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20화 (703/730)

〈 720화 〉 720. 뱀의 꼬리(1)

* * *

은현에게 전달된, 흑랑단이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은 은현의 명령 아래에 일제히 페르니아스 왕국의 곳곳을 떠돌며 악마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던 흑랑단원 하나의 미처 주체하지 못한 성욕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왕국의 영토 곳곳을 돌아다니며 쉬지 않고 정보 수집의 역할에 매진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벌이자 마지막 자비와도 같았다.

한창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가 부패했던 시절, 귀족과 귀족들, 왕족들이 서로의 이권을 지키고 차지하기 위해 개판으로 치닫던 정치 싸움에서 줄을 잘못 섰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부패한 귀족들의 동아줄을 잡았고, 그들은 은현에 의해서 모조리 갈아치워 졌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해줄 권력조차 잃어버리자 그들은 물가에 떠내려가는 오리알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던 그들의 목숨을 끊지 않고 살려준 것은 은현과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의 자비 때문.

그 대신 은현은 그들을 험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막 부려먹었다.

현재 왕국의 영토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리들, 비밀스러운 회담, 관찰 대상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었고 누구와 잤는지까지, 필요한 정보라면 모두 은현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그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소모되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노동력이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노숙이 일상이기 때문에 마을이나 영지 안에서 바닥이 아니라, 여관의 객실에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때문에 끼니를 채울 수 있는 밥도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는 보존식이나, 질긴 육포 정도가 대부분.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은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런 그들이 은현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에게 목숨을 빚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가혹한 노동으로 들어오는 대가도 제법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보수가 좋다.

이전 부패한 귀족의 명령에 따라 누군가를 암살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더러운 일을 했을 때 비하면, 지금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그보다 더욱 큰 이유는, 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경비는 모두 은현 쪽과 공작 가문에서 부담을 해준다는 점이다.

숙식에 대한 금전은 물론이고, 필요한 장비나, 정보를 수집하는데 필요한 경비들을 필요한만큼 모두 은현쪽에서 지불해준다.

하지만 흑랑단원들은 그 점을 악용하여 부적절한 이익을 빼돌리는 멍청한 짓거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 짓을 한 이들이 은현이나 공작가문에 의해 어떠한 꼴을 당했는지,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만큼 지원은 해주겠다. 대우도 사람처럼 해주지. 대신 멍청하게 선을 넘는다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결말은 알아서 하라는 은현의 노골적인 경고였다.

부패한 귀족들에게 시달리며 잘못하면 그대로 버림을 받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에 지쳤고 패배했던 흑랑단원들은 은현이 내밀어준 줄을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 기회라고 확신했다.

적어도 그와 그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적대했고 칼을 들이미는 짓을 했지만, 그 과거를 청산하고 은현의 개처럼 일하는 지금이 이전보다 더 사람처럼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무를 수행하던 중, 고된 임무로 인해 심신의 피로가 가중되었던 한 흑랑단원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방법으로, 여자를 안고 성욕을 푸는 것을 택했다.

페르니아스 왕국 안에서 소문이 자자한 에프라테 백작령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정보의 수집 차원이라는 것은 순전히 핑계였지만, 아예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이 에프라테령은 본래 페르니아스 왕국은 물론 타국에서도 많은 귀족들이나 부호의 상인들이 찾아와 자신의 욕망을 해소시키고 그것을 대가로 영지를 부유하게 만드는 환락의 영지.

때문에 자연스레 많은 이들의 비밀스러운 밀담 장소로도 사용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왕국에 얽힌 비리 내용들도 이곳에서 수집한 정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에프라테 백작령은 흑랑단원들 사이에서는 정기적으로 들르는 영지였으며, 가끔가다가 고급 정보 또는 이른바 ‘꿀’이 떨어지는 장소와도 같았다.

흑랑단원 한 명은 이전에도 자주 왔었던 창관에 들러, 마음에 드는 한 창부의 하룻밤을 샀고, 밤을 즐겼다.

“이봐, 요즘 뭐 수상한 일은 없나?”

“수상한 일이요?”

