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99화 (682/730)

〈 699화 〉 699. 신성 재판(1)

* * *

상위사제를 포함한 다수의 사제들이 에린이 보여준 ‘이단심문관 임시 임명장’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타국의 외국인 신분을 가진 이에게 단독으로 이런 권한을 내어준 이단심문관장이 미친 게 아닐까 싶은 경악을 제쳐두고 현재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무마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뿐이다.

“그, 그렇더라도…! 이렇게 내 집을 습격한 이유는 되지 않아! 도대체 무슨 명분과 이유를 가지고…!”

퍼억!

자꾸만 발악하여 저항하려는 상위 사제의 안면에 에린의 주먹이 꽂혔다.

바닥에 튀는 피와 함께 다수의 이빨이 후드득 떨어졌다.

“사제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든 제가 알게 뭐에요. 사제님 나쁜 사람 맞잖아요? 그럼 된 거지.”

거기에 증거나 명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에린을 움직이게 만드는 행동 원리는 신전의 규율이나 이단심문관으로서 부여받은 역할이나 책임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구실일 뿐, 근본적인 행동의 원리가 되지는 못한다.

“현이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저한테는 그걸로 충분해요.”

사제들이 여신을 모시는 신앙심만큼, 은현에게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에린이다.

“뭐 이딴…!”

이빨이 사라져 바람이 통하는 헛소리로 경악을 내뱉는 상위 사제는 미친 사람을 보는 표정을 지었다.

일의 순서가 엉망진창이고 절차와 권위, 지위 등 모든 것을 무시하는 이 과격한 행동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상위 사제의 입장에서 에린이라는 여자는 느닷없이 나타나 앞뒤 안 가리고 사람을 물어뜯는 미친개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위 사제의 입장에서 보이는 인상.

에린은 주인에 의해 철저히 훈련된 사냥개 그 자체다.

이윽고 에린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상위 사제를 노려보았다.

타인의 감정을 읽어 들일 수 있는 에린이 자신을 보고 느끼는 상위 사제의 감정을 읽은 것이다.

“…지금 사제님. 저보고 무식하다고 생각했죠?”

흠칫

상위 사제는 우수수 떨어지는 이빨과 함께 핏물을 쏟아내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고 몸을 떨었다.

어떻게 에린이 자신의 생각을 읽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당황하는 것도 잠시.

화가 난 에린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 한돼…!(아, 안돼…!)”

이빨이 빠진 부분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지만, 상위 사제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에린이 그의 애원을 들어주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도대체 어떻게 들킨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에린의 능력을 자세히 모르는 상위 사제는 그저 자신의 감정을 들켰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인상을 찌푸린 에린이 주먹을 꽉 쥐었을 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행동을 멈췄다.

에린이 사제 본교에서 파견을 나온 수사관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일부 사제들이 이 밀담이 이루어지는 저택에서 도주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들이 문밖에 도달한 찰나, 에린은 한쪽 다리에 마력을 싣고는 땅바닥을 있는 힘껏 찼다.

콰앙!

그저 바닥을 찬 사소한 동작이었지만, 그로 인해 생겨난 여파는 전혀 사소하지 않다.

힘을 이기지 못하고 땅이 움푹 꺼진 것은 물론, 동그란 원을 그리듯 사방으로 퍼지는 강력한 충격파가 주변의 공기를 잠식한다.

“큭…!?”

“허억!?”

누군가는 공기를 타고 흘러들어온 강력한 마력에 몸을 움찔 떨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숨을 들이켜며 제대로 된 호흡조차도 곤란해하는 무서운 상황.

모험가들은 순식간에 에린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단 한순간에 자신의 마력으로 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워 장악한 것이다.

남들은 쳐다도 보지 못할 우월한 마력량은 물론, 그것을 조작하는 센스가 필요한 에린의 기술은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소 금위계 승급 심사를 앞둔 초 베테랑 모험가라고 판단했던 평가가 단숨에 상승했다.

‘최소 금위계 사이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모험가들은 재빨리 항복을 선언한 자신들의 판단을 스스로 칭찬할 수준이었다.

분명 분수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는 몸 한쪽 어딘가가 아작나는 걸로는 끝나지 않았으리라.

“읍…! 우읍…!”

한 사제가 에린이 장악한 마력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구토했다.

현재 강력한 마력으로 가득 차 있는 이 공간은 익숙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수중에서 호흡하는 것보다 더더욱 끔찍한 경험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에린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 공간 장악은 영향을 주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 안에 포함된 전원이라는 것이다.

