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5화 〉 725. 뱀의 꼬리(6)
* * *
[소환 개시.]
“아…!”
“……!”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멍한 표정을 짓던 나머지, 에린과 릴리는 사태가 돌아가는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했다.
악마의 정신체와 마력을 모조리 흡수한 수정구슬은 그대로 허공에 떠올라 거친 마력을 흩뿌리며 무언가를 벌이기 시작했다.
에린이 다급히 도약하여 수정구슬에 가까이 접근했고 수정구슬을 파괴하려 했지만.
우우웅!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수정구슬을 중심으로 마력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바람은 점점 거세져 주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안…돼!”
다급한 마음이 가득했던 에린의 외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정구슬의 폭풍은 점점 지하 감옥을 휩쓸면서 에린의 몸을 튕겨냈다.
“에린!”
릴리는 허무하게 바닥으로 추락하는 에린의 몸을 받아냈다.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언니. 지금 나보다….”
에린은 굳은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곧바로 움직였지만, 결국 수정구슬을 파괴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사나운 마력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수정구슬이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 낼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어 식은땀이 흘렀다.
릴리의 부축을 받아 다시 몸을 일으키고는 돌풍의 중심 속에 있는 수정구슬을 향해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호족 요술(?? ??)]
[여우불]
평소에 사용하는 작은 크기가 아닌, 돌풍의 영향을 최대한 뿌리칠 수 있는 최대의 크기로 만들어낸 거대한 푸른색의 불꽃이 날아가 돌풍과 접촉한다.
수정구슬을 중심으로 회전하던 바람은 이윽고 여우불의 불꽃을 머금으면서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지만, 수정구슬에까지 신수의 마력은 닿지 않았다.
이윽고 수정구슬의 바로 위로 휘몰아치던 돌풍의 마력들이 응집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무언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저건….”
“구멍?”
정확히는 ‘문’이라는 개념에 가깝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마력들로 형성된 그것에서,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에린은 검은색의 구멍의 안쪽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
그것은 날카로운 눈매로 빛을 발하고 있는 파충류의 눈.
이윽고 구멍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뱀의 머리였다.
“저, 저게 무슨…!”
하지만 에린과 릴리가 경악한 부분은 뱀의 등장 때문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등장한 뱀의 크기다.
건장한 체격의 인간 남성 하나쯤은 한입으로 거뜬하게 먹어치울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체구.
그리고 그 머리를 시작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다랗고 굵은 몸통.
끝도 없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몸통의 길이는 어느 정도인지 도저히 가늠되지 않을 정도다.
“저건….”
끝을 알 수 없다는 표현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길이를 가진 몸통.
인간의 몸 정도는 간단하게 씹어먹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커다란 입.
이윽고 검은 구멍 안에서 전신을 모두 드러낸 뱀은 유연한 몸을 이용하여 스르륵 지상으로 향했다.
빠르고 매끄럽게 이동하는 그 속도는 보통 크기의 일반 뱀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갑작스러운 거대 뱀의 등장에 당황한 것도 잠시, 저것을 지상에서 멋대로 날뛰게 두면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에린이 곧바로 릴리를 불렀다.
“…언니!”
“응!”
곧바로 에린의 손을 맞잡고 이끌리며 그녀의 등에 올라탔다.
에린은 지하 감옥의 무너지는 잔해들을 밟고 차례차례로 위로 올라갔다.
사람 한 명을 업고 있음에도 그 속도가 전혀 뒤처지지 않았던 에린은 빠른 속도로 거대 뱀의 뒤를 쫓았지만, 이미 거대 뱀은 지상 위로 올라가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거센 진동을 일으키며 에프라테 백작 저택의 한중심에서 나타난 거대 뱀은 그 거대한 몸뚱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머리를 거칠게 휘두르고 이리저리로 튀는 꼬리가 에프라테 백작의 저택을 분쇄시키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에린과 릴리가 뒤늦게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위는 이미 초토화된 상태.
에린은 곧바로 에이라와 차한성의 위치부터 찾았다.
전방으로 펼친 감지와 특유의 발달된 시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기관을 총 동원하자 두 사람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은 일이었다.
한차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에이라와 차한성이 있는 위치를 향하여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후우, 에이라 언니이이이!”
목청껏 울리는 커다란 외침을 들은 에이라 쪽에서도 에린의 위치를 특정하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에린은 곧바로 릴리를 업은 상태로 빠르게 질주하여 에이라와 차한성 쪽에 합류했다.
“언니! 괜찮아요? 다친 데는요?”
“나는 괜찮아. 그것보다….”
에이라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에프라테 백작 쪽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 담겨 있는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느낀 백작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꾹 참고 있던 에이라의 감정이 드디어 폭발했다.
거칠게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격양된 말을 쏟아냈다.
다름 아닌 에프라테 백작 저택의 지하 감옥에서 튀어나왔을 진데, 정작, 이 영지와 저택의 주인인 그가 모른다고 잡아뗀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에프라테 백작 쪽에서도 억울한 것은 마찬가지다.
“정말로…모르는 마수입니다. 그 악마는 저런 마수를 부릴 수 있다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진실이다.
에프라테 백작과 루시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상부상조의 관계였을 뿐, 루시가 애초부터 저런 재앙이나 다름이 없는 뱀을 소환하여 부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다른 사업을 제안하거나 그녀에게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는 가지고 있는 야심이나 욕심에 비해서 자신의 목숨을 지극히 아끼는 새가슴이었다.
