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5화 〉 685. 재앙 서막(6)
* * *
질주한 에린의 레이피어가 마리우스의 목을 관통하기 위해 쇄도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격해진 감정의 폭주로 인해 벌어진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짙은 사기를 내뿜고 있기는 하지만, 마리우스의 행색은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몸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결과를 근거로 이루어진 나름의 판단.
실제로 마리우스는 낄낄거리면서 자신이 해온 악랄한 악행을 설명할 뿐 에린의 공격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가 에린의 공격을 눈치챈 것은 그녀의 칼날이 눈앞까지 당도했을 때였다.
“흥.”
하지만 마리우스는 자신의 눈이 날카로운 레이피어의 칼날에 관통당할 위기에 놓여있음에도, 코웃음을 칠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에린의 공격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마리우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나 놀람의 감정이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이내 마리우스의 신체 일부가 순식간에 검은색의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어…?”
명확하게 존재했던 실체가 검은색 안개가 되어 형체를 잃어버리게 되자, 격정적인 분노가 담긴 칼날은 베어버려야 할 대상을 잃고 허공을 가른다.
베었다는 감각이 손으로 전해지지 않자, 에린은 작게 동요했다.
눈앞에 마리우스는 확실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에린의 레이피어가 관통한 마리우스의 왼쪽 눈 부위만이 안개로 변해 있다.
아무리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영체마저도 불태워 없애버리는 강력한 불꽃이라지만, 대상 자체에게 닿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마치 구름을 베는 듯한 공허한 감각에 에린이 당황한 것은 당연하다.
“읏…!”
그렇더라도 에린은 여러 사선을 넘는 경험을 해온 금위계의 모험가.
그 당황을 수습하더라고 빠르게 대처하는 것은 은현의 제자이자 모험가로서 자신을 단련한 습관이었다.
1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마리우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색 사기(死?)가 자신을 덮여오려는 것을 깨달은 에린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사령술사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이윽고 흠칫하며 바닥에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무언가가 자신의 다리를 붙잡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에린이 베어낸 꾸물거리는 무언가는 사람의 손이었다.
“으…어어….”
벙어리처럼 헛소리를 늘어놓는 그것은 하체가 없고 상반신만이 존재하는 인간의 시체.
“……!”
그 시체는 명확히 의사를 가지고 에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죽지 못하고 있는 시체와 시선이 마주친 에린은 전신에 오싹한 소름이 돋아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지면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체들이 서서히 그 숫자를 늘려가며 에린을 에워쌌다.
‘어떻게 된 거지?’
언데드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에린은 아직도 마리우스의 눈을 관통했을 때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의 공격이 맞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해야만 눈앞의 사령술사를 처치할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혼란스러운 상황.
거기에 더하여 마리우스가 소환한 망자들은 에린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에린이 계속해서 달려드는 언데드들에게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살…려줘….”
“읏!?”
반쯤 뭉개진 듯한 성대에서 울리는 시체는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에린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것은 지금껏 에린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에린은 언데드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이미 완전히 죽음을 맞이한 마수들의 시체를 상대해보았던 것.
언데드로 전락한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순간 에린은 레반테인을 휘두르는 것을 주저했다.
녹아내린 피부와 썩어버린 치아에서 흘러나오는 절망 어린 목소리가 너무도 간절히 구원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색을 보아, 소환된 눈앞의 언데드들은 모두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무고한 사람들.
그런 이들이 너무나도 끔찍한 몰골로 죽지 못하여 사령술사의 손에 농락을 당하고 있는 것에 동정을 품었다.
아무런 의사도 보이지 않고 그저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던 데스나이트와 달리, 이들은 말을 할 줄 알고 도움을 청할 줄을 안다.
비록 이미 끔찍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 망자들일지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직 성불하지 못한 불쌍한 망령들.
그러한 작고 사소한 차이가 에린에게 아주 큰 동요로 작용했다.
에린은 도저히 그들을 향해 레반테인을 휘두를 수 없었다.
이미 사망한 망자들이지만, 그들을 벨 수가 없어진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흐음?”