“우웨액…!”

이미 에린의 주먹을 얻어맞고 이빨이 부서지며 턱이 틀어진 상위 사제가 피와 함께 위액을 쏟아냈다.

이윽고 처참하게 풀린 눈동자의 상위 사제는 허무하게 자신이 쏟아낸 위액과 피웅덩이 위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했다.

“어, 어…?”

상위 사제가 기절해버리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에린이 적지 않게 당황했다.

“쓰러지면 안 되는데…. 너무 세게 때렸나?”

설마 상위 사제가 자신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는 이 정도의 압박도 견뎌내지 못하는 약골일 줄이야.

기절하는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잔뜩 당황하는 에린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제들이나 모험가들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아까까지 보여주었던 살벌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방비하고 순진해 보이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

‘혀, 현이가 무사히 데려오라고 했는데….’

적당히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건 상관없다고는 했어도, 이렇게 넝마가 된 꼴을 뒤늦게 눈치채니 에린은 고민했다.

정말로 이게 적당히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선으로 보일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너무 심하게 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 타이밍 늦게 찾아온다.

‘어쩌지…?’

이윽고 에린의 기척에 마침내 동행하기로 한 동행자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반색하며 동행자를 불렀다.

“오빠아! 이 사람 기절해버렸어! 어떡하지!?”

바닥에서 나타난 그림자가 서서히 위로 떠 오르며 사람의 모습을 갖춘 정령.

엘빈은 다른 장소를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왔지만, 이미 자신의 여동생이 상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높았다는 것에 두통을 느꼈다.

“이 멍청이가….”

잠깐 혼자 둔 사이에 도대체 어떻게 하면 목표 대상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을까.

◆ ◆ ◆

“…우웨액!”

빙의가 해제되고 본체로 돌아온 마리우스는 목 안쪽에서 끓어오르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쏟아냈다.

신체 일부가 사라진듯한 상실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혼의 일부가 뜯겨 소멸하면서 퍼지는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영혼이 거칠게 진동하며 부조화를 일으키고 그릇의 역할을 하고 있는 육체를 사정없이 흔든다.

머릿속의 정신은 헤집어질 것만 같은 격통이 지배당하고 정신은 금이 간 유리병처럼 언제 무너질지 예측하기 힘들어 위태롭다.

하지만 그런데도.

“크, 크큭…. 키키키킥!”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자신이 그토록 고대했던 에레니아 신성국에, 베스타 신전에 선전포고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뿌듯하고 기뻤기 때문이다.

그 누가 감히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퍼뜨리고 있는 신성국에 싸움을 걸 수가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사제와 성기사들을 언데드로 만들어낸 자신의 업적이 너무나도 기뻐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하…아….”

그로 인해 마리우스는 영혼의 일부와 오랫동안 축적해왔던 사령술의 근원 사기(死?) 대부분을 소모하였지만,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에 만족하고 있었다.

“돌아왔군.”

반파된 궁전의 안으로 돌아온 마리우스의 영혼을 알아차린 것은 레이넌이다.

정확히는 그의 육체를 잠식한 악마 벨페고르가 느낀 것이었지만, 현재 악마와 육체를 동화시킨 레이넌은 그 덕분에 특별한 악마의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레이넌은 당연히 현재 너덜너덜한 마리우스의 영혼 상태를 곧바로 알아보았다.

“…제정신이 아니군.”

굳이 비유하자면 사지가 찢기다 못해 아직도 칼날로 난자되고 있는 듯한 상태다.

저 상태에서도 실실 웃으며 태연한 반응을 보이다니, 머릿속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미치광이였다.

“하하, 너무하군. 이래 봬도 필사(必死)를 각오하고 싸움에 뛰어든 건데 말이야.”

실제로 마리우스는 이미 여러 번 죽음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페르니아스 왕국을 쳤을 때, 자신들을 추적했던 은현 일행과 만나면서 고룡의 사체를 소환하여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고위의 사령술을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바쳤다.

두 번째는 바로 이번에 아니에스의 신성력으로 영혼의 일부가 정화되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그렇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맛보았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영혼따위는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다는 뒤틀린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었나 보군.”

“큭큭…. 그렇지. 아주 좋았어. 성공적으로 신전에 물을 먹였으니까. 게다가…운명을 만났다.”

