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1화 〉 671. 1 더하기 1은 4(3)
* * *
어찌 되었거나, 베르단디 염원이 현실로 성사되고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아이야! 어떻게…어떻게 이렇게 경사스러운 일이…!”
하지만 눈에 띄게 기뻐하는 베르단디와 달리, 은현은 무작정 낙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신을 임신시켰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초유의 사태에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자신을 꼭 끌어안으며 진심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베르단디의 기분에 공감하여 기쁨을 표하기엔 이 상황이 너무도 마음에 걸렸다.
“아이야? 혹시…기쁘지 않은 것이냐?”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자신의 얼굴이 너무 심하게 굳어있었던 탓일까.
기뻐하던 베르단디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와 베르단디의 아이는…. 인간인가요? 신(?)인가요?”
현재 베르단디는 제약으로 인해 인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본질이 여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
그 조건은 반신(半?)의 격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은현도 마찬가지였다.
이 가상 세계에서 베르단디가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었으나,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사로 인해 만들어진 아기로 생각을 해야 할지, 아니면 여신과 반신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기로 봐야 할지.
“후후,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었느냐?”
베르단디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음을 지었다.
“현재 우리는 내가건 제약으로 인해 인간의 틀에 속해 있기는 하나, 영혼에 각인되어 있는 신력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즉….”
“…아기도 신의 격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군요.”
둘의 신력과 혼이 어우러지면서 어린 신이 새롭게 탄생한다.
“그렇지.”
“…고마워요.”
은현은 베르단디를 꼭 끌어안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무엇을?”
“제 아기를 가져주셨잖아요.”
“…나도 간절히 바라는 일이었다.”
베르단디 또한 자신이 만든 운명의 보정 효과에 깊이 감사하며 은현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여신이 만든 가상 세계가 끝이 났다.
강제로 인간에 가까운 상태에 유지되고 있던 제약이 풀리자, 막대한 신력과 신격을 다시 찾았다.
이윽고 한 가지 이변이 발생했다.
“어?”
[음?]
베르단디의 복부에 집중되어 있던 강력한 기운들이 갑작스레 실체화하여 빛을 뿜어내고는 은현을 향해 옮겨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빛이.
마치 자석처럼 이끌리듯 그대로 자신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두 개의 빛을 눈치채고 은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나, 나도 모르겠구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베르단디를 쳐다보았으나, 베르단디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신과 인간의 정사로 인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신계에서도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으나, 극히 드문 경우였으며, 베르단디 또한 이번이 처음 아이를 가져 보았다.
모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추측으로는…. 내 안에 있어야 할 아기들이 아이의 안으로 옮겨간 것 같구나.”
“아기들….”
베르단디의 복부에서 밝게 빛난 빛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그것은 만들어진 아기가 쌍둥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는 굉장히 기쁜 소식이었지만, 은현은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집중하여 두 개의 빛이 스며들어온 자신의 몸 상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니, 은현은 두 개의 빛이 자신의 어디에 스며들어와 정착했는지 깨달았다.
“아.”
은현은 곧바로 자신이 애용했던 두 자루의 검을 소환했다.
“색이….”
베르단디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적색과 청색으로 밝게 빛났던 검신이 금색과 은색으로 변화했다.
“…역시나.”
은현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영혼의 일부로서 각인되어 있던 두 자루의 검에, 은현과 베르단디의 신력이 뒤섞이면서 만들어진 두 개의 빛이 깃들었다.
그 영향인지 두 자루의 검은 평소보다 더 짙고 강한 신력을 품고 있었다.
“…….”
은현은 생각에 잠겼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베르단디의 배 속에서 갓 만들어진 반신(半?)의 영혼들은 어째서 은현의 영혼으로 옮겨와 두 자루의 검에 정착한 것일까.
계속 생각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베르단디도 어떻게 해답을 내려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녀 역시 여신으로서 자식을 만들어본 경험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물어볼 만한 신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은현의 머릿속에 어떤 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데카테온의 신인 유피테르다.
