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77화 (660/730)

〈 677화 〉 677. 교황 대면(2)

* * *

에레니아 신성국의 수도, 에레니움.

그 수도 내부로 입장하기 위해서 수백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행렬을 만들고 있다.

입구에서 병사에게 검문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기다란 행렬은 대량의 물자를 실은 짐마차를 이끄는 상인들이나, 여행객들로 가득하여 북적인다.

은현과 에린, 엘레노아, 아니에스의 네 사람은 그 행렬 사이에 껴서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성국 안에서 높은 신분을 과시할 수 있는 아니에스가 있다면 이런 행렬 사이에 껴서 검문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프리패스였겠지만, 자신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니에스는 스스로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검문을 통과해 에레니움 안으로 입장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와아….”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거대한 성문을 응시한 에린이 감탄사를 흘렸다.

고개를 위로 올려다보아도 그 끝이 보일락 말락 하는 그 높이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용을 과시한다.

“여기가…. 에레니움….”

페르니아스 왕국의 수도인 페르닌도 높은 성벽에서 만만치 않은 위용을 뿜어내고 있던 것은 맞지만 에레니아 신성국의 수도인 에레니움도 그 위용은 전혀 꿀리지 않았다.

오히려 외관적인 부분에서 이렇다 할 차이가 보이진 않았음에도, 에레니움의 성벽이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결계의 존재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결계는…. 뭔가요? 그냥 마법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수도 전체를 보호하는 거대한 결계는 페르니아스 왕국의 수도에서도 방위 시설로 자주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다.

제법 현금의 흐름이 활발하게 움직여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령도 은현이나 일리아나의 도움으로 제법 고위급의 방위 결계를 사용하고 있으니, 제법 영지 자금이 윤택한 영지들은 고위급은 아니더라도 모두 마수나 외적으로부터 영지를 보호할 수단으로써 많이들 사용하고는 한다.

하지만 신수라는 영물의 시점에서 느낀 에린의 감각에는 에레니움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는 다른 결계들과는 뭔가 다른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 결계는 마법사들 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사제들이 참여해서 만든 최상위의 방위 결계야.”

“아.”

짧게 설명해주는 엘레노아의 말에 에린은 곧바로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눈앞의 결계에서 느꼈던 익숙한 힘의 정체는 신성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결계를 만드는데 사제님들도 참여하시나요?”

“페르니아스 왕국에서는 안 그래. 수지타산이 맞지 않거든.”

이 방위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적으로 소모되는 마력이나 신성력을 보충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방위 결계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결계의 유지를 위해서 수십이 넘는 숫자의 중 상위 사제라는 고급 인력들을 정기적으로 지원받으려면 예산이 휘청일 정도의 규모가 필요하다.

“보통 다른 왕국이나 영지들은 실력 있는 마법사 몇몇과 질 좋은 마석들로 결계의 유지를 하는 편이지. 에레니움이 특수한 거야. 이곳은 중위는 물론 상위 사제들도 몇백을 넘게 밀집되어 있는 베스타 신전의 본교가 있으니까.”

“아하.”

신전의 방위를 위해서 사제들이 움직이고 신성력을 베푸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굉장히 속물적인 이유였지만, 이만큼이나 효율이 좋은 곳도 없다는 것을 에린은 이성으로 이해했다.

“굉장하네요. 이 결계….”

에린은 이 결계의 방어력을 대강 눈대중으로 가늠했다.

그 역량을 자신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페르니아스 왕국의 수도인 페르닌이나,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방위 결계 보다는 더 강력한 방어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에레니움에 있는 베스타 신전 본교가 사람들에게 존중과 추앙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지.”

아니에스가 에린의 감탄 어린 반응을 받아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몸이 가볍네요.”

이 결계는 사제들의 신성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결계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가해지는 물리적인 공격과 침입에도 굳건히 버틸 뿐만이 아니라, 결계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 전체에 다양한 이로운 효과를 가져온다.

기초적인 체력의 향상과 더불어 피로를 덜 느끼게 만들고, 병에 잘 걸리지 않게 되는 등의 효과들.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다양한 의미로서 이 결계가 유지되고 있는 에레니아 신성국의 수도, 에레니움과 베스타 신전이 타국이나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해서 엘레노아나 아니에스가 펼치는 ‘성역화의 결계’가 더욱 넓은 범위로 이곳을 둘러싼 것도 모자라 24시간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쩐다….”

일반적인 왕국이나 영지의 방위 결계와는 차원이 다른 신성국의 결계에 에린이 순수히 감탄 어린 찬사를 흘렸다.

“쩐다? 저게 뭔 말이냐?”

“굉장하다는 말이에요.”

엘레노아의 해설을 들은 아니에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요즘 애들은 다 저런 말 쓰냐? 진짜 무슨 말을 쓰는 건지 전혀 못 알아먹겠네. 내가 진짜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그럴 리가요. 저도 잘 모르는걸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고 있던 엘레노아가 작게 아니에스를 위로했다.

엘레노아도 사실상 에린과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편이었지만, 귀족 가문의 여식으로서 교양과 격식을 배워온 그녀로서는 에린의 말투를 알고는 있어도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에린은 두 사제 간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아직도 감탄 어린 표정으로 성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저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신성을 느낀 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꼿꼿이 바로 세우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우리 차례야.”

약 20분의 시간을 기다렸을까, 은현 일행이 검문받을 차례가 다가왔다.

이윽고 가슴팍에 금색의 십자가가 인장으로 박혀있는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병사의 의례적인 검문이 시작되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상대가 누구든 간에 한없이 정중하고 경건한 태도로 질문 해오는 병사의 물음에 은현은 미리 준비해둔 답변을 꺼내두었다.

