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5화 〉 715. 환락의 영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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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에프라테 백작령은 5년 전까지 자작령이었으며, 바닷가에 인접한 지방 변두리의 소규모 영지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은 전 당주가 노환으로 별세하고 그 아들이 가문을 이어받으면서부터다.
이렇다 할 인맥이나 기반도 없었던 에프라테 자작은 가문이 가지고 있던 자산을 모두 투자하여 노예 시장 사업을 시작하였고, 도박 수나 다름이 없었던 노예 시장 사업은 뜻밖의 효과를 맞이하여 경제적인 호황을 맞이한다.
“그래도…그 짧은 기간 안에 승작을 인정받을 정도로 많은 공훈을 쌓고 성장하는 게 가능한 건가요?”
“글쎄. 불가능한 건 아니지.”
확실히 비정상적인 비약적인 성장과 승진인 것은 맞지만,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가문도 공작위로 승작을 받았으니까.”
승작을 통해서 가문을 성장시킨 상승세 자체는 에이라가 속한 올리비온 가문이 가장 비정상적인 수준이다.
본래 남작위만으로 이렇다 할 영지조차 없었던, 그저 이름뿐이었던 약소 귀족 올리비온 가문은 그 가장 낮은 남작위계에서 가장 높은 공작위계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언니네 가문은…. 조금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요?”
사실 그 여섯 영웅 중 한 명인 기사와 본래 백작 가문의 여식이었던 테레지나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에프라테 백작령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에이라는 현실적인 지적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후작위에서 공작위로 승작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모로 은현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단한 거야. 에프라테 백작령은…. 이렇다 할 뛰어난 무언가가 있었던 게 아니잖아.”
리오드처럼 강한 기사의 자질이 타고난 집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재산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이렇다할 고위 귀족들의 인맥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영지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확실히 이상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에프라테 백작은 정말로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난 인물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모르는 어떤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던 걸까.
“왕가에서는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았나요?”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던 릴리가 에이라에게 물었다.
“5년 전 승작이 결정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은밀한 거래가 오갔을 거라는 추측은 있지.”
5년 전의 페르니아스 왕국이라면, 은현이 개입하기 이전에 한창 귀족파와 국왕파의 파벌로 나뉘어 많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하여 서로를 헐뜯고 싸우며 견제를 하면서 부패해가던 시기다.
어쩌면 에프라테 백작의 승작에는 많은 뒷돈이 부패한 궁정 귀족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을 거라는 추측은 전혀 근거가 없는 추측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유리아 여왕 폐하께서는 부패한 귀족들의 모든 비리들을 밝혀내고 척결하는 강경한 대응을 하고 계시지 않나요?”
“의심 가는 정황이 포착됐다면 당연히 저희 쪽에서도 움직였겠지만…. 그런 정황이나 증거는 없었습니다.”
차한성도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릴리의 물음에 답했다.
그 또한 아르티아 기사단원의 소속이며, 이제 막 말단 신입의 티를 벗은 그는 제법 귀족들의 비리들을 밝혀내고 체포했던 실적과 경험도 쌓은 실무자였다.
“현재 에프라테 백작령의 주요 사업인 노예 시장은…. 좀 껄끄럽기는 해도 제대로 규정을 지키고 법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입니다. 안 그래도 유리아 여왕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대대적인 조사도 진행했었지만, 부정을 저지른 정황이나 증거는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차한성의 얼굴은 굉장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세요?”
“그냥…. 노예 시장이라는 사업 자체가 좀…그렇네요.”
낯설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껄끄러운 사업이다.
적어도 지구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았던 차한성의 기억 속에는 노예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생소한 단어였다.
그래도 페르니아스 왕국이 노예 사업을 합법으로 인정하고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인식의 차이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기를 약 20분.
네 사람은 자신들의 대화 주제였던 목적지, 에프라테 백작령에 도착했다.
성문 입구를 지키고 있는 위병들의 검문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 영지는 다수의 노예 상인들이 출입하는 곳이기도 하고, 환락을 즐기기 위해 다수의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영지이기도 하다.
에린을 포함한 네 사람은 모험가의 행색을 하고 있었지만, 제법 단정한 행색에 여유가 넘치는 태도는 자연스레 위병들의 의심을 피해갔다.
게다가 페로몬과도 같은 신비한 기운을 흘리는 에린과 릴리에게 시선을 빼앗겨 짧은 순간 이성을 흔들릴 정도.
본의 아니게 흘러나온 구미호와 악마의 마성(??)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 결과다.
“지, 지나가십시오….”
치명적인 매력에 홀려 시선을 떼지 못한 위병들이 두 여성을 흘끔거렸고, 에린과 릴리는 그런 시선에 익숙한 탓인지 당당하게 영지 안으로 입성했다.
모든 시선을 독차지해준 탓인지,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받은 에이라와 차한성이 조용히 둘의 뒤를 따랐다.
가장 먼저 호텔로 가서 숙소를 잡았다.
1인실과 4인실을 각각 하나씩 잡아 1인실은 유일한 남성인 차한성이 사용하기로 했고, 다른 4인실은 여성 쪽 세 사람이 사용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비싸네요.”
릴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시설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지만 4인실 하루 숙박료가 은화 스무 닢이라니, 비싸도 너무 비쌌다.
에이라가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불만을 덜어주었다.
“괜찮아. 기사단 쪽에서 경비로 처리할 거니까.”
“그냥 내가 내도 됐는데….”
금위계 모험가로 활동하면서 모아둔 돈도 제법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지출은 에린에게 아무런 타격도 되지 않았다.
“쓸데없는 낭비는 못써. 에린.”
“…응.”