아내인 쥬노가 있으면서 무수히 많은 여신들과 문란한 관계를 가지고, 그뿐만 아니라 하계의 인간에게도 손을 댔다는 소문이 자자한 유피테르라면 현재 은현과 베르단디가 겪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해답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은현은 유피테르에게만큼은 조언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 영감 진짜로 짜증난다는 말이지….’
도데카테온 안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신이었지만, 그런 외적인 요소들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은현은 유피테르를 좋아하지 않았다.
유피테르는 은현에게 적지 않은 호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마음에 들 수 없는 호의다.
여자라면 일단 건들고 보는 바람둥이 유부남이 자신과 같은 동류를 보고 느끼는 절친한 동질감과도 같은 것.
유피테르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그 동질감이 은현에게는 엄청난 모욕으로 다가왔다.
확실히 아내가 여럿이나 있고 여신도 반려로 맞이한 이상, 남들의 시선에서는 그럭저럭 비슷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은현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유피테르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후우.”
그런 자신의 한심함에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아이야? 왜 그러느냐?”
“잠시…. 뭣 좀 물어보러 다녀와도 될까요?”
“아.”
베르단디는 은현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자신으로서도 현재 상황에 명쾌한 답을 내려줄 수 없으니, 다른 신에게 조언을 받자는 은현의 생각은 베르단디도 동의하는 바였다.
단지 이 과정에서는 은현을 도데카데온의 영역으로 보내주기 위해선 베르단디가 가지고 있는 여신의 권한이 필요했다.
“알았다. 다녀오거라. 어디로 보내주면 되겠느냐?”
“도데카테온의 유피테르님이 계신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이는 유독 유피테르와 죽이 잘 맞는구나.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진 것이냐?”
“…….”
은현은 정말로 억울한 오명을 씌인 기분이었다.
베르단디의 시점에서는 정말로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더더욱 충격적이다.
은현은 베르단디의 권한으로 도데카테온의 신역에 들어섰다.
결코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원했던 대로 은현의 앞에는 거대한 신좌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신, 유피테르와 마주했다.
[반가운 방문자가 찾아왔군.]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은 자연스레 은현의 몸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육성으로 말을 하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직접 소통을 해오는 신들의 방식은 그 소통만으로도 영혼을 강하게 울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은현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한쪽 손을 팔걸이에 걸쳐 턱을 괴고 있는 유피테르는 도데카테온을 찾아온 연유를 물으며 근엄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유피테르의 눈에는 무언가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은현은 특별한 용무가 없다면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은 인간의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반신(半?)의 부탁일지라도, 은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유피테르는 어느 정도의 편의를 봐줄 용의도 있었다.
유피테르의 물음에 은현은 자신이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이번에 베르단디가…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호오?]
베르단디의 임신 소식을 들은 유피테르가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과 베르단디의 신력이 뒤섞인 새로운 반신의 혼 두 개가 은현의 영혼 일부인 적월과 청월에 정착하였다는 소식까지.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도달했군.]
“…네?”
[뭘 그리 놀라는 거지? 인간과 신 사이에서 벌어진 정사로 인해 반신이 태어나는 경우는 불가능한 게 아니다.]
유피테르는 언젠가 은현과 베르단디 사이에서 새로운 신이 태어날 거라고 예상하였다.
[그래서? 어땠나? 여신과의 정사는.]
“…….”
역시나 은현의 예상대로, 유피테르는 새롭게 태어날 예정인 반신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베르단디와의 정사가 어땠는지 후기를 물어보는 그 미친 태도를 꿋꿋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 기가 찰 정도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은현은 짜증이 솟구쳐 그냥 베르단디에게로 돌아갈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분위기를 읽은 유피테르가 곧바로 답했다.
[그리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너의 새로운 반신들은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정착할 장소를 스스로 고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더 자세히 설명해줄 이에게로 옮겨주는 것이 낫겠군.]
짧게 중얼거린 유피테르가 손을 내젓자, 은현을 둘러싼 배경이 뒤바뀌었다.
