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4화 〉 684. 재앙 서막(5)
* * *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밝은 달빛 아래, 도시 에레니움은 너무나도 암울한 기운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줘!”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흩뿌려지는 죽음의 기운이 도시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전투에 익숙지 않은 무력한 시민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가족, 친구, 연인을 데리고 도망치기 바빴고, 거기에 미력하게나마 저항하는 모험가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젠장…!”
마력을 통해 강화된 근력으로 언데드의 머리를 깨부수고, 마법을 퍼부어 그 신체를 모조리 불태운다.
하지만 그런 필사의 항전으로 언데들에게 대항하고 있었음에도, 그 한계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에레니움 전체에 퍼져 있는 모험가들 전원이 전투라는 선택지를 택한 것도 아닐뿐더러, 전투를 택한 모험가들이 언데드를 처리하는 숫자보다 증식하는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이유는 모험가들을 간단히 쓸어버리는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언데드가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백의 언데드 무리보다도 더욱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기사.
죽음이라는 것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듯한 검은색의 기사, 데스나이트가 나타나 필사 항전을 벌이고 있는 모험가들을 쓸어버렸다.
“크아아악!”
검은색의 역겨운 사기(死?)를 두른 장검이 모험가의 복부를 갈랐다.
베인 상처는 검게 물들어 순식간에 살 전체로 퍼져 몸을 잠식한다.
“크, 르으으윽!”
뚝, 뚜둑
이를 가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관절이 뒤틀려 기이한 형태로 몸이 꺾여나가는 모험가의 피부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들어간다.
공포로 가득했던 모험가의 눈은 이내 빛을 잃고 탁한 회색빛이 감돌아 언데드로 전락했다.
“이, 이럴수가…!”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다른 모험가들은 경악했다.
살아있는 인간이 순식간에 언데드로 전락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광경은 뭐라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 그 자체다.
“히, 히익!?”
데스나이트가 내뿜는 검은색의 사기(死?)에 접한 순간, 한 여성 모험가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스태프를 떨어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섬뜩하고 토할 것만 같고, 심장을 죄게 만드는 거대한 기운을 피부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길 수 없다.
살아나갈 수 없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저 죽음의 기사와 대적하게 된다면,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저 끔찍한 몰골로 이성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그저 길바닥을 떠돌게 될 것이라는 예감.
머릿속으로 멋대로 상상하게 된 그 예감은 이내 공포로 변질되어 모험가들의 전신을 장악하고 결사 항전의 의사마저 꺾어버린다.
바닥에 주저앉은 여성 모험가가 그 거대한 공포에 짓눌려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실금을 해버렸다.
자신이 무슨 추태를 부리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그녀는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 저항은커녕 도망조차 포기한 채로 실없이 웃기만 했다.
“하, 하하하하하. 끝났어….”
이미 그녀는 자신의 생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것에서 도망을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포기하여 자신의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은 여성 모험가뿐만이 아니었다.
그 공포는 점점 주위로 전염되어 갔다.
“싫어! 제발, 제발!”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풀려버린 다리는 도망조차 허락하지 못하여 그저 목숨을 구걸하고 하염없이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는 절망이 가득 채워질 때.
“정신 차려!”
귓가를 저리게 만드는 강렬한 외침이 모험가들의 몸을 움찔 떨게 만든다.
그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어, 한 차례 자신들의 생을 포기했던 모험가들의 마음을 거침없이 깨부숴버렸다.
마치 물이 가득 차 있는 유리잔이 깨지듯이 딱딱하게 굳어갔던 몸이 떨리면서 수많은 모험가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야에 포착된 것은 백은의 불꽃을 흩뿌리며 빠르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한 여성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간신히 인식한 아주 짧은 순간, 여성은 이미 이곳에 당도했고 더 나아가 거침없이 데스나이트의 품에 파고들어 손에 쥐고 있던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風?)]
질풍처럼 등장한 에린의 공격이 그대로 데스나이트의 목을 관통하기 위해 쇄도해 들어 왔다.
두 눈으로 인식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속도는 그대로 에린의 레이피어에 극한의 관통력을 더해주며 그 공격력을 배로 끌어 올려준다.
데스나이트는 에린의 찌르기를 뒤늦게 인식했지만 빠르게 대응하여 에린의 레이피어를 막아내기 위해 자신의 장검을 휘둘렀지만.
서걱
이미 가속하여 관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에린의 레반테인은 사기(死?)가 가득한 데스나이트의 칼날을 뚫어버렸다.
백은의 불꽃이 일렁이는 레반테일의 칼날은 데스나이트의 목을 관통하였고 그대로 몸통을 반으로 가르며 무력화시켰다.
치이익
에린이 두르고 있는 백은의 불꽃은 악(?)한 기운을 정화하는 순도 높은 불꽃.
정화의 불꽃과 맞닿은 사기(死?)가 검은색 연기를 일으키면서 조금씩 중화되어가고 있었다.
“아….”
갑작스러운 난입과 함께 순식간에 나타나 데스나이트를 정리해버린 에린의 모습을 보며 지금껏 생을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던 모험가들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어둡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밤바람에 나풀거리는 남청색의 머리카락과 살랑이는 아홉 꼬리.
레이피어를 쥐고 언데드들을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결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내 에린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험가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이제 남은 언데드들의 처리를 부탁할게요.”
“네….”
고운 미성이 귓가에 맴돌아 모험가들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그들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에린의 말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간질이는 듯한 신비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에린이 신수의 마력을 흘려 넣어 말을 함으로써 범위 안에 있는 모험가들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호족 요술(?? ??)]
[감정왜곡(???曲)]
모험가들의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던 두려움의 감정을 최대한 뽑아내어 없애고, 그 빈자리에 이 싸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심는다.
