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86화 (669/730)

〈 686화 〉 686. 재앙 서막(7)

* * *

“뭐…?”

느닷없는 마리우스의 고백은 에린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묻는 에린을 향해 올곧은 시선과 감정을 보내고 있던 마리우스는 재차 말했다.

“못 들었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

마리우스가 보내고 있는 호의는 진짜였다.

적어도 타인의 감정을 읽어 들이는 능력을 가진 신수의 마력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기분이 나빴다.

그가 보내오는 감정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올곧고, 정열적이라, 기분이 나쁘다.

마리우스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이 고맙고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을 테지만,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하고 언데드로 전락시켜 목숨을 농락하는 것을 즐기는 악인.

그런 악인이 자신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 더더욱 혐오스럽고 역겹기 짝이 없다.

“너 같은 거. 나는 싫어!”

“큭큭. 상관없지.”

마리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고 에린을 비웃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에린의 반응 따위는 정말로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굉장히 정론적인 이야기였지만, 그 열렬한 감정을 보내오는 것이 마리우스였기 때문에 에린은 소름이 끼쳤다.

에린은 또 한 번 격정적인 감정에 몸을 맡기며 마리우스에게 달려들려 했다.

“아…!”

하지만 이내 제동이 걸리듯 자신의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마침내 에린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무리도 아니다.

평소의 여우불이 아닌, 순도 높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정화의 불꽃으로 전신을 두르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난적인 데스나이트들을 처리하고 다녔으니, 평소보다 몇 배로 소모되는 정신력과 마력이 빠르게 고갈되는 것도 당연하다.

“안돼…. 하필 지금…!”

눈앞에 이 재앙을 초래한 원흉이 그대로 있는데, 이 원흉을 처리하지 못하다니, 에린은 분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아직…5분 밖에 되지 않았잖아…! 조금만…! 조금만 더…!’

은현과 엘레노아와 함께 셋이서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데이트를 즐기던 도중, 수호 결계가 해제되는 이변부터 지금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5분의 시간 동안, 정화의 불꽃을 유지한 상태로 에린은 데스나이트들을 처리하며 바쁘게 움직인 결과가 마침내 찾아왔다.

이를 꽉 깨물며 마리우스를 노려보면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녀의 육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몇 번이고 이루어졌던 언데드들과의 전투에서 누적된 데미지와 피로는 물론, 격렬한 움직임의 반동 탓인지 전신의 관절과 근육이 삐걱거리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고통을 표현하는 신음이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다시 몸 안으로 욱여넣고, 에린은 가까스로 일어났다.

“하하! 훌륭해! 정말로 아름다워! 너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여자야!”

마리우스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에린을 보며 감탄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도, 마음도 위태위태한 상황임에도, 몸을 일으킨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적의가 가득했다.

그 눈빛이, 그녀의 얼굴이, 그 가녀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마리우스의 가슴 고동을 점점 빠르게 만들고 더욱 애정을 느끼게 만든다.

“시끄러워!”

에린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 마리우스에게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압도적인 속력을 선사했던 다리의 각력과 정교한 세검술을 사용하지 못한 그저 평범한 검격이었지만, 몸을 쓰는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마리우스의 급소를 노리는 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큭큭.”

하지만 마리우스는 자신의 급소인 명치 부근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오는 에린의 칼날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검술에 문외한인 그가 에린의 검격을 눈치챈 것은 공격이 확정으로 들어갈 정도로 가까이 근접하고 나서야.

‘또….’

또다.

레반테인이 관통해야 할 마리우스의 복부 부근이 검은색 안개로 바뀌면서 에린의 칼날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신체의 일부를 안개화시키는 그의 능력이 또다시 에린의 공격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마리우스가 에린에게서 다시 거리를 벌리면, 에린이 다시 그를 쫓아가며 통하지 않는 공격을 휘두르고, 다시 마리우스가 도망을 치는, 도망자와 술래의 끊임없는 악질적인 술래잡기가 계속 되었다.

“윽…!”

육체의 피로는 이미 진즉에 한계를 넘어선 상태.

그래도 오랜 단련으로 나름대로 체력과 정신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역시나 이 상태의 소모는 너무나도 효율이 좋지 못하다.

“너와 더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싶지만, 그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마리우스는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에린에게 작별을 고했다.

“시끄…러워…!”

누적된 피로로 인해 한계를 맞이한 에린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갈라진 그녀의 목소리는 그 피로를 여실히 보여주듯 애처로웠다.

“널 만난 지금, 이 순간을, 난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에게도 선물을 주마.”

마리우스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하늘 위에 검은색의 거대한 먹구름처럼 응집된 짙은 사기(死?)가 이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령소환]

[자이언트 스켈레톤]

“또 무슨 짓을…!”

에린은 마리우스가 또 다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미 체력의 고갈로 움직일 여력이 남지 앉아 있었던 탓인지 무력하게 마리우스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내 에린은 눈앞에 등장한 거대한 해골을 보며 경악했다.

사람의 두개골과 뼈로 형성된 상반신의 모습.

마리우스가 자신의 사기(死?)를 응집시켜 만들어 낸 것은 스켈레톤의 상체였다.

그것도 그냥 스켈레톤이 아닌, 이 도시 에레니움의 성벽을 가볍게 뛰어넘는 크기의 자이언트 스켈레톤.

