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12화 (695/730)

〈 712화 〉 712. 대리 영지 운영(2)

* * *

“거절합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오랜 고민 끝에, 은현이 내놓는 거절의 의사에 상인은 침착하게 이유를 물었다.

일단은 그 또한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

이런 사업 제안을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던 그는 내심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상인은 은현이 그저 귀족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만큼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들려온 소문이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은현은 제법 사업가로서의 수완인 있는 남자다.

“일단 첫 번째 문제는 시설 문제입니다.”

“경마장을 신설할 부지가 없는 건가요? 경마장으로 적합한 장소들도 미리 물색해 왔습니다만….”

실제로 상인은 그 후보지들을 미리 제시하며 공작 가문과 교섭하면서 경마장이 들어설 장소를 확보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이자 시작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뇨. 경마장 자체는 저희 쪽에서도 그렇게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아르미타스령은 건설 쪽 분야에 특화된 노동자들이 많으니까요.”

“그렇죠.”

상인은 은현의 의견에 동의했다.

상인이 이 아르미타스령에 경마장을 설치하자고 제안을 해온 첫 번째 이유는 현재 페르니아스 왕국 내에서 수도인 페르닌보다 더 유동인구가 많아 활기가 넘친다는 점이다.

많은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하는 이 영지는 경마장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조건 중 하나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영지가 보유하고 있는 뛰어난 건설 기술이다.

아르미타스령에는 무언가를 제작하고 건설하는 분야에 특화된 드워프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

그들은 평범한 인간 건설업자들보다도 배는 튼튼하고, 배는 빠른 속도로 건설을 완공한다.

경마장 같은 커다란 시설을 건설하기에는 드워프들의 건설 기술이 절실히 필요했다.

“문제는 경마장이 아닙니다. 경기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게 뭔가요?”

“그야 시설을 제외한다면, 경마장을 책임지고 운영해줄 관리자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

상인은 뒤늦게 은현이 지적한 부분을 눈치챘다.

경마장의 운영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운영 노하우와 방법들은 교육과 실전 운영을 통해서 조금씩 경험을 쌓게 되기 마련이고 처음에는 삐걱거리고 차질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질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건 존재하기 마련이다.

바로 전문 분야에 속한 직종이 그러하다.

“…말들과 기수들이군요.”

“맞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주에 뛰어줄 말들은 그저 이곳에 있겠다고 되는 게 아니기도 하죠.”

경주에 출전하는 말들은 지속해서 관리를 해줘야만 한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영양가 높은 사료와 환경을 고루 갖춘 마구간의 필요성 또한 대두된다.

그리고 이것이 출전하는 말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투입되는 예산은 경마장 자체를 개설하는 것보다 배는 더 들어갈 것이 틀림없다.

“출전하게 될 말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셨나요?”

“한…. 40마리 정도….”

“너무 적습니다. 적어도 200마리 정도는 생각하셨어야죠.”

1주일에 한 번 정도의 주기로 경마를 주최한다고 하더라도, 40마리 정도로는 이 대회 자체가 너무 빨리 소모된다.

“그, 그렇게나 많이…?”

“레이스 자체에도 등급을 매기고 다수의 말들 사이에서 상위의 성적을 거둔 말들을 모아 배치하고 레이스를 벌이는 식으로, 가장 빠른 말을 가려내는 식으로, 최대 1년 정도를 주기로 구성을 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마라는 컨텐츠 자체를 소모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중은 흥미를 잃어버리겠죠.”

“…….”

상인은 고민했다.

그는 그저 경마라는 컨텐츠 자체를 만들고 활성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레이스라는 경기가 성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과 돈이 최소한으로 들어가는 것에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스케일이 너무 적었다.

은현은 어떻게 하면 경마라는 컨텐츠를 최대한 길게 유지하여 돈을 뽑아먹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1년의 시간 뒤, 사람들은 출전한 200마리의 말들 중 어떤 말이 우승을 차지하여 가장 빠른 말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게 될까.

머릿속으로 그것을 상상하자 상인의 가슴 속에도 호기심과 기대로 흥분이라는 불길이 점점 불을 지펴졌다.

“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에린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거절보다는….’

