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8화 〉 698. 괴물의 경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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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많은 사제와 성기사들이 비밀리에 모인 장소는 에레니움 안에 위치한 한 상위 사제의 저택이었다.
베스타 신전 안에서 상위 사제라는 지위는 제법 높은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왕국에서는 귀족과도 같은 대우를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는 상위 사제의 저택은 현재 비밀리에 결성된 사제들의 파벌들이 밀담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밀담에 참석한 한 사제가 물었다.
“벨라스 고위 사제님은 도대체….”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점은 딱 하나.
벨라스 고위 사제의 휘하에서 갖은 떡고물들을 받아 먹던 이들이라는 것이다.
벨라스 고위 사제는 갑작스레 교황 후보 자리는 물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전의 모든 지위와 권력을 내려놓겠다고 이야기하고 종적을 감췄다.
그의 변덕을 들은 사제들은 현재 그 원인과 그의 종적을 파악할 수가 없어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는 언젠가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은 모조리 사용해왔던 야심이 가득한 인물.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종적을 감춰버렸으니 그의 지위와 권력 아래에서 더러운 이익을 가득 챙기고 있었던 이들로서는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저희는…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어떤 한 사제가 불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배부르고 편안하게 자신들의 주머니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앞에 차기 교황 후보로 거론되는 벨라스 고위 사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일들을 자행하면서도 아무런 면책도 받지 않고 이런 불합리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 그 악행을 모두 덮어줄 수 있는 권력자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들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몇몇 사제들이 지금껏 자신들이 해왔던 일들이 들통이라도 날까 두려운 태도를 보였다.
주로 이 파벌 안에 소속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사제들이 대부분이었다.
“흥. 뭘 그렇게 겁을 먹고 있는 겐가.”
하지만 벨라스 고위 사제 다음으로 이 파벌 안에서 오래 속해 있던 상위 사제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겼다.
“지금까지 의혹을 받았던 적은 있어도 처벌을 받았던 적은 단 한 명도 없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다.”
거짓말이다.
본래는 이런 의혹을 받았을 때마다 파벌에 속해있던 말단 사제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꼬리를 자름으로써 이 파벌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 막 파벌 안에 속하게 된 말단 사제들은 고위 사제들이 감춰둔 이 진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제물이다.
‘자칫 일이 틀어지면 또 이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야겠군.’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이 파벌의 머리에 속해 있는 상위 사제들은 또 한 번 꼬리를 자르며 자신들이 살아나갈 방법을 속으로 궁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짜증나는 고민이 생겨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젠장….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째서 벨라스 고위 사제가 종적을 감추게 되었는지보다, 앞으로 어떻게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그들은 너무도 어리석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있던 비리와 악행은, 이제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고 앞으로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당연히 자신의 주머니를 불리지 못한다는 것에 짜증이 앞섰다.
그래서 사건의 중요성을, 우선 순위를 제대로 판단하고 구분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서 자신이 겪게될 결과 마저도 전혀 예상치 못할 것이었다.
이윽고 그들을 심판하기 위한 괴물이 마침내 찾아왔다.
“잠시만요! 이곳은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다급한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려와 밀담을 진행하고 있던 사제들 전원이 문쪽을 응시했다.
“누가….”
콰앙!
사용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택 안을 밀고 들어오는 불청객의 존재에 인상을 찡그리던 찰나, 불청객 본인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평범한 방법이 아닌 문을 걷어차며 부숴버리고 난입하는 난폭한 방법으로.
“누구냐!”
깜짝 놀란 사제 한명이 문짝이 뜯겨져 나간 입구에서 모습을 보인 사람을 발견하고 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자?”
허리춤에 레이피어를 착용하고 있는 그녀는 호리호리한 몸매와 아름다운 미색을 갖춘 여자였다.
그리고 몇몇 사제들의 기억 속에도 확실히 각인되어 있는 여성의 얼굴이다.
“저, 저 여자는…!?”
이번에 베스타 신전 본교로 엘레노아와 은현과 함께 들어온 여자다.
은현의 다른 아내이기도 하며, 이번 사령술사 습격 사건에서 가장 큰 공헌을 세운 모험가.
그녀가 전장에서 보여주었던 무력을 잘 알고 있는 사제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대부분이 그 전장에 투입되었던 젊은 사제들이다.