“그래. 예를 들어…. 어떤 귀족들이 몰래 이 영지에 찾아와 몰래 밀담을 나누었다거나…. ”

창관에 들러 여자를 안는 손님은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평민들과 달리, 제법 부유하여 여유가 있는 귀족 층들이다.

그리고 창관의 위치와 인테리어의 수준, 상품으로 취급되는 창부의 외모와 테크닉 등 그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격이 비싸서 그만큼 부유한 고위 귀족 집안의 누군가가 왔을 가능성도 높다.

흑랑단원이 이용한 창관 또한 괜찮은 여자 한 명을 안는데 금화라는 거금이 들어갈 정도로 비싼 곳이었다.

그는 일부러 이런 곳을 골라들어왔다.

“아아. 손님. 정보 길드 쪽의 사람인가요?”

“뭐야. 딱 알아보네?”

“호호, 요즘 비슷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인가요.”

창부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우아하게 웃었다.

재물과 명예, 권력욕이 높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것을 과시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여자를 1시간 동안 안는 것에 평민 수십 명의 한 달 치 급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으로 자신은 다르다고,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우월함에 취하여 아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것이 귀족들의 습관.

그런 귀족들이 밝혀서는 안 되는 자신의 비밀과 치부를 창관에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이유는, 그들이 술과 여자에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안는 여자들이 이 창관을 벗어나면 아무런 능력과 권력도 없는 그저 그런 평민과 노예들이기 때문이다.

창부들에게 자신들의 비밀과 치부가 까발려졌다고 한들, 아무런 능력이나 권력도 없는 그녀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

하지만 창부들은 그런 무시를 받으면서도 생글생글 웃음을 유지하며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손님인 그들이 주는 돈과 팁으로 인생을 살아가야하는 그들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냥 알려드릴 수는 없겠는데요?”

흑랑단원을 손님으로 받은 창부는 생글생글 웃으며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흑랑단원에게 제시했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그녀의 태도에 피식 웃으며 흑랑단원은 자신의 바지 안에 들어 있던 돈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어 창부에게 던져주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던 금화를 받아낸 창부는 자신의 양손에 쥐어진 무게감 있는 금화를 보고 휘둥그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나, 이렇게나…많이요?”

아무리 많아봐야 은화 열 몇 닢 정도라고 생각했던 창부에게는 너무 많은 금액이었다.

“선금이야. 들은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서 금화를 더 줄 수도 있어.”

“…….”

자신있게 호언장담하는 흑랑단원의 눈빛을 본 창부의 얼굴도 달라졌다.

귀족들에게서 들은 치부와 비밀들을 이렇게 정보상에게 돈을 받고 팜으로써 대리 만족을 느낀다.

돈도 돈이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평민이나 그 이하인 노예라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귀족들이 자신이 제공한 정보로 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짜릿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화를 본 창부의 눈빛은 자신이 느낄 대리만족보다 큰돈을 손에 쥘지도 모른다는 욕심에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창부는 자신을 샀던 귀족들이 술에 취하여 몽롱한 정신 상태로 흘렸던 스스로의 치부들을 흑랑단원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정보들은 흑랑단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자신이 최근 어떠한 사업을 성사시켰는지, 하룻밤 동안 여러 창관을 들러 얼마나 많은 여자를 안았는지 등 그저 자신을 과시하는 것에 치중된 저열한 이야기들뿐.

“…반응이 별로네요.”

흑랑단원이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자, 창부는 금화를 받기엔 글렀다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음…. 이건 어떨까요? 저희 영주님이신 백작님에 관한 이야기인데.”

“말해봐.”

“저희 영주님께서는 정기적으로 노예를 구매하시거든요. 그것보다 시세보다 배나 되는 굉장히 비싼 가격으로요.”

“그래서?”

“그런데 구매한 노예들로 무엇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어요.”

“…그게 다야?”

“네.”

창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이미 금화를 포기한 그녀는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음 편히 아무런 말이나 늘어놓는 것에 불과했다.