마리우스는 이번 습격 속에서 신전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킨 것보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을 최대의 수확으로 평가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레이피어를 휘두르고, 백은색의 아름다운 아홉 꼬리를 흩날리며 전장을 누빈 여자의 모습이 또 한 번 마리우스의 기억 속에 아른거린다.

자신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아름다운 눈동자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격정적인 감정들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은 충동에 전신이 떨렸다.

“…운명?”

“큭큭.”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레이넌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이미 레이넌 또한 악인이 되면서 미쳐버렸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사령술사의 광기와 감성을 이해하기에는 레이넌은 그나마 정상적이다.

에린을 떠올리며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던 마리우스가 이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검은색의 안개가 먹구름처럼 가득한 수정구슬이었다.

[오오…!]

수정구슬을 본 무언가가 감탄의 목소리를 흘렸다.

그 안에 가둬져 있는 만 명에 가까운 인간들의 영혼을 느낀 벨페고르가 군침을 흘리며 감탄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아니. 모자르다. 더, 더 필요하다! 이 정도 규모의 영혼들이 더 많이 필요해!]

마리우스가 물어본 것은 마계와 하계를 잇는 통로와 문의 개설에 필요한 영혼의 양이었다.

하지만 하계를 멸망시킬 정도의 고위 악마들을 이곳으로 소환시키는 작업이 겨우 만 명 수준의 영혼으로 가능했을 리 없다.

과거 20년 전의 미르바빌라 제국은 몇 십만에 달하는 인간들을 모조리 학살하여 그 영혼을 거두어들였음에도 마계의 문을 열지 못했다.

연합군과의 전쟁이나 은현과 다른 영웅들의 개입으로 저지당했지만, 그들이 나서기 전에 더 많은 영혼을 모았다면 그 싸움은 제국과 그 뒤에 있는 악마들의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

“큭큭. 그렇군.”

이 정도 규모의 영혼으로는 턱도 없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마리우스는 실망하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 비명과 절망의 감정을 맛볼 수 있다는 앞으로의 예상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

“자, 그럼. 이 영혼들을 가공해줄 마녀는 어디에 있지?”

“그녀는 지금 준비중이다.”

“아아, 그럼 이건 자네에게 맡기지.”

마리우스는 망자의 영혼을 모아둔 수정구슬을 레이넌에게 맡기고 휴식에 들어갔다.

“후우….”

“네 상태는 어떻지?”

“음, 당분간은 무리군. 영혼의 일부가 소멸한 탓에 이미 본체인 이쪽도 심각하게 데미지를 입었어. 게다가 모아두었던 사기(死?)도 모조리 써버렸으니, 당분간 또 힘을 축적하면서 모아둘 생각이다.”

“그렇군.”

레이넌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리우스의 사령술은 한번 발동하면 위협적이고 사기적이지만, 그 사령술을 사용하기 위한 조건이 너무나도 까다롭다.

인간의 영혼에서 추출한 부정한 기운인 사기(死?)를 사용한다거나, 스스로의 영혼을 거리낌 없이 메디아에게 바친 그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다.

“큭큭. 너무 아쉬워 말라고. 나는 지금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니까.”

세상을 비명과 죽음으로 물들이고 자신이 사령술사가 된 베스타 신전의 권위와 명예는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그런 마리우스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새롭게 자각한 자신의 감정을 모조리 부딪쳐 줄 사람을 찾았다.

“…알았다. 우린 먼저 행동하도록 하지. 회복이 된다면 따라 오도록.”

“크크. 기대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또 어떤 학살이 이루어지는 전장을 만들려는 것인지, 마리우스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레이넌이 자리를 떠나고 기둥에 등을 기대며 몸을 늘어뜨리자, 격렬할 싸움의 이후인지 피로가 나른해진 전신을 덮쳐왔다.

“후우….”

불안정한 영혼을 안정시키면서 머릿속으로 자신을 매료시킨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름도, 출신도, 나이도 모르지만 마리우스는 언젠가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강렬한 확신을 가졌다.

“그때는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하며 분노했던 그녀는 끝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고 자신을 죽였다.

하지만 그것에 서운함과 분노를 가지기보다는, 또 그녀를 만날 때를 생각하며 기대감이 차오른다.

“아아…. 빨리 만나고 싶구나. 나의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지를 고민하면서 마리우스는 즐거운 웃음을 흘렸다.

그는 만난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여자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고, 벌써부터 그녀와의 재회를 고대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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