에린은 밀담이 진행됐던 방안을 한차례 쓱 훑어보고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상체를 숙이며 앞으로 기울어진 에린의 몸이 유연한 활처럼 휘어졌고, 모아둔 다리의 각력를 폭발시키듯 무시무시한 탄성으로 튀어 올랐다.
순간 허공을 날아오른 에린이 착지한 곳은 밀담에 참여한 다수의 사제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의 한중심.
쿠웅!
“아.”
에린이 가뿐히 착지한 나무테이블이 가속도가 붙은 에린의 발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에린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야. 왜 이렇게 약해? 이래선 마치…내가 무거워서 테이블이 부러진 것 같잖아.’
살짝 인상이 찡그려진 것도 잠시, 테이블이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도, 에린은 다리를 구부리며 튀어올라 두 번째 도약을 시작했다.
입구 쪽에 있을 때부터 에린의 시선이 올곧게 향하고 있는 곳은 이 밀담의 장소를 제공한 저택의 주인.
에린의 시선과 마주친 상위 사제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곤 황급하게 방안을 지키고 있던 자신의 호위병력들에게 황급히 명령을 내렸다.
“마, 막아!”
상위 사제의 명령을 듣고 움직인 것은 그에게 고용되어 그를 호위하고 있던 모험가들이다.
역시나 이러한 자리에 자신의 부하들이나 다름이 없는 성기사들이 아니라, 사적으로 고용한 모험가들을 호위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뒤가 구리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단 몇 초 사이에 상위 사제의 코앞까지 도달한 에린을 향해 모험가들이 검을 휘둘렀다.
자신을 베기 위해 날아들어오는 칼날들을 인식한 에린은 생각했다.
‘느리네. 그리고 당황했구나.’
자신의 기습으로 인해 당황한 모험가들의 칼날에서는 조급함이 느껴졌다.
한 발자국 늦은 그 짧은 순간 동안, 설마 에린이 몇십m나 되는 거리를 주파하여 자신들의 고용주 앞에 나타났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에린은 급소를 노리기는커녕 두 눈으로도 훤하게 보이는 검격을 몸을 옆으로 비스듬이 트는 것으로 피해냈다.
그리고 힘을 실어 비틀어낸 몸을 회전시켰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뺨과 어깨를 스쳐지나가는 두 자루의 칼날을 보내고, 원심력이 실린 에린의 돌려차기가 모험가의 관자놀이에 깔끔하게 꽂혔다.
퍼억!
“크윽!?”
관자놀이를 직격하는 묵직한 타격에 짧은 신음을 흘린 모험가가 그대로 뇌진탕을 일으키며 휘청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돌려차기를 실행했던 자세를 바로잡고 반대쪽의 모험가의 품을 파고들었다.
“허…?”
너무도 눈깜짝한 사이에 일어난 에린의 기습.
모험가는 지금 자신의 복부에 근접해온 에린의 손바닥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몸의 탄성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는 기교도, 공격을 인식하는 속도도, 거기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센스와 반사신경도.
모든 것이 자신들과 차원이 다르다.
모험가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꼈다.
자신들 또한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밥 먹듯이 하여, 지금까지 은위계라는 등급의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이지만.
남청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날카로운 눈빛을 발하는 이 여자는 자신들의 수준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모험가가 자신도 모르게 에린의 회피와 반격에 감탄을 하고 있던 찰나.
에린은 모험가의 복부에 가져다 대었던 손바닥에 모아두었던 마력을 해방하여 터뜨렸다.
[주현성 극원류]
[호접발경(????)]
까앙!
복부의 급소를 보호하고 있던 금속 갑옷을 깨부수는 마력의 충격파가 묵직한 타격으로 변화하여 모험가의 내부에 큰 데미지를 입힌다.
“커헉!”
튕겨져나가듯 허공으로 떠오른 모험가의 신체가 그대로 방안의 벽면에 쳐박혔다.
“우읍!? 우웨액…!”
심각한 내상으로 인해 입에서 피를 쏟아내어 추가적인 데미지를 입은 모험가 또한 더는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
각각 단 일격으로 자신이 고용했던 베테랑 모험가 둘을 깔끔하게 정리해버리자, 함께 호위로 고용된 모험가들이 긴장하며 에린에게 무기를 겨눴다.
