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2화 〉 692. 신성과 타락(3)
* * *
마리우스를 향해 돌진하는 직선상의 거리를 가로막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아니에스는 짧게 말했다.
“꺼져.”
[아니에스 기본기]
[정권 지르기]
무감정한 음성과 함께 전방으로 내지르는 아니에스의 권격이 데스나이트의 칼날과 충돌한다.
날카로운 칼날과 연약하기 짝이 없는 가녀린 주먹과의 충돌.
닿는 순간부터 사기(死?)의 침식으로 모든 것을 오염시켜버리는 데스나이트의 검이 당연 우세해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쩌저적!
짙은 사기(死?)가 순식간에 정화된 검날은 신성을 두른 사제의 철권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그 광경은 지금껏 가지고 있는 상식을 뒤집어버리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으나, 거기에 반응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검날을 분쇄시킨 것도 모자라 조금의 위력도 상쇄되지 않은 아니에스의 주먹이 그대로 데스나이트의 안쪽을 파고들었다.
[아니에스 기본기]
[라이트 훅]
정권 지르기를 내보였던 주먹은 이내 두 번째 연격으로 데스나이트의 왼쪽 허벅지를 후려쳤다.
기본적인 외양이 15살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녀이기 때문인지 작은 체격으로 닿을 수 있는 사정거리는 보통의 일반 남성에 비해서 굉장히 짧다.
하지만 그런 단점도 아니에스에게는 전혀 고려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퍼억!
무쇠를 두들기는 사제의 연격은 다시 이어졌고, 안으로 파고든 아니에스에게서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하고 초근접전의 거리를 허용한 결과는 뻔했다.
철을 짓뭉개고 찢어발기는 주먹의 연격으로, 데스나이트는 제대로 저항 한번을 해보지 못하고 꿈틀거렸다.
하체와 복부 부근에 새겨지다 못해 찌그러진 타격의 자국은 그녀의 주먹이 얼마나 강하고 빨랐는지를 증명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리고 사기(死?)를 잃은 데스나이트가 조금씩 정화되어가기 시작했다.
“하.”
마리우스는 처음보는 사제의 싸움방식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헛나왔다.
일반적인 사제의 역할은 신성력을 사용하여 올린 기도로 발현된 축복을 이용하여 아군의 데미지를 컨트롤하고 보조하는 것.
하지만 아니에스는 아군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 스스로가 전선으로 나와 적과 맞서 싸운다.
물리적인 타격에 신성력을 활용하는 사제라니,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싸움 방법이다.
아무리 그녀가 만들어낸 광역의 신성 결계로 인해 데스나이트들의 사기(死?)가 크게 약화되었다고는 하더라도, 다른 성기사들이 흠집조차 내지 못했던 죽음의 갑옷을 찌그러진 고철덩이로 만들어버리는 저 무력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상이 아니다.
게다가 아니에스의 전투 방식 또한 강렬하고 빠르며 체계가 잡혀 있다.
역시나 여섯 영웅 중의 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여자.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데스나이트 하나를 순식간에 처리한 아니에스는 자신이 처리한 적에는 눈길 한번을 주지 않고 오로지 마리우스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 안에 담겨 있는 살기는 다른 사령(死?)들에 의해 보호 받고 있는 마리우스를 오싹하게 만들 정도다.
마리우스가 본 아니에스라는 여자는, 정말로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인간 그 자체였다.
“기가 차는 군.”
저 가녀린 소녀의 외관에서 데스나이트를 맨손으로 두들겨 팰 수 있는 근력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말로 설명하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존재라는 것은 어딜 가나 존재했다.
마리우스 또한 다른 이들의 시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지만, 아니에스는 차원이 틀리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상위 언데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두들겨 패며 소멸시키는 것을 직접 목격한 순간.
마리우스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저 여자를 이길 수 없다.’
이미 상대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 피지컬.
짧은 한순간이었지만, 그 확신을 얻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지도, 오기와 객기를 부리며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마리우스의 목표는 아니에스를 죽이는 것이 아니니까.
“큭큭.”
