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14화 (697/730)

〈 714화 〉 714. 환락의 영지(2)

* * *

레토나를 운전하여 에프라테 령 인근까지 도착하기까지는 약 4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말 편하네….”

본래라면 도보로 몇 주도 더 걸릴 만한 거리였으나 마차보다도 더 빠른 속도를 쉬지도 않고 달려온 아티팩트의 존재는 에이라에게 경이롭기만 했다.

심지어 심하게 덜컹거리며 불편했던 마차와 달리 안락한 승차감은 탑승자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제작하였는지 신기할 정도.

“히히. 그쵸? 현이는 정말 대단해요!”

“…응. 그렇네.”

함께 레토나 안에 타고 있는 에린이 밝게 웃으며 자신의 남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몇 번이고 들었던 자랑이었지만, 두 눈을 반짝이며 빛을 내면서 늘어놓는 에린을 제지할 수 없었던 에이라는 그저 쓴웃음만을 지어 보였다.

이윽고 천장 부근에 설치된 백미러 쪽에 시선을 옮겼다.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능숙하게 레토나를 운전하고 있는 차한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딘가 그리운 향수라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묘하게 들뜬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두 번째네.’

에이라가 이렇게 레토나라는 마력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보는 것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 모그라프 령에서 신입 기사들의 훈련을 통솔했던 소대장 임무를 맡았던 당시, 단원들을 대피시키고 홀로 고립되어 있을 때, 에린과 아니에스 그리고 차한성이 구하러 와주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는 마수와 언데드들이 모그라프 령으로 계속해서 진군해오고 있었던 급박한 시기였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에이라에게 지금의 차한성은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한성이는 어떻게 이 아티팩트를 사용할 줄 아는 거지?’

에이라가 아는 한, 이 레토나라는 아티팩트는 은현이 혼자서 특별히 제작한 마도구다.

당연히 조작 방법 같은 것을 익히고 숙달될 시간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한성은 처음부터 이 아티팩트를 숙련된 사용자처럼 잘 다루고 있었다.

레토나를 운전하는 차한성은 마치 레토나의 구조와 기동 방식에 대하여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숙련자처럼 느껴졌다.

그가 생전에 지구의 기억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전생자라는 비밀을 모르고 있는 에이라에게는 의문투성이뿐이다.

‘은현님은 그 이유를 알고 계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 아내인 에린에게는 단호하게 금지시키면서 차한성에게 레토나의 운전을 맡겼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은현과도 묘하게 사이가 좋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을 때 기묘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에린이 질투를 느꼈을 정도였으니, 둘 사이에 어떤 비밀로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터.

‘나는 모르는 게 많네….’

차한성이 아르티아 기사단에 입단하고 지금까지 선배와 후배로서, 미묘하게 형성된 남녀 관계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에이라는 정작 차한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언니? 왜 그래요?”

홀로 쓴웃음을 짓고 있던 에이라의 감정을 읽은 에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 작은, 미묘한 서운함을 느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물어본 에린의 물음을 들은 차한성은 백미러를 통해서 뒷좌석에 앉은 에이라의 안색을 살폈다.

“선배? 혹시 멀미하세요?”

“으, 응…. 글쎄…. 조금 피곤한 것 같아.”

에이라의 대답을 들은 차한성은 살짝 고민했다.

머릿속으로 기억해둔 지도 속의 목표지점과 현재의 위치를 대입해보며 앞으로 남은 거리를 계산해보니, 조금 쉬었다가 가기도 애매한 거리다.

“이대로 한 20분만 더 가면 처음 정해두었던 목적지까지는 도착해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응.”

에이라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에린은 곧바로 에이라의 얼버무림을 눈치챘다.

어째서 거짓말로 얼버무리며 차한성의 걱정을 스리슬쩍 넘기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의아한 반응을 보였지만 얼버무렸다는 것 자체가 이 화제를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 ◆ ◆

목표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부터 네 사람은 도보로 이동을 재개했다.

이번에 에프라테 령에 가는 것 자체가 악마의 존재를 확인하고 악마가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경우 근절하는 것이 목표.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잠입 수사의 성격을 띄고 있는 이번 일의 성격상 레토나라는 아티팩트 자체가 너무 눈에 띄었다.

당연히 에이라와 차한성 또한 같은 이유로 기사 갑옷을 벗어야만 했다.

최소한의 무장으로 허리춤에 검만을 착용한 일행은 제법 모험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좀…불편하네.”

릴리는 처음 착용해보는 래더 아머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시대에 메이드 자체는 그렇게 드물지 않은 편이었지만, 메이드를 대동하는 모험가는 보통 없기 때문에 그녀 또한 모험가처럼 행색을 차려입어야만했다.

타이트한 가죽바지와 셔츠를 착용하고 그 위에 래더 아머를 착용한 자신의 모습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괜찮아. 언니! 잘 어울려! 처음 입어봐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야!”

“그럴까…? 가슴 쪽이 너무 끼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부위를 언급하자, 밝게 웃고 있던 에린의 얼굴이 그 상태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건 익숙해질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릴리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장비 자체가 에린이 자신의 사이즈에 맞춰 구매한 장비들이다.

체격 자체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가슴의 사이즈가 조금 더 큰 릴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우으….”

