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18화 (701/730)

〈 718화 〉 718. 환락의 영지(6)

* * *

숙소로 정한 호텔에서 나와, 에린과 릴리와 별개 행동을 하기로 한 에이라와 차한성이 향한 곳은 이 에프라테 령을 관리하는 영주, 에프라테 백작이 있는 저택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르티아 기사단 소속의 기사라는 신분을 스스로 밝히자, 에프라테 백작은 두 사람을 저택 안으로 들여보냈다.

집무실에서 두 사람을 응대한 에프라테 백작은 생각보다 굉장히 젊은 영주였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모로 제법 수려하다.

“방문을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라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했다.

차한성과 함께 인사를 전하는 동안, 에이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가…에프라테 백작.’

그가 작위를 물려받고 에프라테령의 영주가 된 건 5년 전.

즉 그는 성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대 초반에 귀족의 권위와 책임을 물려받았다는 뜻이다.

생각할수록 의문이다.

본래 자본도, 인맥도 아무것도 없었을 터인 그가 막 성인이 된 청년의 시점에서 이 에프라테령을 백작령으로까지 성장을 시킬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일까.

정말로 그가 영지의 운영에 탁월한 재능과 사업적 수완을 보이는 천재라는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순수히 개인의 능력만으로 가능할 정도로 이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건 에이라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이라면 모를까…. 아니 그분도 혼자만의 힘으로 아르미타스령을 그렇게 발전시킨 건 아니시지.’

에이라는 순간적으로 은현을 떠올렸다.

그의 조력으로 인하여 아르미타스령은 현재 페르니아스 왕국의 수도인 페르닌을 가볍게 뛰어넘는 규모의 발전을 이룬 상태다.

하지만 그런 은현 또한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 아르미타스령을 성장시킨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를 믿고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귀족의 지위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령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에프라테 백작이 은현에 버금가는 수준의 능력을 갖춘 자라고 할지라도, 이 정도로 영지의 발전을 단기간에 이루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왕궁은 지금 에프라테 백작령에 수상한 정황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어.’

이전의 부패한 귀족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했던 개판의 왕궁이라면 모를까, 유리아 여왕의 통제하에 뼈가 빠지게 일하고 있는 지금의 궁정 귀족들이 내린 판단이라면 의심할 여지는 없다.

일단은 에이라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속내를 감추었다.

고개를 숙인 정중한 인사를 마치고 제 자세를 유지한 두 사람이 에프라테 백작과 시선을 마주했다.

“앉으시죠.”

“네.”

에이라와 차한성은 묵묵히 에프라테 백작의 권유에 따라 소파에 착석했다.

에프라테 백작이 작게 손짓하여 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집사는 미리 끓여둔 차 두 잔을 두 사람의 앞 테이블에 세팅해두었다.

“…….”

에이라는 잠시간 망설였지만, 그 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이 차 안에 독이나 약과 같은 종류가 들어가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쪽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상, 에프라테 백작은 그런 무모한 짓을 시도할 리가 없었다.

가능성은 굉장히 낮았지만, 혹시라도 예상을 뒤엎고 막무가내 식으로 일을 벌일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에이라와 차한성은 은현이 미리 만들어 주었던 만능에 가까운 사기적인 스펙의 해독약이 있다.

빠르게 전신에 독이 퍼지더라도 치사에 이르기 전에 약을 복용하기만 하면 되니 혹시 모를 사태의 대비도 완벽하다.

“잘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심스레 찻잔을 쥐고 차를 마시자, 차한성 또한 차를 마셨다.

전적으로 에이라의 판단을 믿고 있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굉장히 향이 좋은 차에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담백한 칭찬에 에프라테 백작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인상 자체는 굉장히 선한 인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선의인지, 선의로 포장된 가면을 쓰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에린이라면…. 알 수 있었겠지.’

타인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에린이라면, 지금 에프라테 백작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 정말로 선인지, 위선인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이라는 에린처럼 그런 특별한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지만, 그의 웃음이 가짜라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 또한 학창 생활을 보냈던 영애 시절에는 많은 가식이 오가면서 서로를 떠보고 헐뜯는 여성 사교계 안에서 많은 걸 경험한 사람이었다.

