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700화 (683/730)

〈 700화 〉 700. 신성 재판(2)

* * *

벨라스 사제가 비밀리에 이끌었던 파벌에 속해 있던 사제들을 모조리 체포한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동행했던 엘빈이 조영술을 이용하여 사제들의 도망 의사를 모조리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엘빈의 조영술은 거리에도,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그림자만을 이용하여 공격도 방어로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

사람들의 바닥에서 튀어나온 그림자가 사제들을 공격하자 그들은 엘빈의 조영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렇다 할 전투 능력이 없었던 그들에게는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너무 서툴렀다.

[엘빈 고유 정령술]

[그림자들의 윤무(?)]

테이블은 물론 의자와 모든 가구들이, 엘빈을 중심으로 바닥을 잠식한 그림자의 칼날에 의해 잘려나가고 방안이 난장판으로 바뀌어 갔다.

“으, 으아악!?”

그 난리를 보고 있던 차,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제 하나가 그림자의 칼날이 휘몰아치는 범위 안에 휘말렸다.

“팔이…! 내 팔이이…!”

휘말린 팔 한쪽의 옷깃과 살점들이 갈가리 찢기며 피를 쏟아내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다.

“움직이지 마라. 만약 움직인다면…. 이번에는 팔 한쪽만으로는 끝나지 않겠지.”

“…….”

엘빈의 경고는 진짜다.

아무렇지도 않게 팔 한쪽을 아작 낸 것은, 자신은 그 이상의 행동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사였다.

에린에 이어 엘빈의 등장으로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사제들은 도망칠 생각마저도 완벽히 뿌리째 뽑혔다.

엘빈은 다시 에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확하게는 에린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 상위 사제의 몸 상태를 살폈다.

입에서 피를 쏟아내고는 있지만, 출혈 자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위태로웠던 이유는 에린이 방안을 장악한 마력의 압박을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 마력부터 거둬들여.”

“응? 아, 그렇네.”

엘빈이 그림자를 이용하여 도망을 치려는 사제들의 생각을 뿌리째 모조리 뽑았으니, 에린은 곧바로 방안을 장악했던 마력을 거둬들였다.

“흐, 으으….”

기절했던 상위 사제의 불규칙했던 호흡이 에린이 마력을 거둬들이자마자 압박에서 해방되어 조금씩 숨을 고르게 쉬기 시작했다.

엘빈은 한심한 시선으로 에린을 쳐다봤다.

“…설마 이 정도도 알아채지 못한 거냐?”

“그, 그야 이 정도로 약할 줄 몰랐지…! 나도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져버리니까 너무 당황해서….”

에린은 실수를 들킨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붉혔다.

“이자가 약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 강했던 거겠지. 하여간 언제 이런 무식한 여자로 컸는지….”

어쩌면 에린을 탓할 게 아니라 에린을 이렇게 키운 은현을 탓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자신의 손을 떠나서 멋대로 훌쩍 커버린 여동생에 대하여 안심을 하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심보다는 걱정이 더 들었다.

“내 어디가 무식하다는 거야!”

한숨을 내쉬는 엘빈을 보며, 이마에 힘줄이 돋아난 에린이 발끈했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험악한 분위기가 풀어지고 난데없이 남매간의 실랑이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저택에 뒤늦게 도착했다.

신전 본교에서 파견된 이단심문관들이다.

이단심문관들은 도착한 저택 내부가 난장판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안색을 딱딱히 굳혔다.

전투의 흔적들 대부분이 가장 중심에 있는 에린으로부터 벌어진 것이라는 건 단번에 눈치챘지만, 문제는 그 여파가 엄청나다.

사령술사의 습격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역시나 에린이라는 여성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정도다.

‘이 사람을 그 남자가 가르쳤다고 했었지.’

에린과 함께 이번 사령술사 습격 사건 때도 활약했으면서 아니에스와 함께 팀을 꾸렸었던 숨겨진 영웅이라는 남자.

지금은 차기 성녀인 엘레노아의 남편이기도 한 은현이다.

이단심문관들은 내심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고 본래의 임무를 상기시켰다.

그들의 임무는 에린과 엘빈이 제압한 벨라스 고위 사제 파벌의 사제들을 모조리 체포하는 것.

“지금부터 너희들을 모두 체포하겠다!”

다행히도 사제들은 이단심문관의 포박을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항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먼저 도착하여 날뛴 에린이나 한 타이밍 늦게 도착한 엘빈이 보여준 힘이 압도적이고 무자비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단심문관들은 이 난리를 보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했다.

