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쉰 한 번째 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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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여기가 말로만 듣고 인터넷으로 그렇게 찾아보던 소르본대학(파리대학교)구나.. 막상 눈 앞에 보이니까 슬슬 막막하네.”
파리국제공항에서 빠져나온 뒤, 파리지앵님들께서 귀찮으실 만큼 여러 번 질문해서야 드디어 파리대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1200년도 쯤에 지었다고 하던데, 그에 걸맞게 고풍스러움이 멋깔스럽게 한 가득 느껴졌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였다. 막상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파리대학교가 눈 앞에 있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적응할까라는 것이 나에게 최대의 걱정일 뿐.
난 오로지 온갖 짐들이 잔뜩 담겨진 무거운 짐가방과 딸랑딸랑 거리는 기숙사 열쇠, 그리고 이 학교 학생임을 알리는 학생증카드 까지
구비하고 난 뒤 호흡을 가다듬으며 파리대학교 안으로 걸어갔다.
// 뚜벅 - 뚜벅 - //
아아, 따스한 오후라서 그런 지 눈 앞에 펼쳐지는 프랑스산 미모의 여학생들의 향연에 나는 시선을 어따둬야 할 지 몰랐다.
나의 등장에 동양인은 처음 본 다는 눈빛으로 나를 겨눠보는 그녀들의 낯선 시선이 좀 부담되기도 하였으나, 일단 파리지앵이
되는 첫 걸음은 기숙사에다가 짐을 정리해두고 해보도록 할까.
그렇다면, 나는 이 무거운 짐들을 어서 기숙사 구석에 쳐박아두고 본격적으로 학교를 살펴봐야 했다.
물론 프랑스인 교수님한테 가서 시간표를 미리 받아두어야 되겠지만 말이야.
“처음 보는 얼굴로 보이는데, 학생증 좀 제시해주겠습니까?”
“아, 제가 교환학생 신분으로 와서요. 여기요.”
“음, 한국에서 오셨군요. 3주동안 즐거운 대학생활 즐기시길 바랍니다.”
역시나 기숙사 입구에 들어서니 금발의 중년 수위 아저씨가 나를 막아섰다.
다행히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짐짓 눈치 채었는 지, 영어로 말해주시는 덕분에 꼴에 영문과인 나는 조금 자유로운 토크를 할 수 있었고
별 트러블 없이 기숙사 안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기숙사 복도는 심플하게 레드 카펫만 깔아놔서 인 지, 왠지 모르게 기숙사의 고풍스러움이 한 층 더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기숙사 안을 감상하다보니 어느샌가 기숙사 방 키에 써져있는 번호가 그대로 적혀진 방 문 앞에 도착했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니 복도의 고풍스러움 과는 달리, 기숙사 안은 꽤나 넓찍했다.
뭐, 우리 집보단 크기는 작지만 웬만한 사-오성급 호텔 VIP룸 부럽지 않았다.
방도 화장실을 제외하고 한 두개만 있는 줄 알았더니 한 세 개 정도 있었고, 아. 파리대학교에서 나를
3주동안 진심으로 대해주는 것 같은 생각에 괜시리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짐가방에 고이 담겨두었던 옷가지와 생필품들을 풀어서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소녀들이 내게 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귀중품 다루듯 침대방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단지 추억만이 담겨있는 물품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더 애지중지하게 금지옥엽하게 다뤄야지.
‘정리는 다 했고, 이제 프랑스 물 구경이나 해볼까나-’
소녀들과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서양 미녀들의 위엄을 느껴보려 무의식적인 행동을 벌이는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살짝 쳐주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파리대 영문과 교수 ‘아놀레옹 프리드’의 집무실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 똑똑똑 //
“들어오세요.”
의외로 교수실까지의 거리가 좀 되어서 도착할 때 쯤에는 가벼운 발걸음이 무거운 발걸음이 되어버렸다.
숨을 헥헥 거리며 거친 숨을 골라내고 삐죽 튀어나온 땀을 애써 손수건으로 닦고선 나무 문을 예의바르게 노크를 했다.
그러자 낮은 톤의 중후한 발음이 내 귀를 살랑살랑 건드리며 나를 집무실 안 쪽으로 인도하게 만들었다.
그 곳엔, 무테안경을 쓰고 백발이지만 서양인 특유의 중년의 멋스러움이 돋보이는 한 남자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뭔가를 집필하고 있던 만년필을 자신의 셔츠주머니에 끼운 뒤 손에 깍지를 끼고서 의자에 앉은 채로 내가 누구였는 지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 떠올랐는 지 눈썹 한 쪽을 살짝 치켜올리며 이윽고 표정에 반가움과 놀람을 표하며 자리에 일어서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자네가 김민식 군인가? 한국 중앙대에서 온 교환학생?”
“네, 반갑습니다. 교수님 께선 말로만 듣던 아놀레옹 프리드 박사님이신가요?”
“껄껄- 그 정도까진 유명하지는 않고 그저 파리대에서 소소하게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일뿐. 자, 민식군은 전공만 공부하면 되니까
강의가 없는 4일은 마음껏 프랑스를 즐기다 가길 바라네. 월,수,금만 출석수 채우면 되니까 파리 구경 하는 시간은 널널하겠지.
자, 1달동안 잘 지내보자.”
