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1화 〉 691. 신성과 타락(2)
* * *
“이 성기사를 죽여라. 네 손으로 직접.”
“…네?”
“뭐…?”
“뭐…라고?”
마리우스의 제안은 성기사들과 여성 사제를 당혹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성기사들과 여성 사제에게 마리우스는 다시 한번 설명했다.
“네 손으로 직접 이 성기사를 죽여라. 네가 직접.”
“…….”
마리우스는 직접 여성 사제와 데스나이트의 칼날에 복부를 관통당한 성기사를 손으로 지목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바로 이 도시를 떠나도록 하지.”
“거, 거짓말하지 마라!”
순간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고 퍼뜩 정신을 차린 성기사가 소리쳤다.
“네놈의 그 제안에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냐!”
지목된 동료 성기사는 데스나이트의 공격에 의해 이미 팔을 뜯겨나갔고 검이 박힌 복부의 내장을 심각히 손상당했다.
장기는 사기(死?)에 오염당했고 머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이미 예정된 결말이나 마찬가지.
그런 그를 죽인다고해서 도대체 마리우스에게 무슨 이득이 돌아간다는 것일까.
하지만 마리우스는 실실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즐겁지.”
“…뭐라고?”
“아아, 진짜 짜증나게 제대로 쳐 들었으면서 아까부터 몇 번을 반복하여 설명해야 하는지.”
마리우스는 귀찮음을 느끼며 짜증을 느꼈다.
제대로, 똑바로 두 번이나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그들의 한심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기적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다시 한번 설명했다.
“내가 즐겁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어준 선택지 속에서 너희들이 죄책감으로 일그러진 끝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
마리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냐 마느냐 하는 선택지를 고심 끝에 받아들인 결과.
그가 한 제안은 간단하다.
곧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면 된다.
설명만큼 아주 간단한 방법.
하지만 정작 마리우스에게 지목당한 여성 사제는 그 제안을 듣고 손을 벌벌 떨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체하지 못하는 손의 떨림을 직시하며 중얼거렸다.
“내 손으로…. 동료를 직접….”
그녀의 손은 격전의 연속에서 흙먼지로 뒤덮여 있을지언정, 사람 한 명을 죽여본 적이 없는 깨끗하고 고결한 손.
하늘에서 여신이 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구하고자 마음먹은 성직자의 손이다.
그런데 그런 손으로 지금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것도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자신의 동료라는 사실이.
여성 사제의 마음속에 동요를 불러일으키고 두려움을 낳는다.
“그 제안이라면 차라리 내가…!”
불안정한 심리의 상태를 보이는 여성 사제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선 성기사가 마리우스의 제안을 대신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마리우스는 그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저 여자가 하는 게 조건이다.”
전투에 익숙한 성기사들은 당연히 살인의 경험 또한 해보았을 터.
당당하게 그 역할을 자처하려는 그의 태도가 증거다.
마리우스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여성 사제를 단호히 고집했다.
“아….”
그 의도 속에서, 여성 사제는 깨달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동료인 성기사를 죽이고 생에 첫 살인을 경험하여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동료 한 명의 목숨이냐, 아니면 다수의 목숨이냐.
어느 한쪽을 골라야만 하는 지독한 양자택일 속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멘탈이 뒤흔들리는 광경을 보며, 그것에서 쾌락을 느낀다.
“나는….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지키기로 맹세했던 자신의 손으로 사람의 목숨을 뺏어야만 언데드로부터 확산하는 피해를 멈출 수가 있다.
하지만.
“흐, 으윽….”
어느 쪽도 고르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진 여성 사제가 무너진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죽일 수 없다.
도저히 자신의 손으로는 처음 경험해보는 살인을 할 수가 없었다.
“하하! 고르지 못하는 거냐!”
마리우스는 그런 여성 사제를 보며 비웃었다.
“정말로 한심하군. 이런 간단한 것조차 고르지 못하는 건가!”
