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78화 (661/730)

〈 678화 〉 678. 교황 대면(3)

* * *

“저, 저를 따라오세요.”

갑작스레 등장한 은현 일행의 안내를 맡게 된 소년 사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자꾸만 흘끔거리며 은현이나, 엘레노아, 에린을 관찰하는 시선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감각을 지닌 에린이었다.

“뭔가 할 말 있니?”

“아, 아뇨!? 그런 건…! 그, 그냥….”

“그냥?”

에린이 말을 걸어오자 몹시 당황한 소년 사제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괴, 굉장히 아름다우셔서….”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소년 사제의 얼굴이 새빨갛게 무르익어 있다.

어린 소년의 직설적인 칭찬은 정말로 아무런 속셈이 없는 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한 사심이 담겨 있어서 도리어 기분을 좋게 만든다.

“히히. 고마워!”

이윽고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은현의 팔짱을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고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들었어. 현아? 나 예쁘데!”

“들었어.”

은현은 작게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어린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안내를 받으며 걸어가던 도중, 에린은 뒤늦게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자기소개도 안 했지? 나는 에린이라고 해. 그리고 여기 옆에 있는 사람이 나랑 엘레노아님의 남편인 현이야!”

엘레노아는 아니에스의 뒤를 잇는 차기 성녀 후보로 이미 신전 사이에서 알려져 있을 거로 생각하여 구태여 소개하지 않았다.

에린의 자기소개를 받은 소년 사제가 작게 긴장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 알베른이라고 합니다. 그…. 신전 본교에서 견습 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견습 사제가 아니지.”

“네?”

“얘, 내가 밀고 있는 차기 교황 후보야. 우리 할배 손자거든.”

“네, 네에!?”

느닷없는 폭탄 발언에 에린이 화들짝 놀라며 알베른이라 자신을 소개한 소년 사제를 쳐다보았다.

“아 이 아이였군요.”

반면 엘레노아는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알베른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선임과 후임 사이의 관계인 엘레노아는 아니에스에게서 사전에 어떠한 이야기를 전달받았기 때문인지 에린처럼 격하게 놀라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정체가 밝혀진 알베른은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며 아니에스를 질책했다.

“아, 아니에스님! 그걸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

절대로 밝혀져서는 안 되는 중대 기밀을 서슴없이 까발려버린 것에 대해 패닉에 빠진 알베른과 달리 아니에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으며 답했다.

“뭐 어때. 얘들이 어디 가서 니 정체를 다 까발릴 애들도 아니고.”

“아니. 그게 무슨….”

“오히려 미리 사실을 밝히고 지금부터라도 잘 보이는 게 나을걸?”

“…….”

아니에스의 이야기를 들은 알베른은 복잡한 표정을 띄웠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히려…. 우리가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현 교황의 뒤를 잇는 차기 교황 후보라는 것은 눈앞의 15살짜리 소년이 앞으로 신성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지위에 오르게 된다는 뜻.

에린은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반말을 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말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까?’

아무리 자신보다 어린 소년이라지만, 미래의 차기 권력자인 소년에게 너무 가볍게 대하고 있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조심스레 알베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차기 교황이긴 해도, 지금 교황인 건 아니잖아. 그리고 이곳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다고 교황의 자리를 떠먹여 주는 것도 아니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는 에린의 물음에 답해준 것은 엘레노아였다.

“에레니아 신성국에서 교황의 자리는 우리 페르니아스 왕국처럼 세습제로 정해지는 게 아니거든.”

페르니아스 왕국의 최초 여왕이 된 유리아처럼, 왕가의 핏줄을 타고난 왕자나 왕녀가 왕위를 이어받는 게 아니다.

“어…? 그러면요?”

“보통은 지위를 가진 대주교나 최상위 사제들이 한곳에 모여서 후보자들중 차기 교황의 자리를 선출해.”

세습제가 아니라, 투표제에 가깝다.

“차기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투표에 참석한 최상위 사제와 대주교들의 투표를 과반수 이상 받아야만 해.”

“음…. 신기하네요.”

왕족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방식에 에린은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는 새로운 개념의 통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귀족과 왕족의 집안에 태어난 아이는 그 지위와 명예를 물려받는 것이 에린이 가지고 있는 권력자 자제들의 통상적인 상식.

그렇기 때문인지 에레니움 신성국의 교황 선출방식은 신기했다.

“그러니까 마침 이렇게 기회도 왔으니 나중에 얘가 교황이 될 때 너네가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저희가요?”

“어.”

“하지만 저희는…. 사제도 아니고 에레니아 신성국 사람이 아닌데요?”

“얘는 사제잖아. 그것도 그냥 사제가 아니라 내 뒤를 잇는 성녀.”

“아….”

에린은 아니에스가 가리키는 엘레노아를 보며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식했다.

차기 성녀인 엘레노아가 알베른을 지지한다면, 교황 후보 선출에서 적지 않은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또한, 그렇다고 성국 내에만 도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은현 저놈도 돈 많잖아. 정치적인 부분은 엘레노아가 담당한다고 하더라도 해외에서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가.”

신성력의 발현은 대륙 전체의 누구나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은혜다.