상인이 들고 온 경마장 사업 제안을 거절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부족한 점들을 지적하여 보완하라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거절의 말을 들었던 상인은 아까보다도 더한 의욕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였다.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마치고 쏜살같이 달려나간 상인의 뒷모습은 굉장히 기운찼다.

“후우.”

공작 가문을 찾아온 많은 이들의 접견을 마치고 은현은 의자에 등을 기대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약 3시간 만에 쏟아져 오는 민원 문제와 사업 제안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야 맞이하는 쉬는 시간이었다.

“주인님. 홍차입니다.”

“아, 고마워.”

은현은 책상 한쪽에 세팅된 찻잔을 쥐고 따뜻한 홍차를 입으로 옮겼다.

그윽한 향이 가득 퍼지며 업무로 지쳐 있던 심신을 풀어주는 훌륭한 맛이다.

“방금 전…상인의 제안, 정말로 받아들이실 건가요?”

휴식을 취하는 동안 릴리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글쎄. 남은 건 그 상인이 어떻게 다시 준비해서 오느냐에 따라 달렸지.”

상인의 열의나 아르미타스령의 인구, 그리고 드워프의 기술력이 있으면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는…. 솔직히 주인님이 받아들이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응?”

은현과 같은 차를 마시고 있던 에린이 살짝 놀라며 릴리를 바라보았다.

항상 은현이나 다른 아내들이 하는 일들에 크게 불만을 품지 않았던 릴리지만, 이번만큼은 그닥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도박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은현은 쓰게 웃으며 릴리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경마는 여러 마리의 말들을 출발선에 배치해두고 특정 거리를 빠르게 달린 뒤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주 속에서 먼저 들어온 순서로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

경마장을 찾아온 손님들은 그 순위를 예측하고 돈을 베팅함으로서 누군가는 돈을 따고, 누군가는 돈을 잃는 구조.

무엇으로 포장을 하든 경마의 기본적인 운영은 도박이다.

“…….”

에린도 릴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홍차를 홀짝였다.

릴리는 도박을 싫어한다.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혐오하고 경멸하는 수준.

그녀의 가정이 아버지의 도박중독으로 인해 파멸했기 때문이다.

“물론 도박이라는 것이 나쁘기는 해도 경마라는 게 그렇게 나쁜 점만 가득한 건 아니야.”

“…….”

은현의 설득에도 순순히 표정을 풀지 못하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도박을 싫어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도박의 나쁜 점은 사람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도 모자라,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준다는 점이지.”

“…그렇죠.”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나락에 빠지는 과정을 스스로 참고 절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경마 자체에 베팅을 할 수 있는 액수를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으로 제한할 거야. 생각하고 있는 금액은…. 동화 10닢 정도가 되려나.”

간단한 한 끼 식사의 금액으로 제한을 해둔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억제제가 되리라.

“인생이나 목숨을 거는 그런 도박이 아니라, 순수하게 즐겨줄 수 있는 오락의 개념으로 경마를 즐겨줬으면 좋겠어.”

은현이 생각하고 있는 경마란 그렇다.

실제로 제안을 해왔던 상인 또한 순수하게 레이스를 즐기는 경주마들의 치열한 경쟁을 보고 싶어서 제안한 것에 가깝다.

“주인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릴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나쁜 것은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끌어내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악의적인 의도일 뿐이지, 도박은 그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순전히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은 도박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어쩔 수 없이 릴리가 경마장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되자 분위기는 한껏 누그러졌다.

“자, 그러면 충분히 쉬었고, 다시 일을 시작해볼까?”

“응. 빨리하고 집에 가자! 일레이나가 보고 싶어.”

요즘 들어서 일레이나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에 맛을 들린 에린이 일찍 퇴근하고 싶어서 의욕을 불태웠다.

◆ ◆ ◆

해가 지기 시작하고 쌓여있던 서류들을 모두 마무리했다.

접견 신청을 해온 손님들의 응대도 거의 마쳤고 이제 퇴근만이 남아있을 때, 일정에는 없었던 인물이 한 명 더 찾아왔다.

“바쁜 와중에 미안하군.”

“…….”

드디어 퇴근이라고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던 에린은 그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은현의 아래에서 정보 수집을 전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흑랑단의 수장, 루난이었다.

