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26화 (709/730)

〈 726화 〉 726. 또 다른 신수(1)

* * *

“…누구지?”

정확히는 구미호와 같은 근원을 두고 있는 마력.

하지만 뿌리는 같을지라도, 가지고 있는 결과물 자체는 전혀 다르다.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학살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마력을 흡수하여 지금의 경지를 이룩한 구미호와 달리, 그녀가 느낀 이 힘은 너무나도 정갈하고 깨끗하다.

꾸준한 자기 관리와 수양을 통해서 갈고 닦아온 그 힘은 어쩌면 신수로서 정석적인 노력과 방법으로 성장시킨 교과서의 표본과도 같다.

“…나인 건가?”

구미호는 이 신수의 마력을 가진 주인이, 이 세계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다른 자신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정갈하고 깨끗한 기운을 모을 수 있었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소양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위를 보며 오랜 시간을 수양해왔던 자신의 기운을 유일하게 마음을 허락했던 남자에게 강탈당했다.

그 경험은 구미호의 마음을 어두운 나락으로 빠뜨렸고, 죽어서도 자신의 유해를 평생토록 이용하고자 했던 그 생각을 증오했다.

연모했던 마음도, 오랜 세월을 수양하며 기운을 정갈하게 모아두었던 여우 구슬도,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구미호에게 남아있던 것은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 대한 복수심뿐이었다.

하루라도, 1시간이라도, 1분 1초라도 빠르게 오르타스가 만든 나라가 멸망하기를 바랐던 그녀에게는 다시 힘을 회복하기 위하여 몇백 년이라는 세월을 수양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마녀와 손을 잡았다.

최대한 빠르게 힘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냈고, 그 결과 페르니아스 왕국에, 자신을 배신했던 오르타스에게 했던 복수는 성공적이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대륙에 있는 모든 인간을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정기를 모조리 흡수했다.

수많은 인간의 기운이 뒤섞여 탁하고 혼잡한 기운의 집합으로 생겨난 힘이지만, 인간들을 쓸어버리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 구미호가 느낀 이 기운은 다르다.

“…어째서?”

자신이 느낀 또 다른 신수의 기운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혼탁한 기운과 달리, 몹시 정갈하고 깨끗하다.

복수심에 불타 무수히 많은 인간을 무차별하게 학살하면서 성장시킨 기운이 아니었다.

자신과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

구미호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 ◆ ◆

키아아아악!

귀를 찢듯이 울려 퍼지는 바실리스크의 울음소리는 영지 전체로 퍼지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빨리 도망쳐!”

다급함이 묻어나는 병사들의 외침에 사람들은 사색이 되어 도망을 치기에 바빴고,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거대한 마수의 포효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무기를 쥐었다.

“젠장…. 저거 진짜로 잡을 수 있는 거냐?”

한 모험가가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손에 무기를 쥐고 있었지만, 정작 땅에 붙어있는 다리는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이외에도 다수의 모험가가 각자 자신의 무기를 꼭 쥐면서 멍하니 거대한 체구를 가진 뱀을 올려다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도대체 저거를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터무니없는 소리다.

사람의 머리는 물론, 몸통을 통째로 집어삼켜 씹어먹을 것 같은 거대한 마수를 상대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 이곳에 모여있는 이유는 이 영지의 주인인 영주, 에프라테 백작이 저 거대한 마수의 토벌에 큰 상금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 상금은 자그마치 금화 500닢.

이 토벌 보상을 받을 수만 있다면 하루하루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모험가 생활을 그만두고 평생을 떵떵거리며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닌가.

말 그대로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모험가들에게는 이만큼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

“…무리야.”

바실리스크의 모습을 직접 확인한 모험가 중에는 이미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싸움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험가들이라는 족속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과 목숨이 전부인 직업.

아무리 평생을 떵떵거리며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을 보수로 제시한들, 그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젠장! 나는 도망치겠어!”

“동감이야! 저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모험가들이 바실리스크의 토벌을 포기한다는 것은, 바실리스크가 날뛰면서 에프라테 자작령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것도 모자라 수많은 인명 피해로부터 외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험가들은 정의감 하나로 그렇게 앞으로 나서는 이들이 아니다.

철저히 실리로 움직이는 그들은 수많은 타인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욱 중요했기에 반드시 이 토벌 임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도 사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모험가가 무기를 집어넣고 꼬리를 말 듯이 도망치는 와중.

검을 쥔 두 명의 기사와 한 명의 모험가가 바실리스크를 향해 달려갔다.

“헉!?”

마치 전속력으로 미친 듯이 질주해오는 마차를 연상시키듯, 전방에서 맹렬하게 돌진해오는 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모험가들이 순간 멈칫했다.

빠르게 몸을 옆으로 틀어 그들과의 충돌을 피했고, 도망치던 발걸음을 멈추고 쏜살같이 지나쳐 가는 그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바닥을 차면서 강렬한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하는 세 사람 중 제일 선두에 서 있었던 것은 레이피어를 쥐고 있는 에린이었다.

키아아악!

빠르게 달려오는 존재의 접근을 인식한 바실리스크가 에린과 에이라, 차한성 세 사람을 응시하며 강한 적의를 내뿜었다.

강렬한 위압이 가득한 그 포효를 직면하고도, 에린은 전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레이피어를 강하게 쥐며 자신의 힘을 더욱 끌어올렸다.

정갈한 신수의 마력은 전신에 두른 것만으로도 신체의 능력을 향상해주고 마수의 위압으로부터 지켜주는 훌륭한 방패의 역할을 수행했다.

카악!

