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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668화 (651/730)

〈 668화 〉 668. 자존심 싸움(2)

* * *

당장이라도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부으려던 찰나.

시에테와 구미호의 사이에 에린과 제라드가 끼어들었다.

“대스승님! 안 돼요!”

“미호님! 참으셔야 합니다!”

이곳은 아르미타스 공작령.

소란을 피워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당연히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기사들이 출동하게 된다.

그렇게까지 일이 커지면 당연히 엘레노아의 귀에도 들어가게 될 것이나 공작 가문의 평판이 깎여나가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만 했던 에린은 머릿속으로 시에테를 말릴 방법을 강구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자마자 그것을 입에 담았다.

“대스승님! 여기서 소란을 피우시면 현이한테 곤란한 일이 생겨요.”

“…….”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에린의 설득에 시에테가 당장이라도 겨우살이를 뽑아 구미호에게 대항하려던 것을 멈칫했다.

현재 이 영지의 영주는 엘레노아이며, 엘레노아의 남편은 은현이다.

엘레노아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은 사실상 은현에게도 귀찮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에린의 설득은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

항상 은현에게 말도 안 되는 꼬장을 부리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제자인 그를 아끼는 만큼 그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만큼은 삼가고 싶었다.

시에테는 겨우살이를 꽉 쥐고 있는 손에 힘을 풀었다.

“휴우….”

험악한 분위기가 풀어지고 있는 것에 에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간다.”

“네, 넵!”

시에테는 몸을 홱 돌려 상점을 빠져나왔다.

“제, 제라드님. 그러면 저희는 이만….”

에린은 급하게 시에테의 뒤를 따르면서 작게 고개를 숙여 제라드에게 인사를 전했다.

“하하. 네. 에린 양. 나중에 또 뵙죠.”

“흥.”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은 제라드와 새침하게 고개를 홱 돌려 외면하는 구미호를 뒤로하고 에린은 시에테와 함께 상점을 나왔다.

“저어, 대스승님.”

“뭐냐.”

“저 영약이 그렇게 좋은 영약인가요?”

“좋지.”

그 영약만이 아니라, 현재 에린의 양손에 가득 담겨 있는 영약들도 그에 준하는 효과를 가진 영약들이다.

“…이렇게 많은 영약들을 도대체 어디에 쓰시려구요?”

“내가 먹으려고 했다.”

“…왜요?”

에린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시에테는 굳이 영약을 필요치 않는다.

그녀의 진짜 강함은 압도적인 신체의 스펙이 아니다.

특출난 재능과 감각으로 단련된 기술의 극한이 시에테가 가진 최대의 장점.

영약을 먹으면서 신체의 스펙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효과를 아예 안 보는 건 아니지만, 그 효과가 굉장히 낮아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

하지만 시에테는 굳이 영약들을 쓸어모아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신체 스펙을 올리려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현이를 부탁드릴게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은현을 부탁한다는 일리아나의 말이 직접적인 계기다.

시에테는 구태여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시에테의 집에 도착한 에린은 품에 가득 안고 있던 영약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것들 다…. 어떻게 드시려고요?”

무수히 많은 영약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영약들로 그 종류만큼이나 효능들도 다양하며 복용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무작정 먹는 것보다는 정확한 방법과 절차를 통해서 효율을 극대화시켜 먹는 것이 옳은 방식.

이 많은 양의 영약들을 각각의 방식으로 먹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세월이 걸린다.

“영약을 맡아주기로 한 이는 따로 있으니 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아, 그렇군요.”

시에테가 구매한 영약들을 제조해주기로 한 것은 일리아나였으나, 그것을 모르던 에린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라. 오늘은 고생 많았다.”

“…헐!?”

느닷없이 시에테가 자신의 노고를 칭찬해주자, 에린은 기겁하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의미로 구미호만큼이나 까칠한 성격을 가진 그녀가 자신을 격려해주다니 경악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무슨 표정이냐. 그게?”