가식으로 치장된 웃음 따위를 알아차리는 건 일도 아니다.

단지 그것이 경계인지, 짜증인지, 분노인지 등 정확한 감정을 파악할 수만 없을 뿐이다.

“아르티아의 기사님들께서 저희 영지를 찾아주시다니…. 무언가 사건이 있었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에프라테 백작은 에이라의 예상대로 곧바로 자신의 영지를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에이라는 그와 마찬가지로 일부러 웃음을 띄우며 답했다.

“아뇨. 그냥 관광차 왔을 뿐이에요.”

“…관광. 그렇군요.”

가식적인 웃음으로 얼굴을 무장한 에이라는 자신의 말을 듣고 순간 입가를 딱딱히 굳힌 것을 간파했다.

에프라테 백작령은 관광 산업을 주력사업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영지가 아니다.

그런 영지에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했다고 하니 씨알도 먹히지 않을 핑계라는 것은 에이라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역시나 에프라테 백작의 표정에서도 웃기지도 않는 방문 목적이라는 걸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다 티가 났다.

게다가 이곳에 혼자도 아니고 같은 소속의 기사단원을 데리고 저택을 찾아왔다는 것이 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사실 저희가 에프라테령을 찾아온 이유는 어떤 사건의 비밀수사 때문입니다.”

“수사입니까?”

뒤늦게 정확한 사유를 들은 에프라테 백작은 안색을 딱딱히 굳히며 고민했다.

“어떤 사건을 말씀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 영지에서 특정 불명의 미확인 마약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마약.”

“이 마약에 연루된 조직을 검거하고 체포하는 수사를 진행하는데 앞서 영주이신 백작님께 미리 허락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저택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에프라테 백작는 바로 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마약과 범죄 조직은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인근의 지역에까지 퍼지기 쉬운 불안 요소로 가득한 안건으로 당연히 왕국 측에서도 민감한 대응을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거절할 명분도 크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상황 자체가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마약의 존재만 들통난 건가.’

어떤 경위로 아르티아 기사단에 마약의 정보가 들어가게 된 것인지, 몹시 신경이 쓰였지만, 에프라테 백작은 일단 속으로 안도했다.

“…알겠습니다. 수사권을 인정하는 문서를 써드리도록 하죠. 대신 영지 안에서 영지민들과 큰 마찰을 일으켜주진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네. 저희도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와 숙소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아직이시라면 저택의 손님용 객실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숙소는 잡아두었고 저녁은 나중에 식당에서 적당히 먹을 예정이거든요. 조금 백작령의 내부 분위기도 파악해두고 싶고 수사에 필요한 정보도 탐문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에프라테 백작은 마음 같아서는 불안한 요소인 에이라와 차한성을 가까운 곳에 붙잡아두고 수사의 진행 상황을 슬쩍 공유받고 싶었지만, 이미 사전에 다 세워둔 에이라의 계획을 들으니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괜히 그녀를 붙잡았다가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우려에 깔끔히 물러났다.

영지 안에서 마약에 대한 수사로 필요한 활동을 인정한다는, 에프라테의 인장이 찍힌 공식 문서를 받은 에이라와 차한성은 곧바로 저택을 나왔다.

“저어, 선배.”

“왜?”

“저 백작이라는 사람…. 뭔가 수상하지 않았나요?”

“수상했지. 노골적으로. 이 영지나, 영주인 그가 이상하다는 건 이미 이 영지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런데…. 저희의 목적이 비밀수사라는 걸 밝혀도 됐던 건가요?”

“악마에 관한 건 이야기하지 않았잖아.”

에이라도 노골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들을 모조리 에프라테 백작에게 술술 불었던 것은 아니다.

은현이 흑랑단을 통해서 수집한 보고서 안에는 에프라테령 안에 잠입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악마의 정보만 적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악마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의 근거로 다양한 정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마약이라는 키워드였을 뿐이다.