“모험가입니다. 여행 겸 벌이 차 에레니움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으음…. 모험가…?”

병사는 은현 일행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 행색을 관찰했다.

미리 배낭과 적당한 장비들을 착용하여 구색을 갖춘 은현 일행은 병사의 눈에 제법 모험가처럼 보였다.

애초에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린이나 은현 때문인지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병사의 눈에는 한 가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자그마한 어린 애도 모험가란 말씀이십니까?”

“누가 작다…읍!”

엘레노아가 발끈하여 병사에게 한소리를 하려는 아니에스를 뒤에서 꼭 끌어안으며 입을 막았다.

당장 놓으라며 항의 어린 눈빛을 보내며 난동을 부렸지만,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을 뿐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신성의 축복이라는 베스타의 은총을 직접 받은 아니에스의 완력이라면 엘레노아의 손을 완전히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후임이기 때문인지 아니에스는 그런 막돼먹은 수단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엘레노아가 아니에스를 막고 있는 동안, 은현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 아이는 이래 보여도 제법 경험이 많은 모험가입니다. 꼭 외관만으로 판단해주진 말아 주세요.”

“뭐, 그건 그렇죠.”

병사는 생각 외로 쉽게 은현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하루에도 이 성문을 통과하는 방문자의 숫자만 수천 명.

그중에는 방랑하는 직업의 특성상 대다수의 모험가가 포함되어 있다.

살면서 다양한 모험가들을 만나본 병사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못 미더운 부분은 있으나, 에레니움 전체에 펼쳐져 있는 신성의 결계가 이들을 받아들인 이상 악인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사의 검문은 금방 통과됐다.

하지만 아니에스는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젠장…. 그냥 내가 대주교라는 걸 밝힐 걸 그랬어.”

그것을 밝히지 않은 게 몹시 후회되었다.

아니에스가 대주교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이러는 것이 더 편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애초에 이런 조용한 잠행을 택한 것도 그녀의 의사를 존중한 결과였다.

“들어왔으면 됐지. 뭘 그렇게 툴툴대.”

“…너는 이 기분을 모르겠지. 쯧.”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아니에스님이 신전의 대주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내 기분을 이해해주는 건 엘레노아. 너밖에 없는 거 같다. 그냥 저놈 버리고 나랑 살래?”

“죄송해요. 그건 불가능해요.”

쓴웃음으로 거절하는 아니에스와 진담이 반 섞인 농을 던지는 아니에스의 만담을 들은 체 만체하며 은현과 에린을 앞을 걸었다.

안으로 진입한 도시의 내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조용하네. 어딘가…. 차분하달까?”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 안을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렬을 유지하며 질서정연하게 걷고 있는 광경은 뭐라고 표현하기 애매했다.

마치 사람들이 어떠한 규칙들을 강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에린에게 익숙한, 자유롭고 시끌벅적한 활기가 가득 차다 못해 넘치는 아르미타스 공작령과는 전혀 다른 도시의 분위기였다.

커다란 규모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요하고 질서가 잡힐 수가 있는 걸까.

에린은 신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에레니움을 관찰했다.

그 모습이 마치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기 위해 주위의 정보를 탐색해나가는 야생 고양이 같아서, 은현과 엘레노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여기부턴 내가 안내할게.”

어느샌가 아니에스가 앞장을 서서 세 사람을 이끌었다.

마구간에 들러 마차와 마부를 고용하고 신전의 본교로 향했다.

“도착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어유. 감사합니다.”

은현이 건넨 금화 하나를 넙죽 받은 마부가 헤벌쭉한 웃음을 지었다.

본래 생각했던 값보다 배나 되는 요금을 지불받은 터인지 기분이 아주 흡족했다.

그런 마차를 뒤로하고 은현 일행은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앞장서는 아니에스의 뒤를 따라 신전 본교의 입구에 도착했다.

아니에스는 본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후드를 깊게 눌러 쓰며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며 거침없이 걸었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 허억!?”

본교의 건물 입구에서 신전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안내를 전담하고 있는 사제 하나가 아니에스의 얼굴을 알아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도시의 외곽에서 검문과 경비를 맡고 있던 병사들은 아니에스의 얼굴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지만, 신전 안에서 그녀의 얼굴은 제법 알려진 모양이었다.

아니에스는 곧바로 사제의 입을 틀어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쉬잇! 뭐하는 거야? 내가 돌아왔다고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니고 싶어?”

“하, 하지만…! 놀란 걸 어떻게 합니까!? 나갈 때도 느닷없이 나가시더니, 이렇게 느닷없이 돌아오시면…. 그동안 저희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세요!?”

“말했잖아. 잠깐 친구네 놀러 갔다 온다고.”

“아니. 그게 지금 대주교님이 할 소리가 아니잖아요!”

작은 목소리로 잔소리를 퍼붓는 사제와 아니에스의 옥신각신하는 실랑이를 잠시나마 관전하던 차, 은현 일행의 시선을 느낀 아니에스가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 몰라! 일단 나 할배가 부탁한대로 그놈 데리고 왔어. 지금 바로 할배 보러 갈 거야. 괜찮지?”

“…네?”

사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아니에스의 뒤를 따라 가까이 접근해오는 은현 일행을 보고 적잖게 당황한 듯 허둥대며 다시 아니에스에게 물었다.

“저, 저분들이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분이라고요?”

“정확히는 저 두 미녀를 가운데에서 양팔에 끼고 있는 저 쓰레기 하렘 주인공 자식이 할배가 보고 싶다고 말한 그놈이야.”

“그건 대체 무슨 표현인가요…?”

은현에 대하여 짧게 압축한 아니에스의 소개를 들은 사제가 당황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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