에린의 반응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에테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봤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저한테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시는 게 너무 의외라서….”

“흥. 너는 오늘 왜 내 시중을 들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냐?”

“어, 그야…. 현이가 없는 대신…. 아니었나요?”

“너는 대체 날 뭘로 보는 것이냐. 평소에도 굉장히 바쁜 그 녀석에게 이런 허드렛일을 시키는 몰인정한 스승으로 보고 있구나.”

“…….”

에린은 입을 꾹 닫았다.

하마터면 ‘어? 아니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랬다면 분명히 또 시에테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들으면서 은현에게 자신의 실수를 일러바쳤을 것이다.

“네 녀석이 오늘 나를 따라다녀야 했던 것은 벌이다.”

“벌이요?”

“나를 멋대로 소환하여 부려먹어놓고선, 설마 그대로 입을 싹 닫을 생각이었던 건 아니겠지?”

“…힛!?”

에린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찔 떨었다.

개미굴 안에서 느닷없이 시에테를 소환하여 은현이 시킨 일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고대 마수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던 일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이다.

그때의 시에테가 지었던 눈초리를 생각하면 아직도 허리에 싸늘한 기분이 맴돈다.

“까먹고 있었군.”

“아, 아니에요! 진짜로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새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에린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됐다. 혼낼 생각 없으니 이만 돌아가라. 오늘은 나도 좀 쉬어야겠구나.”

“알겠습니다….”

◆ ◆ ◆

“하아. 피곤해애….”

하루종일 시에테의 뒤를 따라다닌 탓인지, 몸이나 정신이나 양쪽 모두 노곤했다.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공작 저택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현이가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

신계로 올라간 지 아직 하루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리워지려고 하고 있다.

아마 내일쯤이면 돌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내일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게 느껴진 하루였다.

“아…. 일리아나 님 품에 안겨서 하루 종일 쓰다듬어지고 싶어….”

현이에게 만져지는 것 다음으로, 일리아나를 비롯한 다른 아내들에게 잔뜩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취미인 에린은 지금 그 손길이 너무도 고팠다.

“오, 아가씨. 잘 갔다 왔나?”

“오늘은 무슨 일을 하다가 온 거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작 저택의 앞에 도달하자, 저택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에린을 발견하고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헤헤. 저 왔어요. 아저씨들!”

에린은 엘레노아와 마찬가지로 은현의 아내이지만, 우러러볼 수 없는 높은 신분에 위치한 엘레노아와는 달리 에린은 평민의 신분이기 때문에 병사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구미호가 가진 특유의 페로몬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열게 만들고 친숙함을 쌓는다.

특히나 귀엽게 생긴 외모와 성숙한 몸매 덕인지 모험가 길드에서는 물론 이곳에서도 에린은 인기인이었다.

밝게 웃으며 답해주는 에린의 말을 들은 병사들이 실실 웃으면서 저택의 문을 열어주었다.

“자, 들어가. 아가씨.”

“넵!”

마치 친동생을 대하듯 친숙한 병사들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당당히 공작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택의 주인인 엘레노아와 아내들 중 서열이 가장 윗사람인 일리아나에게 돌아온 것을 알리는 것이다.

누구에게 먼저 향해야 할지를 살짝 고민하고, 엘레노아가 있는 집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엘레노아 님. 저 다녀왔어요.”

집무실 앞에 서서 노크를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자, 방안에서 엘레노아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들어 와.”

“실례하겠…어?”

집무실로 들어간 에린이 방안에 먼저 선객이 들어왔음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 안녕?”

소파에 앉아서 배에 올려둔 접시의 과자를 입안에 가득 넣고 으적으적 씹고 있는 충격적인 비주얼에 에린이 멈칫했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영지를 운영하는 영주가 있는 집무실에서, 한없이 무례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그 행동을 보이고 있는 대상의 외관이 너무도 충격적이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외관에 신성함이 깃든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는 소녀는 소파 위에 널브러진 채로 과자를 먹는 모습에서는 고위 성직자의 기품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내 멈칫한 동요를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니에스 님.”

