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73화 (656/730)

〈 673화 〉 673. 마녀의 아기(2)

* * *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와 그녀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본 은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하….”

제 엄마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다양한 감정들이 샘솟아 올라 가슴을 가득 채웠다.

저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는 현실이 진짜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의심.

주체하지 못하고 부풀어 오르는 기쁨.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행복.

복합적인 감정들이 어우러지는 탄식은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뭐, 뭐해…! 빨리 안아봐!”

은현이 멀뚱멀뚱 자리에 서서 일리아나와 아기만을 바라만 보고 있자, 참다못한 에린이 나서서 은현을 재촉했다.

에린 또한 귀엽고 조그마한 두 사람의 아기를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빠인 은현보다도 그것을 먼저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등을 떠밀려 앞으로 밀려난 은현은 조심스레 일리아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고생…했어. 정말로….”

10시간을 넘도록 출산에 힘을 쓴 일리아나의 얼굴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없던 체력을 모조리 쥐어 짜낸 탓인지 피로가 가득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은현의 손길을 느끼고 일리아나는 웃었다.

“만져볼래?”

“…그래도 돼?”

“네가 아빠잖아.”

일리아나는 은현에게 소중히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내밀었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기를 향해 손을 뻗는 은현의 긴장을 확인하고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페르니아스 왕국을 쥐락펴락하고 많은 전장을 경험했던 그가 고작 한 명의 가녀린 아기 하나에게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그와 자신 사이에 생긴 갓난아기라는 것이 더더욱 기쁘고 뿌듯하다.

일리아나에게서 아기를 건네받은 은현은 조심스레 자신의 아기를 품에 안았다.

“와아…. 귀여워어!”

“정말이네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고 있는 은현과 달리, 옆에 있는 다른 아내들이 더 호들갑이다.

“나도…! 나도 안아보게 해줘! 현아!”

응애애애애!

최대한 작은 톤으로 말을 한다고는 했지만, 결국 소란에 민감한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 울음을 터뜨렸다.

부주의하게도 갓 태어난 아기의 단잠을 깨어버린 에린에게로 은현과 다른 두 아내의 시선이 몰렸다.

“아, 하하…. 미안….”

“아기 앞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되지. 아가.”

“진짜…! 진짜 죄송해요…!”

“에린. 우리는 나가 있자.”

엘레노아가 에린의 어깨를 덥석 붙잡으며 활짝 웃었다.

웃고 있지만, 그것은 그녀가 에린에게 잘못한 점을 지적하며 설교를 늘어놓을 때의 표정이었다.

그것을 에린이 또 잔소리가 시작될 것임을 직감하고 울상을 지었다.

“히잉….”

침실 안에 일리아나와 아기, 셋만이 남게 되자 은현이 품 안에 있는 아기의 작은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달랬다.

“착하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며 웃음을 보이는 아기는 은현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손은 너무도 가녀리고 작았다.

자신의 피를 이은 새 생명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은현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뭐야. 익숙하네?”

“그야 뭐….”

은현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일리아나는 아기를 다루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과 달리, 은현이 익숙하다는 것에 살짝 불만은 품은 듯 보였다.

“아기를 다루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

여러 곳을 방랑하면서 혼자 행동해왔던 경험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갓난아기를 다루는 경험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엘리시아가 낳은 아기를 다른 보육원에 맡길 때까지는 은현 자신이 돌보아야만 했다.

엘리시아.

보석의 마녀라고 불리는 몇백 년 전에 실존했던 마녀의 일족 중 일원이었으며, 일리아나의 먼 선조이기도 하다.

“흐응….”

일리아나는 구태여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단지 지금은 이렇게 뿌듯함과 기쁨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은현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름은 어떻게 할까?”

“그건 이미 생각해뒀어.”

“흐응?”

의외라는 듯 일리아나가 관심을 보인다.

“일레이나. 어때?”

“응. 나쁘지 않네.”

자신과 비슷한 어감의 이름은 그럭저럭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사실 은현이 지어준 이름이라면 뭐든 다 좋았던 일리아나는 은현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한 1개월 뒤면 바로 복귀할 수 있어.”

아니에스와 엘레노아가 가득 담아준 신성력의 아티팩트들이나, 은현이 미리 공수해온 약재들을 복용하고 대비해둔 탓인지, 그녀의 산후조리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보통이면 2~3개월은 앓아누워야 할 테지만, 많은 준비를 해둔 일리아나의 복귀는 굉장히 빠른 편이다.

“너무 무리하지마.”

“아니. 할 거야. 나도 준비해야 할 게 있으니까.”

“…….”

일리아나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녀 또한 앞으로 일어날 싸움에 대해서 대비를 해둬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자신보다 더 한 고집하는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은현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갑자기 웬 한숨?”

“그냥.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지켜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은현은 그런 것들이 얼마나 큰 약점으로 작용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마. 너한테 그런 짐을 지울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일리아나는 장담했다.