그들은 모두 대륙 전체에 있는 베스타 신전 사제들의 안내에 따라 에레니아 신성국으로 모여들며 사제로서 교육이 받게 된다.

당연히 그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노예나 고아 등 불우한 인생을 보냈던 사람들도 존재하며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귀족 집안의 자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엘레노아가 그중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엘레노아 또한 처음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먼 거리에 위치한 에레리아 신성국으로 와 사제 연수를 받을 때 집안으로부터 적지 않은 원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편하게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 나라는 꼭 이 나라만의 힘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

타국에서 흘러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기부금이나 원조가 신성국의 주된 운영 예산 중 20%가 넘는다.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기부와 원조를 해주는 타국의 주요 인사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차기 성녀인 엘레노아라는 점도 그렇지만, 엘레노아나 은현이 주된 핵심으로 이끌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지지는 알베른에게 큰 힘이 될 터였다.

“아, 그렇네요.”

에린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니에스나 엘레노아의 설명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구태여 아니에스가 알베른의 정체를 밝힌 이유는, 정체를 밝혀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거라는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니에스님이 추천해주신 분이라면 저는 찬성이에요.”

엘레노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아니에스의 안목이라면 잘못된 사람을 교황으로 추천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아니에요! 도움을 주실 필요는….”

알베른이 구태여 사양하려고 손을 내저었지만, 그것을 아니에스가 막았다.

“사양하지마. 애초에 너한테 얘들을 소개해준 것도, 이걸 위해서야.”

“으….”

“저어….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교황님의 손자분이시라면,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선출될 가능성도 높지 않나요?”

아니에스가 직접 나서서 추천하는 이라면, 다른 사람들 또한 알베른의 교황 선출을 지지하며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터인데, 이야기만 들어서는 현재 알베른의 상황은 그러지 못한 듯 보였다.

“그게….”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는 알베른을 대신하여 아니에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얘, 할배의 손자인 거, 비밀로 하고 있거든. 신전 안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도 안 돼. 그리고 나도 대외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고.”

즉 현재의 알베른은 신전 안에서 아무런 지지 기반도 갖추고 있지 않은 평범한 견습 사제에 불과했다.

아니에스가 멋대로 차기 교황 후보라고 말만 하고 있지, 사실상 현재 그는 교황을 목표로 하고 있을 뿐, 현 교황 후보 조차도 아니었다.

“어…왜 굳이…?”

에린은 그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글쎄다아? 뭐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풉, 오직 자기 힘만으로 교황이 되고 싶다나 뭐라나?”

명백히 알베른을 비웃고 있는 말투다.

“놀리지 마세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고 있음에도, 아니에스는 킥킥대며 가벼운 태도를 지우지 않았다.

“뭐 이 녀석의 순정파 같은 그 낭만은 제쳐두고도, 혈통을 밝히지 않은 것 자체는 나도 그리 나쁘지 않게 봤어.”

자칫 잘못하면 현 교황의 손자라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벌레가 꼬일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효과가 있는 법이야. 너도 그 정도는 알잖아.”

“그렇…긴 하죠….”

하지만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 많은 시간도 자금을 투자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이, 의지하는 것이 너무 서투르다.

“너는 누구한테 좀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리고 너무 머릿속에 고민이 많아. 생각 좀 비우고 살아.”

“아니에스님은…. 너무 생각 없이 사시잖아요….”

“뭐 임마?”

느닷없이 들어온 반격에 아니에스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알베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손을 움켜쥐자, 알베른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허억!? 아, 아니에스님! 죄송해요! 진짜로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둘의 나이 차이는 아들과 딸에 가까운 수준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남들의 눈에는 그저 사이좋은 남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스운 실랑이가 이어지면서도 계속해서 이동했다.

“여기입니다….”

신전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이 있는 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하나 마주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알베른과 아니에스만이 알고 있는 비밀 통로를 통해서 왔기 때문이다.

알베른은 아니에스의 악력에 으스러질 뻔했던 어깨를 매만지면서 방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교황의 방이라지만, 공적인 자리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관계이기 때문일까, 알베른은 교황이 아니라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칭하여 불렀다.

“왔구나.”

침대에 누워있는 한 노인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알베른을 반겼다.

힘이 없어 쇠한 목소리의 주인은 이윽고 알베른의 뒤를 따라 들어온 아니에스와 은현 일행을 발견했다.

노쇠한 얼굴 속에 활짝 웃는 표정이 피어났다.

“…응?”

에린은 의아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습관적으로 읽어 들인 노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밝음, 기쁨, 그리움.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친구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

슬쩍 은현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지만, 은현은 교황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짧은 시선만을 교환하던 차, 교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현을 데려온 아니에스조차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교황은 모든 것을 헤아린 눈치였다.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렇게 아니에스의 부탁을 받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네. 제가 아니에스에게 직접 부탁드렸지요.”

은현은 자신을 알고 있는듯한 교황의 태도에서 미심쩍은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와 자신은 이번에 첫 대면.

하지만 그는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저를 알고 계십니까?”

“네. 하지만 당신은 저를 모르겠지요.”

“그렇습니다.”

“먼저 저를 소개해야겠군요. 저는 현재 에레니아 신성국의 교황이라는 자리를 맡은 아르반 예르살레카라고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도자이시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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