그저 점점 뒤로 물러나며 다가오는 망자들을 피하기 급급해하는 에린의 모습을 보며, 마리우스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내 에린의 심리를 읽은 마리우스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에린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더니 이내 박장대소하듯 커다란 웃음을 터뜨린다.
“크, 크큭…. 크하하하하!”
양팔을 양옆으로 넓게 벌리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 마리우스의 웃음소리는 언데드들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에린의 신경을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뭐가…웃겨!”
자신을 보고 크게 비웃으며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에린이 발끈하며 외쳤다.
“웃기지. 웃기고 말고! 이런 여자가 다 있다니! 크하하하하하!”
이내 마리우스는 정말로 즐거운 코미디를 보고 있다는 듯 에린을 보며 환희에 찬 웃음을 가득 메웠다.
“저것들은 이미 죽음을 맞이한 나의 종들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저것들에게 동정을 품고 있다고?”
인간이 아니게 된, 그 이하의 언데드로 전락하게 된 그들에게 인간과 같은 대우를 하다니, 이것이 코미디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리우스의 눈에 에린은 그저 거짓된 위선자처럼 밖에 보이지 않았다.
“큭큭! 그 더러운 위선자의 가면! 내가 벗겨주지!”
마리우스는 에린을 향하여 손을 내저었다.
그것에 반응하여 수십 구의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며 에린을 향해 기어갔다.
모두 이 도시 안에서 사망한 모험가들이나, 모험가들이 미처 구하지 못한 시민들의 시체들이다.
“큭…!”
더욱 많은 수의 언데드들이 자신에게 집중적으로 몰려들자, 에린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겨 언데드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공격성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그저 무력한 시민들의 시체들이 만들어낸 무리는, 그저 주인인 사령술사가 가리킨 대상을 향하여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뿐.
공격하기를 주저하는 에린에게는 그 숫자 자체가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그저 이를 갈며 분해하는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악질적인 수단이라는 것은 에린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에린은 저항하지 못했다.
“구해…줘….”
“오지마…!”
하염없이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언데드들을 향해, 에린은 레반테인을 휘둘러 접근을 저지하려 했지만, 사령술사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는 언데드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에린에게 다가왔다.
‘빨리…. 빨리 저쪽을 도와줘야 하는데….’
언데드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하위계의 모험가들을 지원하러 가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언데드 무리를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에린은 순간 마리우스가 자신을 조롱하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큭큭! 그 더러운 위선자의 가면! 내가 벗겨주지!
위선자.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자신은 이미 살인이라는 것을 경험해보기도 했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은 위선 그 자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이 스스로의 마음을 얼마나 옥죄이게 만드는지를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에 주저할 뿐이었다.
에린은 이미 은현을 따라 아르티아 기사단과 함께 개미굴 탐험에서 괴물의 씨를 뱃속에 수태한 무고한 여성들을 죽여본 경험도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최악의 경험이었는지 지금도 몸소 기억하고 있다.
이미 죽음을 맞이한 망자(?子)일지라도, 그 안에 있는 영혼을 자신의 여우불로 불태워 소멸시킨다는 행동의 본질은 타인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리우스의 의도는 에린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즐기고 있다.
자신이 인간의 혼을 강제적으로 정착시킨 언데드들을 소멸시키고 이 위험을 헤쳐나가 위선자의 가면을 버릴지, 아니면 끝내 그 의지를 관철하여 언데드들에게 살점을 뜯어먹히고 죽음을 맞이할지.
불합리한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고 있다.
‘진짜 최악이야.’
너무도 악랄하고, 인간으로서의 마음은 찾아볼 수 없는 괴물과도 같은 사고방식.
하지만 마리우스는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에린의 멘탈은 이제 겨우 이 정도로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망설이면서도, 자신의 사고방식 속에서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죽여줘…. 제발….”
구원을 바라는 시체의 갈라진 목소리를 들은 에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서인지 개미굴 안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간곡히 바라고 있던 괴물을 수태한 여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언데드들은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알겠어요.”
이내 두 눈을 뜬 에린의 눈빛에 굳건한 결심이 자리 잡았다.