“하, 결국…. 악마와의 관계는 인정한다는 거네?”
“…….”
에프라테 백작은 경멸에 치를 떠는 에이라의 말에 입을 꾹 닫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악마와의 관계성을 철저히 부정해왔던 것과 달리 한순간에 말을 바꾸는 그 가증스러움이 경멸스러웠다.
“언니….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그렇지.”
일단은 진정하고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다.
에이라는 거칠게 움켜쥐고 있던 에프라테 백작의 멱살을 내팽개치듯 거칠게 놓았다.
“사람들을 대피시키세요. 싸울 수 있는 모험가들은 모두 소집해서 응전하게 시키세요. 지금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영주의 권한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에프라테 백작의 처벌은 그 다음이다.
지금은 저 재앙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무고한 영지민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제가 감시할게요.”
혹시라도 이 혼란을 틈타 에프라테 백작이 혼자서만 도망을 칠지도 모르는 우려가 있기에, 릴리가 스스로 그의 감시역을 자처했다.
전투의 분야에서는 문외한인 그녀가 저 거대한 뱀을 처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몽마의 능력을 살려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다.
“부탁할게. 에린. 한성아.”
“네. 언니.”
“네. 선배.”
“우리는…. 저걸 막자.”
“네. 언니.”
“알겠습니다.”
가능할까?
솔직히 세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똑같았다.
저 거대한 뱀을 상대로 하여 쓰러뜨리고, 사람들을 지켜내며, 살아남아서 무사히 복귀할 수가 있을까.
그 근본적인 의문에 대하여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뿐이었다.
키아아아악!
“……!”
기다랗고 굵직한 몸통을 가진 거대한 뱀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포효했다.
소리는 가늘고 진하며 귀청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강렬하다.
순간 몸을 떨게 할 정도로 강렬한 위압을 마주한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하아!”
그 포효를 떨쳐버리듯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에이라였다.
있는 힘껏 내지른 기합의 소리는 울부짖는 뱀의 커다란 포효에 저항하기엔 너무나도 작고 초라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는 확실한 영향을 주었다.
에린의 경우에는 둘째치고, 에이라와 차한성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백성들을 지키고 왕국을 위협하는 적을 물리치는 왕국의 기사들.
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언니! 가자!”
“응.”
기운차게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에린의 목소리에 에이라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신기하게도 재앙을 맞닥뜨리고도, 에이라는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 ◆ ◆
“이곳은….”
검은 구멍 속에서 나온 구미호는 어두컴컴한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공기는 매우 텁텁하여 먼지가 가득한 것이, 이곳이 지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빛이 통하고 있는 천장의 구멍을 응시했다.
쿵! 쿠우웅!
키아아아악!
거친 진동이 불규칙적으로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가느다랗고 귀청을 찢을 듯한 하이톤의 포효가 끊이질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이 장소의 지상은 난리가 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의 비명과 전장의 소리는 그녀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평소의 환경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 울음소리는…. 바실리스크인가.”
구미호는 곧바로 지상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마수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실리스크.
그것은 건장한 인간 남성쯤은 간단히 집어삼켜 버릴 수 있는 커다랗고 기다란 덩치를 가진 뱀의 형태를 한 마수이다.
체구가 작은 마수들은 모두 먹잇감에 불과하며, 최상위의 등급에 위치한 고대 마수들을 제외한다면 마계에서 바실리스크를 이길 수 있는 마수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체내에서 생성하는 독성 물질은 닿는 것만으로도 아무리 뛰어난 경도의 무기나 방어구조차도 녹여버리는 강한 산성을 보유하고 있고, 그 거대한 체구를 뒤덮고 있는 비늘은 평범한 공격으로는 뚫을 수 없는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정말로 무서운 점은 먹잇감을 사냥하는 습성이 굉장히 지성적이고 악랄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미호가 있었던, 멸망한 차원에서는 바실리스크라는 마수는 인간들에게 있어 악마들과는 다른 의미로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재앙 그 자체였다.
“나를 부르겠다고는 했지만…. 설마 정말로 가능할 줄이야.”
구미호는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빛이 들어오는 천장의 구멍을 응시했다.
자신이 넘어온 검은 구멍과는 정반대라도 되는 듯 대조되는 그 구멍 너머의 하늘은 굉장히 맑고 깨끗하다.
정말로 자신이 차원을 넘어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는 평행 세계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치에 벗어난, 섭리에 맞지 않는 이 기적과도 같은 현상을 가능케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 함께 세상을 멸망시킨 검은색 머리카락의 미친 마녀였다는 것이 굉장히 아이러니했다.
그녀가 대륙의 모든 인간들을 멸망시키고, 다른 차원에까지 넘어와 재앙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사랑해마지 않는 단 한 명의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미친 년.”
구미호는 마녀와 상호의 이익을 위해 협력관계를 맺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사상과 사고방식, 행동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사랑, 집착, 질투, 욕망 등의 감정들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차례 인간에게 마음을 내주었으나, 그 인간에게 배신당했던 쓰라린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미호는 더더욱 그런 감정으로 인한 행동 원리를 공감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서, 한 남자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마녀의 광기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구미호가 그녀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 음?”
마녀가 열어준 차원의 통로를 이용하여, 또 다른 가능성의 차원으로 넘어온 구미호는 곧바로 사전에 계획해둔 마녀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이동을 개시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각에 걸리는 익숙한 힘을 느끼고 행동을 멈칫했다.
“이건…. 나와 같은 신수의 마력?”
구미호는 자신과 같은 신수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느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