나는 교수님의 내민 손을 웃으며 잡고 서로 젠틀한 말들을 건네며 헤어졌다.
강의가 들은 날은 월,수,금 . 그러니까 1강에 2시간 30분 씩 일주일에 세 번 . 한 달에 12번, 그럼 50시간을 여기서 공부하다 가는 것이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는 나였다.
그렇게 좋은 모습으로 교수님과 헤어지고 나는 다시 대학 경관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몇 시간 전 처음 봤던 모습 그대로, 여러모로 볼거리가 풍부한 장소였다.
근데 남녀노소 할 거 없이 프랑스 학생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한다.
아까도 느꼈던 시선이었지만, 왠지 더 배가 된 듯한 기분.
내가 아무리 마르고 잔근육이 좀 있고 외모가 조금 된다고 하지만 너무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오면 당사자인 나로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도 어느 한 무리가 나를 쳐다보며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느껴졌다.
난 신경이 쓰여 살짝 그들을 쳐다볼 때 그 무리 중에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듯한 여학생 한 명과 순간 아이컨택을 해버렸다.
더군다나 옆에 있는 평범한 외모의 학생들과 달리 그 여학생의 외모는 과연 군계일학,백미라고 불릴 정도로 월등한 미모를 자랑했다.
백옥같은 피부와 오똑한 콧날, 호수와 같은 눈망울, 눈부신 금발의 머리카락이 오목조목 야무지게 위치해서인 지 나도 순간 넋이 나가버릴 뻔 했다.
// 또각- 또각- //
그 서양 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난 뒤 싱긋 미소를 짓더니 또각또각 하이힐 굽이 땅에 찍히는 소리를 내며 점차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올 때 심장이 요동치는 듯 했지만,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열 네명의 소녀들을 생각한다면 어서 빨리
마음 속에서 태풍이 부는 듯한 이 마음을 잠재워야했다.
하지만 저 미소는 너무 화사하고 눈부셨다.
“안녕-”
“아..안녕?”
그러다 내 앞에 딱 멈춰서, 하이힐 굽 부딪히는 소리가 잠재워지더니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눈이 부실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였다.
난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대꾸해주는 식으로 그 쉬운 ‘Hi’조차도 하..하..하이.. 라고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풋, 귀엽네.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는데?”
“한국? 2002년에 월드컵 한 곳?”
“응. 대한민국!!! 알지?”
“그럼- 당연히 알고말고.”
금발의 그녀는 바람에 흩날리는 자신의 황금빛 머릿결을 정리하며 핏 하곤 웃었다.
그리고 나의 신상정보를 하나하나 묻기 시작하는 그녀.
서양애들은 한국애들과는 달리 많이 적극적인 편이구나.. 물론, 소녀시대와 에프엑스는 예외.
그녀가 나의 조국인 한국에 대해 묻자 나는 2002년 그리고 2006년 그리고 2010년 6월 때 처럼 박수를 치며 조국의 이름 네 자를 외쳤다.
그러자, 그녀도 서투르고 어눌한 말투로 나처럼 박수를 짝짝 치고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그것에 대해 안다고 내게 표시했다.
“너 완전 내 맘에 든다. 우리 친구 할래? 네가 손에 힘껏 쥐고있는 영문 교재를 보건데 너도 나처럼 영문과인 것 같은데,
그렇지않아? ”
“맞아. 파리대학교 영문학과 교환학생 신분으로 이 곳에 온 것 맞아. 교재만 봐도 알다니 너 눈치가 좀 있구나.”
“히힛, 그런 소리 많이들어. 쨌든 나랑 친구할래? 너 완전 내 맘에 쏙 들어. 그리고 동양인 친구는 네가 처음이 될 것같아.
맨날 백설기같은 피부와 갈색 아님 노란색 머릿카락 가진 애들만 보다가 와인색의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너를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이국미가 돋보이기도 하고 말하는 거 보니까 센스도 있는 것 같고, 너랑 진짜 친구가 되고싶어.
이름이 뭐야?”
‘김 민 식 입니다.’라고 당장이라도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미녀의 제의에도 한 번쯤은 튕겨주는게 미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의 애가 더욱 더 타게 하도록 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글로벌한 밀당과 튕김을 시전하는 세계화를 주도하는 남자가 되는거야.
“나? 김민식인데..?”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내 생각과 의지와는 달리 본의아니게 내 혀와 성대가 다채롭게 움직여가며 내 본명 석자를 내뱉어내는 소리를 만들어냈고,
그 소리는 잠시 그녀와 나 사이의 공기에 어우러졌다.
“민식? 이름 참 멋지네. 네가 이름 알려줬으니까 나도 알려줘야겠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닐까?”
“푸훗, 알았어. 내 이름을 말해줄게. 난 1990년생 프랑스 파리대 영문학과에 재학중인 엠마 왓슨이야.
교환학생기간동안 잘 지내보자 - ”
엠마왓슨, 네 글자의 불어 이름이 내 귀 속에서 꿈틀거렸다가 사라졌다.
아름다운 황금빛 금발의 머릿결을 휘날리고, 천사같았던 백옥의 미소를 짓던 그녀의 이름은 엠마왓슨이었다.
그렇게 나는 파리대에서의 학생 신분의 첫 번째 날을 기분좋게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