걸리적거리는 데스나이트를 두들겨 패며 치워버린 아니에스가 마리우스를 향해 올곧은 돌진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가녀리고 연약하기 짝이없는 소녀의 체구이지만, 돌진해오는 그녀의 기백은 적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사나운 맹수 그 자체다.
그런 아니에스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마리우스는 사령술을 이용하여 언데드로 만든 민간인들의 시체들에게 아니에스의 앞길을 가로막으라고 명령했다.
거부의 의사를 보일 수 없는 언데드들이 점점 아니에스를 향해 몰려들었다.
으, 어어….
짓뭉개진 성대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목소리를 흘리면서 그녀를 제지하기 위하여 언데드들이 손을 내뻗는다.
“…X발.”
순간 아니에스가 멈칫하였지만, 인상을 찡그리며 욕설을 내뱉을 뿐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언데드들의 손이 아니에스의 몸에 닿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미 성역화의 결계로 언데드들의 힘을 크게 약화된 상태.
게다가 아니에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신성을 접한 언데드들의 오염된 몸이 말끔히 정화되어 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
아니에스는 에린이나 여성 사제처럼, 언데드로 전락한 죄 없는 민간인, 성기사와 사제들을 처리하는데 망설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의 신성력이, 죽지 못해서 지옥같은 경험을 맛보게 만드는 육신에서 해방시켜주는 구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해왔던 아니에스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하여 모순을 느끼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마리우스가 급조해낸 언데드의 무리는 아니에스의 발목을 붙잡는데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하하! 대단하군! 역시 대주교!”
정말로 감탄하여 박수를 치면서 감탄을 보내오는 그 태도가, 오히려 아니에스의 기분을 더 짜증나게 만들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냐?”
“무엇을?”
추궁하는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마리우스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싸울 생각 없잖아. 너.”
마리우스는 아니에스와 전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는 데스나이트들을 이용하여 그녀에게 공격을 지시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마리우스가 이 싸움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 수 없었다.
그야 그럴것이, 그는 아니에스가 아무리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를 보여줘도, 그 힘으로 데스나이트와 언데드들을 가차없이 쓸어버리고 있음에도,
마리우스의 표정은 변화없이 굉장히 여유로웠다.
마치 언데드나 데스나이트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이 싸움의 승패 자체에 흥미가 없어보였다.
의도를 알수 없는 그 태도가 아니에스의 심기를 거스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단지 가장 뒤에 있을 뿐이지.”
마리우스는 언데드의 무리를 부릴 수 있는 사령술이라는 강력한 능력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그라는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신체 능력은 평균 일반 남성, 또는 그 이하의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마리우스는 자신이 맨몸으로 정면으로 아니에스와 충돌하게 된다면 방금의 데스나이트 들처럼 허무하게 찢겨져 나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후방에서 언데드들을 소환하고 닥치는 대로 아니에스에게 돌진시키는 무식한 인해전술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다.
“…네놈의 목적이야 뻔하지.”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라는 것은 아니에스도 곧바로 눈치챘다.
언데드들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그는 지금 이렇게 에레니아 신성국의 최강 전력인 자신의 발목을 붙잡아두고 시간을 끌고 있다.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네가 일으킨 이 사태는 진압되게 되어 있어. 쓸데없는 시간을 끌지 마.”
“크큭. 그딴 걸 내가 모를까.”
마리우스는 실시간으로 자신이 만들어내는 언데드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특정의 몇몇 장소에서 언데드의 반응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속도는 사전에 계획해두었던 것보다 빠르다.
분명 자신이 미처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강한 전력이 이 싸움에 끼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여자처럼 말이지.’
첫 만남부터 자신의 마음을 매료시킨 에린이라는 변수처럼, 다른 변수들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상정내의 이야기.
하지만 마리우스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죽고, 그들이 죽으면서 신을 애타게 찾으며 절망으로 물들어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여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지만, 결국에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이 벅차오른다.
