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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711화 (694/730)

〈 711화 〉 711. 대리 영지 운영(1)

* * *

에레니움의 복구작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불철주야(???) 노력하는 드워프들의 주도하에 도시의 복구작업은 척척 진행되었으며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욱 깔끔하고 튼튼한 구성으로 재건된 도시 내부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많은 시민이 죽음을 맞이한 대사건이었기에 그 피해의 당사자들에게는 그 상실과 슬픔을 이겨내기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이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그럼 저희 먼저 가서 짐 풀고 저녁 준비하고 있을게요. 빨리 오셔야 해요?”

배시시 웃는 에린이 엘레노아의 품에 꼭 안기고는 애교를 부렸다.

여동생처럼 어리광을 부려오는 에린의 그 애교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엘레노아는 웃으며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빨리 끝내고 갈게.”

게이트를 설치하여 복귀 준비를 마쳤지만, 엘레노아는 은현이나 에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신전의 안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현 교황이 병상에 누워 제대로 된 업무를 하지 못하는 와중, 현재 신전 안에 불어오는 바람의 중심이 된 인물은 엘레노아였다.

‘신성회수’라는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을 가진 그녀는 고위 귀족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신전 내부의 빠르게 인사를 장악했으며 다양한 안건과 제도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물론 아니에스나 다리안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제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아니에스였다.

엘레노아는 어쩔 수 없이 일을 마치고 게이트를 타고 늦게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계속해서 유지해둘 예정인 게이트가 철거되지 않는 이상, 던전 주택 안에서 에레니아 신성국 사이의 왕래는 시간과 거리의 제약 없이 얼마든지 왕래가 가능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여지도 없다.

아직 일이 남은 엘레노아를 두고, 은현과 에린은 먼저 집으로 복귀했다.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 문을 넘어서자, 익숙한 주위의 환경을 자각한 에린은 그리운 향수를 느꼈다.

익숙한 집안의 구성과 배치, 익숙한 냄새들, 많은 것들을 느끼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가득 나기 시작한다.

“다녀왔…아차…!”

집에서 자신과 은현을 기다리고 있을 일리아나와 릴리에게 복귀 사실을 알리기 위해 힘차게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뒤늦게 자신의 입을 막았다.

집안에 있을 일리아나의 딸, 갓난 아기인 일레이나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존재를 느끼고 곧바로 릴리가 마중을 나왔다.

“오셨어요?”

“언니. 나왔어!”

약 두달만에 보게 되는 릴리를 본 에린이 활짝 핀 얼굴로 릴리의 품 안에 안겼다.

“응. 어서 와.”

만나자마자 자신에게 안겨 와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에린의 어리광이 제법 그리웠던 걸까, 릴리도 상냥하게 에린을 반겼다.

“히히.”

“이 녀석. 또 이렇게 어리광만 늘어가지고.”

“싫어?”

“싫은 건 아니지. 어서 올라가자 일리아나님도 좋아하실 거야.”

“응!”

어찌되었건 에린에게 기품과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엄격한 엘레노아는 물론이고 릴리나 일리아나도 에린에게는 무르다.

에린은 릴리의 허리에 팔을 꼭 둘러 허그를 풀지 않은 채로 그녀의 안내에 따라 윗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아내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현이 피식 웃으며 뒤를 따란 걸었다.

“일리아나는?”

“큰 마님은 지금 안방에서 일레이나에게 젖을 먹이고 계세요.”

릴리가 일리아나의 딸인 일레이나를 부르는 호칭에서 ‘님’자가 빠졌다.

태어난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은 갓난아이에게 깍듯하게 존칭을 붙이며 모시고 있었던 그녀의 태도는 주인을 모시는 영락없는 시종이었으나, 일리아나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일레이나의 육아에서만큼은, 이 아이에게 태어날 때부터 신분의 차이 같은 것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은현의 정실로서, 주인 마님으로써 깍듯이 대하는 것은 은현과 일리아나를 모시고자 하는 메이드의 고집스러운 의지였다.

