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0화 〉 690. 신성과 타락(1)
* * *
마음속에 차오르는 욕구를 간신히 억누른 마리우스는 곧장 사전의 계획대로 신전 본교를 향했다.
대규모의 언데드들을 한 장소에 집결시키지 않고, 에레니움 도시 전체 곳곳에 퍼뜨린 이유는 바로 성기사들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함.
신전 본교로 향하는 마리우스의 발걸음은 평소와 달리 께름칙했다.
“흐음….”
“크아아악!”
미리 소환해둔 총 다섯 개체의 데스나이트들을 이용하여, 가는 길에 마주친 성기사들을 모조리 정리하면서도 마리우스는 무언가 자신의 계획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이상하군.”
점점 신전 본교가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강력한 결계의 존재는 마리우스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현재 에레니움 곳곳에 퍼진 언데드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도시 안에 상주하고 있는 모든 성기사와 사제들을 소집하여 출동시켰을 터.
당연히 신전 본교에는 전투에는 미숙한 견습 사제들이나 성기사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만으로는 이렇게 강력한 신성 결계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이 결계를 유지할 정도로 능력있는 상위 이상의 사제가 아직 신전 본교에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곤란하군.”
저 결계는 굳이 가까이 근접하지 않더라도 굉장히 수준이 높은 결계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은 저 결계 안으로 침입할 수도, 해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마리우스는 고민했다.
“답은 하나지.”
저 결계 밖으로 상대가 나오도록 만들면 된다.
떠올린 수단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은 마리우스는 곧장 행동에 옮겼다.
“끄으…아아아악!”
데스나이트의 칼날에 복부를 꿰뚫린 성기사의 비명이 처절하게 어두운 도시 안을 가득 채운다.
칼날을 옆으로 비틀고 휘저으며 관통한 내장을 짓이기고 헤집어놓는 격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해일과도 같다.
하지만 성기사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오히려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칼날에 두르고 있는 끔찍한 사기(死?)가 그의 육체를 좀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뽑아내는 듯한 격렬한 고통에 의해, 자신의 신체가 점점 인간 이하의 존재인 언데드로 전락해가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의미로 행운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지.”
오히려 언데드로 전락해가는 공포에 몸을 떨며 몸부림을 치는 동안, 그 고통을 잊게 되는 반대의 경우도 행운이 아닐까.
당하는 성기사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끔찍한 경우지만, 사고방식이 뒤틀려있는 마리우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끄으, 아아악!”
“큭큭.”
마리우스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성기사를 응시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사령술사의 명령에 따라 검으로 성기사의 복부를 헤집어놓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우뚝 행동을 멈춘다.
씨익 웃으며 손짓한 주인의 명령에 따라, 데스나이트는 그 명령을 수행했다.
복부를 관통한 검을 단단히 유지한 채로 팔을 뻗어 성기사의 한쪽 팔을 붙잡았다.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성기사의 팔이 너무도 간단히 뜯겨 나갔다.
“크으아아악!”
저항도 하지 못하는 성기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것뿐.
“이봐.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마리우스는 실실 웃으며 성기사를 격려했다.
마치 이대로 쉽게 죽지 말라는 듯이.
데스나이트는 다음으로 성기사의 다리를 걷어찼다.
콰직
갑옷에 깃들어 있는 신성의 빛이 점점 사라져 그 효력을 잃었다.
데스나이트의 공격으로부터 성기사를 지켜주지 못하고 그의 다리가 기형적인 형태로 꺾여나갔다.
“아, 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초과한 탓인지, 아니면 이미 지속된 비명으로 성대가 갈라진 탓인지.
성기사는 더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콰직! 콰직!
다음으로 남아있는 반대쪽 다리와 팔까지 모조리 뜯어버리고 복부에 관통한 검을 비틀며 전신을 헤집어놓았지만, 성기사는 더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음?”
그것을 의아하게 여긴 마리우스는 성기사가 끝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벌써 죽어버렸나. 어쩔 수 없지.”