애초에 그녀가 빨리 몸을 회복시켜 서둘러 복귀하려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일리아나는 은현의 연인으로서 함께 옆을 나란히 걷고 싶은 것을 원했던 것이지, 여자로서 아내로서 보호받기를 원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걱정 자체는 나쁘지 않네.”

침대에 누워있는 일리아나는 은현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것이 자신을 안아달라는 아내의 요구라는 것을 은현은 곧바로 눈치챘다.

아기를 안고 있는 채로 조용히 침대 위로 올라온 은현은 그녀의 품에 아기를 안겨주고 함께 침대에 누웠다.

자신의 아기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목표를 속으로 새기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잡았다.

◆ ◆ ◆

약 3주의 시간이 지나고, 일리아나가 산후조리를 마치고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타이밍.

“너 혹시 우리 할배 만나볼 생각 없냐?”

사전에 엘레노아와 에린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아니에스의 권유는 꽤 뜬금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집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쿠키를 먹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백수.

다 컸음에도 집에만 틀어박힌 철없는 딸내미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엄연히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 지위를 가지고 있는 성녀다.

“교황께서 나를 보고 싶다는 이유가 뭔데?”

아니에스의 권유를 거절할 생각은 딱히 없어도 자세한 사정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니에스는 당당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

그녀의 표정과 태도에서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애초에 그녀는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숨기는 성격이 아니다.

사람을 속이는 것은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에스는 천성적으로 머리를 쓰는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얘는 원래 이랬지.’

은현은 뒤늦게 아니에스가 어떤 사람인지를 새삼 자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사람 보는 눈만큼은 탁월했다.

그것은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철저한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의 영역이다.

아니에스가 은현에게 교황과 만나볼 것을 권유했다면, 그것은 적어도 교황은 그릇된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애초에 은현은 아니에스와 교황 사이의 관계가 꽤 특별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 흐음.”

아니에스는 자신의 의견을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난 한번 만나줬으면 좋겠어. 그 의도는 몰라도, 우리 할배 곧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그녀의 말은 교황의 현실적인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교황하고 각별한 사이였지.”

“…그렇게 말하니 뭔가 좀 이상한데.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니에스와 교황의 관계는 평범한 직장의 상사와 부하 같은 간단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녀가 신성력을 깨우친 것을 시작으로 신전에 들어와 성직자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끌어주었던 이가 바로 지금의 교황이다.

사실상 20년 전 제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현 교황을 그 자리로 옹립시킬 수 있었던 것에는 아니에스의 도움이 제법 컸다.

아니에스에게 있어 은현이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 트레이너라면, 교황은 성직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인성을 가르친 은사에 가까웠다.

아니에스는 교황을 선생님처럼 따랐고, 교황은 아니에스를 제자처럼, 딸처럼 아껴주었던 각별한 관계에 가깝다.

“미안한데. 이건 널 위해서가 아니야. 그냥 우리 할배가 곧 가는데….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하다못해 교황이 원하는 것이라면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에스의 마음이었다.

“그래. 알았어.”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탁하긴 했는데, 괜찮냐? 너 바쁘잖아.”

“바빠도 너한테 도움받은 것도 한둘이 아닌데, 이 정도는 해야지. 게다가…. 일리아나를 도와준 것도 있고.”

일리아나의 산후조리에 큰 도움을 준 은혜를 저버리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아, 고맙다.”

아니에스는 은현이 흔쾌히 자신의 부탁을 수락해주자 실실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언제쯤 출발할 거냐?”

“일단 2주 정도.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만 끝내고 가자.”

“어. 그래.”

아니에스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무를 마치자 아니에스는 다시 쿠키를 입안에 넣었다.

“이거 맛있네. 더 주면 안 되냐?”

“몰라. 릴리한테 물어봐.”

아니에스의 입안으로 흡입되고 있는 쿠키는 에린이 굉장히 좋아하는 과자로 릴리가 손수 구워준 것이다.

에린의 먹성도 제법 만만치 않아 대량으로 구워두는 양이 한 상자 정도로 일주일은 두고두고 먹을 양이었으나, 그것을 요 며칠 사이에 모조리 먹어치우는 아니에스의 먹성도 한 성깔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쿠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에린이 안다면 그녀는 울상을 짓지 않을까.

‘나중에 릴리한테 말해둬야겠네.’

쿠키도 쿠키지만, 에레니아 신성국으로 가 있는 동안, 일리아나를 케어하는 것은 릴리의 역할이다.

은현은 내일부터 곧장 일리아나에게 먹일 약재들과 식재료들을 물색하러 릴리와 함께 장을 보기로 계획했다.

다음 날.

은현은 전날에 미리 말해두었던 대로 릴리와 함께 장을 보기 위해 공작령으로 외출을 했다.

“주인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뭔데?”

언제나 맡은 역할을 완벽히 완수하고 은현에게 헌신하는 릴리가 먼저 부탁을 해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녀가 구태여 은현에게 무언가를 원해오는 것은 잠자리 때 말고는 딱히 없다.

“그게….”

릴리는 은현의 시선을 피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몸을 배배 꼬며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애용하는 도구를 꺼내어 은현에게 내밀었다.

“이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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