물론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싸움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계기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내가 왔으니까.’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절망적인 상대인 데스나이트를 쓰러뜨려 준 것만으로도, 모험가들의 눈빛에 조금씩 희망의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에린은 그 계기가 바로 자기 자신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정말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본래 에린은 타인의 마음을 조작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긴급한 상황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효율 좋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중시했다.
이런 부분은 스승인 은현을 똑 닮았다.
에린은 조금씩 사기가 올라가는 모험가들의 감정에 쐐기를 박았다.
“곧 있으면 사제님들과 성기사님들이 지원을 올 거예요.”
이미 신전 본교에서 출동한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전력으로 언데드들을 처리하고 있는 상황.
외곽에 있는 이곳까지 아직 지원이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먼 위치에서 신성력을 느낀 에린은 이곳까지 지원이 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판단했다.
“신전 본교에서 지원이…!”
그 말을 들은 모험가들의 낯빛에 조금씩 화색이 돌았다.
도시 안이 이만큼 난리가 났는데 신전이 나서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이 상황은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버텨주세요.”
“알겠습니다!”
사기를 회복한 모험가들의 대답을 뒤로 하고 에린이 다른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스르륵
“……!”
데스나이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지금까지 느껴본 그 어떤 사기(死?)보다도 짙은 기운이 밀집된 무언가가 나타났음을 직감하고, 에린은 등줄기가 오싹해져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에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사기(死?)가 가득한 그 방향을 응시했다.
“너, 뭐냐?”
검은색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몸 전체를 가리는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
에린은 검은색 로브를 쓴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사기(死?)를 느끼고 확신했다.
“…너구나.”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음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이 남자가 어떠한 수단을 이용하여 에레니움이라는 도시 전체에 사기(死?)를 풀어 사령술을 발동시킨 장본인.
즉 이 재앙의 원흉이다.
에린은 손에 쥔 레이피어를 꽉 쥐며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이 도시의 방위 결계를 해제한 거야?”
아니에스가 말하길, 이 도시의 방위 결계는 일리아나 수준의 고위자릿수 마법이 아닌 한, 그 어떤 외부의 공격에도 끄떡도 하지 않는 막강한 수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게다가 자연스레 마수나 악한 기운을 거부하고 배척하여 진입을 허가치 않는 특수한 효과까지 있으니 이런 사기(死?)가 가득한 존재는 절대로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러니 이 결계를 해제하기 위하여 이 도시 안으로 눈앞의 사령술사가 침입해오는 것 자체도 불가능한 상황.
사령술사는 낄낄거리며 별것 아니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에린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내가 해제한 게 아니지. 해제하도록 만들었을 뿐이야.”
“뭐…?”
이미 도시 안으로 침략을 성공한 시점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방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기 때문에, 남자는 거리낌없이 말했다.
오히려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양손을 양옆으로 넓게 펼치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기 까지 한다.
이윽고 남자의 옆에 사기(死?)가 흘러나와 점점 형태를 취했고 사람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아…으….”
흙과 먼지로 더럽혀진 새하얀 법복을 입고 있는 중년 사제였다.
그의 목에는 베스타 신전을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진 단검이 박혀있었으며, 칼날이 정확히 목을 관통하고 있었지만, 사제는 죽지 않았다.
아니. 저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자결을 택한 시체에서 죽음을 걷어내고 반강제적으로 육체에 영혼을 정착시켜 언데드로 타락시킨 결과물.
에린은 은현과 달리 식견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원리와 상태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저것이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닌 끔찍한 결과물이라는 것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읍…!”
언데드를 처리하고 있던 한 모험가가 사령술사가 소환해낸 끔찍한 몰골의 시체를 보고 역겨워서 구토를 참아냈다.
지금까지 사람의 시체를 많이 보아왔지만, 역겨운 사기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인지 자연스레 에린의 눈살도 찌푸려졌다.
그런 에린과 모험가들의 반응을 확인한 사령술사, 마리우스는 원했던 반응에 심취하여 낄낄거리면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읊었다.
“이 사제는 도시의 결계석들을 관리하던 상위 사제들 중 하나다. 나는 먼저 도시 밖에 있는 이 사제의 가족들이 사는 도시의 구성원들을 모조리 죽여 언데드로 만들었지.”
그리고 휴가를 나온 상위 사제가 오랜만에 자신의 가족들을 보러 집에 돌아갔을 때.
“그때 이 사제에게 언데드로 전락한 가족들의 시체를 보여주었다!”
썩은 시체 냄새와 피냄새로 가득한 소도시의 풍경을 보고, 휴가를 나온 상위 사제는 다급히 자신의 집을 찾았고 마리우스가 만들어낸 언데드로 전락한 자신의 가족들을 보며 절망했다.
“그리고 나는 이 상위 사제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인간으로서 마땅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줄 테니, 에레니움의 결계를 해제하라고!”
가족의 구원이냐, 아니면 모르는 타인들의 수많은 목숨이냐.
강제해진 불합리한 2택 속에서 상위 사제가 선택한 것은 자신들의 가족이 맞이해야 할 올바른 죽음이었다.
“결국, 이 사제 또한 그저 입으로만 인간들의 구원을 외칠 뿐, 자신의 가족들이 더 중요했던 쓰레기였을 뿐이지.”
마리우스는 스스로 자신의 목에 단검을 꽂아넣어 자결을 택한 상위 사제의 시체를 보며 비웃었다.
진심으로 경멸이 가득한 냉소로 가득찬 마리우스는 손가락을 튕기며 상위 사제의 시체를 없앴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모험가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인간들의 사이에서 자신을 보며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 것은 단 한명의 여성 뿐이었다.
“용서 못해!”
에린은 백은의 불꽃을 두른 레이피어를 꽉 쥐고 마리우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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