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03화 (686/730)

〈 703화 〉 703. 환영 인사(2)

* * *

베스타 신전의 본교가 있는 수도, 에레니움의 감옥에 투옥된 죄수들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건설, 청소, 유지 보수, 등 사람의 손이 직접 필요한 모든 막노동에 관여한다.

“4885! 빨리 움직여! 이래서는 점심시간 전까지 제대로 마칠 수 없다고!”

“크으…!”

무거운 석재를 힘겹게 운반하고 있던 전 상위 사제, 4885가 분한 듯 신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허약한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남들보다 적은 크기의 석재를 운반하는데도 배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직 사제였던 그는 육체적인 막노동도 일절 해본 적이 없어 요령도 부족하니 그런 그에게 다른 죄수들만큼이나 높은 효율의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휴. 더럽게 느리네.”

“하긴 잘나신 사제 나으리가 이런 일을 해봤겠어?”

다른 죄수들이 낄낄대면서 그의 무능을 대놓고 비아냥대고 조롱했다.

죄수로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일 진데, 그들은 어딘가 여유로웠다.

“젠장….”

4885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에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뿐만이 아니라 전신 자체가 잦은 구타와 폭력에 시달려 욱신거렸다.

그가 제대로 된 노역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폭력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감옥 안에 상주하는 하위 사제의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완치되기엔 상태가 너무 심했다.

이 감옥과 강제 노역장 안에서는 4885가 가지고 있었던 상위 사제의 지위와 권력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

이곳에서 4885는 그저 허약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인간 남성이었기 때문에 이런 불합리함에도 저항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진짜 불합리함을 깨달은 것은 4885가 감옥에 투옥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린 지 3일째가 되고 나서다.

“처치 끝났습니다. 가세요.”

“…….”

지속적으로 손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던 여사제는 싸늘한 태도로 4885에게 퇴실을 명했다.

여사제는 4885와 1초도 상주하기 싫다는 태도를 당당하게 내보였다.

많은 사제를 다른 영지나 왕국에 팔아넘기면서 그 대가를 속속히 챙긴 그의 죄목과 이력들을 모두 알고 있었던 여사제가 4885를 경멸하는 것은 당연했다.

보통 죄수들의 죄목이나 범죄 이력이 감옥 내부에 퍼지는 건 당연하기 마련이지만, 4885의 투옥 소식과 죄목은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감옥 전체에 퍼졌다.

게다가 4885와 같은 방을 쓰는 감옥의 죄수들은 모두 그와 악연이 있는 무고한 피해자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배치하고 만들었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젠장….”

일반적으로 감옥 안에서의 갈등은 이 감옥을 관리하는 간수들이 관리해야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죄수들의 노동력은 에레니움 안에서 귀중한 노동력.

훌륭한 기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건비라는 것이 전혀 들지 않는 효율적인 노동력이기 때문.

하지만 이 감옥의 관리자들은 4885의 일방적인 구타를 방치했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그것을 허용하고 종용하고 있기까지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치료실을 나온 4885는 분한 마음에 이를 갈았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웬만해서는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는 힘과 권력을 가진 상위 사제였을진대, 어째서 이런 치욕스러운 꼴을 당해야만 하는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만 납득하는 게 좋을 텐데?”

치료실에서 나온 간수가 4885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는 4885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옥까지 그를 데려가는 인솔자다.

“…….”

4885는 인상을 찡그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감옥에 너 같은 놈이 들어온 게 한둘인 줄 알아?”

감옥에 지위 있는 왕국의 귀족이나 상위 이상의 사제들이 투옥되는 경우는 확실히 드물었지만,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니다.

“너 같은 놈들이 감옥에 투옥되면 처음엔 다 똑같더라고.”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한다.

감옥에 투옥되기 전에 밖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위와 명예, 권력을 잊지 못하고 현재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마지못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저기 저놈 보이냐?”

간수는 노역을 마치고 감옥으로 복귀하는 죄수들의 무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유독 무리 중에서 다른 죄수들과 거리를 벌리고 혼자서 복귀하는 남자를 발견했다.

“저놈의 이름은 애슈턴. 애슈턴 아르미타스라고 하지.”

“아르…미타스…?”

익숙한 성을 들은 4885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자신에게서 신성력을 가져가버린 엘레노아 아르미타스와 같은 성이 아닌가.

그는 페르니아스 왕국에 속한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장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

“병신 같은 놈이지. 엘레노아님에게 앙심을 품고 해하려다가, 그 죄로 이곳으로 이송된 죄수다.”

“…….”

본래 공작 가문의 후계자였던 그는 현 공작인 그의 아버지 몰래 다른 귀족 파벌들과 합세하여 왕국의 예산을 횡령한 혐의로 후계자의 자리를 박탈당했다.

그것에 앙심을 품으면서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 자체를 치욕으로 물들이기 위해서 엘레노아에게 위해를 가하려다가 에레니움 신성국의 신전 본교로 이송된 것이 지금까지의 결말.

처음에는 그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위와 귀족이라는 선민사상에 의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잦은 구타와 노역에 시달리면서 지금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차기 성녀인 엘레노아를 욕보이고 위해를 가하려 했던 애슈턴의 형량은 무기징역이다.

본래라면 피해자인 엘레노아와 그의 가족이 원한다면 감형의 여지도 있었지만, 엘레노아는 물론 애슈턴의 아버지였던 아브로스 또한 애슈턴의 감형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살려둔 만큼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다.

애슈턴이 이 에레니움의 감옥에서 석방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그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더는 귀족이 아니게 된, 죄수에 불과한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기력해 보였다.

