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9화 〉 719. 환락의 영지(7)
* * *
에이라와 함께 복귀한 숙소로 차한성은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기 위하여 먼저 자신의 객실로 향했다.
“흐억!?”
아무런 경계도 없이 문을 열고 내부로 발을 디디자, 방안에서 들려온 기겁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칫했다.
“……?”
차한성은 벙찐 표정으로 자신의 객실 안에 있었던 남자를 쳐다보았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그는 무언가를 잔뜩 경계하고 겁을 먹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이름으로 빌린 1인실에 생판 모르는 타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그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얼이 빠진 목소리로 자신의 객실에 있었던 기겁한 남자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정중하지만 당황의 감정이 가득 담겨있는 차한성의 물음에 우락부락한 남자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물음에 답하기는커녕 오히려 차한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왜, 왜 이러십니까!?”
자신보다 두 배는 커다란 체구를 가진 우락부락한 남자가 목숨을 구걸하는 광경은 당황스러운 차한성의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이거 놓으세요!”
차한성은 자신의 바지를 눈물 콧물을 잔뜩 묻히며 더럽히는 남자를 강제로 떼어놓고 객실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살려주세…! 아!”
필사적으로 차한성의 다리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남자는 차한성이 객실 밖으로 나왔지만, 함께 객실을 따라 나오지 못하고 우뚝 멈춰 섰다.
마치 방문을 경계선으로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우리 속의 짐승처럼, 그는 자신의 객실 안에서 공포에 젖어 벌벌 떨고 있었다.
“……?”
어째서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차한성은 혹시나 한 마음으로 다리만을 살짝 객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제발 살려주…!”
“헉!”
차한성은 남자가 미친 반응 속도로 다시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려고 하자, 황급히 다시 다리를 뺐다.
다시 객실의 방문을 기점으로 멈춰서 우뚝 굳어버린 남자의 반응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혹시라도 무슨 결계나 마법이 처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눈으로 객실 안을 훑어보았지만, 이상한 마력의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육안으로도 식별 불가능한 어떠한 장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상한 위화감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일 이상한 건 이 인간이지. 왜 이래?’
어째서 남자는 객실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걸까.
“…왜 방에서 못 나오고 계신 겁니까?”
“이, 이곳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누가?”
차한성은 곧바로 에린과 릴리를 떠올렸다.
자신의 객실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은 함께 복귀했던 에이라를 제외하면 그 두 여성 뿐이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쇼. 무엇이든,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발….”
“…….”
차한성은 일단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계속해서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기만 할 뿐, 의문의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남자의 애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세 사람이 있을 터인 3인 객실 쪽을 향했다.
두 번의 노크를 하고는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차한성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한성아.”
굉장히 떨떠름한 에이라의 목소리도 굉장히 신경 쓰였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여성 진 쪽의 객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쪽의 상황 또한 영문을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에린. 정말 미안해. 화 좀 풀어주지 않을래?”
“흥! 몰라! 정말 미워!”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주 단단히 삐친 에린과 곤란한 표정으로 에린을 애써 달래고 있는 릴리의 모습을 에이라가 영문을 몰라 곤란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에이라가 차한성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뇨. 그게…. 제 방안에 웬 멧돼지를 닮은 커다란 남자 하나가 있던데,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멧돼지?”
고개를 갸웃한 에이라와 마찬가지로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웠던 차한성이 동시에 에린과 릴리 쪽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에린은 이미 잔뜩 토라져 있었고, 릴리는 에린을 달래느라 에이라와 차한성에게 사정을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답답함에 보다 못한 에이라가 나서서 두 사람의 사이를 중재했다.
“두 사람. 일단 진정하고 사정을 좀 설명해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에이라 언니! 들어봐요! 저 진짜로 서운해요!”
에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에이라에게 자신이 릴리에게 서운함을 느낀 부분을 속사포로 털어놓았다.