에린은 이전부터 불편한 관계로 엮이었던 루난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는 이유는 과거의 앙금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퇴근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이내 은현이 루난에게 물었다.

보통 수정구슬을 통해서 연락을 취해오는 루난이 이렇게 직접 공작 가문 저택을 찾아와 은현을 만나러 왔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용건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차 드세요.”

“감사히 받지.”

자리에 앉은 루난은 릴리가 끓여준 홍차로 목을 축이고 곧바로 화제를 입에 담았다.

“에프라테라는 곳을 들어본 적이 있나?”

“에프라테?”

구체적인 지명의 이야기가 나오자 은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알지. 티르니스령 인근에 위치한 영지잖아.”

“다른 이름으로 ‘환락의 영지’라고도 하지.”

“…환락의 영지?”

에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지명에 대해서 크게 견식이 없는 에린에게 루난이 설명을 해주었다.

“유흥으로 유명한 도시다. 그리고…많은 창관들이 있는 영지이기도 하지.”

“…아.”

‘창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에린도 잘 알고 있었다.

불편해진 에린의 시선을 뒤로하고, 루난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에프라테가 어쨌는데?”

“그곳에 악마가 숨어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악마라는 단어를 들은 은현의 미간이 단숨에 좁아졌다.

얼마나 중요한 안건인지를 깨달은 에린이나 릴리도 불편했던 표정을 지우고 진지하게 임했다.

악마와 관련된 문제는 은현과 아내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급선무로 해결해야 하는 안건이었다.

“…사실이야?”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그 소문 자체는 입수했다.”

“네 생각은 어떤데?”

“적어도 신빙성은 있어 보인다.”

대륙 전체의 곳곳에서 퍼지고 있는 악마의 소문 중 대부분은 헛소문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페르니아스 왕국의 지역 곳곳에 퍼져있는 악마들의 소문들을 모조리 수집하고 그중에서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흑랑단의 주된 일이었다.

그런 일을 담당하는 루난이 어느 정도 신빙성을 보장하는 이야기이니, 최소한 움직여야 할 필요성은 있어 보였다.

“이건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의 보고서다.”

“과연.”

은현은 루난이 가져온 서류뭉치들을 받았다.

“알았어. 앞으로도 수고해줘.”

“그러지.”

루난은 본인의 용건만을 전달하고 빠르게 저택을 나왔다.

곧바로 보고서의 초반 부분을 대강 훑어보고 있던 은현이 두 아내의 시선을 느꼈다.

“일단 집에 갈까?”

하지만 두 아내가 물끄러미 은현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퇴근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현아.”

자리에서 일어나 루난이 전해준 보고서를 챙기던 은현의 팔을 에린이 붙잡았다.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은현에게 물었다.

“그 에프라테라는 곳. 꼭 가야 해?”

“가야지. 악마가 그곳에 정말로 숨어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문제야.”

“안 돼! 절대로 안 돼! 차라리 나 혼자 갈래!”

“…뭐?”

묘하게 확고한 주장을 해오는 에린의 태도가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은현은 적잖게 당황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주인님. 그런 곳에 주인님을 보낼 수는 없어요.”

한때 노예였던 시절에 창관에서 일했던 릴리는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창관에서 몸을 파는 일을 하는 창부들은 잘못된 범죄를 저질러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지거나, 인생이 꼬여 나락까지 떨어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고 꼬인 인생을 푸는 방법은 대부분 손님으로 찾아온 돈 많은 손님에게 엉겨 붙어서 스스로를 사달라고 어필을 하는 것뿐.

비록 몸을 파는 창부로서 일했던 건 아니지만, 그곳의 여성들은 일반적인 다른 여성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는 릴리는 은현을 그런 곳에 보낼 수 없었다.

은현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검소한 복장과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지만, 제법 잘생긴 외모와 복장을 가지고 있어 여성들의 호감을 사기 쉬운 편이다.

그런 은현이 환락의 거리에 발을 들이민다?

꼬인 인생과 팔자 한번 고쳐보겠다고 은현에게 달라붙을 창관의 여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갔다.

그 꼴을 절대로 볼 수 없었던 릴리와 에린은 은현을 설득해야만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릴리는 아내들끼리만 가지고 있는 전용 회선으로 곧바로 일리아나에게 통신을 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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