하지만 이 아기에게만큼은, 배 아파 낳은 아기아 아니더라도 자신의 아기처럼 소중히 아껴주길 바랬다.

고집하면 릴리보다도 더 강한 일리아나는 일레이나를 대하는 릴리의 태도에서만큼은 절대로 그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결과 릴리는 ‘일레이나’를 존칭 없이 이름만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였으나, 은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의외스러운 결과였다.

그리고 꽤나 마음이 들었다.

안방에 도착하자마자, 은현과 에린은 침대 위에서 일레이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일리아나를 찾았다.

“일리아나님! 저희 왔어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굉장히 들떠있는 에린의 복귀를 들은 일리아나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 왔니?”

에린은 아기가 놀라지 않을 종종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와 일레이나의 모습을 관찰했다.

일레이나는 배불리 먹었는지 젖에서 입을 떼고는 가까이 다가온 에린을 발견한 듯 자그마한 눈동자를 굴렸다.

“꺄하!”

활짝 웃으며 작고 가녀린 두 손을 내뻗는 아기의 행동에 직격당한 에린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성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통하는 범위에는 당연히 아기의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갑니? 응! 나도 반가워!”

“아가, 안아볼래?”

“어, 정말요? 안아볼래요!”

일리아나의 권유에 에린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답했다.

혹시라도 떨어뜨릴라, 조마조마하면서도 부서질까봐 최대한 힘을 빼며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는다.

“히히.”

에린은 헤실헤실 웃으며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를 에린에게 맡기자 은현이 침대 위로 올라와 일리아나의 상태를 살폈다.

“몸은 좀 어때?”

“아주 좋아. 원래부터 신성력으로 잘 관리한 상태였고.”

거기에 은현이 직접 구해다가 조제해준 영약의 효과를 톡톡 보고 있었던 탓인지 짧은 시간에도 그 효과를 톡톡 보고 있었다.

오히려 임신하기 이전보다 더욱 건강해진 상태인 그녀는 아이를 낳은 여자의 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다행이네.”

“네 쪽은 어때? 일은 잘 마치고 왔어.”

“어느 정도는. 엘레노아는….”

은현은 에레니아 신성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사령술사가 에레니움을 습격했고 그 이후를 수습하였으며, 부패해졌던 신성국 내부의 인사를 갈아치워 버리는 작업이 한창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일리아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신전까지 네 발아래에 두려고?”

“…오해할 소문을 퍼뜨리지 마.”

“알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은현이 신전과 신성국을 지배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장난스럽게 놀린 것에 가깝다.

일레이나를 안고 재미있게 놀고 있던 에린은 둘의 대화를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음…. 솔직히 불가능한 건 아닐지도?’

실제로 현재 신전의 내부 권력은 엘레노아가 주도하여 장악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은현이 바라기만 한다면 엘레노아는 얼마든지 그의 바람을 이루어줄 것이 틀림없다.

신전의 권위와 명예를 회복시키고 차기 교황 후보인 알베른이 교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만 한다면, 엘레노아는 자신이 장악한 권력을 망설임 없이 모두 이양할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욕심이 없을 뿐이지 신전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진즉에 넘었다.

“엘레노아가 많이 바쁘겠네.”

“당분간 공작령의 영지 관리는 나한테 부탁한다고 하더라고.”

“그렇구나.”

영주의 자격을 부여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시 대리를 세우게 된 것에 엘레노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 ◆ ◆

“그런가. 어쩔 수 없지.”

아브로스는 고민 없이 은현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진심이십니까?”

“엘레노아가 그것을 부탁했다고 하지 않았나.”

엘레노아를 대신하여 영주 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는 엘레노아가 허락한 이상 명분 자체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아무리 데릴사위라 할지라도 외국인에 평민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은현이 공작령을 통치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는 불만을 품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 나라에서, 특히 이 공작령 안에서 너의 능력을 의심할만한 귀족들은 없다. 설사 있더라도 내가 인정한 이상 강하게 불만을 표하는 건 불가능하다.”

