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2화 〉 682. 재앙 서막(3)
* * *
에린은 오직 목표지점인 전방만을 주시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건물의 벽면을 타고 올라가 방해가 되는 루트를 최소화하기 위하며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넘으면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는 이유는 목표지점을 향하여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짙어지는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소름 돋는 감각.
‘사람들이 위험해!’
에린은 저 사기(死?)에 노출된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목숨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빨리, 좀 더 빨리…!’
달리고 있는 다리에 더욱 힘을 실려 폭발적인 각력을 만들어내어 속력을 더욱 높였다.
일 초라도 더 일찍 도착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담아내어 가속한 에린의 질주는 허공을 휩쓰는 하나의 돌개바람과도 같다.
“으아악!”
“살려줘어!”
이윽고 사람들의 비명이 예민한 에린의 귀에 들어올 정도로 접근하자, 에린은 곧바로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푸른색의 기운들이 에린의 전신을 감싸 맴돌기 시작하고 그녀의 머리에 여우귀와 허리 부근에 백은의 아홉 꼬리들이 형성된다.
멀리서만 느껴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곧바로 전력을 낼 수 있는 태세로 돌입하는 에린의 판단은 대체로 옳았다.
스르릉
경쾌한 금속의 소리와 함께 허리춤에서 레반테인을 뽑고 꽉 쥐었다.
은현과 엘레노아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관광의 한창일지라도, 언제나 자신의 애검을 떼놓지 않고 가지고 다니는 모험가로서의 습관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기분 나쁜 냄새.’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에린의 예민한 감각은 자신이 배제해야 할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그만큼 에린이 느낀 사기(死?)는 역겹고 위협적이기 짝이 없다.
이윽고 비명을 지른 사람들이 있는 장소까지 모두 도달한 에린은 망설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사태를 파악하는 것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여 앞으로 나섰다.
저것을 없애야 한다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에린의 몸을 이끌었다.
건물의 옆쪽 벽면을 발판 삼아 밟고 중력에 힘으로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에린은 몸을 웅크렸다.
마치 처음의 달리기를 시작하는 준비 동작처럼, 언제든 앞으로 튀어 나갈 수 있도록 다리에 힘을 모았다.
용수철이 튀어 오르기 직전까지 압축된 상태로 레반테인을 쥐고 있는 에린은 명확히 자신이 배제해야 할 적을 정확히 겨눴다.
에린의 시야에 포착된 것은 이미 한차례 비명을 내지르는 병사 하나를 도륙 내고 남은 병사까지 처리하려는 검은 갑옷의 기사.
끔찍한 사기(死?)를 내뿜고 있는 죽음의 기사였다.
“핫!”
힘찬 기합 소리를 내자마자 에린의 몸이 웅크렸던 몸을 피자, 폭발적인 각력으로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도약이 병사와 검은 기사가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風?)]
혜성처럼 떨어지는 에린의 레반테인은 각력으로 만들어진 가속도와 신수의 마력을 두르고 있어 무시무시한 관통력을 갖춘 찌르기.
전신을 활처럼 이용하여 모든 힘을 레반테인의 칼날 끝에 집중한 그 공격은 에린이 선보일 수 있는 기술의 극한으로 검격임과 동시에 사격과도 같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빛처럼 나타난 혜성이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한 검은 기사의 목을 정확히 관통했다.
퍼어엉!
레반테인이 검은 기사의 목 부근을 관통하자마자 검신에 응축되어 있던 신수의 마력이 해방되어 폭발적인 파괴력을 낳으면서 2차 데미지를 가한다.
여우불이 터지면서 아예 목 주위를 날려버렸으니 보통 마수나 사람이라면 여기서 끝이 났겠지만, 검은 기사는 그러지 않았다.
“읏…!?”
목과 그 위의 머리가 터져나가든 말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휘둘러오자 에린이 화들짝 놀라며 검은 기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하마터면 허리 부근을 베일 뻔하였지만 레반테인을 박아넣은 검은 기사의 몸뚱이를 발판 삼아 밟고 뒤로 점프하여 아슬아슬한 거리로 검은 기사의 검격을 피해냈다.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본능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대처 능력으로 만들어낸 아슬아슬한 회피는 옳은 판단이었다.
이윽고 터져나간 검은 기사의 목 위 부근이 재생되어 갔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절명했을 깔끔한 공격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되는 광경을 목격한 에린이 얼굴을 굳혔다.
“뭐, 뭐야. 저거…?”
몸에 두르고 있는 사기(死?)로 저것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언데드라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언데드조차도 바로 머리를 부수면 사람처럼 끝을 맞이하기 마련인데 눈앞의 검은 기사는 그러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하는 검은 기사의 머리를 보고 에린은 이를 꽉 깨물며 머릿속으로 고민했다.
‘실체는 있었는데….’
‘베었다.’라는 감각도 확실히 손에 남아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쓰러뜨렸다.’라는 결말로 연결되진 않는다.
그것이 몹시 꺼림칙하고 불쾌했다.
머리를 부숴도 다시 재생하는 적을 끝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일단은 이 상황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
검은 기사를 경계하면서, 에린은 뒤에 주저앉아서 멍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병사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 신전에 이 상황을 알려주세요! 빨리!”
“네, 네…! 감사합니다!”
뒤늦게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병사가 헐레벌떡 자리를 피했다.
신전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 병사를 뒤로하고, 다시금 검은 기사에게 시선을 옮긴 에린이 심호흡을 했다.
“후우….”
천천히 눈앞의 검은 기사를 어떻게 해야 쓰러뜨릴 수 있을지, 에린은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뒤늦게 사기(死?)를 전신에 두른 검은 기사의 이야기를 은현에게서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데스나이트라는 이름의 상위 언데드.
그것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시체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라, 강자의 영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존재다.
