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2화 〉 702. 환영 인사(1)
* * *
재판의 형이 결정되긴 했지만, 그 형을 재판의 당사자들이 받아들이는가 마는가의 문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럴…. 이럴 수가…!”
사제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성력이 모조리 소멸했다는 것에 절망했다.
정확히는 소멸이 아니라 엘레노아에게 회수를 당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금껏 잘 사용해왔던 신성력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소멸이나 마찬가지다.
“신성력을…빼앗다니…!”
타인의 신성력을 조작하여 자신에게로 귀속시키다니, 그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사제들에게도 불가능했던 영역을 실현시키자 재판장 안은 빠르게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저게 가능하다고?”
재판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제가 경악 어린 시선으로 엘레노아를 쳐다보았다.
그만큼 죄인이 된 사제들에게서 신성력을 거두어들인 그녀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사제들의 두 눈에는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움의 감정들이 서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빼앗을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와도 같았다.
“조용!”
관람하고 있던 사제들이 웅성거리면서 순식간에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재판의 진행을 맡은 다리안이 호통을 치며 좌중을 진정시켰다.
소란스러웠던 재판장 안이 순식간에 정적으로 가득 채워진다.
“…….”
사실 이 상황을 직접 보고 놀란 것은 다리안 또한 마찬가지다.
‘무서운 능력이다.’
엘레노아가 일으킨 ‘신성 회수’는 아니에스가 만들어낸 ‘간청’이라는 기적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에스가 사용하는 ‘간청’과는 성질 자체가 다르다.
아니에스의 간청은 여신께 기도를 올림으로서 신계의 여신이 심판하는 대상에게서 신성력이라는 개념을 아예 소멸시켜버리는 형벌.
하지만 엘레노아의 ‘회수’는 대상의 신성력을 회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강탈에 가깝다.
이 두 가지 기적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여신의 의사’가 개입하였는가 아닌가.
여기서 엘레노아의 ‘회수’는 여신에게 그 심판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대상을 심판을 하는 것에 가깝다.
터무니없는 특권이다.
그것은 악용하고자 한다면, 죄 없는 상대에게서도 신성력을 강탈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 이면을 깨닫고 다리안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설명만으로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그 현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나니 더더욱 경악스럽다.
‘이것이…차기 성녀의 기적.’
엘레노아의 신성 회수는 은현이 아니에스와 베스타 여신에게서 마리우스라는 사령술사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들었을 때부터 신전 내부의 제도와 규율을 개정하기 위해 준비한 시작점이다.
당연히 베스타 여신의 허락 또한 받았다.
무거운 정적이 가라앉은 가운데, 중압감을 버티지 못한 한 상위 사제가 다리안의 호통을 무릅쓰고 눈물을 쏟아내며 절박한 표정을 지었다.
“엘레노아님…! 제발…! 제발 한 번만 용서를 해주십시오…! 저에게서 신성력을 거두어가지 말아 주세요!”
“…….”
엘레노아는 상위 사제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죠?”
“네…?”
상위 사제를 바라보면 엘레노아의 눈빛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경멸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많은 사람을 구하고,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 사제직에 있으면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착취하고 배신하고 그들의 목숨을 함부로 다룰 수가 있나요?”
“그, 그것은….”
“신성력을 다시 돌려드린다면,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엘레노아의 말을 들은 상위 사제는 반색하며 재빨리 답했다.
어쩌면 사면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물음이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현재 상위 사제는 다급했다.
“속죄하면서…! 속죄하면서 살겠습니다!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상위 사제의 대답은 엘레노아의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파멸을 앞에 두고 포기하지 못해 구걸할 때 내뱉는 흔한 말.
당연히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는 것은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다.
“속죄하면, 당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그럴 리가 없다.
누군가는 인생이 망가졌고,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까지 생겨났을 것이다.
그렇게 바스러진 무고한 인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수가 있을까.
책임을 진다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듯이, 그와 파벌들이 저지르고 감춰두었던 악행들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수 많은 피해를 낳았다.
약 20명도 채 되지 않는 이들이 책임을 지고 속죄한다고 해서 넘어갈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
엘레노아는 마음 속 어딘가가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악행을 저지르고, 그러고도 가증스럽게 용서를 바라며 자신들의 지위를 구걸한다.
엘레노아는 은현에게서 제안을 받아 만들어낸 이 ‘신성회수’를 사용하는 것에 망설였다.
자신의 선택과 능력으로 누군가를 심판하는 역할은 굉장히 명예롭고 훌륭한 일이지만,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
그에 대한 부담이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자신은 이제 악행을 보고도 무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역할을 부여하도록 길을 제시해준 은현에게 감사를 느꼈다.
“저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엘레노아는 자비를 바라는 사제들에게서 등을 돌려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 아아…! 엘레노아님! 엘레노아님…!”
헛된 희망을 보았던 상위 사제가 엘레노아를 부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옆에 있었던 성기사들이 그의 양 어깨를 붙잡으며 강제로 바닥에 눕혔다.
결국, 이성을 잃은 상위 사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젠장…! 누구는 처음부터 이러고 싶었냐고!?”
그는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출세욕과 야심이 넘쳐나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와 달리, 처음 견습 사제의 연수를 마쳤을 때 그에게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을 위로 끌어당겨 줄 귀족이나 고위 사제의 인맥도, 집안의 명예나 재력도 무엇하나 없이 그저 신성력만을 다룰 줄 아는 보잘것없는 최하위 사제.