돈이 그렇게 궁한 편은 아니었지만, 릴리는 쓸데없는 허영심과 사치로 가득한 소비를 정말로 싫어한다.
최소한의 편안한 시설에 비하여 숙소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은 그녀가 평소에도 얼마나 생활력이 강한지 보여주는 요소이다.
네 사람은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3시간 뒤, 다시 모이는 거야.”
“네. 알았어요. 언니.”
에이라가 차한성과 함께 이동을 시작하자, 에린 또한 릴리와 함께 정보 수집을 위해 움직였다.
“어디로 갈 생각이야?”
“음…. 일단은 모험가 길드?”
백작령이나 되는 규모의 영지라면, 당연히 모험가 길드 지부가 존재할 터.
모험가 길드라면 에린이 가지고 있는 금위계 모험가의 신분을 증명하면서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
당연히 그 혜택 안에는 정보의 매매에서 또한 효력이 발휘된다.
“그렇구나.”
릴리는 생각보다 막힘없이 술술 흘러가는 활동에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메이드로서 가사 생활과 보육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던 릴리에게는 이런 대외적인 활동 분야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에린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네.’
집에서는 자신과 은현을 비롯한 다른 아내들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어린 막내지만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린의 이미지는 금위계 모험가다.
마치 잘 키운 딸아이의 사회생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다.
이 영지의 지리를 잘 모를 터인데, 성큼성큼 앞으로 걷는 에린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모험가 길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가고 있는 거야?”
“응? 아니?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는 대강 짐작이 가.”
주위를 잘 살피면서 걷고 있는 에린의 시선은 길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행색이었다.
모험가들에게는 그들만의 특징이나 버릇 같은 것이 행동으로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나, 걸음걸이,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피는 태도 등 오랜 경험 속에서 몸에 밴 버릇들.
그것들은 무의식적에서 흘러나온 것이며 감추려고 해도 완벽히 감추기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모험가들이 유독 밀집된 장소에는 당연히 모험가 길드가 위치해 있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에린과 릴리는 시끌벅적한 소란이 가득한 모험가 길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자신들을 흘끗거리는 주변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에린은 문을 열었다.
모험가 길드 건물 안의 몇몇이 입구 쪽으로 시선을 옮겨, 모습을 보인 에린과 릴리를 관찰했다.
건물 안의 분위기는 모험가 길드라기보다는 주점에 가까운 인테리어로, 이렇다 할 접수대도 없었다.
백작령이라는 영지였지만, 같은 백작령인 근처의 티르니스령과는 달리 굉장히 낙후된 시설이다.
누군가는 매혹적인 두 여성의 외모에 이끌려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에린의 걸음걸이와 태도에서 만만치 않은 모험가라는 것을 간파하고 경계의 시선을 보내기까지 했다.
“…….”
“당당하게 걸으면 돼.”
다른 모험가들의 관심과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익숙지 않았는지 살짝 긴장한 릴리에게 에린이 조언했다.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하고 등을 곧게 펴고 당당히 걷기 시작한 릴리는 빠르게 모험가 길드 건물 내부의 분위기에 적응했다.
그녀 역시 많은 수난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기가 결코 약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길드 건물 안쪽에 위치한 기다란 바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안쪽의 남성 바텐더가 에린과 릴리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못 보던 미녀들이군. 이곳엔 처음이신가?”
“네. 처음이에요.”
“흐음. 손님인가? 아니면….”
남성 바텐더는 에린과 릴리의 행색을 살폈다.
곧바로 모험가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단순히 술을 마시러 온 손님이 아니라는 걸 간파했다.
아니나 다를까, 에린이 품에서 모험가 길드의 인장이 박혀있는 금색 휘장을 꺼내어 남성 바텐더의 앞에 내밀었다.
“이건….”
소지한 모험가가 금위계의 등급을 가진 모험가라는 것을 모험가 길드가 공인한 휘장이다.
“귀하신 분이 오셨군. 하지만…. 우리는 금위계 모험가에게 의뢰할만한 의뢰가 없는데? 아니면 의뢰를 하러 온 건가?”
이렇다 할 접수대 없이, 모험가들의 응대를 동시에 겸하고 있는 남성 바텐더는 어깨를 으쓱이며 난색한 태도를 보여왔다.
모험가들이 모험가 길드를 찾아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의뢰를 수주하고 완수함으로서 수입을 얻기 위함.
두 번째는 본인이 직접 의뢰를 맡기는 경우.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정보의 구매다.
에린과 릴리가 에프라테 백작령의 모험가 길드를 찾아온 이유는 이 세 번째에 해당했다.
“정보를 사고 싶어요.”
“흐음.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
“‘뱀’에 관한 소문. 있어요?”
“…….”
노골적인 키워드를 들은 남성 바텐더가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건….”
이윽고 에린의 물음에 무언가를 답하려던 찰나, 술에 잔뜩 취하여 걸걸한 목소리가 남성 바텐더의 말을 끊었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들은 누구신가!?”
대화를 끊은 것도 모자라, 에린의 어깨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두꺼운 팔뚝이 걸쳐져 어깨동무를 해왔다.
“…….”
중요한 흐름을 끊어버린 취객의 난입에 기분이 팍 상한 에린이 인상을 팍 썼다.
“흐흐.”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잃은 취객 모험가가 색정에 물든 추잡한 눈빛을 흘리자,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 에린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어깨동무한 취객 모험가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고 에린의 가슴을 만지려 할 때, 인내심의 한계에 달한 에린은 참지 않았다.
우락부락하게 굵은 검지와 중지를 움켜쥐고는 가차 없이 역으로 꺾어버린다.
우드득!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취객 모험가가 펄쩍 몸을 일으키자, 에린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회전시켰고 그대로 취객 모험가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내 몸에 손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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