“응.”

싱긋 웃어 보이는 아니에스는 다시 과자를 먹는 것에 집중했다.

‘…왠지 모르게 아저씨 같아.’

에린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당당하게 이 공작 가문의 집무실에서 이렇게 가벼운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스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능력 때문이기도 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인상과 달리, 아니에스가 발휘하는 신성의 기적은 진짜다.

그것을 직접 보고 체감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일까.

에린은 아무리 아니에스가 가볍고 아저씨 같은 모습을 보여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하. 진짜로 보면 볼수록 화나네.”

“…네?”

느닷없이 아니에스가 자신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에린이 긴장하여 되물었다.

만나자마자 인사를 했을 뿐인데, 도대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은현. 이 복에 겨운 놈. 아내가 여럿인 것도 모자라서 하나같이 보면 볼수록 진짜 이쁘장하네.”

“…….”

자신에 대한 칭찬이 섞인 투정이었다.

에린은 도대체 무엇을 걱정한 것인지 힘이 빠진 표정으로 아니에스를 보며 물었다.

“저어…. 아니에스 님은 어째서 여기에 계신 건가요…?”

“뭐, 그냥 심심해서 놀러 온…거긴 한데. 용건이 아예 없던 건 아니고.”

“……?”

아리송한 답변에 에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은현 그놈한테 볼일이 있었는데. 그놈이 지금 잠깐 자리를 비웠다잖아. 그래서 목적을 잃은 차에 그냥 일리아나한테 축복이나 좀 걸어주고 여기에 눌러앉아서 과자나 얻어먹고 있었지.”

“아하.”

에린은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은현은 베르단디를 따라 신계로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이곳과 다른 섭리의 흐름으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현은 약 2년간의 휴가를 보내고 하계로 다시 복귀할 예정이다.

사정을 이해한 에린은 아니에스의 용무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현이한테는 무슨 용무이신데요?”

“흐음?”

아니에스는 흘끗 책상에 앉아 있는 엘레노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는 이 이야기를 부외자인 에린에게 이야기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냐는 것을 미리 확인하는 물음이었다.

엘레노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은현의 아내인 에린은 이야기를 들어도 어디에 떠벌리는 가벼운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엘레노아 쪽에서 에린이 은현이나 자신과 함께 해주기를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흐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괜찮겠지.”

아니에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에린과 진지한 자세로 마주했다.

과자를 먹던 아저씨와도 같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진지해진 아니에스의 행동거지에서 신을 모시는 성직자의 기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품이라는 게 마치 스위치가 꺼졌다가 켜지는 것처럼 작동하는 것에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에린은 아니에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침을 꿀꺽 삼켰다.

“실은 말이지. 우리 할배가 이제 얼마 안 남았거든.”

“…네?”

에린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할배라고 말을 해도, 아니에스의 가족 관계나 주변 인물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에린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린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인 것은 엘레노아였다.

“아니에스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에린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해요.”

“아, 얘는 모르나? 뭐 그렇겠네. 우리 할배가 누구냐면, 우리 신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직자를 말한 거야.”

“신전에서 가장 높은 성직자….”

여기서 아니에스가 말하는 신전이라는 것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신전 지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베스타 신전이 아니라, 그 신전들을 모두 총괄하는 대신전.

에레니아 신성국의 수도 중심에 위치해 있는 본교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 본교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직자는 에린의 상식상 단 한명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교, 교황…님…?”

“맞아.”

아니에스는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교황님. 그러니까 할배가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그래서…. 갑자기 가기 전에 은현 그놈이 보고 싶다고 하셨더라고.”

아니에스가 은현을 찾아온 용건이라는 것은 베스타 신전의 교황의 전언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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