웅장한 신전의 중심 한복판이었던 배경은 쇠 냄새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대장간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배경과 함께 유피테르는 사라졌고 새로운 신이 은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피테르님께서도 참 너무하시군. 다짜고짜 나에게 설명을 떠넘기시다니.]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였지만, 배경이 변화하면서 유피테르에게 설명을 모두 들은 불카누스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불카누스님.”
[음. 나에게는 그리 오랜만이 아니지만, 인간의 시간으로는 그렇게 되겠군.]
작게 고개를 끄덕인 불카누스는 은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새로운 반신이 깃든 자네의 검들을 내게 보여줄 수 있겠나?]
“네.”
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신이 금색과 은색으로 변화한 적월과 청월을 소환하여 망설임없이 불카누스에게 건넸다.
자신에게 선뜻 신의 무구를 선물하고, 적월과 청월의 완성에 큰 기여를 해주었던 불카누스는 은현이 베르단디 다음으로 믿고 의지하는 신이었다.
[놀랍군. 전에 보았을 대보다 더욱 단련되어 있어. 그리고….]
품고 있는 신력의 양이 막 완성하였을 당시에 비해 몇십 배는 증가했다.
아마고 검 안에 정착한 새로운 두 반신의 영향이리라.
[자네와 베르단디의 신력으로 만들어진 반신이 이 두 자루의 검에 깃들었다고 했지?]
“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검과 동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네. 스스로에게 맞는 최적의 장소를 새롭게 태어난 반신이 골랐다고 본다면 되겠군. 이 검들은 지금도 성장중이야.]
인간들의 몸으로 비유를 하자면 적월과 청월의 검 자체가 은현과 베르단디의 신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반신들에게는 집이며 모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무기들은 나도 처음 보네. 자네는 정말로 대단한 검을 만들었군.]
의도하였던 바는 아니었지만, 만들어진 결과는 본의 아니게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모두 베르단디가 가상 세계에서 강제했었던 운명의 ‘보정’ 효과의 영향이었다.
가상 세계가 끝났음에도 그 효과의 여파가 자연스레 은현의 전력을 강화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걸론 아직 부족하네.]
“…그 말씀은?”
[이 두 자루의 검은 확실히 그 어떤 대장장이가 보아도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훌륭한 검이지만, 이 막대한 규모의 신력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격이 떨어지지.]
그러니 적월과 청월의 격을 더욱 끌어올리도록 재련을 거듭하여, 조만간 자아를 갖추게 될 예정인 두 반신의 힘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자네는 언제나 날 찾아올 때마다 즐거운 일거리를 함께 가져와 주는군.]
“돕겠습니다.”
◆ ◆ ◆
“그래서 금월과 은월이 탄생하게 된거야.”
은현은 새롭게 변모한 두 자루의 검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불카누스의 도움을 받아 수도 없이 재련을 거듭한 두 자루의 신검은 마침내 각성하여 자아를 형성했고, 베르단디와 은현의 신력을 이어받은 두 반신이 자아를 갖추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
아침을 먹던 에린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신력이니, 새롭게 태어난 반신이라니, 아직 하계의 섭리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에린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딸이 둘이나 생긴 은현은 제대로 휴가를 즐기다 왔는지 굉장히 밝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뭐, 됐나.’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에린은 족했다.
“아, 현아. 그리고 아니에스님이 찾아왔어.”
“아니에스가?”
“응. 그…. 교황님? 그분이 현이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는데?”
“…흐음.”
은현은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인지 생각하고 있던 차,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아니에스님한테 가려고?”
“아니. 일리아나한테.”
“아.”
일단은 새롭게 생겨난 두 명의 반신을, 자신과 베르단디의 딸 두 명을 일리아나에게 소개하고 사정을 설명해야만 했다.
“…설마 화내지는 않겠지?”
지금이야 많이 온화해졌지만, 과거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큼 낙관할 수가 없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은현은 에린과 함께 빠르게 설거지를 마치고 일리아나에게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