상대가 그냥 여자가 아니라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뭐, 뭐하고 있어! 빨리 저 여자를 제압하라고!”
하지만 고용주인 상위 사제는 느닷없는 에린의 난입에 패닉 상태가 되어 모험가들을 재촉하기 바빴다.
‘말이야 쉽지….’
‘거지같네. 진짜.’
모험가들은 고용주의 재촉과 달리 쉽사리 에린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자신의 동료 둘을 깔끔하게 제압해낸 그녀의 솜씨는 아무리 낮게 보아도 자신들과 동급의 수준이 아니다.
최소한 곧 금위계의 심사를 앞둔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의 은위계 모험가이거나, 아니면 이미 금위계 이상의 수준.
섣불리 나섰다가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은 다름아닌 모험가들 자신들이다.
경계와 긴장이 가득한 모험가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에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올곧게 상위 사제를 향해 또다시 도약했다.
“막아! 날! 날 보호하라고!”
“아오! X발, 진짜!”
모험가는 돼지 같은 자식이 할 줄 아는 건 비명을 지르며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밖에 없냐고 고용주에게 항의를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에린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묵직한 배틀 액스가 돌진해오는 에린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기 위해 그대로 아래로 내리찍혔다.
무시무시한 중량이 가미된 그 폭력은 닿는 것만으로도 신체 일부를 뜯어낼 수 있는 공격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에린은 망설이지 않고 배틀 액스를 쥔 모험가의 우락부락한 팔뚝을 응시했다.
순식간에 모험가의 품으로 파고들어 배틀액스를 휘두르는 손의 손목을 낚아챔과 동시에 꽉 움켜쥐어 고정하고 팔꿈치에 주먹을 가격했다.
우드득
“크아악!”
관절이 부서지고 꺾여버린 모험가가 배틀액스를 놓쳐버린 자신의 팔꿈치 부분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면서도 에린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다른 모험가들을 쳐다보았다.
“……!”
에린의 시선과 마주한 모험가들이 일제히 몸을 떨며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렸고 양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녀가 보여준 실력과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마력을 느끼고 도저히 대적할 수 없음을 인정한 완벽한 항복의 의사였다.
고용주와의 계약이야 포기하고 위약금을 물고 손해를 보는 선에서 끝을 보면 다행이지, 모험가들도 재산이나 다름이 없는 자신들의 몸을 사용하여 밥을 벌어먹는 직업인만큼 치명적인 데미지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모험가들이 항복의 의사를 밝혔음을 확인한 에린은 곧바로 상위 사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 오지 마…!”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모습은 상위 사제로서 가져야 할 기품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어있었으며 덜덜 떨리는 입가에서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아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딴 무례를…!”
“네? 아, 몰라요. 누구신지.”
에린은 당당했다.
그 태도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느껴져서 도리어 이 저택의 방안에 있는 모든 사제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윽고 멍한 표정을 짓던 상위 사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에린을 노려보았다.
“나, 나한테 해를 입힌다면 신전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별로 큰일이 생기진 않을 걸요?”
“뭐…?”
에린은 무언가를 떠올렸고 곧바로 자신의 치마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접혀져 있던 종이를 꺼냈다.
“으, 으음…. 잘 안펴지네….”
얼마나 꾸겨져 있었는지 곤란할 정도인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피고는 그것을 상위 사제를 향해 던졌다.
바람을 타고 자신의 앞에 떨어진 종이의 내용을 본 상위 사제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임명장이라고…!?”
그것은 베스타 신전의 이단심문교에서 발행한, 이 임명장을 가지고 있는 에린을 베스타 신전의 이단심문관으로 일시적인 기간동안 임명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임명장이었다.
내용을 확인한 상위 사제 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제들이 경악했다.
신전 소속의 사제나 성기사가 아닌, 외국인의 신분을 가진 자가 상위 사제와 맞먹는 권한을 가진 이단심문관직을 임명받았던 적은 신전의 역사 이래 단 한번도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다.
즉 눈앞의 에린이라는 여자는 이단심문관의 자격으로 자신들을 모조리 체포하기 위해서 온 수사관이라는 것을 상위 사제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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