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6화 〉 716. 환락의 영지(4)
* * *
남자의 비명은 모험가 길드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순식간에 소란의 근원인 바텐더가 있는 테이블 바 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가녀린 체구를 가진 여성의 앞에 배는 커버이는 덩치를 가진 우락부락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기이한 광경이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무릎을 꿇린 남자의 검지와 중지를 움켜쥐고 가차 없이 역으로 꺾어버린 에린의 싸늘한 경고가 소란스러웠던 모험가 길드 건물 안을 정적으로 만들었다.
모험가 길드의 건물 안에서 모험가들끼리 싸움이 있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길드 안을 정적으로 물들만큼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소란의 중심에 가녀린 체구의 여성과 우락부락한 남성의 입장이 역전되어 있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그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이게 미쳤나!?”
한 모험가가 기겁한 목소리로 외치며 에린과 남성 모험가가 있는 쪽으로 달려들어 왔다.
에린은 아마도 자신이 손가락을 꺾어버린 이 남성 모험가와 동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동료 모험가의 주먹이 에린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어 왔으나, 이미 그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있던 에린은 고개만을 옆으로 비스듬히 틀어 그 공격을 피해냈다.
이윽고 동료 모험가의 정강이를 망설임 없이 걷어찼다.
“크악!?”
무방비의 상태로 반격을 허용 당한 동료 모험가가 정강이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다리를 들어 올리고 양손으로 감싸며 문지를 때, 에린이 반대쪽 정강이도 똑같이 걷어찼다.
“컥!”
이루말 할 수 없는 통증을 느낀 동료 모험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손가락을 역으로 꺾인 우락부락한 남성 모험가와 몸이 뒤엉켰다.
“이….”
순식간에 바닥을 나뒹구는 동료 모험가는 이를 갈며 양쪽 정강이 뼈의 통증을 참아내면서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에린의 발이 몸을 일으키려는 동료 모험가의 어깨를 거칠게 짓밟았다.
“큭…!”
몸을 일으키지 못한 동료 모험가는 신음을 내뱉었고 속으로 경악했다.
‘뭐…야. 이 여자…!’
같은 모험가일지라도 상대는 자신들보다 가녀린 체구의 여자.
하지만 어깨를 짓밟고 있는 여자의 발은 천근보다도 무거운 무게를 자랑하여 모험가의 몸을 짓누른다.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아까울 정도로 맵시가 강조되는 검은색 타이즈에 가려진 다리에서, 어떻게 저런 무시무시한 각력이 만들어질 수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의 동료인 남성 모험가의 손가락 두 개를 거침없이 부러뜨린 것부터가 이상할 정도의 근력이다.
체격의 차이는 명확할진데 이 정도로 힘의 차이에서 밀리는 이유는 단 하나.
신체를 강화하고 있는 마력의 밀도 차이.
자신들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마력의 차이는 경악을 넘어서 두려울 정도다.
“끄…으으…!”
어깨를 짓밟은 발에 점점 힘이 실리고 쌓이기 시작한 무게는 압도적인 폭력으로 변화하여 동료 모험가의 어깨뼈를 천천히 으스러뜨렸다.
콰직!
“아, 아…!”
커다랗게 입을 벌린 그는 격렬한 고통을 느끼다 못해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깔끔하게 모험가 둘을 쓰러뜨린 에린은 격렬한 감정의 무리가 느껴진 한쪽을 반사적으로 응시했다.
아마도 두 모험가와 같은 파티에 소속된 이들일 터.
“……!”
에린과 시선을 마주친 모험가들이 몸을 움찔 떨며 멈칫했다.
더 다가온다면 너 또한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만…! 그만…!”
애원을 해보아도 에린은 손과 발을 치우지 않았고 천천히 아예 손과 팔을 못 쓰게 만들 정도로 철저히 응징을 하려 했지만.
“거기까지 해줬으면 좋겠는데.”
바텐더가 에린과 모험가들 사이의 소란을 중재하기 위해 말을 걸어왔다.
에린은 모험가들의 손가락과 어깨를 부수는 행동 자체는 멈추었지만,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모험가들의 위협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시비는 저쪽에서 먼저 걸었는데요?”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길드 건물 안에서 더는 소란을 일으키는 건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 찐빵 같은 남자가 내 가슴을 만지려고 했어요.”
조용히 에프라테령의 ‘뱀’에 관한 정보만 구입하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자신의 일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자신을 추잡한 눈빛과 감정을 보내온 것이 에린의 심기를 거스르게 만들었다.