그들의 저항과 도망 의사를 모조리 뽑아버릴 정도로 강렬하고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를 경험했기 때문에 보이는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감사드립니다.”

이단심문관들은 손쉽게 상황을 정리해준 에린과 엘빈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본래 이것은 자신들이 해야 했을 일들.

대신 해준 두 사람에게 이단심문관들이 느낀 감정들은 단연 고마움 뿐만이 아니다.

자신은 그동안 도대체 이 간단한 것을 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왔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무력하고 허무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체포한 사제들을 연행하여 이단심문관들은 본교로 복귀했다.

어지러운 난장판이 가득한 저택은 주인을 잃어 공허해졌으며 그곳에는 에린과 엘빈이 남게 되었다.

단둘 만이 되자 엘빈은 곧바로 에린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

에린은 엘빈의 물음에 몸을 움찔 떨었다.

“…어떻게 알았어?”

“너무 막 나갔잖아. 아무리 네가 바보라도 이 정도로 무식하게 나가지는 않으니까.”

“…바보라는 말 취소해.”

에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엘빈은 에린이 평소보다 신경이 몹시 날카롭다는 것을 곧바로 눈치챘다.

남들 앞에서는 별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곧바로 눈치챘다.

가족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특유의 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녀석이 부탁하기도 했고.’

에린의 기분이 이상하게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은현이나 엘레노아도 눈치채고 있었다.

애써 숨기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원체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고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솔직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만큼, 숨기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은현은 엘빈을 불러서 에린의 곁에 붙여두었다.

남편이나 다른 아내인 자신들과 달리, 엘빈은 에린을 어렸을 적부터 홀로 키워온 믿음직한 오빠다.

적어도 가장 가까운 가족인 그에게라면 속내를 털어놓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

입을 꾹 다물고 한참을 고민했던 에린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 은현이나 엘레노아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이 나왔다.

“오빠. 이번에 여기를 습격했던 사령술사 얘기…. 들었지?”

“들었지.”

“그 사령술사가…. 갑자기 나를 사랑한데.”

“뭐?”

엘빈은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에린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게 뭔 소린가 싶지? 나도 그래. 하지만….”

에린이 마리우스의 얼굴과 자신을 보고 지었던 표정, 그의 목소리, 그가 자신에게 보내왔던 열렬한 감정의 연속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모두 진짜였어.

“난 그때 소름이 끼쳤어.”

에린은 지금껏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고 그 경험 속에서 그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겪어보았다.

물론 좋은 감정들만을 겪어보았던 것은 아니다.

매력적으로 성장한 자신의 몸을 보고 품은 색정의 감정.

모험가로서 성공한 것에 대한 질투심.

그런 저급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순수하고 열렬한 감정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변질된 악의는 에린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낯선 종류의 감정이었다.

“진짜로 기분 나빠. 아직도 그 사령술사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짜증이 나.”

은현이나 엘레노아와 있을 때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떠오를 때마다 가슴 속에 차오르는 혐오감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다.

“…….”

“현이나 엘레노아님한테는 이야기하지마. 이건…. 내 문제니까.”

확실히 은현이나 엘레노아는 에린과 사령술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저 어렴풋이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를 터.

엘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일단은 에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 ◆ ◆

은현의 계획을 모두 들은 현 교황, 아르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할배. 아니라고 생각하면 거절해도 돼.”

이번 문제에 관해서는, 아니에스는 은현보다 아르반의 편이었다.

은현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확실히 효율적이고 정답에 가깝다.

아니에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계획에 선뜻 동참할 수 없었다.

지금 그녀는 은현의 친구이자 옛 동료가 아니라,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로서, 교황인 아르반의 선택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니에스. 나는 이분의 계획과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어서 씁쓸한 표정을 지은 게 아니다.”

“…그러면?”

“내가 너무 한심하고 무력한 교황이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지.”

“…….”

“할아버지….”

스스로를 한탄하는 이야기를 들은 아니에스와 알베른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몇몇 사제들이 신성력을 악용하고 그릇되지 못한 행동을 해오면서 그것들을 감추는 기만을 보여왔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처벌하지 못했죠.”

아르반이 교황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약 15년 전.

사람들을 구원하고 수호하는 집단인 신전이 가지고 있던 이면을 알아차리게 된 시기였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를 찾은 신전은 그 평화 속에서 또 다른 부패와 착취를 낳기 시작했다.