“실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시작한 릴리의 이야기로, 두 사람은 그제야 대강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에이라와 차한성과 헤어진 두 사람은 곧장 모험가 길드로 향했고 ‘뱀’에 관한 정보를 구매하기 위하여 그곳의 바텐더와 협상을 하려던 차, 한 모험가 무리들과 시비가 붙었다.
“…역시나.”
차한성은 작게 중얼거렸다.
에이라의 아무런 일도 없이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에이라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에린은 자신에게 무례한 성희롱을 한 모험가들을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로 굴복시키고 바텐더에게서 정보를 공짜로 받는 이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릴리 언니가 혼자서 미끼를 자처하고는 그 남자들을 처리해버렸어요!”
“…응?”
차한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릴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릴리가 그런 과격한 수단을 사용했다는 것에 놀랐다.
그의 인식 속에서 릴리라는 여성은 그저 아이들을 좋아하고 남편인 은현을 위해 헌신하는 메이드였다.
그녀의 정체가 악마의 특성을 지닌 ‘반인반마(半人半?)’라고 할지라도,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차한성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모습이다.
“그게…. 뭐가 잘못됐나요?”
적들을 손쉽게 낚고 처리해버렸다면, 굉장히 좋은 결과가 아닌가.
에린이 왜 화가 났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차한성의 물음에, 에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리, 릴리 언니가 혹시라도 잘못되어버렸을 수도 있잖아요!”
스스로 머릿속에 떠오른 최악의 상상을 입에 담은 에린은 울먹이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혹시라도 언니가 잘못된다고 생각하면…. 흑, 그것만으로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에린에게 있어서 릴리는, 언니임과 동시에 자신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는 소중한 가족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불합리한 학대를 받아오면서 부모의 깊은 애정을 받지 못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뻔했던 찰나, 처음으로 가지게 된 가족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구성원.
그렇기에 그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 격렬한 슬픔의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에린…. 미안해. 정말로 미안. 앞으로는 꼭 에린에게 상담할게. 그러니까 뚝.”
“응….”
애써 달래주었던 릴리의 노력이 제법 통했던 것일까, 훌쩍이던 에린이 지금껏 거부하던 릴리의 손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눈가에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릴리는 자신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에린의 마음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주인님의 마음이 이런 걸까.’
에린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혼자서 행동에 나선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무모한 행동이 도리어 에린을 서운하게 만들었다.
이러나저러나 릴리는 자신도 이상한 곳에서 은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어, 화해가 되신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지만…. 그래서 제 객실에 있는 이상한 남자가 이 이야기와 뭔가 연관이 있습니까?”
“한성이, 너….”
차한성이 제법 훈훈하게 만들어진 분위기를 단숨에 깨버렸다.
에이라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차한성을 흘겨보았다.
눈치가 없어도 어떻게 이렇게 눈치가 없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에이라의 시선에 몸을 움찔 떨면서도 차한성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남자…. 이상할 정도로 겁에 질려있었던 것 같은데요.”
“심문이 필요할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심문?”
“그 남자. 아니 그 남자가 속했던 모험가 파티는 이 영지 안에서 마약을 풀고 있었어요. 그 대상은 주로 창관의 창부들인 것 같아요.”
“…….”
에이라와 차한성이 눈을 빛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릴리는 본의 아니게 월척에 가까운 정보를 물어온 것이 확실했다.
“저, 정말로 큰일이었잖아! 언니!”
에이라와 차한성과 달리, 에린은 릴리가 모험가들에게 위협당하여 마약에 중독되고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경악했다.
“에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미안하지만, 지금은 이쪽 이야기가 우선이야.”
하지만 에린도 결과적으로는 릴리가 무사한 현 상황, 에이라의 말에 강하게 반박하지 못했다.
“우으…. 이번만 봐주는 거야. 다음에도 무리하게 그러면 정말로 현이한테 이를 거야! 알았지!?”
