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01화 (684/730)

〈 701화 〉 701. 신성 재판(3)

* * *

체포된 사제들이 보내진 곳은 처형이 결정된 이단들을 목매달아 교수시키는 처형장이었다.

아직 그들의 처형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으나, 사제들은 자신들이 이 장소에 보내진 것부터 이미 자신들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감했다.

이곳으로 보내져서 재판을 받는 많은 이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어째서…. 어째서 내가….”

“틀렸어…. 이젠…. 다 끝이야….”

누군가는 자신이 왜 이곳에 끌려온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고, 특히나 젊은 사제들은 이곳에 끌려온 시점부터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절망 어린 표정을 짓기도 했다.

비리를 저지르고 악행을 비밀리에 일삼았던 모든 사제들의 숫자는 총 17명.

그중 5명이 신전 안에서 모두 한 자리씩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 사제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신전 본교 안에서 일하고 있는 상위 사제들의 숫자가 총 30명 정도도 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도 아니다.

신전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실권자가 얼마나 부패하였는가는, 곧 신전의 권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였단 건가….’

재판을 받게 된 사제들의 숫자를 보고, 아니에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부패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크다.

결국,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은현의 주장은 이번에도 옳았다.

“쯧.”

아니에스가 작게 혀를 차며 현재 상황에 짜증을 느꼈을 때, 비리 사제들을 재판하고 형을 내릴 이단심문관장 다리안이 등장하여 자리에 착석했다.

“그럼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다리안은 테이블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선서문을 모두 읽어나갔다.

앞으로 일어날 재판에서 에레니아 신성국을 위하여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옳은 판단으로 형을 결정하겠다는 선서를 시작으로, 재판은 시작되었다.

다리안이 차가운 눈빛으로 비리 사제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스스로가 지금까지 지어왔던 죄를 인정하는가?”

비리 사제들 중 상위 사제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입을 열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윽고 상위 사제는 정말로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호소했다.

“다리안님…. 심문관님! 저는 정말로 억울합니다!”

“…….”

“저는 지금까지 시민들의 평화로운 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사제와 신전의 앞날을 위해서 지금까지 불철주야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저에게 이럴 수는 없습니다! 심문관님!”

“그, 그렇습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자신들 중에서 높은 위치에 속해 있는 상위사제가 필사적으로 호소하자, 거기에 동조하기 시작한 젊은 사제들까지 적극적으로 입을 열며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다리안은 최대한 무표정을 연기하며 중립을 주장하려 했지만, 속으로는 뒤틀리는 기분을 참기 위해 미묘하게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까지 참기엔 불가능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비리 사제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고, 예상했던 바지만, 역시나 직접 마주하니 구역질이 치밀어오른다.

하지만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다리안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억울하다라….”

다리안은 사전에 준비해두었던 문서를 펼쳤고 그 내용을 차례차례 읽어나갔다.

“연수를 마친 견습 여사제들을 해외의 특정 지역으로 과하게 편성시키고 그 대가로 원조를 받았다는 건 사실이 아닌 건가?”

“네…?”

당황한 상위 사제가 얼이 빠진 목소리로 반문하였지만, 다리안은 문서의 내용을 차례차례 읽어나갔다.

“신전에 납부한 헌금을 횡령하였던 것은? 연수가 한창 진행 중인 견습 여사제들에게 손을 댔고 죄 없는 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씌워 신전에서 파면시켰던 것은?”

그 외에도 다수의 비리와 추잡한 욕망들이.

문서에는 사소한 것부터 커다란 스케일의 내용이 빠짐없이 모조리 기록되어 있었다.

그 문서의 내용을 모두 읽어나가면서, 다리안은 속으로 감탄했다.

‘대단하군.’

현재 다리안이 읽고 있는 이 문서들은 모두 은현이 수집해준 정보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거기에는 이단심문관 쪽에서 비밀리에 수집한 정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적혀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의 헌금을 횡령하였는지 등의 사소한 비리들까지 모조리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에레니아 신성국은 은현에게 있어 어웨이의 구역일 터.

