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2화 〉 672. 마녀의 아기(1)
* * *
“반신(半?)….”
엘레노아는 살짝 놀라운 표정으로 두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릴리 또한 마찬가지.
확실히 아까부터 소녀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범상치 않았다.
소녀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신성은 은현과 베르단디의 신력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베스타 여신에게서 직접 신성의 축복을 받은 엘레노아나 은현의 정기를 힘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릴리는 곧바로 소녀들의 본질을 알아보았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곧바로 깨달았다.
하지만 그 정체들이 은현과 같은 ‘반신(半?)’의 존재라는 것이 두 여성을 놀라게 만든다.
하계에 실재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은현보다는, 베르단디에 가까운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흐응….”
일리아나가 임산부용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베르단디와 두 딸을 보고 웃음을 짓고 있다.
그 웃음에는 기쁨이나 반가움 등의 긍정적인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
그 웃음이 어찌나 싸늘하고 무서웠는지, 베르단디 조차도 눈치를 보고 금월과 은월은 양옆에서 베르단디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뒤에 숨어 있었다.
여신조차도 긴장하게 할 정도로, 일리아나의 표정은 싸늘했다.
베르단디와 두 소녀의 모습을 확인한 엘레노아와 릴리는 잠자코 일리아나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현의 딸이라고 소개한 두 소녀를 보고, 엘레노아와 릴리는 매우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었지만, 가장 격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터인 일리아나를 위해 참고 있었다.
“왔어?”
일리아나가 방안으로 들어온 은현을 웃으며 맞이했다.
“…….”
은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곧바로 베르단디와 시선이 마주쳤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은 은현뿐만이 아니라 베르단디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베르단디가 먼저 금월과 은월을 소개하고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나중을 생각해서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은현과 베르단디는 서로의 생각을 읽은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교환했다.
“아빠!”
이윽고 금월이 은현에게로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그를 불렀다.
소심하게 뒤따라오는 은월 또한 은현에게 안아달라고 양팔을 내뻗는 것을 보고, 다른 아내들이 더욱 미묘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5~6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두 소녀가 하루아침에 나타나 자신들의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니, 당혹스러울 만도 했다.
“아무래도 직접 설명을 하러 왔나 봐?”
“…응.”
자신과 베르단디가 시선을 교환하며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일리아나도 쉽게 파악했다.
“그래. 직접 듣는 게 맞겠지. 설명해.”
굉장히 강압적인 태도에서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은현은 곧바로 일리아나와 다른 아내들에게 금월과 은월을 소개했다.
휴가차 다녀왔던 신계에서, 베르단디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주었던 가상 세계 속에서, 보낸 시간을.
자신이 검술에 대한 개인적인 성취를 시작으로 어쩌다 보니 베르단디가 자신의 신력과 뒤섞인 힘을 품으면서 아기를 가지게 된 것까지.
“…하아.”
이야기를 들은 일리아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좀 쉬다 오라고 했더니, 아기까지 만들어오고…. 그것도 둘씩이나….”
이윽고 다시 정면을 응시한 일리아나의 시선이 두 소녀와 마주했다.
“힛!?”
“…….”
지금까지 싸늘한 냉기를 풀풀 풍기던 시선을 받은 금월과 은월이 순간 몸을 움찔 떨며 베르단디의 뒤로 숨었으나, 이내 갸웃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어느샌가 싸늘하고 꽉 잡아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해진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이름이…. 금월과 은월이라고 했니?”
“네, 네….”
“네….”
일리아나의 부름에 답하는 두 소녀의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섞여 있었다.
이 정도로 자신이 분위기를 무섭게 잡았던 걸까 하는 생각에 일리아나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무섭게 만들어서 미안해.”
“괜찮아요…!”
“네….”
사과를 받아들인 두 소녀의 반응은 밝은 성격과 소심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듯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하지만 일리아나가 자신들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본 탓일까, 금월과 은월은 일리아나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풀었다.
베르단디의 다리 뒤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일리아나의 얼굴을 살펴보거나, 밝게 웃음을 지으며 답해주는 소녀들을 보고, 일리아나도 쓰게 웃던 웃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앞으로 잘 지내보지 않을래?”
“네! 마녀 엄마!”
“네.”
“후후.”
일리아나는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화 안 내?”
한 소리 들을 것을 각오했던 은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여자의 아이를 데리고 온 남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은현이었다면 그럴 자신이 없었을 것 같다.
“화내줬으면 좋겠어?”
“…….”
차마 아니라고는 답할 수 없었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이들은 안 된다니, 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마인드란 말인가.
그래서 만약 일리아나가 화를 낸다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리아나는 웃어 보일 뿐 화를 내지 않았다.
“너를 휴가 보낸 것도 나잖아. 누굴 탓해.”
베르단디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신계로 보내는 걸 허가한 것은 자신일진대, 은현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네 핏줄이기도 하니까 싫지 않아.”
일리아나는 당혹스럽긴 했지만, 은현의 딸들인 금월과 은월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처럼 엘레노아와 릴리도 아이를 만들 예정인데 베르단디라고 해서 아이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단지 인간이 아닌 여신이 하계에서 인간처럼 아이를 만들었던 것이 의외였다.
그리고 약 5살 정도 되는 앳된 외모를 가진 것 또한 그랬다.
“그냥…아쉬운 것뿐이야.”
“아쉬워?”
“가능하면…. 내가 먼저 낳고 싶었거든. 네 아기를.”
“…….”
쓰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는 정말로 아쉽다는 감정이 잔뜩 묻어나왔었다.
“괜찮으세요?”