전대 교황은 그것을 바로 잡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 안에 가담하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몇 번이고….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들을 처벌하고 싶었고 평화 속에서 찾아온 새로운 악순환의 연쇄를 그 또한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조작되어 인멸된 증거들이 그들의 부패를 거짓된 정의로 그럴싸하게 포장했고 그들의 뒤에는 이미 타국의 세력들이 가담해 있었다.

베스타 신전과 에레니아 신성국은 강력한 권위와 위상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면서, 동시에 타국의 도움이나 원조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국가였다.

이미 그렇게 만들어져버린 기틀을 바꾸려고 했다가는 도리어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아르반을 고뇌하게 했다.

여기서 신전의 죄를 드러내고 비리를 일삼았던 사제들을 모두 숙청한다면, 신전은 진정한 평화와 영광을 누릴 수가 있을까?

아르반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고 죄를 드러내어 다시는 그런 더러운 암이 드리워지지 않도록 약속을 하겠다고 한들, 한번 잃어버린 신뢰와 존경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타국의 세력을 등에 업은 사제들과 갈등을 빚게 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분쟁을 낳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눈을 감았다.

그것은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겨우 찾아낸 평화를 억지로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신전이라는 거대한 집단 안에, 그리고 이 신성국 안에 속한 수많은 백성과 신자들이 지금처럼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아르반은 잔혹한 진실보다, 거짓으로 칠해진 평화가 계속 이어지는 걸 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자신이 어쩔 수 없다고 타협하면서 눈을 돌렸던 사건 중 하나가, 재앙이라는 끔찍한 형태로 되돌아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건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던 저의 죄입니다.”

많은 이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 그 악의로부터 눈을 돌렸지만, 더 많은 생명이 죽어버리는 끔찍한 사태로 되돌아온 것에 아르반은 깊은 책임을 느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건 나쁜 짓을 저지른 사제들의 잘못이잖아요…!”

“아니. 아니다. 알베른. 그들을 막지 못한 나의 무력함은 죄다.”

적어도 교황이라는 자리와 역할을 수행하는 자신은 그 악행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앞으로의 변화와 희생이 두려워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한 자신의 용기와 그릇이 너무나도 나약했던 것 자체가 크나큰 죄였다.

아르반은 이윽고 은현을 바라보았다.

은현은 지금 자신에게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아직도 도망을 칠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 잘못을 바로잡을 것인지.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중에서 유일한 후회라면, 지금껏 외면해왔던 그 잘못을 바로 잡지 못했던 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강하시군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만큼, 아르반은 자신의 선택이 신전 안에 얼마나 큰 파란을 불러올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있는 은현이라는 남자는 그런 파란을 몇 번이고 경험해보았던 남자.

그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짊어지고 있는 책임을 몇 번이고 강요당해 왔을 것이라고, 아르반은 눈치챘다.

그런데도 앞으로 나아가고 행동하고자 하는 그 마음과 기개가 너무나도 부럽다.

“혼자였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르반의 시선을 받은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베르단디가 자신을 되살린 이후로, 은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리아나를 시작으로 책임져야 할 가족이 많이 생겼고, 아내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강경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신전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은현의 계획도, 엘레노아와 에린이 없다면 세우지도 못했을 계획이다.

의연한 태도를 하고 있는 은현을 보고, 아르반도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가득했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로서는 지금의 신전을 바꾸지 못하겠죠. 저는 무력했고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그것보다 더욱 불안한 게 있습니다.”

아르반은 자신의 손자인 알베른을 바라보았다.

“내 손자가 언젠가 교황의 자리를 물려받는다면…. 적어도 제가 느꼈던 한탄과 배신감만큼은 함께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르반이 처음 교황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신전 안에 숨겨져 있던 추악한 이면을 보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으며 좌절했다.

그리고 그 추악한 이면의 현실에서 눈을 돌렸다.

부디 알베른이 이어받게 될 신전의 미래에서는 그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것을 자신이 직접 행동하여 바꾸지 못하고 타인에게 부탁한다는 모양새도 너무나도 우스워서, 스스로가 한심해 웃음이 나왔다.

힘든 결정을 해준 아르반을 보고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스.”

“…어.”

“예정대로 재판 시작해.”

신전의 이면을, 인간의 악의가 만들어낸 그 불합리함을 보완하기 위한 허락은 맡았다.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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