철로 된 갑옷들은 모두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단단한 방어력 또한 자랑하지만, 정말로 까다로운 것은 갑옷 안에 명확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에 존재하는 것은 생전에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르는 강자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짙은 사기(死?)의 집합체.
즉 언데드로 타락한 저 영혼에 직접적인 데미지를 주지 않는 한, 데스나이트는 쓰러지지 않는다.
다행히도 에린에게는 그 수단이 있었다.
‘…해보자.’
공략의 방법만 알고 있다면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화르륵!
에린은 레반테인을 두르고 있는 자신의 푸른색 마력, 여우불에 더욱 많은 힘을 불어넣으며 그 순도를 높였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신수의 마력, 여우불은 부여된 마력이 모두 불태울 때까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신수의 불꽃이다.
실제로 이전, 실체가 없고 영체만이 존재하는 스펙터인 설녀에게도 직접적인 데미지를 주었을 정도로, 에린의 여우불은 특별한 특성을 지녔다.
그 여우불에 평소보다 더욱 많은 마력을 불어넣어 순도를 높이자, 푸른색으로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밝게 빛나는 은색으로 변화했다.
[구미호 고유 능력]
[정화의 불꽃]
구미호의 교육으로 신수의 마력을 조작하는 데 더욱 능숙해진 에린이 사용할 수 있게 된 또 하나의 기술.
백은색의 불꽃은 엘레노아나 아니에스가 발현한 신성의 정화와 비교했을 때, 정화능력이 약할지는 몰라도 정화의 효과와 동시에 높은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전투 능력을 갖춘 언데드를 상대할 때는 효과가 탁월하다.
‘그래도 빨리 끝내야 해.’
평소보다 높은 순도의 마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인지 그 소모가 장난이 아닌 만큼, 이 불꽃을 유지하면서 장시간 동안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이 좋지 못하다.
끝낸다면 속전속결.
준비를 마친 에린은 번뜩이며 데스나이트를 노려보고 돌진했다.
처음처럼 폭발적인 속도는 아니었지만, 빠르게 가속하여 달려든 에린은 다시 한번 데스나이트의 목을 노렸다.
카아앙!
빠른 속도로 쇄도해오는 에린의 칼날을 데스나이트가 재빠르게 쳐냈다.
하지만 에린은 동요하지 않았다.
보통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언데드들은 모두 사망한 시체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언데드로 영혼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데스나이트는 생전에 경험과 수련을 쌓아온 인간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언데드.
생전에 강했던 검사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만큼 지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앗!”
그렇다고 해서 기가 죽을 성격이 아니었던 에린은 곧바로 연격을 이어나가 데스나이트를 밀어붙였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을 해왔던 에린도 그동안 쌓인 게 있어서인지, 담력 하나만큼은 크게 늘었다.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수단만 존재하고, 신체 능력과 기술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면, 물러설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카앙! 카아앙!
서로의 검이 부딪치며 사기(死?)와 신수의 마력이 뒤섞이면서 형성되는 충격파가 주위의 공기를 떨리게 만든다.
“읏…!”
연격이 계속 쌓이고 쌓이면서 누적된 충격에 의해 먼저 밀려난 것은 에린 쪽이었다.
체력이 무한하고 신체에 가해지는 피로에서 자유로운 쪽인 데스나이트가 살짝 우위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
레반테인과 짙은 사기(死?)에 둘러싸인 칼날이 연속으로 충돌하면서 에린의 몸이 뒤로 살짝 밀려났다.
덜덜 떨리는 에린의 손에는 아직도 잔류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그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레반테인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주 잠깐 주춤한 틈을 놓치지 않은 데스나이트가 에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틈을 보여준 에린이 노리고 데스나이트의 행동을 유도한 결과.
상대가 지성이 존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통하는, 연기와 기교를 이용한 허허실실 전략이 훌륭하게 통했다.
자신의 심장 부근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오는 데스나이트의 칼날을 허리를 비틀어 아슬아슬한 거리로 피해내고, 그 틈을 파고들었다.
무방비해진 데스나이트의 목에 백은의 불꽃을 두른 에린의 레반테인이 정확하게 관통했다.
‘아직이야.’
에린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레반테인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아래로 베어 넘기는 칼날이 그대로 데스나이트의 몸을 갑옷째로 갈랐다.
아까처럼 머리를 터뜨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확실하게 끝을 내며 데스나이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철컥!
자신의 패배를 인정이라도 한 듯 데스나이트가 지금껏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갑옷 전체를 두르고 있던 짙은 사기(死?)가 에린이 만든 정화의 불꽃으로 사그라지면서 데스나이트의 혼이 조금씩 자유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사기(死?)로 만들어진 검은색 갑옷이 점점 녹아내리듯 형체를 잃어가는 동안, 데스나이트는 전혀 발악하지 않았다.
그 태도가 마치 자신을 해방해준 에린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사기(死?)가 완전히 정화되자, 데스나이트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만을 남기고 증발하듯 사라졌다.
“하아, 힘들어어…!”
싸움이 끝나자마자 에린은 레반테인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풀썩 주저앉았다.
막대한 정신력과 마력을 소모하는 정화의 불꽃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유지한 탓인지, 반동으로 밀려오는 피로가 장난이 아니다.
“빨리 현이한테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다아….”
잔뜩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 샘솟아 올랐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건 에린도 잘 알고 있었다.
잠깐 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던 에린은 곧바로 자신의 기감에 집중했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짙은 사기(死?)의 기운을 느꼈지만, 에린의 몸은 하나뿐이므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르미타스 공작령도 아니고, 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있는 본교가 위치한 에레니움.
“뭐 다른 분들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에린은 곧바로 이곳에서 가장 위협적인 사기(死?)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가까운 장소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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