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60/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쉰 다섯 번째 과외.

“어..어?”

“히히, 오빠 안냥-”

설리가 앙증맞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거리가 약간 떨어져 있을 때의 그 표정은 싹 지워내고 말이다.

어쨌든, 이 아해들이 프랑스에 올 줄 몰랐던 나는 엠마와 그녀들을 번갈아 보며 말을 얼버무렸다.

“오빠 왜 이렇게 떨어?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보지?”

“내가 찔리는 게 뭐가 있다고..?”

설리와 달리 수정이는 내 옆으로 슬슬 다가올 때, 새침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리고 냉소적인 말투로 나의 정곡을 찌르려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제시카의 실루엣이 약간 믹스되어보였다.

“비..빅토리아 누나도 오셨네..?”

“민식이 안녕-”

수정이와 설리 뒤에서 유유히 걸어오는 빅토리아 누나의 모습에 난 간단한 인사를 했다.

역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를 받아주는 그녀였다.

빅토리아 누나는 나에 대해 뭐라 하지않을 것 같고, 문제는 이 두 아해들인데.

“얘네들 누구야?”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애들인데, 여기서 보게될 줄 생각도 못해서 지금 몹시 당황스러워.”

무작정 나에게 다가오는 세 여자의 모습을 나의 옆에서 지켜본 엠마는 곧바로 이들이 누군지 나에게 추궁했다.

나는 간단히 그녀들에 대해 알려줬고,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빠, 이 여자는 누구야?”

엠마에게 세 명의 소녀들을 이야기 해주는 도중에 설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까의 앙증맞은 표정은 어디로 증발했는 지, 그녀의 얼굴엔 냉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엠마에게 삿대질을 하며 나에게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알려달라 했다.

“엠마 왓슨이야, 프랑스에서 제일 먼저 알고, 프랑스에서 유일한 내 친구지.”

“그냥 친구야, 여자 친구야?”

설리의 질문에 나는 간단히 엠마를 설명해줬다.

하지만 수정이는 엠마가 그저 친구인 걸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일까, 갑작스럽게 나라사랑을 하지않고 영어로 질문을 내뱉어내는 그녀였다.

‘아, 수정이냔.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

한국에서와는 전혀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을 했다.

보통 수정이라고 불렀는 데 거기다가 ‘냔’을 붙인 거지같은 센스를 발휘하는 내 생각이 확실히 내가 당황했다는 것을

대신해서 말해주었다.

“그냥 친구지. 설마 여자친구겠어?”

“오호, No girl friend?”

세 명의 여자들에게 오해의 새싹을 뽑아버리기 위해, 엠마는 그냥 친구라고 말을 했다.

뭐, 엠마가 저스트 프렌드인 건 아직까지는 사실이였다.

하지만 다시 나를 당황시키는 엿같은 영어로 수정이가 말했다.

난 분명 한국어로 말한 것 같은데, 그걸 영어로 번역시키는 센스를 발휘해주는 수정이의 모습에

난 곧바로 엠마를 쳐다보았다.

‘젠장, 삐졌잖아.’

엠마의 표정은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럴만도 한 것이, 파리대 안에서는 인기가 제일 많고 미모도 월등한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나에게 호감을 비췄기 때문에, 나에게 여자친구 같이 행세를 한 그녀가,

수정이의 말을 듣고 난 뒤 기분이 많이 상한 이유 때문인 지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고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챙겨주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난 그녀였다.

“걔네들과 있을 때는 난 안중에도 없구나. 나 가볼게. 걔네들이랑 잘 놀아.”

“엠마야..!”

아까의 활기찬 목소리는 어디가고 냉소한 말투로 내게 말하고 무정히 떠나는 엠마였다.

난 갑작스런 엠마의 행동에 잠시 멍을 때렸으나,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엠마라는 이름을 외쳐봤으나, 그녀는 점점 멀어졌다.

할 수 없이 그녀를 찾아서 화를 풀어줘야만 했다. 그래서 움직여야만 했다.

“어딜 가려고?”

“어딜 간다니? 엠마 풀어줘야 될 것 아냐!”

“지금 오빠가 보이는 행동으로 봐선 우리에게 거짓말 쳤구나.”

“...”

“그리고 우리보다 엠마란 여자가 먼저인 것 같고.”

수정이가 가려는 나의 팔목을 세게 붙잡았다.

그리고 어딜 가려고 하느냐며 날 추궁했다.

난 어서 빨리 엠마의 화를 풀어줘야 된다는 식으로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수정이는 완전히 정색의 얼굴을 보이며 냉소적이고 안타까운 말투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과 엠마를 비교하며 말하는 수정이였다.

점점 팔목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힘이 점점 풀어졌다. 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에프엑스를 내비두고 엠마가 있는 곳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아 씨.. 어딨는거야..”

오늘따라 유난히 캠퍼스가 넓어 보였다.

평소엔 내가 살던 동네만 했던 그 넓이가 왜 이렇게 광활한 중국 대륙처럼 보이는 지,

인산인해인 이 곳을 비집고 들어가며 엠마를 찾는 게 나를 더 힘들게 했다.

// 툭 - 툭 - 투투툭-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맑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 빗방울은 나의 옷깃에 스며들어 내 속살과 찰지게 달라붙었다.