제대로 된 정보기관이나 이렇다 할 인맥도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보들을 대량으로 수집할 수 있었던 그의 수완이 새삼 두려울 정도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제들은 자신들의 비리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부정했다.

“그, 그것들은 제가 저지른 것들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저, 저희가 저지른 죄가 아니에요! 누군가가 저희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은 필사적으로 부인했다.

이것들은 모두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증거들.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잡아떼고 부정한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돌파구가 생기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다리안은 물이 흘러가듯이 재판을 진행했다.

“증인들을 들여보내라.”

“증인…?”

사제들은 안색을 딱딱히 굳히며 다리안의 명령으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문 쪽을 응시했다.

그곳에서 등장한 다수의 사람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의아한 표정을, 그리고 누군가는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저 여자는…!”

이윽고 입장한 증인들이 재판을 진행하는 사제들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증인석으로 향했다.

증인 중 한 여성이 재판석 앞에 출석했다.

“……!”

여성은 자신과 악연이 있는 상위 사제가 자신을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살짝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그녀는 굳센 눈빛으로 남자의 시선에 응했다.

“증인.”

“…네. 심문관님.”

“증인은 지금부터 올바른 진실만을 증언하리라 맹세할 수 있겠습니까?”

“맹세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증인 그럼 지금부터 묻겠습니다.”

다리안은 증인 여성의 간단한 신상을 물어보는 것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증인 여성의 이름, 나이, 출신, 그리고 직업까지, 그녀는 3년 전에 베스타 신전의 사제가 된 여성이었다.

“그리고…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타국의 신전 지부로 파견행이 결정되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사이동이었다.

사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배속처는 견습 사제시절 본교에서 연수받았던 연수 성적순으로 결정이 된다.

본교에서 먼 외지의 신전 지부까지 그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며 증인 여성은 연수원 안에서 상위권에 속해 있었으며 결코 타국의 신전 지부에 배속될만한 성적이 아니었다.

“배속이 되고 나서야 저는 알았죠.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던 결과라는 걸.”

증인 여성이 배속된 영지의 귀족이 지적이고 젊은 여사제를 보내 달라고 신전 내부에 귀띔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영지의 귀족은 벨라스 고위 사제나 현재 심문을 받고 있는 상위사제와 결탁한 그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저는…. 저들의 원조 대가로 그 영지에 팔려간 것이었습니다.”

사제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보고 추잡한 성욕 해소용 노리개로써 사용하기 위해 신전 고위층의 더러운 입김이 작용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증인 여성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녀는 사제직을 그만두고 배속되었던 영지에서 도망쳐 나와 타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설마 저 여자가 하는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자고, 저는 그런 짓을 한 적도 없습니다!”

“이 증인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여사제를 강제로 타국의 신전 지부에 배속시켰다는 증거는 이미 확보하고 있다. 더 발뺌한다면 진실을 부인하고 거짓을 일삼은 그 죄만 더 가중처벌될 것이다.”

“크…윽!”

“이어서 증인들의 증언을 계속 듣도록 하겠다.”

상위 사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어지는 증언의 내용들은 모두 자신이나, 자신을 비롯한 벨라스 상위 사제의 파벌들이 비밀리에 저질렀던 악행과 비리들.

신전의 지위와 권위를 방패 삼아 일삼았던 그 과거의 일들이 모조리 밝혀졌다.

‘도대체 어떻게….’

철저히 단속했던 저들을 도대체 어떻게 설득하여 이곳까지 데려올 수 있었을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증인들을 찾아 수소문하고 이곳까지 데려온 수단이다.

재판장에 모인 증인들 중에는 상위 사제와 벨라스 고위 사제의 파벌에 의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로 이미 신전 내부에서 출세의 길이 막혔거나, 누구는 처음 증인을 했던 여성처럼 사제직을 그만두기까지 한 이들도 있었다.