은현과 베르단디의 뒤에 숨어 있던 은월이 조심스럽게 일리아나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
소심한 성격과 달리 자신의 기분을 눈치챈 소녀의 위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살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일리아나가 이내 작게 웃음을 지어 은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위로해준 거니? 고마워.”
“…네.”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리는 은월은 칭찬에 익숙지 않아 보였다.
“후후. 귀엽네.”
은현을 연상시키는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깔을 보고 웃었다.
확실히 그의 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만약 딸이라면 커서 이렇게 이쁘게 자라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겨났다.
문득 밝은 목소리로 금월이 부른 자신의 호칭을 상기시켰다.
‘엄마라….’
직접 들어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울림이었다.
◆ ◆ ◆
일리아나는 현재 인생의 첫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많은 적들을 섬멸하는 압도적인 마법을 구사하는 대마법사의 인생에서 이런 극심한 공포와 경험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후…. 으…으윽…!”
신음을 참는 목소리는 일리아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일리아나는 설마 자신이 출산 과정에서 통증 때문에 이런 목소리를 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은현과 함께 많은 전장을 누비면서 많은 상처도 경험해보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별개의 고통이 그녀의 몸을 엄습했다.
“배에, 배에 힘을 주셔야 해요! 힘내세요! 일리아나님!”
한차례 테레지아의 출산을 경험한 엘레노아를 중심으로, 아니에스와 릴리, 에린이 일리아나의 분만을 도왔다.
공작 저택에 마련되어 있는 분만실에 은현은 오지 못했다.
여러 의학 지식에 대해 통달한 은현이지만, 여성의 출산만큼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지금은 분만실 밖에서 분만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
일리아나는 어째서인지 은현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지만, 그보다 찢어질 것만 같은 격렬한 고통에 인상이 찡그려졌다.
아니에스나 엘레노아의 신성력으로 몸의 기력을 충만히 채우고, 그토록 하기 싫은 운동까지 꾸준히 해오며 순산을 위한 몸을 만들었다고 자신했었지만, 그것들이 모두 소용이 없어진 게 아닐까 하는 고통의 연속이다.
‘순산이나 안산따위…. 도대체 누가 만든 단어야.’
세상에 그런 개념따위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고 속으로 투덜댔다.
“일리아나님! 정신을 잃으시면 안 돼요! 단단히 붙들어 매셔야 해요!”
“알…고 있어…!”
강하게 외치는 엘레노아의 말에 일리아나는 순간 자신이 반쯤 의식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게 투덜거리면서 출산이 이렇게 힘든 건줄 처음 알았던 만큼 일리아나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다른 아내들에게 격렬한 감정을 내비치면서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일리아나는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힘내세요! 일리아나 님!”
오히려 일리아나의 짜증을 엘레노아나 릴리, 에린 또한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다.
“으, 으으응…!”
아랫배에 힘을 주면 줄수록 이빨을 꽉 깨문 입에서는 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
순간 정신을 놓으면 지금 쥐어짜 내고 있는 힘을 다시는 발휘하지 못할 것만 같아, 필사적으로 버텼다.
‘겨우, 겨우 이 정도로…!’
평소 아플고 힘든 것을 싫어하던 일리아나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불굴의 정신력이다.
그녀가 이렇게 마음을 꽉 잡고 분만에 힘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원대한 목표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멀어…! 첫 번째에서 좌절할 수는 없어!’
일리아나는 출산을 한 이후에도 산후조리를 끝내면 곧바로 둘째와 셋째를 낳을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베르단디 때문이었다.
은현의 첫 번째 아이를 낳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의해 베르단디에게 빼앗겨버렸지만, 그와 가장 처음 맺어진 것은 일리아나였다.
질투와 독점욕이 강한 그녀는 다른 아내들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언제나 그의 가장 가까이서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은 일리아나 자신이었다.
그 상대가 비록 여신일지라도, 동등한 위치에 있을지언정 자신이 뒤처지는 것은 절대로 참을 수 없다.
베르단디가 두 명의 아이를 가졌다면, 자신은 세 명을 낳을 생각이었다.
이 계획에서 가장 힘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은현일테지만, 이미 반쯤 죄를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상 은현은 일리아나의 계획을 거부하지 못한다.
“흐, 으으으으…!”
몸안에 남아있는 모든 힘과 정신력을 쥐어짜 내어 신음을 흘리자, 아래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엘레노아가 계속해서 보고하며 응원을 이어나갔다.
“일리아나 님!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조금만…! 조금만 더요!”
그 말이 기운을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되었을까, 일리아나는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으애애애앵!
맑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넘어 공작 저택의 복도에까지 울려 퍼졌다.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은현이 황급히 문을 열고 분만실로 들어왔다.
“일리아나!”
냉정을 잃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은현의 반응을 보고, 다른 아내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와…. 저 현이가 이렇게 동요하는 거 처음 봐요….”
에린은 이전 테레지아의 출산 때 보여주었던 리오드의 담담한 반응을 떠올렸다.
이미 세 번이나 출산을 경험한 리오드와 처음 출산을 경험해보는 은현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언제 어디서나 냉정을 잃지 않았던 은현의 이면을 보게 되자, 에린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언젠가…. 우리도 낳게 되겠죠?”
반면 릴리는 무언가 강하게 열망하는 표정으로 침대에 축 늘어져 누워있는 일리아나와 아기, 은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응. 그렇겠지.”
엘레노아도 웃으며 부럽다는 표정을 짓는 릴리의 열망에 동의했다.
반면 에린은 조금 망설였다.
“저, 저는 조금….”
전신과 얼굴은 땀으로 가득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과 비명으로 가득했던 일리아나의 분만을 도운 에린은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진짜 아파 보이셨는데…. 일리아나님….”
마치 출산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기분을 느낀 에린은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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