‘아, 빗물이 이렇게 차가웠나.’

빗방울의 차가움이 오늘따라 유난히 시리게 느껴졌다.

찔끔찔끔 하늘에서 추락하던 응결체는 점점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나의 어깨만 툭툭 적시던 빗방울이 내 머리칼 마저 차갑게 적셨다.

그리고 쌔앵하는 소리와 함께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날 시리게 치고 지나갔다.

“엠마는 이미 갔나보네.. 그냥 기숙사로 걸어가자.”

빗물에 젖은 묵직한 발걸음으로 다시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나였다.

하지만 기숙사로 가려면 정반대의 길이라서 광장을 건너가야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분수대를 쳐다보았다.

아아, 분명히 상처를 받았을 세 소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망할.. 노트도 젖었잖아.”

엠마의 피와 땀이 섞여있을 노트가 차가운 빗물에 하릴없이 젖고 있었다.

노란색 색지 위에 필기된 검은 잉크의 글씨는 물을 만나자 맹렬히 번지기 시작했다.

곧 써져있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노트는 젖었고, 내 노란 마음도 색이 바래지며 젖었다.

// 터벅 - 터벅 - //

묵직한 발걸음으로 겨우겨우 기숙사로 기어들어왔다.

차디 찬 기숙사 밖과는 달리 내 방은 참으로 따뜻했다.

그래, 원래 혼자 지냈으면 괜찮았잖아. 뭐하러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하는 바보같은 행동을 하게 될까.

“에..에..에취!!”

비가 차가웠긴 차가웠나보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나의 입 밖으로 수 만개의 침방울이 뱉어졌다가, 증발되었다.

여름감기. 다들 독하다고 말하던데, 여태까지 걸린 적 없었는 데, 이제야 걸리는구나.

지금 이 순간 감기가 걸린 나를 위로해주고, 돌봐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 혼자 스스로, 외로이, 쓸쓸히 이것을 버텨내야했다.

“무지하게 씁쓸하네.”

코코아가루를 따뜻한 물에 풀어놓고 한 잔을 들이키며 말을 하는 나였다.

.

.

몇 일 후.

“아, 오늘도 늦게 생겼네! 근데, 엠마한테 이건 어떻게 말하지?”

쓸쓸함도 시간이 약이었나보다.

수 십 시간이 지나고 나니, 괜찮은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오전 8시 55분이다. 그리고 강의가 시작하는 시간은 9시였다.

고로, 학점을 위한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 이 상황은 썩 괜찮은 상황이 아니었다.

‘뛰자,뛰어,뛰는거야,뛰어야지?’

내 생각엔 오직 뜀박질 밖에 주입을 시키며 커다란 크로스백을 어깨에 메고,

첫 강의 때처럼 신명나게 캔버스화를 신고 내달리는 나였다.

분명히 몇 일전만 해도, 광장을 건너가는게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오늘은 우사인 볼트의 까만 뺨을 야무지게 치고 지나갈 정도로 잘 달려지는 구나.

“흐아아.. 컷 했나?”

“음..다행히도..?”

“어..? 엠마네..”

나는 숨이 벅차오르고 다리가 풀어질만큼 내달리니 겨우 강의실의 문을 붙잡을 수 있었다.

문을 붙잡으며 숨을 고르는 동안 혼잣말을 지껄이며 얼마 전 이벤트 경품으로 얻은 시계를 쳐다보는 도중에,

나의 말을 받아주는 듯한 여성의 보이스가 뒤에서 느껴졌다.

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가인지 짐작하며 돌아보니, 역시나 내 말을 받아줄만한 사람은 엠마밖에 없었다.

“엠마야.. 그 전 일은..”

“민식아.. 아니야.. 내가 미안해, 뭣도 모르고 삐져서 그냥 가버린 거 진짜 미안해.”

내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인데, 먼저 내게 사과하는 그녀였다.

난 어리둥절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표정에서 가식이 아닌 진심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새하얀 백색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아, 한국에서의 개념없는 여자와는 다르다..’

한국에서 엠마같은 미모를 갖고 있는 애들은 가끔씩 여자라는 성별이 벼슬인 줄 아는,

그런 짜증나는 행동을 보이던데. 물론 나와 친한 여자애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엠마도 먼저 삐져서 가긴했지만, 그 때는 내 잘못 때문에 그런 것이 였는 데 개념을 탑재한 채로 매너있게 말하는 그녀의

맘씨에 감동했다.

“아니야. 내가 잘못했는 걸.”

“아니라니까?”

“이거..”

“응?”

그래, 기회는 이 때다.

난 용기를 내서 빗물에 바랜 엠마의 노트를 펼쳐보였다.

엠마는 펼쳐진 노트를 여러 번 훑어보고는 잠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무릎으로 내 복부를 가격했다.

“크헉..”

“민식아..?”

“응?”

“괜찮아.. 너랑 나랑 같이 다시 채우면 되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어깨까지 늘어난 그 금발의 머릿칼을 머릿끈으로 묶었다.

그리고는 내 넓직한 등에서 따갑고 아픈 고통이 느껴졌다.

그 뒤에도, 나는 교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멍이 들도록 맞고, 수업 중에도 그녀에게 맞느라

프랑스에 온 후 최초로 강의 시간에 잠들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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