 갈라지며 소녀시대+에프엑스가 잘 뛸 수 있게 열려졌다.

인파들이 두 갈래로 갈라지자, 역시나 그녀들은 바로 내 쪽을 향해 빛의 속도로 뛰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이번엔 하이힐도 아니고 운동화다.

확실히, 저 아해들은 오늘 나를 잡아서 죽일려고 작정했나보다. 그럼 도망이 상책이지.

난 중학교 때 운동 좀 했던 다리로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 라고 들려오는 나의 황급한 발소리가 지금 내 심정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내가 도망치기 시작하자, 수정이도 다리를 놀리며 나를 쫒기 시작했다.

‘아, 수정이. 왜 이렇게 잘 달려?’

“오빠도 나이가 들었긴 보구나. 나랑 동급으로 달리다니, 몇 주사이에 많이 늙었어?’

너님이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긁는 이야기를 하다니,

수정아. 약하게 달리는 건 이 정도까지다. 오빠가 먼저 전력질주로 도망칠게.

되도록이면, 이제 한국에서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나는 다리에 무리가 가도록 광장 사이를 가로질러 대학 관들 사이로 달렸다.

“흐아앙.. 오빠가 나 갖고 놀렸어. 초딩도 아니고 달리기 갖고 사람을 약올려?”

멀리서 수정이의 칭얼거림이 미미하게 들렸다.

하지만 내가 더 깊숙히 대학관들 사이로 뛰니 그 소리도 사라지는 듯 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함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쫒던 그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난 사람이 한적한 어느 공간으로 걸어가 엠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뚜우- 여보세요?〕

“엠마야, 갑자기 사라져서 미안.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서 도망가야했어.”

〔풉, 그 정도 갖고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괜찮아,괜찮아- 근데 오늘 호텔 가는 건 잊지 않았지?〕

“당연하지, 준비하고 약속시간에 만나자.”

뚝-

전화를 끊고 나는 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내가 숨어있는 곳과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나의 스위트홈.

즉, 아늑한 기숙사로 나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 끼익 - //

주방, 거실, 침실, 화장실, 서재.

왠만한 빌라 못지 않은 구성의 기숙사다.

나는 파리대의 유일무이한 교환학생이랍시고 이렇게 대우해주는게, 나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다.

‘아, 애들과 거의 추격전을 벌이니까. 몸이 피곤해지네, 약속시간 전 까지는 눈 좀 감아야겠다.’

난 소녀시대와 에프엑스와 벌인 추격전 ( 이라 쓰고 수정이와의 1 : 1 전력질주 라고 읽는다 ) 을 벌이고 난 뒤

저절로 피로해지는 심신이 느껴지자, 잠시동안 눈 좀 부치자. 라는 생각으로 무거워진 눈꺼풀을 내렸다.

*

낮 때의 새하얗던 구름 조각들이 서서히 진홍색 물감에 물들어간다.

높디 높은 파란 빛 하늘도 점점 주황 빛으로 변해져갔다.

낮에서 밤으로 변화되는 그 시간에 나는 조용히 오수 ( 낮잠 ) 에서 천천히 깼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춰보니 화면에 통화기록이 보였다.

‘엠마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가네..’

나는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헝클어진 머릿모양을 정리하고, 

옷장을 활짝 열어 깔끔하게 보이는 스타일의 옷들을 입은 뒤 엠마와 만나기로 한 호텔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

“안녕 엠마야.”

“음? 어, 왔구나? 들어가자-”

“알았어-”

호텔에 도착하자, 호텔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엠마의 모습이 확 눈에 띄었다.

몸매를 보여주는 진청색 스키니진과 나풀나풀한 블라우스가 엠마의 여성스러운 모습을 더욱 더 부각시켜주는 듯 했다.

난 그런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시선을 끌었고, 엠마는 점점 다가오는 나의 모습을 보자 곧바로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엠마의 근처까지 가서야 그녀는 멈췄던 발걸음을 움직이며 나의 팔에 팔짱을 끼고는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근사한 식사좀 먹어보자, 내가 미리 예약했어.”

“호텔 음식이라면 비쌀텐데..?”

“히히, 덜 비싼 음식을 주로 골랐으니 걱정 마셔.”

엠마의 말만 믿고 나는 엠마가 예약해놨다는 호텔 식당의 테이블로 들어섰다.

순백의 식탁보, 그리고 가정시간에서 보던 식기의 배치.

프랑스에서 먹어보는 두 번째 정찬이었다.

“민식아.”

“응?”

“건배 한 번 할까?”

“그래.”

// 차앙 - //

엠마는 에피타이저는 넘기고, 메인 요리를 서양 식사 매너에 맞춰 조금씩 먹고 있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레드 와인이 조금 담겨 있는 와인잔을 흔들면서 건배를 하자는 말을 하는 그녀였다.

난 그녀의 말에 별다른 의심없이 간단히 수긍하며 그녀의 잔과 내 잔을 부딪히고 조심스레 와인을 입 안으로 넘겼다.

그렇게 엠마와 나는 고급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슬슬 식당 밖으로 걸어나와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으으으..”

“엠마야, 왜 그래?”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가.. 섣불리 움직이기가 쉽지 않네. 방에서 잠시 쉬자.”

왠지 모르게 나의 보조개에 힘이 들어갔다.

저번에는 하려다가 실패했는 데, 이번에는 할 수 있으련 지 모르겠다.

난 술에 취한 엠마의 몸을 부축하고, 호텔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 끼익 - //

호텔 방으로 술에 취한 엠마를 이끌고 문을 닫으니,

서서히 호텔방 안에서 묘하고도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공기의 흐름이 흐르고 있을 때, 엠마를 쳐다보니 엠마의 눈빛에서도 무언가가 묘했다.

난 자연스레 그 분위기에 맞춰서, 앵두같이 새빨갛고도 촉촉한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부딪혔다.

그리고 어색하지 않게 그녀의 매끈한 허벅지 라인을 쓸어내렸다.

“히이... 살살..”

그녀의 말에 나는 짓궃게 놀렸던 손놀림을 잠시 거두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시 한 번 그녀의 몸매를 쓸어내렸다.

‘하아.. 역시 엠마의 몸매는 부드러워.... !?’

나의 손에서 엠마의 부드러운 살감촉이 느껴졌다.

황홀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런 감촉이 이어지면서 그녀의 둔덕 부근에 다다랐을 떄 쯤.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패인 곳이 없고, 그 대신 뭉툭한 느낌이 가득했다고 할까.

난 이 이상하고도 묘한 느낌에 입술을 떼고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가 얼굴을 매우 붉히며 나를 아스트랄한 충격의 공간으로 이끄는 말을 내던졌다.

“사실, 나 남자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