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9화 〉 649. 영웅의 성장(5)
* * *
“이…럴 수가…!”
악마는 경악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부러지지 않았던 자신의 강화된 손톱들이 허무하게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이 개미굴로 흘러오온 수많은 모험가를 사냥했던 악마의 손톱은 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던 모험가들의 공격도 버텨냈을 정도로 강력한 내구력을 자랑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잘려나갔다는 것을 자각한 악마는 패닉에 빠졌다.
그 당황을 수습할 틈도 없이, 혼란 속에서 승기를 잡은 리오드는 움직였다.
리오드는 생각했다.
‘부족하다.’
검기를 해방하지 않고, 계속해서 칼날에 유지해두는 것으로 발현된 막강한 공격력은 단단한 악마의 손톱을 갈라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리오드 스스로가 상정했던 위력에 반도 미치지 못했다.
평소에 하던 대로 검기를 해방하여 주위에 휘두르는 것이 범위도 넓으면서 위력이 강하다.
‘나도 모르게 그 녀석을 따라 하고 있었군.’
그것은 은현의 영향 때문이다.
자신이 전력을 발휘하며 검을 휘두른다면, 아슬아슬하게 지층을 유지하고 있던 이 개미굴은 그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릴 것이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리오드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전력을 온전히 발휘하면서 그 피해의 여파와 공격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한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을까.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 리오드가 시도하고 있는 자신의 새로운 기술은, 두 눈으로 인식하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검과 날카로운 절삭력을 겸비한 예기를 자랑하는 은현의 검술에서 얻은 발상.
‘이건 내 검이 아니다.’
이 검술은 은현의 검술이지 자신이 사용하는 검술이 아니다.
그의 검은 육체의 한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완성된 피지컬과 압도적으로 많은 마력을 한점에 끌어모아 상대를 압도하는 스타일.
단순히 설명해서 이른바 힘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더 강하게, 더 많이, 더욱 무겁게.’
자신의 모든 것을 검에 집중시키고 응축시켜 그것을 유지한다.
우우웅
검의 날에 모여들고 모여든 마력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대기를 진동시킨다.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 검날을 제어하기 위해서, 리오드는 손잡이를 쥐고 있는 양손에 힘을 실어 악력으로 검과 검기의 마력을 제어했다.
점점 커져만 가는 크기와 중압감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강대해지며 악마조차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
리오드의 검기에서 느껴지는 그 위압감은 마치 태산과도 같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산.
[올리비온 검술]
[태산(太山)]
리오드는 일생일대의 최대의 검기를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 해방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끌어모아 한곳에 집중시키고 있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필요하며 정신의 피로를 가속시킨다.
‘빠르게 정리한다.’
이 검기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는 리오드가 속전속결로 마무리를 짓기 위해 움직였다.
좌에서 우로 그어지는 리오드의 횡베기는 방금까지 보여주었던 검속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느렸다.
하지만 두 눈에도 훤하게 보이는 검로의 사선 끝에 있는 악마는 그 검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태산처럼 거대하면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검기의 무시무시한 위압감은 전신을 딱딱하게 굳게 만들고 피부를 오싹 소름 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크…윽!”
악마는 작게 신음하며 뒤늦게 반응했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자신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을 자각하고 또 한 번 경악한다.
‘내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작 인간에게…!?’
그것은 자신을 상위종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악마에게는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악마가 잠식한 인간의 육체는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리오드의 검기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에 위축된 상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이미 그것을 악마의 몸이 그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황급히 악마가 자신의 몸을 뒤로 물리자, 리오드의 검격이 악마의 가슴을 횡으로 스치며 허공을 긋는다.
완벽히 검날을 피해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공격에서 무사했던 것은 아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검기가 피해냈다고 생각했던 악마의 가슴 쪽을 찢어발기며 허공으로 피분수가 솟는다.
“크아아아아악!”
오염된 마력으로 전신을 뒤덮고 있던 강력한 내구와 방어력을 뚫고 들어오는 리오드의 검기에 악마가 비명을 내질렀다.
절대적인 자신의 우위를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갑작스레 들어오는 데미지는 악마에게 더욱 큰 고통으로 작용했다.
직격하지 않았음에도, 검기에 닿아 큰 데미지를 입은 악마는 본능적으로 리오드의 검이 얼마나 커다란 위협을 지녔는지를 짐작했다.
저 기사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온다면, 아무리 악마의 마력으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간단히 그것을 찢어발기고 전신을 산산조각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자신의 사냥감에 불과했던 인간이라는 것을 악마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검기로 헤집어진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본능적으로 눈앞의 인간에 대해 두려움을 품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악마의 이성을 완전히 잃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인가아아아안!”
평소였다면, 악마는 절대로 이성을 잃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처와 자신보다 열등한 인간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생긴 감정의 결과는 도리어 악마에게 치명적인 실수로 작용했다.
악마는 그나마 멀쩡한 반대쪽 손톱을 휘둘러 리오드를 공격했다.
하지만 흐트러진 자세에서 급하게 휘두른, 기술도 뭣도 아닌 공격에 리오드가 동요할 리가 없었다.
리오드는 자신의 얼굴을 가르기 위해 들어오는 손톱을 유려한 회피 동작으로 피해냈다.
고개를 숙여 날카로운 악마의 손톱을 피해내고, 더욱 악마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이런…!”