에린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묘하게 패배감을 느꼈다.

다른 아내들 중에서 가장 가슴 사이즈가 작다는 것을 신경 쓰고 있는 에린에게 데미지를 주기에는 충분한 말이다.

“크흠…!”

두 사람의 민망한 대화를 듣고 있던 차한성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의 귀가 빨개진 것을 보면 이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남성인 그가 필터링이 없는 이 대화에 얼마나 민망함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조금 불편해도 아예 못 참을 정도는 아니야. 괜찮아. 에린.”

“응….”

“에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본의 아니게 데미지를 주는 말을 했으나, 자각이 없었던 릴리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에린. 준비 끝났…. 왜 그래?”

가장 마지막으로 옷을 갈아입고 온 에이라가 풀이 죽고 고개를 떨군 에린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에린은 무의식적으로 에이라의 가슴 부근에 시선을 옮겼다.

눈으로 스캔을 끝낸 에이라의 가슴은 자신보다 작았다.

역시나 자신을 비롯한 은현의 아내들이 평균 여성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편이라는 것을 재차 확신했다.

“흐윽, 언니이…!”

느닷없이 어리광을 부리듯 자신의 품에 안겨오는 에린을 보고, 에이라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에린의 반응이 의아했던 에이라는 차한성에게 경위를 물었지만, 차한성은 에린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분위기가 일단락되고, 네 사람은 이동을 개시했다.

“에이라 언니.”

“응?”

“에프라테 령은 어떤 영지에요?”

“음….”

에린의 질문에 에이라는 잠깐 고민했다.

“전에도 말했었지만, 나도 에프라테 령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니야. 에프라테 백작과도 직접적으로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에프라테 백작은 페르닌이나 궁정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사람도 아니라고 알고 있어.”

에프라테령은 국경의 끝에 있는 바다와 인접해 있는 티르니스령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영지다.

당연히 수도인 페르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지방의 변두리 영지이기도 했다.

“백작…. 이군요.”

“백작위로 승작한 건 한 4년 전쯤이었나? 현재 페르니아스 왕국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가장 최근에 출세한 귀족이야.”

“어…. 그거 대단한건가요?”

“흔한 일은 아니지.”

보통 귀족의 작위가 승작되었다는 것은 당대의 귀족이 그만한 공훈을 쌓았다는 뜻이며 가문의 위상과 명예를 드높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많은 칭송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일이기도 했다.

즉, 현 에프라테 백작은 가문의 위계를 한단계 상승시킬 정도로 커다란 공훈을 쌓는 업적을 이뤄낸 수완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 공훈이라는 걸 쌓았는데요?”

“영지를 눈에 띄게 발전시켰지. 그리고 왕가에 납세하는 세금의 양도 세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들었고.”

왕국의 영토에 속해 있는 영지의 발전은 곧 왕국의 국력 발전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왕가에 납부하는 세금의 양을 늘려 국력 증진에 크게 기여하기까지 했다.

단기간도 아니고 4년이라는 시간동안 꾸준히 발전을 해온 에프라테 백작령의 기여는 지방 변두리 영지치고는 굉장히 높은 편이다.

“음…. 에프라테 백작은 어떻게 영지를 발전시킨 거예요?”

빠르고 가파르게 성장을 시켰다는 것은, 그 시작점은 굉장히 작고 왜소한 영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상태에서 도대체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영지를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

에이라는 에린의 호기심이 담긴 질문을 계속 받던 중, 살짝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에린. 에프라테 령이 다른 이름으로 뭐라고 불리고 있는지 기억하지?”

“네. 환락의 영지? 어….”

에린의 머릿속으로 루난이 해주었던 말이 불현듯 떠올라 스쳐 지나갔다.

­유흥으로 유명한 도시다. 그리고…많은 창관들이 있는 영지이기도 하지.

에이라가 인상을 찌푸린 이유를 깨달았다.

“그…. 창관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었던 건가요?”

“그것도 주요 수입원 중 하나겠지만….”

창관이나 성매매 자체는 딱히 불법적인 사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떳떳한 사업도 아니었기 때문에 에이라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지만, 딱히 범죄나 불법에 연루된 일도 아니고 남의 영지에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에린. 에프라테 령의 창관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대부분이 어떤 신분인지 알지?”

“네. 대부분 노예라고 들었어요.”

큰 죄를 저지르거나 막대한 빚을 졌으면서 미처 변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팔면서 노예로 전락한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은 이미 들었다.

에프라테 백작령에는 그런 노예들의 숫자가 창관의 개수에 비례한만큼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아….”

그리고 에린은 에프라테 백작령의 주요 사업이 무엇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챈 것은 에린 뿐만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차한성과 릴리 또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었다.

“…노예 시장이군요.”

에린은 굳은 얼굴로 짧게 중얼거리는 릴리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부모의 도박중독으로 인해 노예로 전락하고 곳곳에 팔리기를 반복하다가 끝내는 흑마법사의 실험에 의해 반인반마(半人半?)가 되어버린 그녀의 암울한 인생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에이라는 부끄러움과 혐오 등 다양하게 얽힌 복잡한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며 릴리의 말을 긍정했다.

“맞아….”

에프라테 백작령의 주요 사업은 노예 시장.

이른바 사람 장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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