그런 그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높은 지위를 가진 이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버텨야만 했고 더럽고 추잡한 일이라도 마다해선 안 됐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그였다.
“당신이라면 모르겠지! 공작 가문의 집안에서 태어나 재력도 지위도 갖춰진 여자였으니까! 그저 좋은 집에서 태어났을 뿐인 운만 좋은 여자가…!”
“…….”
엘레노아는 제자리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뚝 멈췄다.
“당신의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겠죠.”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는 엘레노아가 지금까지 어떤 끔찍한 경험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지 모른다.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질투하고 있을 뿐인 추악한 그 감정에, 엘레노아는 반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재판은 끝났고, 형의 집행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죄수가 된 전 사제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강제 노역장에 배치된 감옥에 투옥되었다.
“젠장…. 젠장….”
감옥에 투옥된 전 상위 사제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지위와 재산, 권력은 엘레노아가 가져간 신성력과 함께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옥에 투옥된 시점부터, 새로운 지옥이 시작되었다.
전 상위 사제만이 아니라 많은 죄수와 함께 쓰는 방으로 배정을 받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먼저 자리를 잡았던 죄수들이 그를 반겼다.
“어~이! 드디어 기다렸던 신입이 들어왔군!”
“…….”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여 전 상위 사제는 멈칫했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죄수들의 태도가 몹시 마음에 걸렸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상위 사제’ 나으리!”
“……!”
전 상위 사제는 놀라서 움찔 몸을 떨었다.
이곳의 죄수는 외부의 소식이라는 것을 접할 수가 없을 터.
때문에 이 감옥에 투옥되는 자신의 신분이나 이력이 죄수들의 귀에 들어갈 이유도 전혀 없다.
하지만 이들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전 상위 사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죄수들에게 물었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 그가 적잖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적나라하게 티가 났다.
죄수의 무리들 중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서 전 상위 사제에게 말을 걸었다.
“날 기억하나?”
“…뭐?”
그 남자의 물음에 전 상위 사제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기억 속 어딘가에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의 얼굴은 어딘지 꺼림칙했다.
“하, 하하….”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전 상위 사제의 태도에, 죄수 남자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죄수 남자는 전 상위 사제가 신전의 기부금을 횡령하였을 당시, 그가 죄를 뒤집어씌웠던 무고한 피해자였다.
그런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기억 속에서 자신은 겨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벌레에 불과했다는 뜻.
“괜찮아. 지금 이렇게 댁이 내 앞에 오게 됐으니까.”
죄수 남자는 자신의 동료 죄수들에게 눈짓하여 신호를 보냈다.
이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모두 신전 안에 만연히 존재하고 있던 부조리한 악의에 의해 피해를 입고 감옥에 투옥된 무고한 자들.
이것은 기회였다.
자신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제가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죄수들은 전 상위 사제의 양팔을 붙잡으며 그를 제압했다.
“이,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고…!”
“잘 알지. 상위 사제 나으리.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똑같아. 그걸 댁이 모르진 않을 텐데.”
퍼억!
양팔을 제압한 죄수들이 전 상위 사제의 다리를 걷어차면서 강제로 쓰러뜨렸다.
건장한 두 남성의 체구가 짓누르는 무게에 저항하지 못한 그는 바닥에 깔린 채로 아등거렸다.
“크윽…!”
죄수들의 말대로, 이곳에서는 전 상위 사제가 가지고 있던 인맥, 재력, 권력 등은 모두 부질없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들 자체가 사라져 평범한 인간이 되었으니, 이 감옥 안에서 그는 가장 무력한 약자였다.
“댁을 이렇게 볼 수 있게 돼서 정말 반갑게 느껴질 정도야.”
“큭큭.”
다른 죄수들 또한 동감이라는 듯 그를 보고 비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전 상위 사제의 몸을 짓누른 죄수가 그의 한쪽 팔을 붙잡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간단한 환영 인사지. 그런데 우리 모두 댁을 만난 게 너무 반가워서…좀 격할 것 같은데 말이야.”
악의가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는 죄수의 양손에는 커다란 쇠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그 쇠망치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깨달은 전 상위 사제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 그만둬…!”
콰직!
죄수는 망설임 없이 있는 힘껏 쇠망치를 내리찍었다.
“끄, 끄아아아아!”
살이 찢겨 뭉개지고, 뼈가 분쇄되어 피가 감옥 내부의 사방에 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환영 인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위로 들어 올린 쇠망치에 힘이 실려 아래로 찍히면서 만신창이가 된 전 상위 사제의 손을 다시 한번 분쇄시켰다.
콰직!
“아, 아으으윽! 그만! 그만! 제발 그마아아안!”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되는 과정에서 처절한 비명이 감옥 밖으로 울려 퍼졌지만, 그 비명을 듣고도 감옥을 관리하는 간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끄, 으으으….”
약 다섯 번을 내리찍고 나서야, 죄수는 새빨간 피로 물든 쇠망치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고통으로 반쯤 정신이 무너져내린 전 상위 사제의 머리채를 붙잡아 강제로 들어 올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4885’.”
4885.
그것은 전 상위 사제의 가슴팍 명찰에 달린 번호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