“성별도, 나이도, 외관도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매달 정기적으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숫자의 노예를 구매한다니까요? 그리고 구매한 노예들은 모두 영주님의 저택으로 보내지죠. 그런데…. 그렇게 구매된 노예들이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못했어요.”

나이나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구매를 했다는 것은 좀 의외였다.

이야기로 들어보아 그저 성욕 풀이용으로 노예를 사거나 노동의 일환으로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영주의 저택에서 사용되고 있다거나, 어딘가로 팔려갔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가 일절 없다는 건 확실히 신경쓰였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매달 일정한 숫자의 노예를 구매했다는 것은 단순히 노예의 그 숫자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한 거지꼴을 한 남자가 길거리에 나타나서는 사람들에게 외쳤다고 해요. ‘영주의 저택에서 뱀을 봤다.’라면서.”

그는 길거리에 나타나기 며칠 전, 영주에게 구매가 되었던 노예 중 한 명인 노인이었다.

옷은 찢어져 알몸에 가까워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는지 비쩍 마른 몸이었다.

“…….”

흑랑단원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지금껏 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길러낸 어떤 특수한 후각이 냄새를 맡았는지 어떠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가 떠올린 가능성은 ‘제물’을 정기적으로 수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제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악마에 대한 존재였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악마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곧바로 은현에게 보고해야 하는 방침상, 흑랑단원은 의도치 않게 대박 정보를 얻어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마워. 얘기 잘 들었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흑랑단원은 돈주머니에서 금화 두 닢을 꺼내어 창부에게 주었다.

“…이 얘기가 그렇게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나요?”

갸웃거리는 창부의 물음에 흑랑단원이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네가 많은 사람을 구했을지도 모르는 정보지.”

“어머나.”

창부는 생각지도 못하게 기쁜 말을 들었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돈을 쓰셔도 되나요? 저야 좋지만….”

“괜찮아. 그거 내 돈 아니거든.”

“…네?”

“정확히는 우리 직장 상사가 쓰라고 준 경비거든.”

흑랑단원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경비처리가 될 예정인 ‘남의 돈’으로 즐겁게 사치를 부리는 것이었다.

제법 괜찮은 정보를 얻은 것에 만족하고 몸의 피로와 정신에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휘파람을 불면서 바지와 팬티를 입고 있을 때, 창부가 그의 손을 붙잡아 제지했다.

“응?”

강하게 끌어당겨 침대로 이끄는 창부의 행동에 어리둥절하면서도, 흑랑단원은 창부의 행동에 저항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침대 위에 다시 눕혀진 흑랑단원의 위로 창부가 올라탔다.

“제법 여자를 기쁘게 할 줄 아는 손님이시네요? 뭐 팁이긴 하지만…. 추가 요금도 받았다고 생각하고 서비스를 해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하하, 아주 좋지!”

흑랑단원은 반쯤 걸쳐져 있던 바지와 팬티를 다시 벗어던졌다.

◆ ◆ ◆

“…….”

보고서의 내용을 뒤늦게 자세히 읽어보았던 에린은 보고서의 가장 아래쪽에 쓰여 있는 추신의 글을 읽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ps. 다홍색의 살결이라는 창관을 꼭 찾아가볼 것. 서비스도, 대우도 최상급으로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가게.’

라는 쓸데없는 문구는 에린을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본래 이 에프라테 백작령은 흑랑단에게서 직접 보고 받은 은현이 오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많은 창부들이 은현을 보고 눈독에 들일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에린과 릴리가 일리아나를 끌어들이는 꾀를 부려 대신 오게 되었던 것.

즉 은현은 이 보고서에 적힌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정보의 출처인 ‘다홍색 살결’이라는 창관을 가게 됐을 지도 모른다.

설마 은현이 창부를 사고 그녀를 안을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지만, 그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 자체로도 부아가 치민다.

“…언니.”

에린은 파르르 떨리면서도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릴리를 불렀다.

“보고서 쓴 이 인간. 돌아가면 당장 잘라버리자.”

“…동감이야.”

릴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에린의 계획에 동참을 결심했다.

보고를 담당했던 흑랑단원은 자신의 본분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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