마리우스는 아쉬워했던 것도 잠시, 곧바로 다음 타겟들을 물색했다.
이 신성국의 수도에서, 현재 자신이 풀어놓은 언데드들과 대적하고 있는 성기사와 사제들의 숫자는 차고도 넘친다.
그것은 신전 본교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당연히 신전의 병력과 조우하게 되는 횟수도 많아졌다.
“이, 이럴 수가…!”
“어째서 네가…!”
“싫어. 싫어…!”
“이런 개자시익!”
그렇게 조우한 신전의 병력들을 농락하면서, 그들의 목숨을 바로 끊지는 않았다.
처참하게 죽은 성기사와 사제들의 시신을 언데드로 만들었고 조우한 이들에게 그 몰골을 보여주었다.
마치 스스로가 그리고 조각한 예술작품을 전시하여 과시하는 작가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언데드라는 피조물들을 본 성기사와 사제들은 각양각색으로 다양한 반응을 보여왔다.
언데드로 전락한 그들은 어떤 성기사에게는 평생을 함께했던 전우였고, 어떤 사제에게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연인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존경해 마지않는 상사이거나,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는 후배들이었다.
분노와 절망, 경악과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내보이며 그 감정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목표로 직결된다.
‘이 사령술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야 한다.’
이것은 재앙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이견은 없었다.
“으아아아!”
언데드로 전락한 전우의 모습을 목격하고 분노로 이성을 잃은 성기사가 격정으로 가득한 기합을 내지르며 마리우스를 향해 내질렀다.
“안돼! 진형을 유지해!”
후열에 서 있던 사제가 깜짝 놀라며 돌진한 성기사를 말리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언데드로 전락한 전우의 모습을 본 성기사는 평소의 냉철한 판단이 불가능할 만큼 격정적으로 흥분한 상태다.
하지만 마리우스를 호위하고 있는 데스나이트들을 제치고 마리우스를 향해 직접 휘두르는 뻔하고 직설적인 공격이 그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마리우스가 만들어낸 다섯 개체의 데스나이트들은 그가 레이넌과 함께 다수의 국가들을 무너뜨리면서 손에 넣은 강인한 전사들의 영혼으로 재탄생시킨 상위 언데드들.
그렇게 쉽사리 공격이 먹힐 리가 없다.
카아앙!
주인인 사령술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데스나이트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훌륭하게 마리우스를 지켰다.
성기사의 검을 막아내고 어처구니없게도 빈틈을 내어주었다.
“한심한 것.”
서걱
빈틈을 파고드는 데스나이트의 검격으로 성기사의 양팔이 허무하게 잘려나갔고 무기를 쥘 손을 잃은 성기사는 또 다른 데스나이트의 찌르기로 복부를 관통당했다.
“크헉! 우읍…!”
내장이 헤집어지면서 입 밖으로 피를 울컥 쏟아내는 성기사의 한쪽 팔이 데스나이트의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뜯겨 나갔다.
“크아악!”
곧바로 목숨을 끊지 않고, 성기사의 신체 일부를 차례차례 뜯어내며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비명을 유도한다.
비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처럼 데스나이트들을 지휘하여 농락하는 그 광경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동료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치밀어오르는 기분을 참지 못하고 역겨운 구토를 토해냈다.
“우읍…!”
“우웨액!”
“하하! 신을 모시는 성직자들이 그렇게 비위가 약해서 쓰나! 힘내보라고!”
마리우스는 그렇게 자신이 연출한 지옥에 버티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보이는 그들을 보며 비웃었고 조롱했다.
후열에 있었던 여성 사제가 치밀어오르는 역겨움을 끝내 참아내며 마리우스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노려봤다.
“어째서….”
“응?”
“어째서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이는 겁니까! 같은 인간이면서…!”
사람의 몸을 절단하고 뜯어내며 조각조각 내버리는 것도 모자라,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비명과 고통, 절망, 분노의 감정을 즐긴다.
그 모습은 도저히 여성 사제로서는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뒤틀린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여성 사제에게 마리우스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전혀 다른 무언가.