“뭐어…. 그렇긴 합니다만….”

은현은 너무도 간단히 허락을 받게 되자 도리어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후로 은현의 공작령 대리 운영은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엘레노아가 얼마나 꼼꼼히 운영을 해왔는지 내정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은현이 해야 할 일은 기본적인 운영과 더불어, 현재 공작령 안에서 영지의 운영 예산과 가문의 재산이 투자된 굵직한 사업들의 관리 감독과 앞으로 진행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사업들의 검토였다.

“안녕하십니까. 영주 대리님. 이번에 제가 이번에 제안드릴 사업이 있어 이렇게 영주 대리님을 찾아뵙게….”

“사업 내용이 뭔가요?”

거추장스러운 인사를 생략하고, 은현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보통 권위를 중시하는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필요한 분야에만 시간과 노력을 쓰는 효율적인 태도는 귀족보다는 사업가의 마인드에 가깝다.

상인은 은현의 말에 자신이 생각한 사업을 입에 담았다.

“경마입니다!”

“…경마?”

영주실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린이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릴리가 타준 홍차를 홀짝이면서 의문을 표하자, 은현은 곧바로 설명해주었다.

“여러 마리의 말들을 경주시켜서 순위를 겨루는 스포츠를 말해.”

“오? 영주님도 경마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뭐…. 알고만 있습니다만.”

“말 그대로 공작령에 경마장을 만드는 겁니다! 분명히 많은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활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흐음.”

은현이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상인은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태도였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은 것만으로도 상인은 아직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에린이 상인에게 물었다.

“단순히 말들이 달려서 순위를 정하는 거라면서요?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데….”

“경마는 그렇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히익!? 죄, 죄송해요!”

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사과했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면서 목숨을 위협받는 많은 위험에 직면했던 경험이 풍부한 에린조차도 순간 위축될 정도로 강렬한 위압감이었다.

그것은 적의를 내보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열광해 마지 않는 것을 모욕했을 때 내보이는 순수한 열정 그 자체다.

“본래 경마를 시행하는 목적은 더욱 빠르고 건강한 말을 길러내기 위해서죠. 그러기 위해서 다른 말들과 경쟁을 붙이고 그 결과 순위가 매겨집니다.”

1등을 한 가장 빠른 말에게는 찬사와 박수를, 그리고 뒤쳐진 말에게는 다음에는 더욱 빨라지기를 기원하는 위로와 격려를.

“정해진 코스를 다리에 힘을 실어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쇼!”

“어, 음….”

에린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나가는 상인의 두 눈은 반드시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솔직히 상인이 가지고 있는 그 경마의 열정에 에린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이야기하기엔 상인의 열정이 너무 부담스럽다.

“그리고 단순히 경마에 참가하는 말들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닙니다. 천명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듯 말들 또한 그 외관과 특성들이 다양하죠.”

말들이 가진 체력, 신체적 특성, 자라온 환경에 따라 그 습성들이 생기고 발전하며 각기 다른 주행 방식을 가지기 마련.

“시작부터 남들보다 앞서 도망치듯 혼자서 달리는 도주마나, 지지 않으려는 습성이 강하여 무조건 1등으로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선행마, 상위권 무리를 따라가며 달리다가 1등을 노리기 위해 마지막에서 남아있는 스태미나를 모조리 쏟아붓는 선입마 등 다양한 전략이 맞부딪치면서 모든 말들이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아, 아니 그러니까….”

에린은 알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경마 용어들에 대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직 레이스를 위해서, 우승을 쟁취하기 위해서 성장해온 말들이 일제히 레이스를 벌이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크으…!”

“…….”

에린은 상인의 머릿속에 가득 찬 감정을 읽어 들였다.

딱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바라고픈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어느 의미 광기 그 자체였다.

‘이, 이 사람은…‘진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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