증인들 모두가 처음부터 한 장소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던 그들을 어떻게 한곳에 모을 수 있었을까.

시기상 사건의 흐름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설마 이번 사령술사의 습격이 있기 전부터 이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파벌의 수장인 벨라스 고위 사제가 종적을 감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상황.

상위 사제의 머릿속에서는 이 추측이 가장 들어맞는 추측이었다.

물론 그것은 전혀 정답이 아니었지만.

“상위 사제님은…. 저를 협박하셨습니다. 이 횡령 건을 덮지 않는다면 저는 물론이고, 제 가족들까지…. 이 에레니움 안에서 신전 본교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내, 내가 언제 그딴 말을 했단 말이냐! 거짓말…! 거짓말이다…! 이건 모함이야…!”

이것은 정말로 진실이 아니었다.

상위 사제는 정말로 그런 협박을 했던 적이 없었다.

정말로 많은 악행을 일삼아왔고 그 많은 악행 중 잊어버린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상위 사제는 지금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목이 추가되기까지 하자 억울함에 울화통이 치밀어오를 지경이었다.

‘누구냐…! 도대체 누구야…!’

상위 사제는 누군가가 자신을 아예 이 신전에서 발을 디딜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매장시키려는 의도로 철저히 짓밟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상대는 결코 신전에 속해 있는 인물이 아니다.

마치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에 얽힌 먹잇감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베스타 신전은 외국과의 교류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로 그만큼 신전의 권위와 명예를 중요시한다.

신전에 속해 있는 이였다면, 이렇게 공개적인 재판으로 자신을 처벌할 리가 없었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뒤에서 이 재판이 열리도록 상황을 유도하고 판을 깔았다.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이상해. 어째서 그 여자에게 이단심문관의 자격을 임시로 발급해준 거지?’

구속당한 채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던 상위 사제는 자신도 모르게 엘레노아가 앉아 있는 좌석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확하게는 차기 성녀인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엘레노아의 남편.

밀담이 이루어졌던 자신의 저택을 습격한 에린이라는 여자의 남편이기도 한 남자.

그리고 동시에 아니에스의 친구라는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저자구나! 저자가…!’

하지만 진실을 깨달았다고 한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자신에 대하여 무력함과 굴욕감을 느꼈고 그것은 분노로 뒤바뀐 감정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상위 사제가 은현을 노려보고 있을 때, 모든 증인이 증언을 마친 재판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다. 사람들을 구원하고 보살펴야 하는 성직자로서의 신분을 가지고 더러운 악행과 비리를 일삼았던 이들 전원. 성직의 직위에서 파면시키고, 죽을 때까지 노역을 반복하는 노예의 신분을 새로 부여한다.”

“아, 안돼…!”

“이럴 수는…!”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를…!”

판결을 들은 다수의 사제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구걸을 하고 있을 때, 배심원석 옆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있던 엘레노아가 몸을 일으켜 재판장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녀님 제발…!”

할 수만 있다면 엘레노아의 치맛자락이라도 붙잡고 간절히 애원하고 싶었지만, 양손을 등 뒤로 결박한 사제들은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호소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

하지만 엘레노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비리 사제들은 이내 그녀의 얼굴을 보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자신들을 돕기 위해 친히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엘레노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꿇고 결박당한 비리 사제들을 향해 두 손을 내뻗었다.

[엘레노아 강신(??)]

[신성 회수]

비리 사제들의 몸 안에 존재하고 있던 밝은 빛들이, 일제히 몸 밖으로 끌려 나오듯 배출되며 엘레노아의 양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 아아…!”

생전 처음 보고, 느끼는 현상이었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성력이 강제로 엘레노아에게 모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비리 사제들이 경악하며 비명을 내지른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신성(??)을 잃고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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