이 세상에 싹을 틔운 악마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큭큭. 왜냐고? 당연히 즐거우니까!”
“…….”
즐겁다.
“너희들의 비명을 듣는 게! 절망이 가득한 그 얼굴을 보는 게! 나에게 그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걸 피부로 느껴지는 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즐겁다!”
“어떻게 그런….”
여성 사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감성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쿨럭…!”
마리우스가 데스나이트의 검에 복부를 관통당하여 피를 토하고 있는 성기사를 흘끗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죽음은 예견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성기사의 목을 뜯어내어 죽음을 선사하고 있지 않는 것은 그저 마리우스의 작은 변덕 때문이다.
이내 그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실실 웃음을 지었다.
“이봐. 너.”
“…저 말인가요?”
마리우스에게 손가락으로 지목당한 여성 사제는 몸을 움찔 떨면서 그의 부름에 답했다.
“그래. 지금부터 획기적인 제안을 하나 하지. 네가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나는 이곳에서 깔끔하게 모든 언데드들을 물리고 도시에서 나가겠다.”
“……!”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인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던 여성 사제와 성기사들은 딱딱하게 몸을 굳히며 마리우스를 응시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여성 사제를 보며 마리우스는 그녀가 거절하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수많은 인간을 학살한 그를 놓아주는 것은 여신을 모시는 신자로서, 스스로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치욕스러운 결과.
하지만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대한 언데드 군단과 계속 맞서면서 이 이상 신전과 민간인들의 피해가 확산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다.
자신의 명예와 치욕, 그리고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인명 피해 속에서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면.
여성 사제는 고민을 마쳤다.
“무슨…제안이죠?”
“사제님!”
마리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여성 사제의 의사를 확인한 성기사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심을 마친 여성 사제는 성기사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마리우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자신들이 처단해야 할 적과 거래를 하다니.
성기사들로서는 차마 씻을 수 없는 치욕 그 자체였다.
“악과 거래할 바에…! 차라리 이곳에서 싸우다가 죽겠습니다!”
“그만두세요!”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죽음을 각오한 성기사를 여성 사제가 호통치며 제지했다.
“이곳에서 피해를 더 확대시킬 생각이신가요? 이 싸움은 당신과 저, 아니 저희들만의 목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싸움입니다.”
만약 이곳에서 자신들이 패배한다면.
사령술사는 물러가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먼저 사망하여 언데드로 전락한 자신의 동료들처럼 추악한 몰골로 사령술사의 명령을 받아 많은 인간들을 학살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입었던 피해와 이 끔찍한 재앙의 원흉을 생각하면 절대로 고를 수 없는 선택.
하지만 앞으로의 피해를 생각해본다면 감정을 제외하고 이성만을 고집하여 내린 여성 사제의 판단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 크윽….”
여성 사제의 결심을 들은 성기사들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분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재앙을 처리하기에는 자신들의 힘이 너무 부족하다는 무력함이 전신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다.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여성 사제의 말대로 그 이후를 생각해보았다.
끄, 어어….
추악한 몰골의 언데드로 전락한 자신의 이전 동료들처럼, 자신 또한 죽음을 맞이하고 언데드로 전락하게 된다면.
자신의 친구, 동료, 가족, 연인의 앞에 나타나 그들의 목숨을 자신이 빼앗게 되는 그런 앞날.
그 과정에서 희생될 무수히 많은 목숨들.
여성 사제의 말대로 이 사령술사와의 싸움은 자신의 죽음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군! 살아있는 사람들의 앞날을 위해서 나와의 거래를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린 건가!”
마리우스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여성 사제의 결심을 듣고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고 박수를 짝짝 치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여성 사제는 사제로서, 여신을 모시는 성직자로서 신념에 반하는 자신의 선택을 비웃는 악질적인 조롱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제안이 뭐죠?”
분한 마음을 꾹 참은 여성 사제의 물음에 마리우스는 킥킥대며 답했다.
“내 제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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