남편인 은현이나 다른 아내들, 에이라 같은 가까운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걸 정말로 싫어하는 에린은 모험가들의 추잡한 만행을 가만히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뱀’에 관한 정보. 필요하다고 했었지.”
“…….”
바텐더의 말을 들은 에린이 멈칫하며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두 모험가는 물론, 둘이 속한 파티 전원에게 1개월간 자격정지를 내리도록 하지.”
“그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품위를 떨어뜨리는 무례를 저지른 이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당연한 조치이지, 기분이 상한 에린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조치가 아니었다.
에린은 바텐더를 계속 응시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쪽에게는 ‘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데. 물론 무상이다. 참고로 이쪽에서 그에 대한 정보료는 금화 다섯 닢이다.”
“…….”
금화 다섯 닢.
아마도 본래 ‘뱀’의 정보에 대한 금액은 이것보다 쌀 터이다.
바텐더는 일부로 정보료의 금액을 높게 불렀다.
에린에게는 그렇게 고민을 할 정도로 비싼 금액도 아니라 까짓거 그냥 두 사람의 어깨와 손가락을 아예 못쓰도록 부러뜨리고 금화 다섯 닢을 지불해도 될 일이지만, 바텐더의 의도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무례와 소란의 원인인 모험가들에게도 합당한 처벌을 내릴테니, 이쯤에서 소란을 잠재우고 원만한 합의를 보자는 속뜻이 담겨있음을 이해한 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보가 금화 다섯 닢의 가치가 있기를 기대할게요.”
“…노력하지.”
바텐더는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금위계 모험가인 에린은 몹시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기록하고 정리해서 그쪽이 있는 숙소로 보고서를 보내도록 하겠다.”
“기한은요?”
“오늘 9시까지 보내주도록 하겠다.”
못해도 내일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아마도 더는 소란을 키우지 않고 참아준 에린에 대한 배려 때문이리라.
“…알겠어요.”
에린은 바텐더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언니. 가자.”
“응.”
바텐더에게 현재 자신과 릴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위치를 알려주고 릴리와 함께 모험가 길드 건물을 밖으로 나오면서 흘끗 자신이 무릎 꿇린 두 모험가들을 바라보았다.
“…….”
에린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그들은 각자 손가락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두려움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모험가 길드와 한참 떨어지고 나서야 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무거웠던 긴장을 풀었다.
곧바로 몸을 뒤로 돌려 뒤따라 오고 있던 릴리의 상태를 살폈다.
“후우, 언니. 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
“응. 괜찮아.”
릴리는 작게 웃으며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에린을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 분위기 너무 험악했지? 현이도 아닌 다른 남자가 내 가슴을 만지려 하니까 참을 수가 없어서….”
“괜찮아. 에린. 아주 잘했어.”
굉장히 폭력적인 광경에 혹시라도 실망하거나 두려워할 것을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칭찬을 해오자 에린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문했다.
“어, 정말?”
“응. 나쁜 건 그 사람들이었잖아. 에린의 그 마음은 나도 이해해. 주인님이 아닌 다른 남자가 내 몸을 만지려고 하면…. 정말로 싫지.”
자신의 심경에 공감을 해오자 지금껏 우려했던 감정이 이내 기쁨과 뿌듯함으로 뒤바뀌어 갔다.
릴리는 에린의 몸을 꼭 끌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주 멋있었어. 에린.”
“히히. 고마워!”
에린은 그렇게 사이좋게 스킨십을 나누면서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로 복귀를 하던 차, 릴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들이 걸어왔던 곳에 있는 모험가 길드 건물을 응시했다.
‘이렇게 끝날 리가 없겠지.’
릴리는 에린이 짓밟았던 모험가들과 달리 그들의 파티원들이 자신과 에린을 바라보았던 눈빛을 떠올렸다.
에린은 그들이 덤벼봤자 정면으로 부숴주면 될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지만, 릴리의 생각은 좀 달랐다.
‘더 수작을 걸어오기 전에 이쪽에서 싹을 잘라둘까….’
릴리는 조용히 결심했다.
“언니?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에린 뭔가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언니 요리면 나는 다 좋아!”
“기쁘네. 그럼 먼저 숙소로 가 있을래? 난 장 좀 봐올게.”
“어, 괜찮아?”
“당연하지.”
◆ ◆ ◆
“…이봐. 정말로 할 거야?”
“당연하지!”
“…….”