하지만 에린이 경악한 이유는 성벽을 넘어 달빛을 등질 정도로 거대한 크기 때문이 아니다.

저 거대한 스켈레톤의 뼈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한때 인간이었던 망자들의 혼에서 추출한 사기(死?)들.

“도대체 얼마나….”

몇백? 몇천? 아니. 몇만 이상.

그 이상의 인간들을 학살한 끝에 손에 넣은 저 끔찍한 기운의 집합체는 지금껏 그가 저질러온 수많은 악행을 증명하는 표식이나 마찬가지다.

에린에게는 사령술에 대한 지식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신수의 감각은 명확히 저 사기(死?) 속에 내재되어 있는 수만 명의 절규 어린 비명 소리를 고스란히 전달했다.

“크…윽!”

에린은 이를 꽉 깨물며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금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마리우스를 향한 분노다.

미치광이처럼 자신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표현해오는 것에 대한 혐오보다, 사령술이라는 악질적인 힘을 사용하여 수 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빼앗고 농락하는 마리우스에게 느끼는 격렬한 분노.

“너 만큼은 꼭…!”

생각해보면 에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리우스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뜸 유부녀인 자신에게 애정을 고백한 것을 포함하여 사령술이라는 그의 힘, 그의 사고방식 등 모든 것들이 구역질이 나게 만든다.

“어…?”

이내 눈앞의 언데드들을 처리하기 급급했던 다른 모험가들 또한 하늘 위에 만들어진 거대한 무언가를 눈치챘다.

밝은 달빛마저 가리며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드는 그것에 시선이 가지 않는 것이 더더욱 이상한 그런 상황.

“저건….”

“뭐야. 저게….”

마침내 자신들을 비추는 달빛을 등진 거대한 무언가를 눈치챈 모험가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스켈레톤?”

살면서 저런 거대한 인간의 뼈는커녕 마수조차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모험가들에게는 상식을 벗어난 환상을 직면한 것 같았다.

모험가들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공포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상식과 이치로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무언가를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필사적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공포는 찾아온다.

“세상에…!”

“나, 난 도망가겠어!”

경악한 모험가들이 일제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언데드들에게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필사 항전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전력으로도 어떻게든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빛을 등지고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등장을 알아챈 순간, 모험가들은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미래를 확신했다.

에린은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하는 모험가들을 탓할 수 없었다.

기껏 도와주었다지만,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치는 그들을 탓하기엔, 그들이 감당해야하는 공포와 힘의 차이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한 모험가가 도망을 치려던 도중, 바닥에 쓰러진 채로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손바닥 위에 올라타 있는 마리우스를 노려보고 있던 에린을 쳐다보았다.

데스나이트라는 압도적 존재를 없애주면서 자신들을 구한 에린을 보고도 못 본 척할 정도로, 모험가는 양심이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어서 업히세요!”

“저걸 두고 도망칠 수는 없어요!”

에린은 자신을 도우러 온 모험가의 도움을 거절했다.

레반테인을 바닥에 꽂고 지지대 삼아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에린의 모습은 이미 힘을 다하여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모험가는 도대체 그 상태로 저 거대한 언데드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도움을 거절한 에린을 두고 모험가는 떠났다.

“큭큭! 모두 자기 살기 바빠서 내뺐군.”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손 위에서, 마리우스는 혼자만 남은 에린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이제 혼자가 남았는데, 어쩔 거지?”

“싸울 거야. 그리고 이길 거야. 이겨서 네가 벌을 받게 만들 거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힘겹게 검을 겨누는 에린을 보며, 마리우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였다.

마치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정열적인 고백을 받았다는 듯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정신머리도 정상이 아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불합리한 상대를 앞에 두고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 고결한 여자의 영혼은 정말로 네스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어 마리우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에린이 그렇게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면 설수록, 마리우스는 더더욱 에린에게 빠져들었다.

“부디 날 실망하게 하지 마라.”

마리우스는 바랬다.

에린이 다른 모험가들처럼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줄행랑을 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를.

이대로 자신과 맞서 싸운 끝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들여 자신만의 영원한 신부로 만들 수 있기를.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마리우스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주먹이 가녀리기 짝이 없는 에린을 짓뭉개기 위하여 위로 높게 들린다.

무시무시한 질량의 폭력이 그대로 지면과 에린을 향해 내리 찍히려는 순간, 하늘에서 순백의 깃털이 흩날려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허공을 긋는 한줄기의 섬광이 빠른 속도로 쇄도해 들어와, 위로 들어 올린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팔을 관통한다.

[브류나크 창술]

[껍질 꿰뚫기]

콰아앙!

“큭!?”

갑작스럽게 날아온 공격에, 순간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상체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마리우스는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자신을 공격한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격이라고?’

그것은 자신의 육안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장거리에서 행해진 요격이라는 뜻.

그리고 이내 두 번째 변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엘레노아 강신(??)]

[치천사 세라핌]

“이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천 개의 새하얀 깃털들을 보며 에린 또한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그 깃털이 몸에 닿는 순간, 몸에 누적되어 있던 피로와 데미지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고갈되었던 마력이 다시 회복되어 신체를 활성화시킨다.

순식간에 컨디션을 최고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기적.

에린은 한차례 이 기적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우스보다도 사태를 더욱 빠르게 파악했다.

‘현이랑 엘레노아님이다!’

결계가 해제되고 사태가 벌어진 이후로 10분.

마침내 두 부부가 행동에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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