‘나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어버리는 것인가….’

4885는 자신의 앞날을 보게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 ◆ ◆

재판을 통해서 많은 사제들이 처벌을 받았던 사건은 에레니움 신전 안에서 큰 파란을 일으켰다.

그들과 관련이 있었던 이들은 신분과 출신, 관계를 불문하고 모두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그 결과 아주 작은 비리라도 적발이 되는 순간 처벌은 단호하게 이루어졌다.

특히나 타국의 인사들이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워낙에 강력한 선례를 만들어둔 것과 동시에, 명분이라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신전과 신성국에 비리로 얽혀있는 이들 대부분이 처벌을 받게 되면서 에레니움 신성국은 큰 파란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는…. 진짜 돌이킬 수 없게 됐네.”

현 상황을 직시한 아니에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죠. 저희가…. 지금까지 피하고 외면해왔던 문제였으니까요.”

처음을 바르게 잡지 못한 결과, 부패는 더욱 깊고 넓게 진행됐으며, 그것을 도려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출혈의 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것을 뒤늦게라도 바르게 잡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리안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걸어야 할 앞길이 굉장히 고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자체는 굉장히 순조롭기도 하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저는 아니에스님의 친구분이 이렇게까지 신전을 돕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리안이 말한 아니에스의 친구는 은현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금 신전 안에 일기 시작한 커다란 파란은 은현의 주도로 생겨난 변화다.

비리와 부패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사제들의 존재를 척결하고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나도록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는 은현의 행동이 다리안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녀석이 도와주고 있는 게 불만이야?”

“불만이라뇨. 그분은 저희에게 정말로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잖습니까.”

이단심문관의 수사로 비리에 얽혀있는 다른 사제들은 물론 그들과 관계된 외국의 인사들까지 모조리 체포하여 처벌한다는 것이 절대로 쉬울 리가 없다.

당연히 외국에서는 베스타 신전이나 에레니아 신성국을 향해 보복해올 테고, 그 보복의 시작점은 정기적으로 보내오던 막대한 기부금을 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은현이 페르니아스 왕국과 에레니아 신성국을 연결시켜주면서 동맹국으로서 이번 피해에 대하여 막대한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 지원 중 절반 이상은 은현과 공작 가문이 가지고 있는 여유 자금이었지만, 남은 다른 지원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정 예산이다.

덕분에 추가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유리아 왕녀나 왕국의 재무장관 등 많은 궁정 귀족들이 밤낮을 시달리며 일을 해야 하는 해프닝을 제외하면, 베스타 신전 측에서는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고마운 은혜였다.

단지 다리안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신전에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는 그의 의도였다.

대가 없는 호의라는 것은 없다.

막대한 예산을 퍼붓듯이 지원을 해주고, 바닥까지 떨어진 신전의 권위과 명예를 되찾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아니에스의 친구이기 때문에, 차기 성녀인 엘레노아의 남편이기 때문에 이런 대가 없는 호의를 보여준다고는 순순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 너는 원래 의심이 많은 녀석이지.”

아니에스는 피식 웃었다.

그런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다리안은 이단심문관장이라는 자리가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믿어도 돼. 괜찮아.”

“…진심이십니까?”

다리안은 은현이라는 남자가 어떤 이인지 모른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엘레노아의 남편이자, 아니에스의 친구라는 것과 이번 사령술사 습격 사건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만큼 엄청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궁금했다.

아니에스는 도대체 어째서 은현이라는 남자에게 이토록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오고 있는 걸까.

“걔가 그렇게 욕심이 많은 놈으로 보여?”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선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뒤에서는 많은 죄를 저지르고 감추었던 추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리안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런 썩은 고름들을 지금 도려내고 있는 작업이 한창이니까.

“걔는 우리랑은 좀 다른 목표를 두고 움직이고 있으니까.”

욕심이나 그런 것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단지 은현은 남들과는 다른 행동원리로 움직이고 있다.

엘레노아나 아니에스를 위해서라는 것도 이유 중에 포함이 될 수 있었지만,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딱 하나다.

‘하계의 유지’라는, 여신에게서 직접 부여받은 사명을 위해.

“그놈이 마음먹고 작정하면 우리 신전을 집어삼킬 수도 있어.”

“…….”

다리안은 아니에스의 그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게 쓴웃음을 짓고 있으면서도 무게감이 실려있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신전에 엘레노아나 아니에스가 없었고, 베스타 여신과의 연결점이 없었고, 구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신전이 썩어버린 상태였다면, 은현은 가차 없이 신전이라는 집단을, 에레니아 신성국을 무너뜨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한 이유는 신전이라는 이곳이 필요하기도 했고, 우리한테 기회를 준 거야.”

적어도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라는 경고와 기회의 의미와 비슷하다.

어쩌면 부패가 만연했던 페르니아스 왕국의 고위 귀족들과 왕가를 갈아치워 버린 이유와 비슷하기도 했다.

“나는 이번 기회로 마음에 안 드는 쓰레기들을 싹 다 갈아치우고 깨끗한 신전으로 만들 수 있어서 좋고, 그 녀석은 그 녀석 나름대로 우리를 써먹을 수 있어서 좋고. 서로 윈윈 아니겠어?”

적어도 은현이라면 불합리한 일에 신전 세력들을 이용하려고 들지는 않을 테니, 에레니아 신성국으로서는 페르니아스 왕국과의 동맹, 또는 그 뒤에 있는 은현과의 협력 관계는 구축해둬서 나쁠 게 전혀 없었다.

“…그는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군요.”

다리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기회를 부여받은 이상, 제대로 일을 해야겠다고 재차 속으로 다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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