“원래는 말이야. 이렇게 밖에서 사제와 성기사들을 가지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도, 당신을 끌어내기 위해서였지. 저 신전 본교 안에 있는 교황을 죽여버리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 본교를 지키고 있는 결계를 설치한 이, 아니에스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하여 성기사와 사제들의 비명을 인위적으로 연출했다.
그들을 곧바로 죽여버리지 않고 신체의 일부를 뜯어내고 여성 사제를 농락했다.
“하지만 교황을 죽이는 건 아쉽게도 포기해야겠어.”
마리우스는 정말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결계를 설치한 이가 아니에스라면, 그녀를 이길 수 없는 자신으로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교황을 죽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가지고 있는 광기나 능력에 비해 판단만큼은 현실적이고 매우 이성적이었다.
마리우스에게 교황을 죽이는 계획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이미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
“하하! 이것 보라고! 도시 전체가 비명으로 가득 차 있잖아!”
이미 죽어 사령술사에게 귀속된 망자(?子)의 혼들이 구해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여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구원의 빛은 내려오지 않는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절망의 감정이 마리우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와 희열을 낳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사람들을 수호하고 구원하는 여신의 은혜가, 베스타 신전의 명예와 권위가 바닥으로 끌어내려져 실추되었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방위 결계를 해제하고 에레니움 안으로 침입을 해온 것도.
에레니움 안의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도.
이루지는 못했지만 교황을 죽이려고 했던 것도.
모두 베스타 신전의 명예와 권위, 사회적인 지위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것들일 뿐.
“큭, 크큭…! 크하하하하!”
마리우스는 드디어 자신의 원대한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실감하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게…. 네가 신전에게 하고 싶었던 복수냐?”
“복수? 아니. 아니지. 복수 같은 게 아니야. 진실과 현실을 알려주는 거다.”
이 세상에 여신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X발 새끼가 진짜.”
마리우스는 아니에스를 비웃으며 그녀가 믿는 신앙을 부정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도시에 있는 시민들의, 목숨을 바쳐 싸웠던 성기사와 사제들의 신앙심을 헛것을 믿는 어리석음이라고 조롱한다.
아니에스는 방해하는 언데드와 데스나이트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마리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다시 언데드를 소환하여 아니에스의 앞을 가로막는 시체의 장벽을 재빨리 세우려 했지만, 그것보다 더 빨리 근접거리까지 도달한 아니에스의 주먹이 마리우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퍼억!
조롱으로 가득했던 사령술사의 살갗을 찢어버리고 가격한 턱이 통째로 날아가면서 마리우스는 죽음을 맞이했다.
“…….”
허무하게 바닥으로 풀썩 쓰러지는 마리우스를 응시한 아니에스는 재앙의 원흉을 쓰러뜨렸음에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신전 전체를 부정하던 그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죽였음에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는 미묘한 감각이 기분이 더러운 원인.
이윽고 턱이 날아간 마리우스의 신체를 감싸고 있는 짙은 사기(死?)가 아니에스의 신성력으로 정화되어 사라져 갔다.
동시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언데드와 데스나이트잔재들이 공급받던 사기(死?)의 근원을 잃어버리자 조금씩 소멸해갔다.
마리우스의 전신을 두르고 있던 사기(死?)가 사라지자, 등장한 것은 전혀 모르는 인간 남성의 시체였다.
아니에스는 그것을 보고 확신했다.
“아직 안 죽었구나.”
아마도 이것은 영혼의 일부가 담겨 있는 사기(死?)를 이용하여 시체 안에 빙의한 것일 터.
영혼과 사기(死?)가 담겨 있는 본체를 쓰러뜨리지 않는 한 마리우스라는 사령술사 자체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 본체는 아마도 이 도시 안에 없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고 사라진 마리우스가 광기에 찬 웃음을 흘리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아니에스의 마음 속 짜증이 점점 쌓여만 갔다.
하지만 이것으로 재앙의 근원이 사라진 것은 확실할 터.
남은 것은 주위의 언데드들을 모두 정리하는 마무리 작업이 남은 상태이니, 이곳에서 주춤할 수는 없었다.
사령술사와의 싸움은 종막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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