크게 휘둘러진 공격이 빗나가자 너무도 허무하게 빈틈을 허용해버린 악마가 자신의 실수를 자각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
이미 팔을 뻗으면 닫을 거리까지 접근을 허용 당한 이상, 회피는 불가능.
그렇다고 리오드의 막강한 공격을 막아낼 수조차 없는 악마에게는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올리비온 검술]
[태산분쇄(太山??)]
태산과도 같은 거대한 바람이 악마의 머리를 덮치고 그것의 몸을 짓뭉개기 시작한다.
“이런…것쯤은…!”
악마는 양팔을 들어 올려 리오드의 검격을 방어했다.
오염된 마력으로 강화된 양팔이 리오드의 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크…!”
악마는 작게 신음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위에서 내리치는 검격은 무시무시한 중압감을 선사하며, 마치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고 있는 듯한 감각.
신체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리오드가 자신의 장점들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하여 찾아낸 해답이었다.
거대한 산과도 같은 그의 검은 마침내 저항하고 있던 악마의 마력을 찢어발기고, 잠식하고 있던 악마의 양팔을 짓뭉개기 시작한다.
“크아아악!”
매서운 검기의 삭풍에 휩쓸린 양팔은 톱날에 찢긴 고깃덩이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고통에 악마가 비명을 내지른다.
양팔의 가드를 무참히 찢어버리면서 무방비해진 악마는 더는 리오드의 공격에 저항할 수 없었다.
마침내 리오드의 검이 악마의 머리를 시작으로 목과 가슴 부근을 타고 악마의 몸을 분쇄시켰다.
잘려나간 검흔의 단면은 검으로 잘린 것이 아니라, 폭풍에 휘말려 종잇장이 찢겨 나간 것처럼 거칠다.
‘내가, 내가 겨우 인간 따위에게…!’
리오드의 검기에 휩쓸린 악마는 그의 공격에 의해 서서히 육체가 붕괴해가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어째서 자신이 겨우 인간 따위에게 패배를 맛보면서 소멸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찰나.
‘구시온님…!’
자신이 극진히 모시는 주군, 구시온의 말이 악마의 머릿속에 떠올라 맴돌았다.
인간이라는 것들은 마냥 무시해도 될만한 존재가 아니다.
악마는 구시온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은 악마인 자신들에 비해 육체의 수명도 짧고 그 영혼과 정신은 터무니없이 약하다.
간혹, 보다 강인한 육체를 타고나거나, 단련을 통해서 악마와 대적할 수 있을 만한 인간들이 태어나기는 하지만, 그들이 대적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해봐야 최하급이나 하급의 낮은 수준의 악마들.
수명은 짧고, 가지고 있는 힘도 별 볼 일 없으며 악마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능력에 대한 저항도 못 한다.
악마들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저 자신들의 힘을 성장시키기 위한 제물이나 먹잇감 정도의 인식밖에 가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구시온은 달랐다.
그것은 자신이 겪었던, 어떤 인간과의 사투를 회상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나를 죽음까지 몰고 갔었던 한 인간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은 강했다.
그녀가 휘두르는 검에서는 빛이 났고 아름다웠으며 고고했다.
구시온이 만나보았던 인간 중에서 가장 강했던 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구시온은 곧바로 그 여자를 떠올렸다.
나는 이겼지만, 졌다.
구시온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악마였기 때문이며, 그녀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사투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인간이 지니고 있는 신체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지치고, 너무도 쉽게 바스러진다.
그 가녀린 육체에서 쏟아지는 검술이, 춤추듯이 흐르는 검격의 연속 속에 녹아 들어있는 기술의 정수가 너무도 매혹적이고 예술로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구시온은 그 인간 여검사와의 사투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가 쌓아 올린 기술에서는 자신이 졌음을 인정했다.
악마 중에서도 높은 무력을 갖춘 상위의 대악마가 단 한 명의 인간 여성을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 그 여자의 제자를 만나는 것을.
구시온은 그 인간 여검사에게 한 명의 제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기술을 이어받은 그 제자가 성장하여, 스승의 유지를 잇고 복수를 위해서 자신을 찾아오기를.
그리고 자신에게 또 한 번 즐거움을 선사해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그 제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
악마는 그 인간 여검사의 영혼을 먹지 않고 영혼의 상태를 유지하여 거두었다.
언젠가 그녀의 제자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제자가 성장한 모습을 그녀에게 직접 보여주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제자를 죽일 생각이었다.
결국, 지구가 멸망한 끝에 악마들이 모두 마계로 다시 쫓겨나 지구와 연결된 통로가 봉인되면서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두어들였던 인간 여검사의 영혼도 그 사건 속에서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 놓쳐버린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정말로 아쉬웠어.
한 인간 여성을 인정하는 구시온의 말을 떠올리면서 악마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내가…잘못 생각했구나.’
여유를 부려선 안 됐다.
이 인간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검기를 만들어내기 전에,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기 전에 이 인간을 죽여야만 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 하나쯤은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린 그 오만함이 패배의 원인.
지금이라면 구시온이 말했던 의미를 조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젠…장.’
자신이 그 말의 의미를 조금만 빨리 깨달았다면, 겨우 한낱 인간 하나를 얕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비참한 패배의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으리라.
그 소리 없는 분함은 결국 표출되지 못하고 악마는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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