동료들은 우락부락한 체격을 가진 남성 모험가를 말리지 못했다.
남성 모험가는 신전에서 치료받은 자신의 손가락이 아직도 욱신거리는 것만 같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순식간에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던 낮의 굴욕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짜증과 분노를 들끓게 만든다.
“야. 정말로 괜찮겠냐? 그 여자 금위계 모험가라잖아!”
“이렇게 당하기만 하고 끝내라고? 난 그럴 수 없어.”
1개월 모험가 자격정지라는 처분은 사실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살면서 한치의 앞도 볼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 모험가라지만, 그것은 막 경험을 쌓기 시작하는 초창기의 신참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제법 경험을 쌓고 모아둔 돈도 있었던 그들은 한달 동안 모험가 일을 쉰다고 해서 빈곤에 허덕일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이 지금까지 제법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험가 활동 이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치만 모험가 길드에 찍혔잖아…! 여기서 더 눈에 띄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도 들킬지도 모른다고!”
“들킬 거 같으면 다시 본진을 옮기면 돼! 뭐가 문제야! 지금까지 안 들키고 잘해왔는데!”
이 모험가 파티는 다른 영지에서 몰래 마약을 유통해왔던 행동책이였다.
영지 안의 창관들을 들락이면서 창부들에게 마약을 복용시켜 환각 증세를 일으키고 천천히 중독시켜 마약에 의존하게 만든다.
정기적으로 제공받는 공급책이 확실한 이상 확실한 유통망만 구축해두면 제법 쏠쏠한 금액을 만질 수가 있으니, 그들에게는 모험가 활동으로 수입을 벌 수 없게 된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환락의 영지라고 불리우는 이곳의 창관과 창부들을 모두 마약에 중독시켜 자신의 고객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그들에게 마약을 파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만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더 나아가 취향에 맞는 창부들을 품에 안고 욕정을 쏟아낼 수도 있는 이점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모험가 파티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 전부터 모험가 길드에 찍혀버렸으니 조용히 몸을 사리면서 마약을 풀자는 의견과 당장이라도 에린과 릴리를 덮치자는 의견으로 모험가들 사이에서 갈려버린 것이 현 상황이다.
당연히 에린과 릴리들 덮치자는 의견 쪽이 더 많았다.
“뭐가 문제야? 문제가 생기면 어차피 영주님이 잘 무마시켜줄텐데.”
물론 아무런 대비도 없이 무작정 일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들의 뒤에는 영주가 있다.
“그리고 멍청하게 그 여자를 바로 덮치자는 것도 아니야.”
에린에게 어깨가 으스러졌었던 모험가는 그녀에게 당한 수모로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와 달리 머릿속은 차분했다.
에린은 자신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려야 하는 것은 에린이 아니다.
“그 여자와 함께 있었던 동행. 일단은 그년을 납치한다.”
아무리 규격이 다른 에린이라고 할지라도, 동행해온 여자를 인질로 납치당한 상태에서는 어쩌지 못하리라.
“그리고 납치하면 우리도 재미 좀 보고.”
“…흐흐.”
에린과 동행했던 릴리 또한 그녀 못지않은 엄청난 미모의 여성.
모험가들은 자연스레 약에 중독되어 자신들의 아래에 깔려 앙앙거리며 울음을 터뜨릴 에린과 릴리를 상상하고 추잡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어떻게?”
“기회를 봐야지.”
하지만 방법을 생각했다고해서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기라는 건 쉽지가 않다.
이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일 것이다.
두 사람이라고 하루 종일 붙어 다니지는 않을 터.
“망할 년들…. 일단 사흘 정도 쉬지 않고 범해주고 창관에 팔아버리겠어.”
“사흘? 그걸론 부족해. 일주일은 가지고 놀아야지.”
에린에게 직접 수모를 당한 두 모험가들이 이를 갈면서 복수심에 불을 태웠다.
“어?”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다른 동료 모험가들이 흘끗 창가를 바라보았고 자신들이 대화 주제로 삼고 있었던 여자를 발견했다.
“야. 저 여자….”
에린과 동행했었던 여자, 릴리가 장이라도 본 듯 먹거리를 잔뜩 담은 종이 쇼핑백을 품에 안고 홀로 어두운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혼자인 릴리를 발견한 동료 모험가들은 두눈을 번뜩이며 곧바로 먹잇감이 제발로 찾아왔다는 공통된 생각을 품으며 행동을 개시했다.
먹잇감이 제발로 찾아온 것이 정말로 누구인지,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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