이윽고 손을 들어 올려 데스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커흑!”
다 죽어가던 성기사의 목에 검을 꽂아 넣고는 그대로 옆으로 베어내자 그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군다.
깔끔하면서도 빠른 공격에 의해 간신히 붙어 있던 그 성기사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 아아….”
작게 탄식하는 여성 사제의 오열을 무시하고, 마리우스는 냉담하게 말했다.
“제안은 사라졌다. 모조리 죽여.”
“그, 그만…! 안돼! 안돼요!”
퍼뜩 정신을 차린 여성 사제가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지만, 그 행동조차도 너무 늦었다.
이미 행동을 개시한 데스나이트들은 사령술사의 명을 충실히 수행했고, 대치하고 있던 성기사들을 공격했다.
카아앙!
“크윽!”
성기사들은 데스나이트들의 매서운 일격을 막아내고 반격을 꾀하며 훌륭하게 맞섰지만, 그것마저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들과 맞서고 있었던 언데드들은 데스나이트뿐만이 아니다.
오직 그들에게만 전력을 집중할 수 있다면, 성기사들과 여성 사제에게도 제법 해볼 수 있을 만한 싸움이 될 수 있었지만, 싸움의 양상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언데드의 습격으로 사망한 시체들이 사령술로 다시 일어서며 그들을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당연히 숫자의 차이로도 압도적으로 불리했던 성기사들이 밀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크아악!”
황급히 여성 사제가 신성력을 일으켜 성기사들을 지원했지만, 그럼에도 숫자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전력의 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성기사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여성 사제 혼자만이 남았다.
마리우스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살려둔 결과였다.
“아, 아아, 아아아…!”
여성 사제는 절망했다.
“큭큭. 이거 어쩌지? 네가 저걸 죽였더라면, 나는 정말로 떠날 의향이 있었는데 말이야.”
마리우스는 홀로 남은 여성 사제의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았다.
“꺄악!?”
강제로 그녀의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마주하게 만들고, 선고하듯이 여성 사제에게 말했다.
“네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아….”
만약 자신이 선택했더라면, 마리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동료였던 성기사를 죽였더라면, 이런 참혹한 결과는 이어지지 않았을 텐데.
마리우스의 선고가 점점 무너져가는 여성 사제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이 절망 속에서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이시여….”
여성 사제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결국 자신이 모시는 여신 뿐이었다.
“흠?”
“신이시여. 제발….”
“…….”
“신이시여! 제발! 이자에게 벌을 내려주소서! 베스타 여신이시어!”
애원이 섞인 목소리로 기도를 올려보지만, 그녀의 그 기도에 답해주는 것은 비웃음과 조롱이 섞인 재앙의 목소리다.
“크큭…. 큭큭! 크하하하하!”
멘탈이 무너진 끝에 여신을 찾는 여성 사제의 모습은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어 비참한 광경 그 자체.
그리고 마리우스가 가장 혐오하는 과거의 자기 자신이었다.
무력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알지도 듣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그때.
하염없이 여신을 찾아 부르짖었던 그런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여성 사제는 똑같았다.
“그래. 기도해! 더! 더욱 더! 간절함을 담아서! 네가 바라마지 않는 염원을 들어달라고!”
오히려 여성 사제보다도 마리우스가 더, 그녀의 기도가 여신에게 닿기를 바라고 있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순.
“나를 심판해달라고 기도해!”
스스로 심판받기를 자처하고 있는 그의 이성은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의 광기를 직면한 여성 사제의 마음이 금이 가기 시작하여 무너져내렸다.
“흐, 으윽….”
하지만 완전히 멘탈이 무너진 여성 사제는 더는 베스타 여신에게 올리는 기도도 포기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목숨도, 사제로서의 역할과 수행해야 할 임무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자포자기.
완전히 꺾여버린 여성 사제를 보고 마리우스는 들떴던 마음이 차갑게 식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재미없군.”