백은의 여우불을 두른 레이피어를 휘둘러, 평안한 죽음을 바라고 있는 언데드들의 목을 베어냈다.
“끄아아악!”
“큭큭.”
자신이 소환해낸 언데드들에게 살점을 뜯어먹혀 고통을 호소하는 모험가들의 비명을 연주 삼아 듣고 있던 마리우스가 즐거운 실소를 흘리고 있던 찰나.
“흠?”
자신이 만들어낸 수십 개체의 언데드들이 일제히 소멸해버린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은의 불꽃으로 불타 없어지는 언데드의 시체들 사이에서 맹렬한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에린이 서 있었다.
“하하. 죽였구나!”
마리우스는 환희에 젖었다.
하지만 에린은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음이 무너지기는커녕 더욱 자신을 향한 적의를 불태우는 분노의 눈빛.
“큭큭.”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지만, 마리우스는 어쩐지 에린의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어째서인지는 자신조차도 이유를 깨달을 수 없었다.
이내 에린이 빠르게 도약하여 마리우스에게 달려들었다.
“너만큼은…!”
에린이 수십 개체의 별 볼 일 없는 언데드에게 발이 묶여있던 몇 초 동안, 또다시 마리우스가 소환해낸 데스나이트 두 개체가 에린의 앞을 가로막으며 주인인 사령술사, 마리우스를 지켰다.
마리우스는 격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두 개체의 데스나이트들과 교전을 펼치고 있는 에린을 빤히 바라보며 관찰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자신은 어째서 눈앞의 저 여자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까.
사실 죽이려한다면 진즉에 죽일 수 있었다.
에린이 수십 구의 언데드에게 둘러싸여 주춤하고 있던 짧은 찰나에, 이미 소환해둔 데스나이트로 기습을 했다면 완전히 끝내지는 못했더라도 치명상 정도는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그녀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궁금해져 그러지 않았다.
‘어째서?’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마리우스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
이내 데스나이트들과 격전을 펼치고 있는 에린의 모습을 보며, 한 명의 여성을 떠올렸다.
“네스.”
자신과 함께 보육원에서 나고 자랐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보육원을 이어받아 많은 아이들을 끌어안고 키우려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소꿉친구.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려 노력했었던 그 고결한 마음을 가진 네스를 마리우스는 동경했었다.
에린은 그 네스와 닮았다.
지금도 그녀가 자신에게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사령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목숨을 희롱하고 마음대로 농락하기 때문.
‘그러면 못써!’
네스라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고 뺨을 한 열대 후려치며 훈계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네스는 없지…. 아, 그렇구나.”
마리우스는 어째서 에린에게 집착을 보이고 있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네스를 동경했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불합리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까지 끝내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고결하고 아름다운 포용력을 가진 에린에게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이것이…. 사랑인가. 큭, 크큭!”
지금 마리우스의 마음 속에 깃든 생각은 딱 하나다.
‘가지고 싶다. 무너뜨리고 싶다.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
에린을 가지고 싶다.
그녀가 가진 저 고결한 마음을 무너뜨리고 싶다.
그녀의 시체를 사령술로 다시 부활시켜 평생을 자신의 곁에 있게 하고 싶다.
“지금이라면 나의 여신께서 그 인간에게 집착하는 마음도 약간은 이해가 가는군.”
메디아는 은현이라는 남자를 사랑한다.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반려는 은현밖에 없다며, 어서 그를 만나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몇십번이고 자신의 귓가에 속삭여 온다.
그 광적으로 뒤틀려 있는 집착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 마리우스는 환희에 찬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에린을 바라보았다.
“하앗!”
이내 기합소리와 함께 두 개체의 데스나이트를 정리한 에린이 땀을 훔치며 마리우스를 노려보았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이름이 뭐지?”
“너 따위한테 알려줄 이름 같은 건 없어!”
에린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마리우스에게 레반테인의 칼날을 겨눴다.
“꽤나 새침하군. 뭐 좋아.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하게 해주지 않겠나?”
“……?”
“이름 모를 여자여.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아니. 사랑하게 되었군.”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사령술사의 일생일대 첫 고백은 너무나도 뜬금없는 타이밍에 전달되었다.
“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