“물론 이 정보들을 이용해서 영지 안의 영지민들에게 탐문 수사를 하는 게 기본적인 정석이겠지만, 이쪽은 윤곽을 잡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이미 에린과 릴리가 움직여주고 있어.”

그래서 직접 에프라테 백작을 찾아가 떠봤다.

“아마 저쪽에서도 우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알게 될지, 불안하니까 계속해서 접근해올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태도와 반응을 보고 생각할 때, 그는 순수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합법적으로 영지를 운영하여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게다가 자신에게까지 표정과 태도를 감추지 못하고 동요한 것을 보면,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 그렇게 사업적 수완이 뛰어나 보이는 인물도 아니었다.

‘뒤에 누군가가 있어. 어쩌면…정말로 악마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를 처리하려고 사람을 보낼 수도 있지.”

성급한 결론이지만, 동요를 숨기지 못했던 에프라테 백작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도 않았다.

“선배…. 정말로 괜찮으세요?”

차한성에게는 정말로 그런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에이라가 다치게 될까 봐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걱정이 우스웠는지 에이라가 피식 웃었다.

“어머, 자신 없니?”

“네?”

“나도, 너도 기사야. 설마 저쪽에서 보낸 기습에 당할 정도로 내가 약해? 너는 그렇게 약하니?”

“그, 그건….”

“그리고 날 지켜준다고 했잖니.”

차한성은 에이라의 도발에 곧바로 답했다.

이런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리오드에게 직접 교육을 받고 그 힘들었던 훈련을 악착같이 버텨왔다.

순간 얼굴을 붉히며 동요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굳센 눈빛으로 그녀의 기대에 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드리겠습니다.”

“응. 듬직하네.”

아직은 검술의 분야에서 차한성은 에이라를 따라잡지 못한다.

훈련과 대련으로 많은 횟수를 그녀에게 도전했지만, 대등한 싸움을 이어갈지언정 차한성에게는 승리를 거머쥘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살상전을 전제로 하지 않는 대련에서는 에이라의 속검을 따라잡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보다도 약한 남자일지라도,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맹세를 확고히 다짐하고 있는 그의 대답은 에이라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에프라테 백작을 직접 찾아간 건 순전히 그를 떠보기 위한 것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어.”

“…그게 뭔가요?”

“이것 때문이지.”

에이라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 문서를 들어 올려 가리켰다.

써준 수사 권한을 인정한다는 에프라테 백작의 인장이 찍힌 문서다.

“…그게 그렇게 필요한 건가요?”

“우리보다는 에린한테 더 필요할 걸?”

“에린님이요?”

“에린은 릴리와 함께 정보 수집을 위해서 모험가 길드에 가 있잖아. 너는 정말로 에린이 아무런 사건도 없이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

“…….”

차한성은 답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녀의 예상은 일리가 있었다.

에린에게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정말로 곤란한 건 에린은 항상 어떤 사건에 휘말리기 쉽다는 점이다.

에린은 기본적으로 남자의 이성을 자극하는 훌륭한 외관을 가진 여자이며, 그녀의 몸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신수의 마력은 매혹의 성격을 띠고 있어 남성을 쉽게 홀린다.

이러한 문제로 스스로의 욕구를 참지 못하는 남성 모험가들과 문제가 있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나 이번에는 에린과 비슷한, 페로몬과도 같은 기운을 흘리는 서큐버스 악마, 릴리가 함께 행동하고 있다.

남자가 꼬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건 우리와 함께 수사하는 에린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방패야.”

“…….”

차한성은 뒤늦게 모험가들 사이에서 불리는 에린의 별명을 떠올렸다.

미친 개.

한번 화나기 시작하면 미친 개처럼 으르렁거리며 마구 날뛴다는 소문에서 만들어진 별명이다.

주로 자신에게 노골적인 성희롱을 해오거나, 은현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이들을, 대상의 지위나 등급을 불문하고 모험가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살을 내놓았던 일화들이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모험가 길드 안에서는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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