“응.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릴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되자 세 사람은 릴리에게서 모험가들과 엮였던 사건을 자세히 풀었고 그녀가 얻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에린과 릴리에게 질 나쁜 성희롱을 한 모험가 파티는 이 영지의 창관에서 일하고 있는 창부들에게 마약을 풀어 중독시키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험가들에게 마약을 제공하고 뒤에서 조종하고 있던 이가 아무래도….”
“이 영지의 영주인 에프라테 백작…이겠네.”
“맞아요.”
에이라의 추측을 릴리는 곧바로 긍정했다.
이것은 릴리의 능력에 굴복한 모험가가 직접 자백한 내용이니 아마도 확실할 것이다.
“…이해가 안 돼요.”
이야기를 들은 에린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창부라는 여자들도 어쨌든 이 영지의 안에 있는 구성원이잖아요. 자기 영지 안에 속해 있는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려서 도대체 무슨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걸까요?”
“지금부터 그 자세한 걸 심문해봐야지. 한성아.”
에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차한성에게 눈짓했다.
“네. 선배.”
심문은 차한성이 자신이 주도하겠다고 자처하면서 빠르게 결정이 났다.
자신의 객실 안에서 나올 수 없는 영문을 모르는 제약에 걸려있는 모험가를 심문하는 것은 같은 남자인 차한성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에린과 릴리를 겁탈하려 시도했었던 저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안 이상, 그와 에이라를 한 공간에 두게 하고 싶지 않다는 남자로서의 속마음도 한몫했다.
에린이 감히 릴리를 겁탈하려 했다는 그 괘씸한 남자를 흠씬 두들겨 패주겠다며 씩씩거렸지만, 다시 릴리가 그녀를 말리면서 필사적으로 진정시켰다.
약 두 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차한성이 다시 여성 진 세 명이 있는 객실의 방문을 노크했다.
“접니다.”
“들어와.”
에이라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들어온 차한성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큼 심문이 힘들었던 것일까, 에이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심문 제대로 풀리지 않았어?”
“아뇨. 심문 자체는 잘 끝냈습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다 얻은 것 같고요. 그런데….”
차한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풀지 않고 릴리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릴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그…. 그 남자에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아예 멘탈이 붕괴되어, 녹아내렸다는 표현이 올바를 정도로 눈물 콧물을 쏟아내던 모험가의 얼굴을 떠올리니 차한성의 표정이 자연스레 찡그려졌다.
도대체 릴리에게 어떤 짓을 당하였기에 모험가는 그렇게도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일까.
“그냥 세뇌를 걸었을 뿐이에요.”
“세뇌…입니까?”
정신 조작계의 능력은 인간의 마법으로도 구현이 불가능하다.
마법사들 중에서 최고 수준에 다다른 일리아나 조차도 사용할 수 없는 영역.
악마들 사이에서도 서큐버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몽환의 권능’은 반은 서큐버스의 특성을 이어받은 릴리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한성도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신경 쓰이는 것은 도대체 ‘어떤 내용의 세뇌를 걸었는가?’이다.
“2m의 거리 내에 이성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세뇌요.”
“…네?”
“그리고 두드러기와 가려움을 유발하고 다시는 여성들을 겁탈하지 못하게 계속 거기를 긁게 만드는….”
그저 가까운 거리에 여성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아무리 긁어도, 손톱에 피가 배어 나와도 멈출 수 없는, 고통보다도 더한 괴로움이 전신을 지배하는 종류의 끔찍한 세뇌.
“그, 그만! 됐습니다! 이해했습니다! 더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릴리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재현하여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차한성은 황급히 릴리의 말을 막았다.
“…….”
차한성은 어째서 에린이 남성 모험가들을 끔찍한 세뇌로 굴복시킨 릴리를 걱정하고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면 에린은 언제 릴리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었냐는 듯 흡족한 반응을 보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언니! 아주 잘했어! 그런 놈들은 그런 꼴을 당해도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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