거친 포효를 내뿜던 바실리스크는 세 사람을 향하여 공격을 개시했다.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치던 모험가들과 달리, 이 세 사람의 용감함은 바실리스크에게 있어 건방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어리석음이었다.

바실리스크의 입에서 튀어나온 녹색의 액체가 빠른 속도로 세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화살은 물론, 음속에 가까운 원거리 사격에 견줄 정도의 경이로운 속도.

하지만 강철조차도 녹여버릴 정도의 강한 산성이 포함된 바실리스크의 공격을, 세 사람은 확실히 인식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에린의 후방에서 뒤따라 달려오고 있던 차한성이다.

에린이 질주하던 다리를 멈칫하여 뒤로 빠지고 비워진 선봉의 자리를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온 차한성이 차지했다.

다리에 힘을 실어 자세를 잡은 차한성은 정면에서 날아오는 바실리스크의 산성액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올리비온 검술]

[태산 가르기]

단단히 지탱한 하체로부터 허리를 타고 전신에 힘을 실어 터뜨리는 묵직한 검격이, 검에 담겨있던 마력의 해방과 맞물려 폭발적인 공격력을 자랑하여 전방을 휩쓸었다.

차한성이 날린 검기는 그대로 바실리스크의 산성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증발시켜 없애버렸다.

키릭!?

자신의 공격이 막힐 줄은 예상치 못한 듯, 바실리스크가 적잖게 당황한 태도를 보이면서 멈칫한 찰나.

에린은 다시 가속하여 바실리스크를 향해 질주했다.

가속으로 만들어낸 속도에 힘입어 충분한 도움닫기를 확보하고는 도약한 에린은 놀라운 점프력을 선보여 바실리스크의 얼굴과 마주한다.

“흡!”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風?)]

가속도를 극한으로 끌어모아 한점을 내지르는 찌르기는 극한의 관통력을 과시하며 바실리스크의 얼굴을 쇄도했다.

키릭!

정확히 눈을 노린 공격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본능의 위협을 감지한 바실리스크가 머리를 비스듬히 틀어 에린의 레이피어로부터 급소를 보호했다.

까앙!

눈이 아닌 이마 부분을 강타한 레이피어에서는 살점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 단단한 철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쉽게 급소를 내어줄 것이라고는 에린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상외의 방어력에 에린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바실리스크의 전신을 두르고 있는 저 비늘의 방어력에 경악스러울 정도다.

에린의 질풍사는 극한까지 끌어올린 가속도를 모조리 관통력으로 바꿈으로써 그 공격력을 배로 끌어 올리는 기술.

도약으로 인한 체공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속도로 끌어올린 관통력은 당연히 낮아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방어력은 너무나도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린의 공격이 바실리스크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은 또 아니다.

키리, 릭!

강한 적의를 내보였던 바실리스크의 눈동자가 순간 풀리면서 그 거대한 몸통이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에린의 공격은 바실리스크의 비늘이 가지고 있는 방어력을 관통하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충격은 그대로 바실리스크의 머리 안쪽을 강타하여 내부를 뒤흔들었다.

뇌진탕으로 인하여 발현된 ‘스턴’의 상태가 바실리스크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쿠웅!

거구의 몸통이 허무하게 바닥과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거센 진동은 영지 전체를 흔들 정도로 강렬하여 많은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스턴에 빠진 바실리스크의 머리 부분이 위치한 곳에는, 이미 세 사람 중 마지막 한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올리비온 검술]

[연월]

초승달처럼 휘어진 에이라의 검격이 스턴 상태에 빠진 바실리스크의 눈을 정확히 베어냈다.

키아아악!

눈을 베이면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바실리스크는 강제로 빠진 스턴 상태가 풀려버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언니! 멋있어!”

높이 도약했던 에린이 천천히 바닥에 착지하면서 멋지게 일격을 때려 넣은 에이라를 향해 감탄의 찬사를 흘렸다.

방어와 공격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던 세 사람의 연계는 사전에 전혀 합의되지 않은 즉흥적 애드리브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들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팀플레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캬아아아아!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처음보다 더욱 거세게 난동을 부리는 바실리스크는 더는 세 사람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눈물의 고통을 전신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쿠우웅!

이리저리로 휘몰아치는 거대한 뱀의 몸통이 만들어내는 난동은 건물들을 깨부수고 땅의 지형을 변화시키며 영지 자체를 초토화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이성을 잃었기 때문일까, 더욱 강하게 날뛰는 바실리스크의 행동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나 다름이 없다.

“에이라 언니! 한 번 더!”

에린은 아직 남아있는 반대쪽 눈을 노리기 위하여 한 번 더 도약하려 했지만.

[호족 요술(?? ??)]

[흑염(??)]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오는 검은색 불꽃의 존재를 느끼고 에린이 황급히 몸을 뒤로 빼며 자리를 피했다.

“이건….”

에린은 바닥을 불태우는 흑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것에서 느껴지는 힘의 기운이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다.

성질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 근간은 틀림없이 자신이 사용하는 신수의 힘.

“‘또 다른 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 ‘한심한 녀석’이었을 줄이야….”

에린은 깜짝 놀라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에린과 마찬가지로 에이라와 차한성 또한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에린이…. 둘…?”

“아니. 아니야. 언니. 저건…내가 아니야.”

에린은 얼굴을 굳히며,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의 내면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미호야?”

경직된 목소리로 조심스레 구미호의 이름을 부르자, 구미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대놓고 표현했다.

“뭔데 나한테 친한 척을 하는 것이냐. 한심한 것 주제에. 도대체 이 세계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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