좀 더 발악하고, 발버둥 치며 자신에게 대적을 해야만 하는데, 너무나도 쉽게 꺾여버린 그녀를 보니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했다.
‘역시 그 여자가 특별한 건가.’
마리우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여자는 에린이었다.
여성 사제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원치 않는 무고한 이를 살해하길 강요하고 멘탈을 흔들었지만, 그 압박을 훌륭히 이겨내고 자신에게 격렬한 분노를 드러냈던 그 아름답고 고고한 자태.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눈빛에 마리우스는 매료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에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고히 직시하고는 그녀와는 정반대로 멘탈이 무너져버린 여성 사제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만 죽어라.”
흥미가 떨어진 여성 사제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그녀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찰나.
“그만해. 이 X발 새끼야.”
“흠?”
그리고 그렇게 가득 찬 절망적인 상황 앞에, 여성 사제의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한 듯 누군가가 등장했다.
“여신님. 힘 좀요.”
[베스타의 축복]
[성역화의 결계]
짙은 사기(死?)로 가득 채운 더러운 공기를 정화해나가는 강력한 신성력의 출현과 함께 금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어린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 자체는 15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소녀의 외관이지만, 지금껏 만나보았던 그 어쩐 사제나 성기사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그녀를, 마리우스가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 또한 이렇게 변하기 이전에는 신성한 사제직에 몸담았던 남자.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인 아니에스 예르살레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그랬군. 당신이 남아있었어.”
마리우스는 모든 병력이 출동하면서 허술해졌어야 할 신전 본교의 결계를 누가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깨달았다.
성기사와 사제들이 마음 놓고 신전 본교를 놔둔 채로 모든 병력을 언데드의 진압에 투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 성녀인 아니에스의 결계가 절대로 뚫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아니에스님….”
여성 사제는 기적적인 타이밍에 아니에스가 도착했음에 눈물을 흘렸다.
아니에스에게서 발해지는 신성의 빛을 느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마음에 구원이 깃들었다.
“여신께서…. 제 기도에 답을….”
“…쯧.”
베스타 여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었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여성 사제를 보며, 마리우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이내 그녀의 앞을 가로막듯이 그와 대치한 아니에스는 마리우스에게 말했다.
“기회를 줄게. 더는 죄를 짓지 말고 여기까지만 해. 그러면 적어도 편하게 없애줄게.”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하고 망자(?子)가 된 그들의 목숨을 농락하여 날이 갈수록 업을 쌓고 있는 사령술사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고통 없이 그를 죽여주겠다는 아니에스의 권유는 그가 마리우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였다.
“큭, 크큭.”
하지만 마리우스는 아니에스의 권유를 듣고 오히려 비웃었다.
“멈추라고? 제정신인가?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정말로 생각했다고?”
“…….”
“멈출 거였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메디아에게서 사령술을 이어받지도 않았을 테고, 자신이 처음 사제로 권유를 받았었던 도시, 콜로라스와 벤터 주교, 그리고 그 도시의 시민들을 모조리 죽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 시점부터, 마리우스는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마리우스는 자신이 사명으로 삼고 있는 목표를 위해서 쉬지 않고 달려가는 경주마 그 자체다.
그 과정 속에서 브레이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앗다.
“…그래.”
아니에스는 마리우스의 말을 듣고 결심을 굳혔다.
그는 신전과 베스타 여신이 부여한 은혜라고 할 수 있는 신성력이라는 시스템의 허점에 의해서, 인간들의 욕망과 악의에 의해 만들어진 피해자.
신전이 만들어낸 오점이자 괴물이 되어버린 그를 처리하는 것은 아니에스의 역할이었다.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이 역할을 자신의 후임이 될 엘레노아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다.
아니에스는 주먹을 꽉 쥐고 데스나이트들이 호위하고 있는 중심, 마리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